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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경: 몸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그것이 ‘flowing’이다

 

‘현재’라는 건, 내가 지금 서 있는 좌표를 어떻게든 증명해준다. 지금, 그리고 여기. 불안하고 위태롭고, 가끔은 극복하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좌절감만을 돌려주던 잔혹한 시제. 누구에게나 성장통이라는 것은 있으며, 그건 꼭 사춘기 아이에게만 있는 질환은 아니니라 믿는다. 그렇게 자신의 현재를 어떻게든 넘어서겠다고 결심하고, 브라질로 불쑥 건너갔던 아티스트가 있다. 자신은 보사노바에 머물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보사노바 가수’라는 기호를 붙였으며, 사실 그간의 모든 결과물이 최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비겁하게 우회하기보다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통산 3집 [Flowing]엔 그 당시의 ‘현재’보다 한발 더 나아간 나희경의 모습이 담겼다. [Flowing]은 이제 나희경의 ‘현재’가 되었다. 앞으로 그녀가 무엇을 원하든 목적지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이번 음반은 여러 곳에서 지적된 것처럼 보사노바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 정제되고 정련된 팝 음반 혹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반을 듣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의도된 건가?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로 불리고 있기는 한데, 나는 ‘장르’를 아티스트 앞에 붙이는 게 모종의 ‘라벨링 효과’ 정도밖에는 없는 것 같다. 프로모션 차원에서 보사노바라는 말이 거론이 계속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보사노바의 ‘뿌리’를 잘 담아서, ‘내 것’으로 잘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음반에도 아마 그런 게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보사노바는 흔히 삼바와 재즈의 결합으로 소개가 되곤 한다. 그런데 이 단어 자체는 ‘New Wave’라는 뜻으로서 보사노바의 창시자 Antonio Carlos Jobim의 노랫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이 자연스러운 거고, 당신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보사노바다”라는 가사가 ‘Desfinado’라는 노래에 있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음악을 해야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그런 다짐을 하고 있다. 브라질에 Joao Bosco라는 아티스트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락 같기도 하고 팝 같기도 한 음악을 한다. 그분도 한 인터뷰에서 “어쨌든 나의 뿌리는 보사노바다”라고 말하더다. 그 말대로다. 보사노바에 대한 편견.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것들. 보사노바는 절대 그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뿌리가 보사노바라는 이야기는 정신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그 덕택에 음반은 나희경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빼어난 결과물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싸다방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2집을 냈을 때까지만 해도 ‘어떤 목표’가 있었다. 보싸다방은 우선 그 이름에서부터 대놓고 드러나는 음반이었고, 1집은 “이왕 브라질에 왔으니, 보사보나 클래식 넘버들을 골라보자”는 심정으로 만든 거였다. 그래서 내 보이스를 딱히 고려했다기보다는 내가 배우고 싶었던 보사노바 스탠다드들이 선택되어 음반에 실렸다. 그때는 “포르투갈어로 ‘싱잉’을 잘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EP [나를 머물게 하는]에서는 가요를 골랐다. 나는 기존 국내 작곡가분들이 보사노바 삼바 리듬을 차용하며 만든 곡들을 들으며 자랐던 세대인데, 그걸 브라질 분들과 함께 재해석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음반이다. 그러다 2집에 와서는 보싸다방 때부터 써내려온 곡들을 그동안 배워 온 방식에 맞춰 구현해 보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 탓에 음반의 컬러도 ‘중구난방’이 되었던 것 같다. 목표가 그랬으니 음반도 그렇게 표현이 되었던 거다.

그런데 원래 내 꿈은 “내가 무엇을 해도 내가 경험한 것이 배어나는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였다. 그런 생각을, 희망사항을, 브라질 첫 여행 때부터 품고 있었다. 난 그걸 향해 ‘한 계단-한 계단’ 밟아온 건데, 이번만큼은 아무런 계획 없이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중심으로 그냥 해보자,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드러날 거야. 그렇게 작업을 했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왔다.

 

2[Up Close to Me]까지는 외국인 가수로서 보사노바에 대해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강박이나 부담이 보였다. 이번 음반에 와선 그게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편해졌다.

조였다가 풀어가고, 다시 조였다가 풀어가고 그런 과정이었다. 그걸 계속해야 이런 작품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닐까?

 

Adriano Giffoni, Joao Carlos Coutinho, Cesar Machado 등과의 앙상블도 더 조밀해지고 합이 잘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나희경은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번 음반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이들과 어떤 사운드를 구현해 내고 싶었나?

