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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카터: 오른손엔 블루스를, 다른 한 손엔 펑크를

 

2인조 어쿠스틱 밴드일 때부터 이들의 똘끼는 유명했다. 그러다 드럼 파트가 생겼고, 이들은 과거를 풍선 매달아 보낸 채, 일렉트릭 사운드로 돌아섰다. 아, 이건 물건이다. 곧바로 인터뷰를 잡아야 했다. 최근 가장 핫한 밴드/가장 공연이 멋진 밴드/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을 가진 밴드가 아닐지. 인터뷰는 모과나무가 자리한 홍대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김지원(탬버린/멜로디언), 김지나(기타/하모니카), 이현준(드럼)이 함께 했다.

 

김지원과 김지나는 같은 대학교 출신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만나게 되었는지.

김지원: 지나와는 20살 때 친구가 되었다. 첫인상만 보고도 “아, 이 친구랑은 음악적으로 소통이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친해지고 말을 튼 계기는 둘 다 같은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담배를 피러 갔다가 친구를 보고, “어떤 뮤지션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지나가 “Iggy Pop”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 친하게 지내다가 21세 무렵에 ‘잠깐’ 같이 밴드를 했고, 본격적으로 빌리카터로 뭉친 건 2011년이다. “영국에 가서 놀면서 밴드도 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영국으로 건너가야겠다는 생각은 돌발적으로 나왔을 것 같은데?

김지원: 지나가 제안했다.

김지나: 영국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고, 그런 음악이 있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럼 한번 가 볼까”라는 충동이 일었는데, 곧바로 이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김지원: 영국 간다는 거야 큰 결심 없이 내린 결정이었는데, 그냥 놀러가 보고 싶었고 그곳에 살아보고 싶었다. 때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제안을 해 준 거다.

 

얼마나 오래 있었나?

김지나; 1년 정도 있었다.

 

영국에서 공연도 하고,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고생담을 들어보자.

김지원: 인맥도 없는 상태로 간 것이다 보니,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왠지 공연할 수 있을 법한 클럽이면 무작정 들어가서 “라이브할 수 있냐?”고 들쑤시고 다녔다. 한번은 소호에서 예쁜 펍을 발견하곤 다짜고짜 아르바이트생에게 “우리 밴드인데, 공연하고 싶으니 오디션 좀 보게 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이 “아, 여기는 게이 캬바레라 너희는 공연할 수가 없다”며 고맙게도 옆에 있는 펍 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분이 알려준 펍은 매주 월요일마다 “오픈 마이크”라는 스테이지를 만들고, 내부 오디션을 통과해 프로모터 눈에 띄면 그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게? 바로, Sex Pistols도 공연하곤 했던 역사적인 라이브공연장인 ‘The Spice of Life’였다. 첫 주엔 신청을 늦게 한 나머지 오디션을 보지도 못했는데, 프로모터가 우릴 기억해 줘서 그 다음 주 괜찮은 순번으로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그 프로모터가 다행히도 우릴 좋아해줬고,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겠지만 객석의 반응도 그날 공연했던 수십 팀 중 제일 뜨거웠다. 어쨌든 그날 이후 그분이 계속 섭외를 해줬고,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오게 되었다.

 

관객이나 프로모터로부터 들었던 말 중 흡족했던 것은 뭐였나?

김지원: “공연 잘 봤다/좋은 음악이다”라는 피드백은 들을 때마다 고맙지만,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말을 해주더라. 한국에선 남자 목소리로 오해받은 적도 많았는데 말이다.

 

어떤 점을 잘 봐 준 걸까?

김지원: 재밌어 하더라. 영국도 최근 다양한 음악들이 나오다보니, 원초적인 에너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았을 거고.

 

이 바닥 사람들에겐 듀오 때부터 똘끼로 가득한 2인조 나왔다고 음반 나오기 전부터 화제였다.

김지원: 그랬나? 우린 전혀 몰랐다. 2인조로 할 때는 어쿠스틱 연주를 했고, 현재는 보다시피 드러머 현준이가 들어왔고 지나도 이펙터와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한다. 풀밴드의 포맷에 가까워졌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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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현준을 드러머로 보강했다. 말한 것처럼 밴드 사운드가 잘 잡혀 있는데, 드러머 자리를 만든 것은 사운드 화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다른 포석이 있었던 건가?

