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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카터: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블루스, 펑크, 거라지 밴드 빌리 카터가 정규 1집 [Here I Am]을 발매한다. 그간 밴드는 두 장의 EP <The Red>, <The Yellow>를 통해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사이를 종횡무진 해왔다. 여기 실린 13 트랙은 진작부터 쓰기 시작했던 곡들로 현재의 빌리 카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트랙 간 ‘온도차’가 중요한 앨범이라고 하니, 곡마다 열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들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인터뷰는 망원동의 조용한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김고양(보컬/멜로디언), 김진아(기타/보컬), 이현준(드럼/퍼커션)이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예상보다 빨리 1집을 듣게 되었다. 부지런한 밴드다.

김고양: 정말인가. 우리는 예상보다 늦게 낸 건 줄 알았다.

 

녹음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김진아: 녹음 자체만 따지면 3주에서 4주 정도 걸렸다.

 

재킷 이미지 설명부터 들어보자. 이거 열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것 같은데, 뭘 말하고 싶었던 건가?

김고양: 정규에 들어갈 곡들을 정리하면서 타이틀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간 했던 작업은 우리 외부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내면의 이야기나 감정에 충실해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곡들도 그런 곡들만 골라서 담게 되더라. 먼저 타이틀을 “내가 여기 있다(Here I Am)”로 정한 다음, 여기 실린 다양한 감정들을 온도차로 표현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열적외선 카메라를 쓰게 된 동기다. 멤버들의 손을 찍게 된 건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곡 제목에도 (I)’가 다수 등장하는 것 같다. 그것도 내면의 이야기 강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면 되는 건가?

김고양: 곡들을 아우를 수 있는 묶음을 찾다보니 그런 제목의 트랙들이 수록되게 된 거다.

 

두 장의 EP와도 색깔이 확연히 달라졌다. 더 자유분방해졌다. 특정한 장르로도 묶기 어려워졌다. EP엔 나름 콘셉트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나, 여기엔 뚜렷한 콘셉트가 보이지 않았다.

김진아 : 콘셉트 찾기가 애매할 거다(웃음).

김고양: EP엔 매번 정해진 콘셉트가 존재했다. 첫 번째 EP가 바뀐 3인조 빌리 카터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EP는 지나와 내가 연주했던 음악과 현준이가 가세한 이후 연주했던 음악을 어쿠스틱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EP는 앞으로도 디테일한 콘셉트로 갈 예정이다. 그에 반해 정규 음반은 특정한 콘셉트에 치우치지 않은 빌리 카터 본연의 모습을 담았다. 그 안의 이야기들도 이기적일 정도로 우리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음악가들이 정규 음반에 또렷한 콘셉트를 담으려고 한다. 그 점에서 약간은 반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김고양: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EP가 정규 앨범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지 않나. 오히려 EP가 그걸 표현하기에 걸맞은 포맷이라고 느꼈다. 한편으론 정해진 틀에 곡을 끼워 맞추는 작업을 하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EP가 옴니버스 구성이라면, 정규 음반에선 하나의 드라마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다. 왜 드라마도 회차가 늘어나면, 그 안에 다양한 스토리가 담기지 않나. 이 음반도 그렇게 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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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쓰기엔 너무 시절이 수상하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

김진아: 구상한 지 시간이 꽤 되었다. 사실 첫 번째 EP를 낸 후에 이 음반을 내려고 계획했을 정도다. 여기 실린 곡들은 다 그때부터 작업이 진행된 곡들이다.

김고양: 문화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시대와 예술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들을 뒤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간 의심 없이 모아온 아이디어들의 방향을 틀어버리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김진아: 몇 곡엔 그간 꾸준히 생각해왔던 상념들의 단초가 들어 있다. 특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김고양: 외부로부터 조금이라도 영향 받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는 불가능할 테니까(웃음).

 

1곡의 1구절을 제외하고는 가사가 다 영어다.

김진아: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김고양: 정말 어떻게 하다 보니 영어 가사를 붙이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왜 한국 록 밴드가 영어 가사를 쓰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런 말들을 들어 봤는지.

김진아: 많이 듣는다. 가사가 이해가 안 된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등등(웃음).