내 첫 음반부터 같이 했던 분들이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Joao Carlos Coutinho는 영상을 보고 너무 좋아서 내가 섭외를 한 분이다. 이번에 기타리스트가 Humberto Mirabelli로 교체되었는데, 그 분은 현재 Mart’nália 밴드에서 연주하고 있는 분이다. 전작까지는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비중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음반에는 좀 더 트래디셔널한 나일론 기타를 넣고 싶었다. 우선 “지금 씬에서 나일론 기타를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이 누구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적임자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 장본인이 바로 Humberto Mirabelli였다.

 

나일론 기타를 넣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그 소리가 좋다. 그게 가장 큰 동기다. 특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브라질 안에서 활동하는 많은 보사노바 1세대 기타리스트들이 대부분 나일론 기타를 잡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그게 굉장히 신기했다. 그런데 브라질을 벗어나면 그들은 다 나일론 기타를 친다. 관객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 브라질에서 레코딩 할 때 보니 (그쪽 사람들은) 소리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걸 원하더라. 아무래도 그런 걸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런 건 취향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건 트래디셔널해야 돼, 모던해야 돼”, 그런 고민을 다 떠나서 그 나일론 기타의 줄을 스치는 잡음이 좋았다.

 

Bruno Matino의 오리지널 ‘Estate (Summer)’는 그 질감이나 템포, 무게감 면에서 이 곡을 부른 숱한 아티스트와의 차이점이 느껴져서 좋았다. 음악을 만들 때 염두에 둔 건 뭐였나?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Cesar Machado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Cesar Machado는 내 1집부터 같이 했던 드러머이자 편곡자이자 프로듀서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깨는 데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분 덕택에 “음악은 이래야한다”는 편견이 사라지게 되었다. 브라질 음악의 오리지널 소스를 담고자 브라질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옛 것”을 탐하려 한다. 그런데 이분은 제게 처음부터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니다. 전진하려면 어떠한 편견도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1집도 그분과 작업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다시 들어보면 결코 트래디셔널하지 않다. 생각 외로 모던할 거다. 그때부터 그분과 음악을 같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물들이 이런 형태로 나온 게 아닐까 한다.

 

나희경_프로필4

 

노래를 부를 때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이었나.

레코딩할 때 좋아하는 방식이나 주파수, 그런 것들을 내 보이스와 딱 들어맞게끔 하는 거였다. 특히 내 보이스를 잘 살릴 수 있게끔 하는 데 전념했다. 그 중에서도 음색. 내가 음색에 관심이 많다. 보컬은 EP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홈레코딩을 해오고 있는데, 나만의 음색을 잘 잡아내기 위해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마이크를 쓴다. 공연할 때도 KMS105라는 컨덴서 마이크를 들고 다니면서 사용할 정도다. 1집 땐 그런 음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게 좀 만들어지고 더 잘해보자는 느낌이 담겼을 거다.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역시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고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편곡을 바꿨다. 원곡보다 더 난해하게 간 것 같다. 가장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이 듣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런 걸 고려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간 게 아닐까?(웃음) 편곡자가 Cesar Machado인데, 나는 Cesar에게 모든 걸 위임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서 인트로부터 마디마디 하나씩 다 따지고 들었다. 아티스트가 편곡자에게 곡을 맡길 때 대개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디어 회의하면서 둘이 가장 신났던 게 바로 이 곡이다. 아니, 이렇게도 되네? 인트로가 아방가르드 풍으로 녹음되지 않았나. 콘셉트를 잡으면서 가장 즐겁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걱정된 곡도 이 곡이다. 이거 너무 어렵다, 어떡하지? 막상 밴드 레코딩에 들어가려니 좀 어렵긴 하더라고. 그런데 그걸 또 쉽게 정돈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한 그대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 거다.

이 음악이 난해하게 들리는 이유는 “하모니를 알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고 들으면 음반 중에 어려운 곡은 하나도 없다. 어떤 악기를 쓰고, 어떤 편곡을 하건 간에, 리스너들은 좋은 음악이면 좋게 듣는다. 그런 건 항상 생각하고 있는 바다. 음악을 만들 때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충실하게 구현하되, 그걸 들었을 때는 편하게 들을 수 있게끔 하는 거다. 보사노바 음악이 원래 음표 하나하나 분석해 들어가면 굉장히 난해한 음악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상당한 내공을 요구하는 음악이라고 보는데, 또 듣는 사람들은 편하게 듣지 않나. 그런 게 보사노바의 매력이다.

