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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엑스테레오: 우리는 계획적으로 결성된 밴드다

SEOULSONIK 2014

리듬 그리고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기타와 베이스를 함께 맡고 있는 토비의 역할이다. 코드와 멜로디 및 가사는 노래하는 애니의 분야다. 고교시절 데뷔한 토비는 1990년대 펑크 밴드 18크럭의 일원이었고, 그런 토비와 함께 스크류 어택에서 활동했던 보컬리스트 애니는 노래에 대한 열망과 확신을 아주 어린 시절에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유롭게 노래할 수는 없었다. “동아리 활동 정도만 집에서 허락해줬어도 이렇게 전업 뮤지션으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반대는 물론 생계에 대한 고민도 오랜 기간 지속됐지만 그들은 결국 긴 시간을 홍대에 계속 머물렀고, 그러는 동안 그들을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태도가 달라졌다. 펑크를 내려놨고, 장비 위주의 음악과 사운드 에디팅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국내 무대를 벗어날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밴드가 2011년 첫 EP를 발표한 러브엑스테레오인데,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러브엑스테레오는 “계획적으로 결성된 밴드”다. 전과 차별화되는 음악을 들려주는 동시에 전과 차별화되는 활동과 결과를 목표로 삼아 기획한 밴드라는 것이다.

노래를 만드는 일도 그렇고, 장기 투어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렇다. 그들은 막연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루키 시상식의 수상 기록과 공연 일정이 말해주듯 여전히 국내 활동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국내 비즈니스에 별 미련과 기대가 없다는 그들은 좋아했던 해외 밴드들이 밟아왔던 과정을 꼼꼼하게 살핀 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북미 투어를 마쳤다. 전과 다르고 남들과도 다른 계획을 세우고 색다른 환경에서 이를 실행한 끝에 그들이 얻은 바는 결국 근본으로,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세팅에 진 빼지 말 것, 공연의 완성도를 유지할 것,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노래를 만들 것.

몇 주 전 한 클럽에서 그들의 공연을 본 뒤 곧바로 만났다. 그들의 공연이 주는 쾌감은 참 한결 같다. 여느 때처럼 토비는 바쁘게 악기를 바꾸면서 묵직하다가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긴장과 폭발이 함께 쏟아지는 애니의 보컬은 늘 짜릿하고 후련한 구석이 있다. 그들의 풍요로운 사운드만으로 힘과 열이 느껴지고, 덕분에 청중이 많지 않다 한들 공간이 팽창하는 것만 같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은데 공연이 끝난 뒤 살펴본 그들의 표정은 어딘가 떨떠름했다. 하지만 화두가 곧 북미 투어로 바뀌자 그들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후일담을 쏟아냈다.

SEOULSONIC 2014

오늘 공연 잘 봤다.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이 만족스러웠는지.
공연장 엔지니어가 바뀌었고 오늘 그를 처음 만났다. 성향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곧 익숙해질 것이고 차차 오늘보다는 나아질 텐데, 사실 국내 공연에 크게 만족해본 적 없다.

좋은 공연 콘텐츠를 만들려면 센스있는 엔지니어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지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둘 다 중요하다. 일단 세팅도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미국 투어 전에 연습 많이 하고 갔다. 여기서는 한국이니까 양해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외국은 세팅 15분, 플레이 30분, 이렇게 시간을 정해두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곡을 잘라버린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2013년 북미 투어 당시 어느 날인가 열일곱 시간 운전해서 캐나다로 넘어갔는데 플레이타임은 35분, 세팅시간은 딱 5분 줬다. 그날의 공연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엄청 오래 세팅하는 밴드들도 봤다. 데이먼 알반이 한 시간쯤 했던 것 같은데 그건 데이먼 알반이니까 그런 거고, 하여간 막상 가보니까 거기도 변수가 있고 외국에서 온 밴드라고 좀 봐주기도 한다. 반대로 현장 장비 세팅을 아예 못 건드리게 하는 엄격한 클럽도 있다. 근데 그런 곳은 예상과 달리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 장비가 후지고 공연장이 허름하다 한들 어떤 밴드가 와도 좋은 사운드를 낼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건데 일하는 사람의 자부심과 환경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사운드 엔지니어 대부분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고 급여 또한 나쁘지 않다.

