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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앤 드론즈: 내가 먼저 손을 내민 음반이다

 

꽤 오래전, 어느 까페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잠시 멍해진 채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엔 사비나 앤 드론즈라는 생소한 가수의 CD가 들렸다. 아, 이 수많은 레퍼런스를 타고 넘는, 끝내 레퍼런스를 무력화시키는 음악이라니. Rickie Lee Jones, Fiona Apple, 1950~1960년대 브릴 빌딩 사운드, 그리고 여러 다른 음악들의 자취와 흔적.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돌파해내는 능력. [Gayo]는 이런 음악도 하나의 ‘가요’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음반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언어와 어휘를 가진 ‘작가’를 만났다는 데 기뻤고 즐거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다음 행마를 보기까진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엔 ‘밴드’다. 물론 바뀐 건 늘어난 사람 수만은 아닐 것이다. 사교성도 늘었고, 속내도 좀 더 털어놓게 되었으며, 내면의 변화도 있었다. 그렇게 ‘켜’가 하나씩 늘었고, 음악도 달라졌다.

이것은 어떤 성장의 증거다. 성숙의 징표다.

인터뷰는 이경준이 진행했고 정원석이 여러 도움을 주었으며, 사비나(보컬), 조용민(기타), 유승혜(키보드)가 답변해주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Gayo]에 설렜던 사람들에게 5년은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사비나: “5년 동안 뭘 하고 지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솔직하게 “비밀”이다. 굳이 그걸 “비밀”이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둘러댔다. “살아왔다. 일을 했다.” 이런 말들로 대충 얼버무리며 상황을 모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작년 9월에 일(간호사)을 그만뒀고,  멤버들과 잘 놀면서 지냈다. 음악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멤버들은 다 나보다 언니오빠들이고(사실 한두 살 많은 것도 아니다), 커리어적으로도 선배다. 친해지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어쨌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2집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5년 간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팀을 꾸렸고, 성숙해졌고, 사회성이라는 게 생겼다. 그렇게 변해 간 거다. 음악에 대한 느낌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다. 같은 표현이 나오는 지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뭔가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데 있어 멤버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하고 음악을 한다는 게 처음에는 좀 불편했다. 원래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않는 타입이다. 그랬는데 이 분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유승혜: 나는 이 친구가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몰랐다(웃음). 딱 봐도 매사에 당당한 타입이지 않나. 솔직히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는 아니었던 거지. 내가 느끼는 거리와 이 친구가 느끼는 거리가 차이가 났던 거다.

사비나: 연애를 해도 3년은 지나야 그 사람을 ‘진짜로’ 받아들인다.  사람과 사귀는 게 오래 걸린다. 음악적으로도 화려한 테크닉을 써서 음악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뭐가 빨리 나올 수가 없었다. 영감이나 자극이 있어야 곡이 써지는데, 그런 경험을 얻으려면 먼저 살아야 하지 않나. 1집 때는 유년기부터 20대까지 경험을 응축된 형태로 담았었는데, 나중엔 지쳐서 공연하기가 싫을 정도였다.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성격이 그렇다. 모든 걸 혼자 이겨낸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다 음악에 빨려 들어가 있으니, 안 괴로울 수가 없었다. 친한 사람들 앞에서도 잘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를,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로 한다? 그러다가 공연장에 부모님이라도 오시면 울컥 터지곤 했다. 감성적으로 여리다. 공포영화도 못 본다.

 

이게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작과 비교해 어느 정도 밝아진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비나 씨가 말한 것처럼 “20대의 어두운 여울목을 지나 30대에 돌입해 낸 첫 음반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비나: 그렇다. 1집 때 담긴 감성은 그 시절을 살아오던 내 상태였다. 반면 2집에 들어 있는 정서는 그 5년간 변한 지금의 나의 정서다. 물론 (지적한 바대로) 몇몇 곡들은 1집과 유사하다. 내재된 슬픔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안정되고 따스하다. 멤버들 성향 덕분이다. 따뜻한 분들이다. 그나마 내 음악을 같이 하는 분들이라 맞춰 주시는 거지. 안다.  이번엔 그 두 다른 성향이 조화를 잘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옆에서 보기에도 리더의 변화가 감지되었는가?