김고양: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한국의 언어를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헌데 세상은 조금씩 멀티 컬처가 되어가고 있고, 더 이상 언어가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감정이 잘 전달된 곡들은 알아서 가사를 다 찾아보시더라.

김진아: 자연스럽게 영미권 문화를 접하고 자라서 그런지 우리에겐 영어 가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앞에 실린 세 곡, ‘Rollin’ Blues’, ‘Love and Hatred’, ‘Lazy Talk’은 평소 공연 때 자주 연주하던 곡 아닌가? 애초에 이 곡들을 음반 초반부에 배치할 거란 생각을 했나?

김지나: 맞다. 가장 오래 했던 곡이고 해서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We Can Fight’의 노랫말이 크게 와 닿았다. 음반을 대표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곡에 대한 설명을 좀 더 해줄 수 있는지.

김진아: 런던으로 건너가 살았을 때, 그곳에서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 돌아갈 때 쯤 한국에서 선거가 끝났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곡이 딱 그 즈음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고, 좀 더 조심스럽게 사고하고 행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고양: 그 무렵 진아랑 굉장히 깊숙한 지점에서 그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건이라는 게 타인을 통해 보았을 때 더 잘 보이는 지점이 있는 법이다. 가족, 친구 모두 여유가 없어지고 포기하게 된 것도 많아지는 시점이었다. 진아, 진아의 가족, 멀게는 사회. 이 친구가 그것들과 싸우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싸움이 어디 진아만의 싸움이었겠나. 나도 현준이도 모두 싸우고 있었다.

김진아: 그게 꼭 우리 세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전 세대의 아버지 어머니들도 그런 장벽들과 싸웠을 것이다. 우리 세대 이후에도 그럴 거고. 모두가 좀 더 아름답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김고양: 제일 슬펐던 건 사람들이 ‘대상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걸 봤을 때였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선생님이 한 학생을 편애하면 두 학생이 연대해서 선생님을 향해 싸워야 하는데, 이 두 학생이 싸우게 되는 거다. 최근의 성대결 구도, 세대 간 구도, 지역 간 구도 이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진짜로 싸워야 할 대상은 어디에 있나. 모두 진정한 싸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만약 손을 잡으면 더 의미 있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느낌을 곡으로 표현해 본 거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을 것 같다. 한국은 어떤 점에서 억압이 더 심한가?

김고양: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도 연줄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 봤을 땐 기분이 좀 그랬다.

김진아: 한 개인으로 온전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자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는 것. 뿌리 깊게 들어박힌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자기만의 생각 없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이 많다.

김고양: 그래도 요즘 긍정적인 건 “그래서 뭐? 난 덕후고 이게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고, 그걸 남에게 당당하게 말할 줄 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고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음지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보면 사회가 조금은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빌리 카터의 블루지한 측면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You Ate My Brain’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고양: 가장 오래 연주했던 곡 중 하나다. 2인조 당시에는 형식도 존재하지 않는 묘한 곡이었다. 지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A 마이너 키를 마음대로 연주하면, 내가 탬버린을 마구 치면서 그에 맞춰 아무렇게나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현준이가 들어왔고 곡을 작업하게 되면서 이걸 뭔가 형태를 갖춘 곡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곡의 분위기도 블루지하게 했고, 기타 솔로도 집어넣고 체계를 만들었다. 그렇게 공연을 계속하면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듬어진 거다. 어떻게 보면, 라이브 때의 기분에 가장 충실한 모습으로 완결된 곡이다.

 

좀 더 블루스 곡들을 많이 담아내보고 싶지는 않았나?

김진아: 나름대로 곡마다 그런 색깔을 녹여 내려고는 했다. 하지만 블루스에 대한 시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고양: EP엔 형식적으로 귀에 꽂히는 블루스곡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음반엔 거라지의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블루지함이 한 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블루스라는 게 꼭 형식에 치우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Billy Carter’는 재미있는 로커빌리다. 즉흥적으로 넣고 싶었던 건지, 이런 스타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건지.

김진아: 가장 오래 연주했던 곡이고 1집을 하면 꼭 마지막에 넣으려고 했던 곡이다. 로커빌리 성향이 강한 곡이기도 해서 스트릿건즈의 로이 오빠를 초빙해 같이 연주해 보았다.