 

거장 Ivan Lins와 두 곡(‘Acaso’, ‘Começar de Novo’)을 함께 했다. 이 거물급 아티스트를 어떻게 참여하게 만들었나?

Roberto Menescal과 만났다. 오가닉 주스가게에서 주스를 마시면서 “새 음반을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고 Ivan Lins 곡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Ivan Lins에게 메일을 그렇게 메일을 보내 준 거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답변이 왔다. “굉장히 마음에 든다” 식의 아주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내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트랙 ‘Um Amor’의 뮤직비디오를 보시고는,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게 평가하신 것 같다. 그 후엔 매일같이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굉장히 ‘스위트(sweet)’한 분이더라. 마침 그의 칠순잔치가 있어서, 그 다음 주에 보기로 약속을 했다. 아무래도 칠순잔치는 가족과 친한 분 위주로 모이는 모임일테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있었는데, Antonio Carlos Jobim의 공연을 프로듀스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 Miele가 갑자기 “너, Ivan 노래 녹음한다며? 나, 칠순 잔치 가는데 같이 갈래”라고 전화를 주시더라. “어, 제가 거기에 가도 되나요?”, 그랬는데, Ivan이 흔쾌히 “물론, 같이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가게 되었다.

칠순 잔치에 갔더니, 연회장이 무슨 공연처럼 세팅되어 있더라. Ivan Lins랑 같이 공연 하는 밴드가 오고, 다른 싱어들도 오고. Ivan이 노래를 하고, Ivan 아들도 노래를 했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Miele랑 Dori Caymmi라고 유명한 작곡가가 같이 앉아 있는 VIP석에 내 자리를 만들어 주시더라. 무대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 앞에서 Ivan Lins가 노래하는 걸 듣고 “이분과 꼭 같이 해야겠다”는 열망이 더 커졌다.  그 다음날(원래 만나기로 한 날) 만나, 예정대로라면 2시간 대화만 나누나 헤어졌어야 했는데, 그분이 저 때문에 있던 스케줄을 바꿀 정도로 밤늦게까지 음악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Ivan Lins가 저를 만나자마자 먼저 “우리가 같이 듀오 음반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라. 그런데 그게 빈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대화를 이어가다가, 조심스럽게 “저 이번에 음반 작업하는데. 같이 해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Ivan이 “그건 아까 다 이야기된 거 아니냐”고 일갈했다. “같이 하기로 한 거니 같이 하자고” 호쾌하게 말씀하시더라. 그리고 우린 Ivan Lins의 음반을 하나하나 다 들으면서 곡에 대해 설명을 듣고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눴다.

그날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다 Ivan은 유럽에 투어가 있어서 가고, 이메일로 이런저런 내용을 왕래하고, 날 잡아서 녹음하고. 그렇게 진행된 거다. 어떻게 보면 일사천리로 진행된 거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Menescal, Miele, 그리고 뮤직비디오, 그걸 만들어준 감독님들, 내가 브라질에서 노력한 것들이 있었다. 그게 다 어우러져 그를 감동케 했던 거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음반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Acaso’는 원 버전보다 훨씬 동글동글하고 섬세해졌다. 어떤 느낌을 살려보고자 했나? 이 곡은 이렇게 하고 싶다고 소통한 바가 있었나?

물론. 무엇보다도 Ivan Lins가 함께 하는 연주자들 이름을 듣더니 단번에 “OK” 했고, “그분들이면 걱정이 없다”고 하더라. 이미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였다. 처음엔 Ivan Lins 밴드 멤버들과 해볼까 하는 말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랑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분들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분들과 하게 된 거다.

 

앨범 커버 _나희경3집

 

후반부로 가면 음반의 온도가 달라진다. 특히 자작곡 아이야방랑은 음반 후반부의 정서를 멜랑콜리하고 스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두곡은 어떤 트랙보다 쌀쌀해지는 가을 저녁에 잘 어울린다.

2집을 낸 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곡들을 꽤 많이 썼다. 음반 하나 낼 정도는 충분히 세이브가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중에서 (아까 이 음반에 들어갈 트랙을 고른 기준을 말했지만) 음악적으로(가사 말고) 먼저 고르다 보니, 이 두 가사가 잘 어울리더라. 너무 이런 메시지만 담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굳이 고치지 않고 넣는 게 좋겠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가사적으로는 내가 그간 느껴왔던 것들이 고스란히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아리랑이 이런 사운드로 해석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알던 관습적인 민요의 변주로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녹음하게 되었나?