유승혜: 사실 나는 사비나가 가장 예민했던 시기를 지나 가입했다. 그 전엔 더 날카로웠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그때도 날이 바짝 서 있던 때라, 다가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어지간하면 둥글둥글 넘어가는 편인데, 흠칫 놀랐다. “아, 이런 친구도 있구나!” 그게 나빠 보였다는 게 아니라, 독특한 캐릭터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부럽기도 했다. ‘아우라’는 아무한테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이 친구가 서서히 변하는 게 보였다. 진심으로 절대 안 변할 줄 알았다(웃음). 헌데 그게 나빠 보이지 않더라.

 

그럼 여기 들어간 곡들은, 5년 동안 산발적으로 쓰인 곡들인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온 곡들인가?

사비나: 한 70% 정도의 곡들은 3년 정도에 걸쳐 모아 놓았던 멜로디다.

 

현재는 레이블이 없는 것으로 안다. 유통이나 홍보도 뮤지션이 직접 해야 할 것인데, 힘든 면이 많을 것 같다.

조용민: 안 그래도 지금 CD 입고하고 왔다(웃음).

사비나: 이게 단순히 노래만 잘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예전에 나는 정말 노래만 했다. 비즈니스란 걸 몰랐다. 인터뷰가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그런 게 생기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 이번에도 상상마당의 도움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다.

이제 상황을 알게 된 만큼 해야 되는 일도 많아졌다. 절대 나 혼자서는 못 한다는 뜻이다. 재킷 찍어주신 리에 작가님에게도 감사한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음반”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 굉장히 많은 부분을 도와 주셨다. 뮤직비디오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그 과정에서 멤버들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툭툭 던진다. 그런 말들도 고맙다. 가끔은 “이 밴드가 네 거야?”라고 되묻기도 하면서 말이지(웃음). 하지만, 다음 음반은 꼭 매니저나 A&R 두고 해보고 싶다.

 

녹음 과정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당연히 다사다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땠는지.

조용민: 춘천 상상마당 스튜디오를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15일 정도 사용해도 된다고 하더라. 그럼 주말에 2~3일씩 다녀오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케줄을 같이 빼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명씩 다녀올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어떻게 스케줄을 맞춰서 15일을 다 다녀왔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멤버끼리 한 곳에 모여 숙식하며 알콩달콩 이렇게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곳에서 그곳에서 음악을 써내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저녁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뮤지션들은 알다피시 밤에 활동하지 않나. 뭐, 사정이 그러하니 작곡이나 편곡을 미리 해서 갔고, 춘천에서는 거기에 살을 붙이고 다듬는 작업을 했다.

사비나: 1집은 프로듀서(김영준)와 내가 둘이서 뚝딱뚝딱 다 만들어낸 작품이다. 물렁곈을 비롯한 레이블(우먼앤맨스) 친구들이 연주를 도와주긴 했지만 말이다. 그땐 목표가 뚜렷했었고, 그걸 그대로 밀어붙였고, 그대로 지시를 해서 완성해냈다. 2~3시간 안에 1곡이 툭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하다보니, 1년 정도면 결과물이 나올 정도가 될 정도로 작업량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풀 밴드를 맡게 되었다. 대규모 형태의 녹음을 처음 해보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각자의 해석이나 느낌이 다른 경우가 생겼다. 난 독선적인 면이 있어서 처음엔 내가 원하는 게 그대로 나오길(멤버들이 그걸 캐치해서 잘 반영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이렇게 경력이 풍부한 뮤지션들을 내가 어르고 달래며 방향성을 주입한다고 될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혼란스러워지더라. 내 입장에서는 “아, 내가 생각했던 건 이 방향이 아닌데”가 된 거고, 멤버들 입장에서는 “이런 색깔도 맞고 네 색깔도 괜찮아. 더, 솔직히 말하면 네가 원하는 색깔이 뭔지 잘 모르겠어.”가 된 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이 음반이 나올 수 있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가이드라인을 줬을 때 그 사람이 감을 못 잡으면, “어라, 왜 이 사람 이해를 못 하지싶었겠다.

사비나: 그랬다. 그땐 무조건 우기고 봤다. 쏘아 대기 바빴다. 아니요. 그거 아닌데요. 아니요, 이거에요. 싫어요. 별로에요(웃음).