김지원: 2인조 때 지나가 어쿠스틱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소리는 다 해봤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전에 이 친구(지나)는 일렉트릭 기타를 쳤고 나도 풀밴드 셋으로 연주를 했었기에, 어찌 보면 어쿠스틱을 연주한다는 것도 도전이었던 거지. 일정 기간 동안 그 도전을 잘 마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쿠스틱으로는 구현해보지 못했던 음악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던 거지. 그 때문에 현준이도 영입된 거고. 요약하자면, 어쿠스틱 사운드의 한계가 보였던 게 제1의 이유였다.

김지나: 학교에서 선후배 관계로 알고 지낸 사이다.

이현준: “한번 해보지 않겠니?”라고 제의가 와서 하게 되었다.

김지나: 합주 한번 하곤 “OK”했다.

 

본인들이 절감한 가장 커다란 한계는 뭐였나?

김지나: 어쿠스틱 기타는 공간을 많이 탄다. 공간이 좋으면 소리가 멋지게 나가지만, 공간이 나쁘면 소리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토가 좁아진다. 대신 일렉기타는 전기의 힘을 빌려 사운드의 영역을 넓혀주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간의 지배를 덜 받는다.

 

아, 현준 씨는 힘든 게 없었나?

이현준: 글쎄… 아무래도 베이스가 없는 팀이라 일단 익숙하지가 않아서 초반엔 그게 힘들었다. 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고.

김지나: 네 좋은대로 치라고 했다.

 

현준 씨가 들어온 이후 가장 나아진 점은 뭔가?

김지원: 편하다. 연주하기도 편하고 노래하기도 편하다. 테크니션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배려하는 플레이를 할 줄 안다. 또 기본기도 탄탄하고/강약 조절도 우수하고/배리에이션 능력까지 갖췄다. 완벽한 빌리카터를 위한 드러머고, 사운드도 그렇고 아이디어도 그렇고 많은 걸 끌어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러머라고 부르기 전에 우리 식구이기도 하다.

 

5곡이 들어있는 EP가 평단의 집중 조명대상이 되고 있는데, 사운드 면으로 볼 때 이 EP는 빌리카터가 좋아하는 음악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보인다. ‘장르구획’을 혐오하는 사람이기는 하나, 개러지/블루스/컨트리/펑크 등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용서해 달라. 본인들은 자신의 명패를 뭐라고 이름 지었나?

김지나: 블루스는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음악이 블루스에 기반하고 있는지라.

김지원: 맞다.

김지나: 사람들이 ‘개러지/펑크’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락커빌리’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김지원: 2인조 땐 락커빌리 냄새가 있었는데, 이 EP는 아니다. 옛날에는 리듬으로 접근해서 장르를 따졌고, 장비가 발전하면서 사운드를 기준으로 장르를 따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1곡을 엄밀하게 1장르로 구분지어 말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이 딱히 한 가지 색채도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틀로 묶어서 규정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 핵심적인 건 메시지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거랑, 그 그릇에 어울리는 소리를 잘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블루스라면 델타 블루스부터 다 들었나?

김지원: 그렇다. 학창 시절에 기타를 정말 못 치면서 블루스를 좋아하는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가 이런 저런 음악을 알려줬다. 당시만 해도 나는 꽉꽉 사운드의 메탈을 좋아했는데(그래서 펑크를 들었을 때, “뭐지, 이 바보 같은 음악은?”이라 할 때였다), 그 오빠가 들려준 게 Robert Johnson이었다. 첫 접촉에선 그의 연주가 귀에 다가오지 않았다. 엄마가 들려준 새타령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나중에 Eric Clapton이나 B.B. King의 음악을 듣고 “이 모든 음악들이 다 Robert Johnson으로부터 발원한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된 거지. 시간이 지난 뒤에 들어도 묘한 울림이 있다.

김지원: 지나도 펑크 성향이 강한 락밴드를 했었고, 나도 즐겨들었던 음악이 펑크이다 보니 그런 느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김지나: 고전적인 펑크의 애호가다. Iggy Pop에서 이어지는 계보. 최신 펑크는 잘 모른다.

김지원: ‘펑크 익스플로전’인 1977년 부근의 펑크를 제일 좋아한다. Ramones나 The Damned도 부지런히 들었고, 하드코어 펑크와 스카 펑크도 사랑한다.

