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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작은 것들의 신

수취인 분명 From. 작은 MC

팔지 않는다는 음악적 소신으로 시작해, 결국은 작은 일상을 고스란히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이들에 의해 살아간다는 다짐(다르게 표현하면 ‘철학적 위무’)으로 끝나는 작품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종족(다수)의 심증이 반영된 개인의 물증에 다름 아니다. 덧붙여 반복하자면, 분명히 사적인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철저히 수취인이 명확한 이야기이다. 공식 참여곡이 60곡에 달함과 동시에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플로우로 매니아의 귀를 홀린 MC 넉살(Nucksal)의 강점은 이미 잔뼈가 굵은 실력이 뒷받침된 예의 날카로운 가사일 것이다. 그가 참여하는 곡에 매번 청각을 곤두세울 때마다 그가 써내고 뱉은 다양한 분위기의 가사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난기가 붙어있지 않은(대신 쾌락이라는 관념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대변하는 듯한) 끈덕진 운율과 의외로 그에 걸맞지 않게 매끄러운 흐름을 자랑하는 넉살 특유의 흥취가 있는 플로우는 씬의 정점 언저리에서 사뿐사뿐 그 호기를 과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넉살은 의도적인 면모를 가사에 내비치지 않는다. 성공을 말하는 힙합퍼의 일관성보다는, 언제나 더 넓은 범위의 주제를 파헤쳐 가사를 하나의 ‘시’로 탈바꿈시키는 그의 랩은 언제나 그의 입에서 발화될 적마다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왔던 바, 어떤 비트에서든지 MC로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고갈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었다.(대표적인 곡으로 코드 쿤스트(Code Kunst)의 1집 [Novel]에 수록된 ‘Organ’, 뉴 챔프(New Champ)의 믹스테잎 [전시의 밤]에 수록된 ‘개릴라스탕스’와 같은 곡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가 공을 들여 쌓은 이야기 보따리가 들어있는 첫 정규 작품 [작은 것들의 신]은, 넉살이 앨범의 호스트(Host)(또는 랩객(Rap客)가 아닌 주체로서 꺼내는 이야기에 목말라 했던 이들을 해갈시키는데 충분한 청량음료가 된다. 도입부와 중반부에 배치한 더블 타이틀(‘팔지 않아’ + ‘밥값’)의 상반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결론적으로 본작은 넉살의 느낌과 감정이 하나의 수취인이 되어 그것을 귀 기울이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작은 일기’로 비춰진다. 이 점에 있어서 본작의 제목을 떠올리면 충분히 ‘콘셉트 앨범(Conceptual Album)’으로의 명확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넉살의 면모, 즉 특정한 의도가 다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앨범의 흐름은 비유하자면 트루먼 쇼에 가까운 서사성의 방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 타깃은 다름 아닌 앨범을 듣는 많은 청자와 넉살을 포함하는, 일상 속에서 여러 심증(감정,정신)과 물증(물질)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모든 ‘작은 이들’을 향해 있다. 늘 그렇진 않듯 세상을 좌우하는 ‘큰 것들’의 틈바구니를 엮는 ‘작은 이들’은 세상을 향한 독한 미소와 조소 어린 시선, 수심이 짙은 연민을 얼굴에 그림으로써 삶의 아이러니에 접근한다. 작은 이들의 예민함이 유난히 진실되게 느껴지는 건, ‘큰 것들’이 좌우하는 허황된 삶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작에서 해석한 ‘작은 것들의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앨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위와 같다. 한편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사뭇 다른 결을 품고 있다. 비트의 경중으로만 따진다면 본작은 윤곽이 뚜렷한 차이를 선보인다. 