 

 ‘The Dog’도 즐겁게 들었다

김고양: 술 마시고 쓴 거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 보면 주변에 친한 사람도 많이 모이고 그러지 않나. 그러다 보면 “난 저렇게까지 취하지 않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술을 마시면 저 쪽에 앉은 개가 “야, 이리 와. 이쪽으로 오면 편해”라고 자꾸 유혹을 한다. 다른 것 1도 없고 그냥 숙취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쓴 곡이다. 사운드 측면에서 현준이가 중심을 잘 잡아 줬다.

김진아: 거대한 음주 뒤 깨는 과정을 담은 한 편의 서사다.

 

아까 곡들의 온도차를 말했다. 수록곡들이 어떤 온도에 따라 배열되어 있는 건지 물어봐도 좋을까?

김고양: 인트로에 실린 3곡은 다른 곡에 비해서 밝고 신나고 힘차다. 공연할 때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갈 수 있도록 포문을 여는 곡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밝게 인사한 후 치사하게 본연의 무겁고 진득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웃음). ‘The Dog’은 밝긴 하지만 실험적이어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의 연주가 사이키델릭하기도 하고, 그간 했던 사운드랑 많이 다른 곡이다. 하지만 인트로를 듣고 이 곡을 들으면 상대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서서히 온도를 내려서 점점 무겁고, 차가워지는 거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다시 발랄하게 ‘Billy Carter’를 연주하면서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마무리한다.

 

사운드가 많이 달라져서 빌리 카터의 팬 중 일부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김고양: 앨범을 다 녹음하고 죽 들어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1집이 아니더라(웃음). 대부분 뮤지션들은 접근성 높은 음반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건 한 3~4집 정도에나 걸맞을 무게감이었다. 꼭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우리의 진심을 담았다. 처음에 들으시고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면, 몇 번 들어보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언어들을 담아내려고 했으니, 그렇게 해주신다면 뭔가 교감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수록곡이 있나?

김고양: 나는 ‘The Dog’보다 ‘I’ll Be A Good Girl’ 같은 곡이 예전의 정서와 결이 다른 곡이라고 생각했다. 곡을 들은 후 (김민규) 대표님이 그러시더라. “생각보다 캐치(catchy)하고, 팝적인 감성이 녹아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사실 인간에 대한 나쁜 감성은 다 담은 노래였는데 말이지(웃음).

김진아: ‘Never Cry Again My Little Lady’. 록 많이 안 듣는 사람에겐 다소 시끄러울 수도 있는 곡일 텐데 여러 감성을 담고 있어서 좋다. 그에 비해서 메시지는 직접적인 편이다.

이현준: 나는 ‘The Dog’으로 하고 싶다. 라이브에서도 물이 오르기 시작한 곡이기도 하고. 음반이 나올 시점에서 우리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

 

이래저래 조명을 받은 밴드라고 생각한다. 평단에서 거론도 많이 되었고, ‘네이버 온스테이지에도 서봤다. 이제 해 보고 싶은 건 뭔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김진아: 스케줄상으로 보면, 음반을 내고 쇼케이스를 하게 된다. 그리곤 바로 전국투어를 돈다. 지금 계획으로는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인천 정도를 갈 생각이다. 1달에서 1달 반 정도 걸릴 예정이다. 그게 끝나면 단독공연을 준비하게 될 것 같다. 그 다음엔 해외 투어를 할 생각이다.

김고양: 효과가 좋은 투어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단발성으로 그치고 싶지는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투어를 해 보고 싶다.

김진아: 그리고 내년엔 EP를 내는 걸 고려하고 있다.

 

얼마 전 록의 시대는 끝났다는 칼럼을 봤을 것이다. 록 밴드로서 그 기사를 보고 느낀 게 있을 것 같다.

김고양: 리스너들이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건 부활하지 않나. 펑크도 살아났고, 메탈도 다른 형태로 살아났다. 죽었다고 생각해도 밴드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죽지는 않는다.

김진아: 클래식과도 비슷하다. 클래식도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고양: 다양한 감정을 담았다. 기분에 따라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라이브를 보러 오시라.

김진아: 음악이 항상 그렇듯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빌리 카터를 찾아 달라.

이현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음반 하나에 응축해 넣었다. 잘 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공연장도 찾아 주시길 부탁 드린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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