 

가사에 은유와 함축이 많다. 다이렉트하게 가기보단 우회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침묵’을 읽어보면 이건 “획일화되는 인간의 사고나 취향”을 비꼰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김지원: 항상 고민하던 부분이다. 가사에 드러나 있다시피 이건 ‘소통’의 문제를 건드린 거다. 어쿠스틱 셋이었을 때 ‘Traffic’이라는 곡을 했었는데, 그 곡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늘 사람 사이의 생기는 갈등이 ‘커뮤니케이션’에 기인한 게 아닐까 했었는데, 그 노래를 만들 즈음 그런 생각이 극대화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치고는 있는데, 그것이 진실로 그들 자신의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다. 혹 남들이 말하는 바에 묻어가려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게 의심스럽다. 그런 분위기가 마치 신호가 고장 난 네거리에 차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내가 봐도 다른 노래에 비해 가사가 정돈이 되어 있지는 않은데, 작가인 나도 내 생각과 말이 소통되지 못한 상태에서 썼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연인/친구 사이에 늘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소통이 사실은 ‘불능’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티스트에겐 그런 찰나의 소통/불통도 소중하지 않나. 가끔은 자신도 뭘 쓰는지 모르는 채 씨부리기도 하고.

김지원: 똑같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고 누구는 세밀화를 좋아하고 누구는 점묘를 좋아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터치만으로 러프한 라인을 그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를 만큼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건 다 사람마다의 방식이다. 노랫말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알아듣기 수월하게 자신의 사상을 압축해줄 것이고, 누군가는 “네가 해석하기 나름이야”라고 하며 뒤로 빠질 것이며, 다른 사람은 아름답기만 한 단어를 나열할 것이다. 나는 어느 한곳에 경도된 사람은 아닌데, 그때그때 좋아하는 게 달라지는 것 같다.

 

‘Time Machine’은 도입부의 쎄~~한 하모니카 연주가 머리를 내려치는데, 이 곡은 빌리카터의 ‘베스트 송’이기도 하다. 대곡지향적이고, 풍부한 사운드가 과거 클래식락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 것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

김지원: 그걸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블루스 문법을 따르되 이 지점에선 코드가 이렇게 나오고 여기선 이렇게 진행된다”라는 스케치를 가지고 편곡을 했다. 그 상태에서 리프를 꽉꽉 채워서 충만한 사운드를 만들 것인지, 그거랑은 상관없이 소리 위주로 갈 것인지는 지나가 결정했고. 노래가 나오지 않는 부분의 그루브는 현준이가 바꿨다. 이런 꼴로 나오게 될 걸 미리 예상한 게 아니라 어레인지를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곡인데, 첫 공연했을 때랑 완연하게 달라진 곡이기도 하다. 공연을 거듭하면서 서로 타임머신을 탄 기분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봐야겠지.

 

‘You Go Home’에서 직감할 수 있듯 감정선이 겉으로 보기보다 복잡하다. 얼핏 유쾌해 보이지만, 슬픔이 내재해 있다. 유머도 있고.

김지원: 이 곡은 지나가 가사와 곡을 써서 왔는데, 술을 마시고 쓴 곡이다. 술 마시고 친구들 앞에서 난장을 피웠는데, 그들이 결국 지나를 집에 투척하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아! 무사히 귀가했구나”라는 뿌듯함에 써낸 곡이다. 그녀에 따르면 “술 마시면 길에서 자지 말고, 곱게 집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잡시다. 그리고 친구들아 고마워!”라는 엄숙한 뜻이 있다고 한다(웃음). 이 곡처럼, 지나가 곡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내가 곡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데 언제나 상대에게 자기 곡에 대한 설명은 꼭 해준다. 그러다 보면, 서로 이해가 가야 하는 포인트 있다. 오래 알던 사이라 그런지 그게 크게 엇나가는 경우는 없다.

 

그래도 불가피한 충돌이 생기거나 하진 않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하나?

김지원: 곡을 가져가서 편곡하다보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보고, 오히려 바뀌면서 더욱 재밌어지는 게 있다. 누군가 “여긴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면, 모두 일단 경청하는 주의라 그걸 들어보고 만일 괜찮다 싶으면 원래 것을 수정한다. 다들 열린 마인드다.

김지나: 함께 만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거지.

 

곡이 더 있지 않았나? 애초부터 EP로 가려고 한 건가?

김지원: 이 EP는 “우리 이렇게 변했어. 우린 3인조 빌리카터야!”라고 인사를 보내는 거다. 그걸 대표할 만한 다섯 곡을 추린 거지. 예전 사람들이 흔히 풀렝스를 공개할 때에는 그 음반의 색깔을 중요하게 여겼다. 곡의 흐름이나 배열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베스트 음반’의 형식으로 곡을 선별해서 싣는 게 트렌드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걸 따라간 게 있지. 이제부턴 어떤 음반이 나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음반에 실린 곡은 아니지만, ‘Love and Hatred’ 영상엔 “뮤직비디오 아니다. 새끼들아”라는 감동적인 문구가 적혀 있다.

