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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트로트 가수의 바람직하지 못한 겸업

최근 방영 중인 KBS 일일 드라마 ‘가족을 지켜라’에서 낯익은 외국인이 보인다. 한국 남자와 결혼했지만 미혼모가 된 무명 트로트 가수 ‘미나’를 연기하는 로미나다. 그녀는 외국인들의 한국 정착 생활을 다룬 KBS 교양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려 왔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프로그램의 게스트, 패널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연기자로 활동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또 한 명의 외국인 스타가 탄생할 조짐이다.

사실 로미나는 이미 높은 지명도를 획득한 상태다. 2013년 가을, 직접 기타를 치며 ‘동백 아가씨’를 부른 영상이 유튜브에서 큰 관심을 샀고 그 덕에 이미자의 콘서트에도 서게 됐다. 이후 ‘불후의 명곡’,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마주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푸른 눈의 동백 아가씨’, ‘금발 이미자’라는 별칭도 얻었다. 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이가 아는 인물이 됐다.

노래 부르는 것으로 눈도장을 찍은 배경이 말해 주듯 로미나의 본래 직업은 가수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동양학을 전공한 그녀는 2009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친구 집에서 우연히 들은 ‘동백 아가씨’에 꽂혔다. 곧 트로트에 심취했고 이 애정이 프로페셔널 가수가 되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지상파 음악 무대에도 여러 번 초대됐으니 가수라고 소개하는 것이 맞겠다.

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이 좋다’, ‘이웃집 찰스’ 등을 통해 공연과 음반 취입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준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 가수의 연기자 변신, 또는 연기자의 가수 변신이 비일비재하고 투잡이 삶과 생계의 미덕이 돼 버린 나라인지라 사실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명색이 가수라는 사람이 노래 하나 내놓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은 기괴하고 나아가 거북해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녀와 주변 동료들도 많은 생각을 하고 내린 결정일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가니 향후 본격적인 가수 활동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또한 극 안에서도 가수를 연기하는 만큼 드라마 OST에 참여할 기회도 조금은 열려 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이 맞나 싶을 만큼 한국말을 잘하지만 로미나는 단어, 어휘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고 발음과 발성도 미숙하다. 노래가 지닌 감정을 잘 나타내려면 당연히 말에 능통해야 하며 표현력도 풍부해야 한다. 연기가 이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면 연기는 원활한 가수 생활을 위한 홍보 전략이며 트레이닝의 연장인 셈이다.

득이 되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다지 현명하고 바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능에서 미흡함이 있다고 해도 가수가 꿈이라고 밝혀 온 이라면 그 문제를 노래로 극복해야 한다. 로미나는 가수로서의 진정성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더불어 최소한의 자기 작품이 있어야 그 분야 종사자의 무게를 갖는다는 점을 간과했다. 싱글도 발표하지 않고 연기를 하니 이것저것 찔러 보는 뜨내기 연예인처럼 보일 뿐이다.

눈앞의 이익과 안정적인 수단을 쫓느라 생각이 짧았다. 가수로 자리 잡고 대중에게 그렇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리메이크든 창작이든 꾸준히 노래를 선보여야 한다. 기본을 저버린 채 다른 데로 눈을 돌린 그녀에게 가수라는 호칭은 현재로서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드라마 출연으로 친근해지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노래를 부르는 로미나는 도리어 낯설어졌다.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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