세팅은 도착한 뒤에 생기는 문제고, 일단 출발 전에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엄청 많다. 일단 언어에 대한 부담이 따른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공식적으로 투어하려면 ‘P1’이라 불리는 공연용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3,000불이다. 미국 국토부에서 관여하는 비자로, 6개월간 공연을 목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고 공연을 통해 얻는 수익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비자를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는데, 오래 걸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몰라서 사전에 잡아놨던 공연도 6회 정도를 까먹었다. 기간이 만료되면 갱신 비용이 또 비슷하게 들어가는 데다 발급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아티스트 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대거 불법 체류하는 바람에 미국정부에서 이민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악기를 드는 동양 뮤지션을 다 잡는다. JYJ도 그걸 못 받아서 공연은 했지만 티켓 다 환불해줬다는 얘기가 있다. 기어이 그걸 받아서 미국에 도착하면 항공권과 숙박비도 문제지만 자동차를 쓰면서 드는 비용도 장난 아니다. 톨비도 부담스럽고, 지역 공무원들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방심하는 사이 주차딱지도 귀신 같이 뗀다. 차라리 200불짜리 주차위반 딱지는 양반이다. 견인됐으면 2백만 원 내고 찾아야 한다. 현지 교통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모르는 사이에 신호 위반 단속에 걸리기도 했다. 일방통행로인 줄 모르고 들어와서 본능적으로 후진하다가 잡혔는데, 이럴 경우 돈도 돈이지만 소통 자체가 복잡해진다.

