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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너의 손

한 줌의 긍정

 

일상이 시작된다. 대개 뜻대로 풀리진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내 맘 같지 않고, 세상은 무심하다고. 자, 누르면 억압이 된다. 쌓여서 권태가 된다. 나중엔 무신경해진다. 그렇고 그런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결례도 범하는 저 지리멸렬한 하루는 의외로 길다. 그건 아주 특별할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존재들이 보내는 그런 삶이다.

백현진과 방준석의 프로젝트 방백이 노래하는 삶이다. 온갖 비틀거림과 삐걱거림이 난무했던 젊음의 나날들. 그걸 ‘우행(愚行)’이라 규정하고 솔로작 타이틀을 ‘반성의 시간’이라 했던 백현진이 아닌가. 시간은 흘러, 어느덧 그의 나이는 ‘40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40’은 여유가 생기고 풍요로워지는 삶의 전성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두 남자의 삶에 끼어든 ‘40’의 첫인상은 썩 아름답지만은 않아 보인다. 왜 여전히 휘청대는가, 왜 여전히 고독한가.

방백은 자신들이 처한 ‘돌파구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여준다. 그것은 아주 멋지게 포장된 예술가들의 삶이라기보다는 이 시대 보편적 인간군상들이 마주한 ‘날 것 자체의 삶’, 바로 그것이다. 끊임없이 이건 아니라고 현실부정을 하고, 자기기만을 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이 되풀이되는 그 공허함은 헛된 결의(“반복되는 허망한 이 패턴이 이 나이에 정말 병신 같아서 한동안은 면벽하는 심정으로 자중을 하자 다짐을 하네” / ‘다짐’)나 끝없는 부끄러움(“난 부끄러워 난 부끄러워 정말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여기에서도 거기에서도” / ‘심정’)으로 표출된다. 백현진의 보컬은 질질 꼬리를 남기며 늘어지고, 손성제의 진한 브라스는 허탈한 페이소스를 증폭한다.

어둡다. 방황과 후회의 심정은 쉽게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음반의 농도는 아주 혼탁해진다. ‘어둠’에서 백현진의 보컬은 부평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김오키의 처량한 색소폰 음색과 부대낀다. 언제와 다를 바 없이 대면하게 될 그 인생의 하루. 그들은 계속 실수하고 어설프기만 하다.

그런데 전과는 뭔가 다르다. 무릎 꿇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섣부른 희망이나 가식적인 힐링을 전도하려는 게 아니다. ‘한강’과 ‘귀가’에 이르면 백현진의 보컬은 저 어둠을 뚫고, 계속 앞길을 비춘다. 그게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삶의 표면 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바람)이라 말하는 것은 조금도 모순 같지 않아 보인다. 그건 자신들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이 음악을 듣는 모두에게 던지는 수줍은 고백이기도 하다. 그게 고맙다. 뭉클해진다. 음반의 제목이 ‘너의 손’이라 붙은 덴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방백의 음악은 음악가 자신을 넘어서, 그들의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 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동네’에 도착하면 이 소박한 연대는 저 장엄한 합창과 더불어 본격적인 출범을 알린다. 그 무채색의 덩어리들은 “서로 보듬고, 도닥이고, 겨울비도 맞고, 어떤 방향”으로 흐른다. 저 냉혹한 세상의 셈법 하에서,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이 무대 위에서, 모두를 쓰레기로 보는 저 가혹한 관료의 말 앞에서, 저 보잘 것 없는 움직임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노래는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고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어딘가로 나아간다. 목적지도 모르고 희망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것이 이제는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가치를 말하고 있음을 안다. 그냥 인간을 위한 한 줌의 긍정이라고 해 두자.

앨범의 하이라이트 ‘동네’의 장대한 연출과 숭고해 보이는 코러스는 곡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의 신파성을 강화한다. 주먹은 조금 세게 쥐어지고, 심장은 약간 더 빠르게 뛰며, 눈가는 살짝 시큰거린다. 언젠가부터 존재감이 없어진 ‘감정’이 머리를 든다. 노래와 함께, 음반과 함께, 저 지리멸렬한 하루의 균열을 만든다. 찰나의 무드를 만든다. 그게 바로 좋은 음악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다. 모든 것이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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