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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99 “목적지 없는 여행은 아름다웠다”

2015년 1월 1일, 기타리스트 레인보우99(Rainbow99)는 무작정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마음을 다친 그가 치유제로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레인보우99는 플랫폼에 서서 스마트폰을 꺼내 주변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렌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풍경은 전남 담양행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었다. 그는 무작정 그 버스에 올라탔다. 1년 동안 매달 이 같은 여행이 이어졌고, 그 때마다 한 곡씩 완성됐다. 여행이 끝났을 때 그의 손에는 새로운 정규 앨범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정규 4집 [Calendar]를 발매한 레인보우99를 지난 7일 서울 홍대의 한 고깃집에서 만나 소주를 나누며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앨범 이야기보다는 잡담이 훨씬 길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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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내게 여행을 떠나며 매달 곡을 만들어 싱글을 발표할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솔직히 조금하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뚝심 있게 앨범을 만들어내 놀랍고 또 반갑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알다시피 지난 1년 동안 매달 초에 여행을 떠나 곡을 만들고 그 달이 지나기 전에 결과물을 싱글로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솔직히 이 프로젝트를 마친 것 자체가 내게도 놀랍다. 온갖 고민을 안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이렇게 무사히 결과물이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어진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앨범 제목을 왜 [Calendar]로 지었나?

사실 별다른 뜻은 없다(웃음). 앨범에 수록될 곡 12곡을 정리하고 마지막 트랙에 이를 정리하는 감정을 담은 곡 ‘Calendar’를 실었는데, 딱 앨범 제목으로 어울렸다. 앨범을 들어봤으니 잘 알겠지만, 무언가 통일된 주제를 담은 앨범은 아니지 않나? 수록곡들의 공통점은 매달 여행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Calendar]는 수록곡들을 하나로 묶기에 딱 좋은 제목이었다.

24052530_26이 앨범에 등장하는 도시는 담양, 동해, 제주, 남한산성, 목포, 태백, 당진, 연천, 포항, 삼천포, 중국 칭다오(靑島), 전주 등 12곳이다. 여행할 도시를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가?

아무런 기준도 없다(웃음). 첫 여행지인 담양도 아무런 계획 없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무작정 버스를 잡아타고 간 곳이었다. 주머니가 넉넉한 여행이 아니었으니 고생도 많았다. 담양에선 돈이 없어서 식빵과 스프를 구입해 며칠간 연명했을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친구가 담양까지 찾아와 나를 구제해줬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분들까지 나를 따뜻하게 맞아줘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했다기보다, 그 풍경을 보고 느낀 찰나의 감상을 붙잡아 펼쳐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전작 [서울(Seoul)]에 비해 명도는 밝아졌지만, 레인보우99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하다고 말하면 올바른 표현일까? 명확하게 기승전결의 구조를 보여주기보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순간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런 음악적 스타일말이다. 예를 들어 ‘1월_담양, 눈보라’에선 시선을 압도하는 대자연 앞에서 경험한 무력감, ‘2월_동해, 파도 1’에선 맑고 시린 겨울바다의 쓸쓸함, ‘11월_淸島, new town’에선 낯선 곳과 처음 마주한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말이 맞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들으며 여행지의 풍경을 떠올리는 일은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수록곡들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그 감정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테지만 말이다. 그것은 앨범을 듣는 저마다의 몫이다. 첨언하자면 이번 앨범에 담긴 모든 기타 연주는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해 녹음한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는 이펙터를 먹여도 일렉트릭 기타와는 다른 깊이와 질감의 소리를 들려줬다. 매우 매력적인 소리였다.

rainbow-99-calendar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재킷 이미지이다. 마치 뻑이 난 이미지 파일을 보는 듯해 기분이 묘했다. 앨범의 수록곡들과 참 잘 어울리는 재킷이었다.

앨범 재킷 이미지는 실제로 디자이너가 작업하던 중 뻑이난 이미지 파일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웃음). 그야말로 우연의 산물이다. 이렇게 이미지를 일부러 만들고자 해도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뻑이 난 이미지가 디자이너가 시안으로 보여줬던 재킷 이미지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앨범 재킷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앨범 재킷에 설명서가 담겨 있는데,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달력으로도 쓸 수 있다. 많이들 이용해주길 바란다.

속지의 매 페이지마다 상단에 특정 주소가 표기돼 있다. 이 주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주소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가리킨다. 따로 설명하진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그 주소로 찾아가보라.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하나만 공개하자면 속지의 9월 달력 위에 적힌 주소는 ‘올리브’라는 이름을 가진 아지트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여행을 계속할 생각인가?

올해 안에 독일로 떠날 예정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까지 다 정리해서 경비를 마련해 독일을 여행하며 작곡하고 앨범을 만들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현지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싶다. [Calendar]를 만들며 경험한 열두 번의 여행은 매 순간 모두 아름다웠다.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당장 떠나 보라. 그 여행에 이 앨범이 좋은 동행이 되길 기대한다.

About 정진영 (19 Articles)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소설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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