Recent Articles

꼰대와 함께 Jim Morrison을 들으며 술값을 계산하다

americanpie

 

중1 때부터 친구인, 그리고 한때 Deep Purple의 모든 곡을 암송하던 모 직장인은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대학교 때까지 자주 갔지만 지금은 연중행사로 들르는 곧 무너질 것처럼 애처롭게 지어진 어느 LP의 성채 주인장은 “음악은 1970년대로 죽었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불현듯, Don McLean의 모 노래가 떠올랐다. 도대체 누가 죽은 것일까?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그곳을 떴다. 그것도 이미 몇 년 전 이야기다. 자, 이 자리에서 풀어볼 일화는 논점은 같지만 약간은 결이 다르다. 얼마 전 운명의 그날. 모 씨는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어랍쇼? 술이 좀 들어가자 그는 다짜고짜 “홍대서 연주하는 8할의 뮤지션이 기타를 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Jimi Hendrix와 Ulich Roth만 ‘기타리스트’로 인정하는 스웨덴의 모 쾌(돼)남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급 임팩트로 새겨질 그날의 사건이 용트림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을 하기보단 잘 듣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날은 본성에 더 충실하면 되었다. 한 마디 할 동안 상대는 30마디를 쏘아댔다. 전설의 래퍼 희미넴을 불러와도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아, 이것이 ‘꼰대’로구나.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까지는 그나마 취향의 문제로 넘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음악은 이제 끝났어”, “인디가 음악이야?”라는 말은 견디기 힘든 어떤 쎄한 감정을 전달했다. 어느 공연장에서도 그와 마주친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음반구입이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최신 동향을 꿰고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하지만 저번 친구와의 술자리 에피소드에서 밝혔던 바대로, 일단은 꾸욱 참기로 했다. 결과적으론 그게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한 꼴이 되었지만.

하긴 전지적 작가시점 화법에 이어 유체이탈화법도 트렌드가 되고 있으니, 병리의 창궐시대에 이런 변이종 하나 튀어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그 질환을 현실과 과거 사이의 “경제적 혹은 정서적 간극”으로부터 비롯된 보상심리가 만들어냈다고 파악한다. “내가 좀 옛날에 잘 나갔지, 이 바닥 사람들이 날 다 모셨다고. 이봐,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말미에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를 덧붙일수록 화자는 ‘개저씨’일 확률이 높다. 이런 술자리가 과거에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술집의 무드는 독보적이었는데, 친구가 분사한 vomit을 정면으로 맞은 대학교 2학년 MT이후로 살의를 느껴본 것은 간만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맥주를 원샷한 그는 “이 음악이 진짜 음악”이라며, 턴테이블에 The Doors의 2집 [Strange Days]를 걸었다. 아아… 사장 아저씨는 어디로 갔는가.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곡을 불러 제끼는 Jim Morrison을 관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Love Me Two Times’가 지나가는 3분은 ‘인생에 남을 3분’이 되었다.

 

jimmorrison2

 

저 인간, 리액션이 부족해서 저러는 걸까. 그럼 열심히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얼쑤!”라는 추임새라도 넣어줘야 하는 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수록 상대는 자신감이 생겼고, 말이 더 빨라졌으며, 음반은 어느덧 3집을 거쳐 4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Jack Black이라도 빙의된 듯 열강을 하는 그의 말을 차마 자를 수 없었다. 이건 그냥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해 두자. 잠깐 담배를 피러 간다며 도망쳐 나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뻔히 다 아는 이야기를 이빨 꽉 깨물고 견뎌낸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인내란 그런 것이다. 좋게 생각해주자. 세상엔 아롱이와 다롱이만큼 다양한 종자가 있는 법이니까. 인간이란 누구나 사회적 승인과 인정을 밥과 공기처럼 먹고 사는 존재이니, 그 자리에서 기분 한번 맞춰준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안 보면 되는 거니까.

혹 그는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 조슈아 트리에 뿌려달라던 Gram Parsons의 환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이쿠, 그럼 난 세상에 남은 마지막 로맨티스트와 술을 마신 게 아닌가. 오히려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그날의 술자리. 로맨티스트라 지갑도 로맨틱했는지, 그날 술값은 내가 계산했다. 도리어 강의료로는 조금 약소하지 않았나. 뭐, 친애하는 배순탁 작가님으로부터 한 달에 2000을 번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 가상의 세상에서라도 2000을 벌어본 내가 로맨티스트 형 술 한잔 먹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집에는 잘 갔을까?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개저씨들이 귀가본능은 탁월하니까. 반면교사도 교사로구나. 앞으로 인디음악을 더욱 열심히/가열차게 듣기로 했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2 Comments on 꼰대와 함께 Jim Morrison을 들으며 술값을 계산하다

  1.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bb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곡을 불러 제끼는 Jim Morrison을 관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원래 개저씨들이 귀가본능은 탁월하니까
    반면교사도 교사로구나 ㅎㅎㅎㅎㅎㅎㅎ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