고민이 많았던 곡이었다. 이걸 넣을까 말까. 만약 이 음반을 한국에서 녹음했다면 나는 ‘아리랑’을 넣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담스럽지 않나. 또 재즈 가수들의 클리셰처럼 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랬는데, 이 노래를 넣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이건 브라질에서 처음 노래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 브라질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한국의 문화와 내 음악여정을 소개하는)을 하게 되었는데, 강연만 하는 것보다는 음악적인 요소도 보여주고 싶어서, ‘Girl from Ipanema’랑 ‘아리랑’을 골라보았다. ‘Girl from Ipanema’ 하모니에 ‘아리랑’ 가사를 얹으니 잘 어울리더라. 어느 곡에 붙여도 잘 붙겠지만 말이다. 먼저 ‘아리랑’의 멜로디를 소개하고, 함께 ‘Girl from Ipanema’를 떼창하고, 다음에 같은 리듬에 ‘아리랑’을 같이 부르고 다시 또 ‘Girl from Ipanema’로 가고… 그렇게 반복했더니 이분들이 나중엔 ‘아리랑’을 다 따라 부르더라. 연주하는 분들도 흥얼거릴 정도였다. 그 장면에서 말 못할 감동을 얻었다. 그 이후, 공연 마무리할 때는 ‘Girl from Ipanema’랑 ‘아리랑’을 하게 되었고, 그게 연주자들에게 신나는 기억으로 남았나보다.

애초엔 악보도 없이 녹음했다. 뮤지션들이 스튜디오에 다 모였는데, 색다르게 연주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리랑’을 엄청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꼭 해야 될까 싶기도 했다. 내 음색과 딱 달라붙지도 않는데 “어떻게 할까” 그러고 있는데, 뮤지션들이 “희경, 왜 그 노래 안해? 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코드를 다 알려주고, 결국 녹음을 했다. 기존에 없던 콘셉트이고, 막상 해보니 유쾌한 경험이었다.

막상 고민이 시작된 건 믹싱/마스터링을 위해 한국으로 가져오면서부터다. 그전까진 말 그대로 “흐름(flowing)”처럼 작업했기 때문에, 악보도 없었다(웃음). 먼저 베이직한 악기를 연주해 녹음한 후, 베림바우 솔로를 하고 이후 계속 악기가 들어가게 했다. 이게 삼바 리듬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바의 변형판이라고 해야 하겠다. 삼바는 악센트가 ‘투’에 들어가는데, 이건 ‘원’에 들어가는 거다. 약간 배리에이션을 준 셈이다. 그래서 ‘too much 브라질리언 삼바’ 같지도 않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You’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더불어 가장 즐거웠던 곡이다.

 

10번 트랙까지 한 6~7번 들었는데, 그러다보니 이게 음반 제목(Flowing)처럼 어떤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곡들을 배열하고자 했나?

일단은 1번 트랙 ‘Estate’는 선정을 잘 한 것 같다. 드럼 비트로 시작해서 훅훅 들어오고 감각적이지 않나. 그렇게 확 감기는 트랙이 오프닝을 열고, 편하게 들어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거나 조금 이질적인 요소가 들어간 곡들은 뒤에 배치했다. 감각적으로 들어왔다가 확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생각 많이 하고 배치했는데, 지금 한 배열이 베스트였던 것 같다.

 

[Flowing]은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요약처럼 들린다. 아직 30도 안된 젊은 뮤지션에게 일대기라는 말을 붙이는 건 실례일지 모르겠으나, 타이틀을 보면 지금까지 음악 일대기에 대한 요약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확히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지금 이해한 게 하나의 의미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 ‘flowing’라는 단어가 심리학 용어로 ‘몰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 전공이 심리학이다. 그래서 그 단어가 더 익숙하게 다가왔나 보다. ‘몰입, 혹은 무아지경의 상태’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몰입. 그런 걸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번 작업할 때도 이런저런 ‘잡음’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작업을 했는데, 그런 것도 ‘몰입’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다. 어떤 ‘프로모션이나 의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게 ‘flowing’이다.

 

어느 때보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좋다. 본인도 그걸 느끼고 있는지.