경제적인 문제 말고 겪었던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거기도 결국 인지도 싸움이다. 결국에는 우리 인지도를 더 올리고 가는 게 맞다. 거기서도 국적에 관계 없이 좋은 음악을 원하고 있으니 영미권 레이블과 계약을 이루는 방법도 있는데, 그게 더 어렵긴 해도 어차피 우리는 국내 비즈니스에 크게 관심 없으니까 궁극적으로는 그러고 싶다. 다른 해외 밴드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우리가 한국 밴드라는 건데, 그러나 우리는 처치스가 아니니까 그리 유리한 조건은 못 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처치스는 우리한테 일종의 롤 모델로, 음악도 좋았고 환경도 좋아 순조로운 코스를 밟을 수 있었다. 즉 한국 뮤지션은 유럽이나 호주처럼 이미 일찍 미국 시장을 경험하고 인프라를 닦아놓은 덕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도 강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인프라가 없다는 건 선례가 없다는 것일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낯선 국적의 DJ들도 비트포트 100위권 안에만 들어도 음악으로 먹고 사는 데에 크게 지장 없다고들 한다. 그쪽 전문가들과 이야기해보면 음악과 관련한 모든 콘텐츠가 스토리텔링에서 시작하는데 우리의 히스토리도 부족할 것은 없다고 한다. 사실 그런 스토리텔링이야 기반을 어느 정도 쌓은 나중의 얘기고, 일단 우리 음악이 더 좋아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자비를 쓰든 정부 지원을 받든 누구나 미국 투어 계획을 세울 수야 있지만 그렇게 무작정 덤비고 싶지 않다. 수준 떨어지는 음악을 들이밀어놓고 들어달라 조르는 건 어불성설이고, 누가 들어도 멋진 걸 줘야 일이 풀린다는 것이다. 우리 음악은 보컬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이파이 사운드인데, 경험을 쌓을수록 음악적 콘셉트가 좀더 확실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러브엑스테레오의 ‘음악’에 대한 현지의 전반적인 평가가 비관적이라는 얘기인가.
영미 문화권에서 통할 가능성은 있는데, 음질이 떨어지고 곡이 길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연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인지도를 얻을 수 있게 확산되려면 지역 방송이 됐든 BBC1이 됐든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에서 잘 먹혀야 하는데, 그런 조언을 접하면서 라디오 에디트 버전을 따로 만드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3분 44초에서 4분 정도로 끊어야지 그걸 넘어가면 청취자도 지루하고 주기적으로 광고 내보내야 하는 제작국도 반기질 않는다. 사운드 디자인 컨설턴트를 전문으로 하는 매니저도 봤다. 기존의 노래를 귀에 쏙 들어오도록 편집을 제안하는 직업으로, 라디오에서 떠야 일이 풀리니 DJ가 원하는 수준까지 나오도록 도와준다. 그런 DJ들은 새롭고 좋은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마치 얼리 아답터 같다. 그들을 사로잡을 음악부터 만들고 나서 뛰어들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제는 지역 라디오를 고려할 만큼 해외활동을 구체화한 밴드가 됐지만, 한때는 꽤 막연한 미래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내 뮤지션이 외국 음악을 듣고 성장해 그걸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지만, 그런데 러브엑스테레오처럼 마케팅의 방법까지 참고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파고드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계기가 무엇이었나.
영미권 인디 음악에 관심이 많아 지금까지도 차트 살펴보면서 많이 찾아 듣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가진 CD는 수입반이 많다. 그리고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다양한 인연을 얻었는데, 특히 캐나다 및 미국 출신의 영어 강사들로부터 현지 인디 밴드가 어떻게 활동하고 생계를 유지하는지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데뷔하고 투어하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처럼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러브엑스테레오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국내 시장에 큰 기대가 없고, 해외 시장 얘기도 우리를 들뜨게 만드는 데다 생활에 무리 없을 만큼만 돈도 벌고 싶어서 계획적으로 만든 밴드다. 직접 해보니까 알 것 같다. 굉장히 힘들긴 한데 그렇게 고생하는 만큼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다. 미국은 연방국가라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도 희망이 됐다. 어떤 지역에선 진짜 안 먹히는데, 일례로 신시내티 공연에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신기하게 받아들였고 덕분에 앨범도 많이 팔렸다. 그렇게 즐거운 이변을 만나기도 하지만 돌다보니 결론은 떠나기 전과 같다. 결국은 티켓 파워이고, 스테레오검이나 피치포크에서 별점을 얻은 밴드들이 더 사랑받는다. 공연은 많이 할수록 좋지만 어떤 입지를 가지고 어떤 공연장에 서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결국 두 번 다녀왔다. 또 가고 싶나.
이전까지 각각 직장을 다녔고 악기 쇼핑몰에서 일했는데, 투어 계획을 짜면서 일을 그만두고 모았던 돈을 다 털었다.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빚쟁이가 됐고 갚아야 하니 다시 일했다. 일해서 돈을 벌고 결국 음악하면서 다 터는 셈이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 육체적으로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또 가고 싶다. 오래 음악을 했지만 지금이 가장 재미있고, 10년 넘게 여기서 각각의 음악을 했지만 그 경험 이상으로 많은 걸 배웠다. 작은 사례이긴 하지만, 낯선 밴드들과 나누는 적극적인 소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국내 밴드 대부분은 가까운 무리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게 일상이라 다른 뮤지션에게 호기심이 있다고 한들 낯을 가리거나 견제하거나 한다. 좋으면 좋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게 당연한 건데 리스펙트를 확실히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게 다들 부끄럽다.

사실 해외 활동보다 긴급한 건 앨범 아닐까. 지금 활동한지 5년차가 되어가는데 아직 정규 앨범이 없다.
올해는 좀 얘기가 달라질 것 같다. 올해 나온 EP는 첫 번째 파트이고, 두 번째 파트 녹음도 마친 상태라 출시만 남겨두고 있다. 믹싱을 영국의 한 스튜디오에서 했다. 우리가 존경해왔던 밴드들이 다녀갔던 곳이기도 하고, 그들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한 덕분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지난 세월을 통틀어 아무런 문제없이 작업했던 건 처음이다.

러브엑스테레오의 전신은 스크류 어택이다. 매력적인 펑크였다. 왜 그걸 중단하고 지금의 스타일로 방향을 틀었나.
그땐 반응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와서 다들 좋다고 한다(웃음).

About 이민희 (6 Articles)
음악을 들을 땐 언제나 고민이 없다. 음악을 쓸 땐 언제나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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