김지나: 실은 ‘Crossroad’를 할까 했는데, 그거 찍어준 친구가 자기 멋대로 이 곡을 편집해서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그게 또 은근한 맛이 있더라.

김지원: 어쿠스틱 시대의 종말을 맞고 있던 무렵이었는데, 한번쯤 그 시기의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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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음악과 출신으로서 반-실용음악적인 사운드를 연주한다는 평이 많다. 지겹게 들었을 테지만 그에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

김지원: 안 그래도 그런 말 여러 군데서 듣는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노력해서 얻어야 할 것을 자본의 힘을 빌려 산 것일 뿐이라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우리는 학과를 다니면서 지식이나 선배연주자의 팁을 얻었고 그걸 잘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배운 것’과 그걸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또 ‘테크니션’이 되지 말고 ‘뮤지션’이 되라고 말하던데, 테크니션과 뮤지션이 꼭 다르지만도 않다. 테크니션이 아니고도 좋은 뮤지션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테크니션이면서 뮤지션이라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 그건 뮤지션에게 어떤 편리함을 부여해준다. 좋은 플레이어가 되면 좋은 뮤지션이 되기 물리적으로 조금 더 수월해지는 거지. 말로 설명하면 난해한 것도 음표로는 잘 구체화되지 않나. 실용음악과에서 우린 그런 걸 배운 것이고 그 배움이 헛된 거였다고 보진 않는다.

 

숱한 테크니션들의 음악을 접했을 텐데, 그중 영향 받은 사람이 있나?

김지원: Ella Fitzgerald. 음절(syllable)로 악기 소리를 내는 게 너무 멋있었다. 그걸 많이 따라도 했고.

김지나: 시기마다 달랐다. 어렸을 때는 기교로 무장한 한국의 속주 기타리스트들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성장하면서 학교 다닐 때는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꽂혔다. 이를테면 Joe Pass 같은 기타리스트의 음악 말이다. 최근엔 Miles Davis를 다시 듣고 있다. 청년기의 영웅이었던, Jimi Hendrix나 Stevie Ray Vaughan은 마땅히 언급해야 할 것이고. 사람마다 톤이 다 다르니,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다 들었다.

 

드러눕고 분장을 하고 탬버린을 치면서 어슬렁거리는 퍼포먼스가 죽인다.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퍼포머’로서도 환상적이다.

김지나: 그게 미리 대본 가지고 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면 흥이 나니까 더 크게 움직이는 것뿐이지.

김지원: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다 다르지 않나. 무대 위에 올라가면 조명도 있고/단도 높고/소리도 합주실보다 훨씬 크고 하니까 셋 모두 흥분한 상태가 되는 거지. 그 상태에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원더풀한 공연이 되는지 아는 거고. 그걸 따로 공부를 한건 아니고, 공연을 하다 보니까 저절로 깨우치게 된 거다. 어느 순간 지나와 현준이를 보면 흥겨워지고, 어떤 타이밍에 이 아이들이 미쳐있다는 게 감지되고. 그게 나를 미치게 하는 거지. 비록 셋 다 못생겼지만(웃음), 딱딱하게 발표하는 느낌으로 하는 것보단 뛰면서 하는 게 좋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연주자나 가수는 ‘고유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Jerry Lee Lewis나 David Lee Roth만 봐도 그렇지 않나. 아직 빌리카터의 이름을 그에 대긴 불경스럽지만, 충분히 그런 관점으로 이해할 만하다.

김지원: 펑크 뮤지션 연주하는 거 보면 점프하면서 다운 피킹하고, 록 드러머 보면 스틱 돌리는 게 비장의 카드 같은 거다. 그런 거 없으면 심심하잖아. 나도 건반 칠 때 들고 치고, 누워서 치고 하는데 그런 요소가 기발하진 않지만 있으면 좋은 거다.

 

다음 EP는 그럼 언제쯤 예정하는가? 곡들도 다 정해져 있을 것만 같다.

김지나: 다 정해져 있다.

김지원: 우리는 빨리 내고 싶은데, 이번 음반 내느라 제작비를 다 소진했기 때문에, 돈이 되는 대로 스타트하려고 한다. 한 3곡이 든 EP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지나: 가능하면 올해 안에는 내고 싶다.

 

‘이명’의 마지막 물음이다. 본인들이 추천하고 싶은 팀 말하고 끝마치도록 하자.

김지원: 57과 다이얼라잇, 영신호. 그리고 화분. 특히 다이얼라잇은 엄청나게 응원하고 있다. 어, 그런데, 너무 친해서 속보일 수도 있겠네. 다이얼라잇 안되었으면 좋겠다(웃음).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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