맞다. 좋은 반응들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특히 “그전까지는 나는 나희경의 작업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이번 음반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평론가분(김학선 평론가로 추정됨)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비단 그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 ‘네이버 이주의 발견’에 한명륜 평론가님이 쓴 글에서도 잘 나와 있듯 말이다.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로 프로모션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내 음악을 듣고 그것만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듣게 되면 아는 거 아닌가. 예를 들어 2집 같은 경우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을 타이틀로 해서 더 밝게 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팝 발라드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이 “아, 보사노바를 들으니 좋아”라고 피드백을 하더라. 그때, 아 내 음악을 알아주는 분이 계실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그걸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쨌든 대중들은 보사노바가 여름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걸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런데 릴리즈 타이밍은 가을이었다. 하하. 일부러 그랬던 건가?

하하.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완성이 되었으니 낸 거다. 겨울쯤에 낼까 싶기도 했는데, 그게 꼭 계절을 감안했다기보다는 좀 더 음악 퀄리티에 신경 써볼까 해서 그랬던 거다. 그랬는데, 막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발매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더라. 음반에 ‘아이야’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거 꼭 추워지는 시기에 내고 싶었다. 타이트하게 작업하는 것과 느긋하게 작업하는 것.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던 건데 “느긋느긋한다고 퀄리티 차이가 정말 날까?” 자문해 보았더니,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더라. 그래서 작업을 서둘렀다. 추워질 때 사람들이 듣게 하려면 11월이나 12월에 내면 이미 늦는다.

 

보싸다방으로 음악의 문을 열고 이제 서른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 이제 나희경이라는 이름으로 정규 3장에 EP1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간 아티스트 나희경은 어떻게 달라졌고, 또 성장해 왔는가.

음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보싸다방 녹음하면서 브라질에 가고픈 열망을 더 크게 품게 되었다. 이제 지난 5년간을 돌이켜보자면,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의도를 내가 표현 가능한 정도로는 된 것 같다. 아… ‘만족한다’라는 표현을 다른 말로 하고 싶다.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온 것 같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이상’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 사람들은 “내가 수백 번 레코딩을 하고 더 공부하면 그 이상향에 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이상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느 땅을 밟고 있고, 어디를 걷고 있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보싸다방을 레코딩하면서 나는 내 상태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레코딩한 결과물 보면 오류나 실수, 그런 게 다 ‘클리어’하게 나오는 거다. 그렇게 자신의 현재를 알게 된 이후 브라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상”에 목을 매기보다는 “이 현재를 어떻게든 넘어서고, 또 넘어서고”하기를 거듭했다. 조금씩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게 된 거다.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내 전작들은 아쉬울 수도 있고, 엉성하고 불안했을 수도 있다. 그게 그때의 나희경의 ‘현재’였던 거다. 그걸 넘지 않으면, 그 다음에 뭔가 결합되는 건 있을 수 없었던 거지. 1집 때 포르투갈어 노래를 연습하고, 가요를 리메이크 해 보고, 그쪽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법을 배웠다. 첫 앨범에서는 Cesar Machado가 지휘권을 갖고 있었는데, 2집으로 오면서 점점 그게 내게로 옮겨 왔다. 특히, 내가 스스로 부족한 걸 알고 있음에도 편곡권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은 이유도, 내가 이걸 넘어서지 못하면 그 다음에 이들을 디렉팅하는 포지션을 맡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2집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여러 평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브라질에서 작업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되어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스텝 바이 스텝’으로 걸어왔다.

아… [Flowing]을 내고 나서 생각이 든 게, 그 동안 내가 음반을 만들기 위한 걸음은 죽 걸어왔는데, 공연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거다. 순간, 음반을 구현하는 공연에 머물지 않고 더 완성도 있는 공연을 하려면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싶더라. 그전까지는 1순위가 음반작업, 2순위가 공연이었다. 지금도 공연이 1순위라는 말은 아니지만(수치로 치환하기는 어렵지만 마음 속 순위는 더 올라갔다), 이번 3집 발매공연 때는 뭔가 다른 걸 보여줄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한국어 발음 문제… 한국인 송라이터로서 한국어로 노력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한국 여가수들의 노래, 특히 발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 뭔가 더 나아진 게 있지 않을까. 설사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조금은 더 앞에 있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내가 원하는 대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

 

31일에 공연하는 장소가 어디인가?

홍대 웨스트브릿지. 서울 재즈아카데미에서 새로 만든 건물이고 150석 규모인데, 아주 크진 않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그곳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조명/음향 등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날 국내 테크니션 분들이 밴드를 맡아 줄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이번에는 조금 채워서 가 보고, 다음에는 조금 비워서 가 보고. 그 이후에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보고 싶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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