비스메이져 소속의 버기(Buggy)와 TK의 합작인 ‘ONE MIC’를 제외하곤 주로 붐-뱁 풍의 비트 프로덕션으로 채워진 것은, ‘팔지 않아’에서 ‘Skill Skill Skill’에 이르는 초반부의 상승 무드에서 타이틀곡 ‘밥값’을 전환점 삼아 동명의 마지막 곡에 이르기까지 뭇 묵직하게 가라앉는 무게감을 안김으로써 ‘작은 것들의 삶’을 상징하는 적적한 여운을 남긴다. 앨범의 구성미가 크게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본작이 포용하고 있는 이야기 또한 참으로 산뜻하다. 기성의 인식이 바라보는 기술과 넉살이 보여주는 랩 ‘기술’의 역설을 지렛대 삼아 넉살의 랩 스킬이 양성되는 공업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Skill Skill Skill’은 단연 DJ 웨건(DJ Wegun)의 스크래치와 맞물려 앨범의 전체적인 조율 요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톱니바퀴처럼 고분, 정연하지만 속도감 있는 랩 운용을 통해 플로우의 균열을 꾀하는 넉살의 재기발랄함이 특히 빛난다.), 날카롭고 가시적인, 씬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하나의 서사로 돋보이는 ‘ONE MIC’, 신념과 고집이 일치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야 하는 연령을 불문한 인간적 삶의 허무함과 고립무원이 담겨 있는 ‘밥값’(타이틀 곡으로서, 본작이 말하는 ‘작은 것들’에 대한 관조적 접근성이 가장 훌륭하게 배어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이 곡과 견주어 같은 동선에서 머물고 있다고 느껴지는 곡으로 문득 딥플로우(Deepflow)의 ‘Bucket List’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두 곡의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의 가족을 향한 푸근함(Bucket List)이 한 개인의 현실에 대한 실존적인 허무함(밥값)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등 같은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야기 덩어리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또한 변질된 가치관으로 스스로의 삶을 잘난 삶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귀소 본능을 자극시키는, 그야말로 구수한 진국의 묘미가 뚜렷한 ‘Hood’ 역시 화지(Hwaji), 차붐(Chaboom), 넉살이라는 세 명의 MC가 들려주는 각자의 이야기는 저마다 뚜렷한 성찰을 요하고 있다.(마일드 비츠(Mild Beats)의 베이스 라인이 강조된 텁텁한 비트가 각 절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한다.) 애니마토(Animato)가 프로듀싱하였으며 코드 쿤스트(Code Kunst)가 편곡하여 곡의 순도를 높인 동명의 마지막 트랙 ’작은 것들의 신‘에 이르러 넉살은 그가 품고 있던 개인적 일기를 청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부치듯 덤덤하게 쓰러지지 않는 민초로서의 개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적의와 희망을 주던 열정도

구차하게 살아남았는가

– ‘작은 것들의 신’ 1절 중에서

 

본작이 1막이며, 열두 곡들이 각자의 주제의식의 장으로 꾸려져 있는 [작은 것들의 신]은 결국 거시적인 범주에서 전하고자 했던 일상과 현실들로 말미암은 뚜렷한 기승전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언제나 이상이 일상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많은 이들은 외려 그 이상을 위해 일상에서 한숨을 쉰다. 바로 그것이 ‘작은 것들’의 일상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상성을 미사여구를 깔끔하게 배제한 채 랩쟁이로서 대변해주고 있는 넉살이야말로 본작이 말하는 ‘작은 것들의 신’이 아닐까.

첫 작품으로서 매우 간결하고, 짭조름했던 본작에 더부룩한 기름기는 쫙 빠져 있다. 감성은 돌아가고자 했던 언젠가의 ‘현재’가 늘 배신하곤 하는 오늘을 향해 있다.

4 Stars (4 / 5)

 

 

About 허희필 (6 Articles)
이명의 풋내기 필자 허희필(본명 : 허승엽)이라고 합니다. 거르지 않는 문장을 고수하는 편이나, 실은 가장 따뜻한 문장이야말로 좀 더 비판적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글쓰기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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