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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전기 올랐어요

길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3분

러닝타임은 3분 남짓이지만 체감 시간은 확실히 그 이상이다. 노이즈락 성격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이 노래는 버스(verse)에 들어서면서 팝과 트로트의 면모를 동시에 내보낸다. 조금 뒤에 깔리는 기타 리프는 개러지락에서 익숙한 톤이다. 1분이 지나서는 10초가량 디스코 리듬이 추가된다. 이후 템포가 늦춰지고 곡은 블루스 문법으로 한 번 더 잠시 외양을 바꾼다. 후반부에는 사이키델릭과 노이즈락, 블루스의 요소를 한꺼번에 출격시켜 혼합의 잔치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발랑발랑 내 가슴 어쩌나 몰라요”처럼 1970년대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사도 스타일의 너른 포섭에 일조한다. 이러한 다면성 때문에 여성 듀오 나팔꽃의 ‘전기 올랐어요’는 짧은 시간임에도 길게 느껴진다.

다양한 장르가 한 곳을 드나들지만 어지러움이 덜한 것은 그래도 락과 이것의 모태가 되는 블루스로 철저히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코가 이질적이긴 하나 활용되는 면적이 적어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자주 보였던 트로트 선율과의 은근한 연관 덕에 곡의 특징을 부각하는 소스 역할을 했다고 봐도 될 듯하다.

곡이 지닌 혼란함을 보조하는 장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 불안한 가창이 다소 갑갑하고 거북하지만 다면적인 구조만큼은 분명 흥미롭다. 용기라면에 끓인 물을 붓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다 뚜껑을 뜯고 젓가락을 들, 이 길지 않은 시간에 여러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 촌스러운 커버 사진보다 내용물은 훨씬 ‘예술적으로’ 재미있다.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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