조용민: 반대로 사비나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걸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말해줘야 하는 지점도 있다. 텔레파시를 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생각하는 바를 100% 인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연주자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해줘야 하는 지점이 있다. 뭐, 멤버들이 그걸 이해하고 배려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만나서 많이 놀았다고 했다. 그럼 만나서 차 마시고 술 마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건가?

사비나: 매일 본 건 아니었고. 가끔씩 만나서 사담을 나누고 안부 묻고 그랬다. 전까진 그런 말 자체가 없었다. 정확히 음악에 대한 것만 딱 물어봤다. 그런데 이 멤버들이 오픈 마인드다. 내 그런 성격을 귀엽게 봐준 거다. 그러다 보니 나도 마음이 열리게 된 거고. 심지어는 너무 편해진 나머지, “언니, 이 옷 어디서 샀어요?”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내 입에서 저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간다는 게 신기했고 놀라웠다. 그렇게 되기까지가 5년이다.

유승혜: 그 이야기를 듣기까지 걸린 시간이다(웃음).

사비나: 목 관리 때문에 폭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만나서 와인 한잔 하는 정도.

 

[Gayo]엔 감정이 추락하는 곡들이 많았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곡들이 많았다. 난 그게 [Gayo]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런 것도 가요구나. 그런데 2집은 여러 군데에 감정이 분산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그 때문에 1집에선 다음 곡의 감정선이 대강 예상이 가능했는데, 이번 음반에선 예측이 힘들어졌다. “이게 나올 줄 알았지. 아니거든”, 그런 느낌?

사비나: 예상대로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유승혜: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일렉트로닉 소스는 따로 뽑아서 음반을 내자는 말도 나왔었다. 그랬다가 그냥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의 일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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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1집은 일관성이 있는 음반이었다. 2집은 다양성을 갖게 되었고. 좋은 싱글들이 모인 음반이 되었다. 의도를 한 건가?

사비나: 1집은 두 사람의 집요한 아이디어가 ‘곡 실험’을 통해 표출된 작품이다. 1집도 음악적 일관성이 높진 않았다. 그런데 그걸 ‘한 사람’이 하다 보니 그런 색깔이 투사된 거지. 반면 이번 음반은 여러 사람이 작업을 함께 하지 않았나. 그 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들어가고 섞이고 회전하면서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다양성’도 생기지 않았나한다. 초반에는 이게 내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잠시 주저했지만, 좀 더 세상을 향해 열리고 싶었다.

1집은 돌이켜볼 때 ‘일방적’인 음반이었다. 곡도 그랬지만, 공연장에서도 내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다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를 교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각자의 느낌이나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게 더 사무치게 다가올 수 있는’ 거니까. 청자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았고. 그렇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민 음반이다.

유승혜: 이번엔 확실히 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위로가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공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게 1집과 달라진 점이다.

사비나: 한글 가사가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유승혜: 한글 가사에 대한 부분은 의도성이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공감해야 하니까.

 

이번에 멤버들의 참여 비중은 어떻게 되나?

조용민: 1집과는 반대로 간 음반이다. 1집은 음악을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는데, 2집은 멜로디를 만들고 음악을 붙였다. 그러다 보니 편곡 과정에서 멜로디를 수정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비나가 작곡을 담당했다.

 

밴드 셋으로는 첫 풀렝스다. 어쩔 수 없이 포커스는 보컬에 쏠리지만, 그를 둘러치고 있는 사운드의 균형이 참 중요할 음악일 것만 같다. 그런 점에서 연주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조용민: 1집의 색깔을 퍼플이라고 했을 때, 밴드가 된 2집은 그와는 다른 어떤 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우리끼리 ‘오렌지로 하자’고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퍼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우리 색깔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원래의 색을 유지하되 ‘약간은 다른 퍼플’이 되는 걸 택했다. “아, 이런 퍼플도 있구나”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멤버들이 이에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항상 ‘과도기’라는 건 있을 거다. 지금이 그 ‘과도기’다. 앞으로 3집이나 4집 정도가 되면 더 발전된 ‘밴드 사운드’가 나올 거라 믿는다. 프런트맨이 밴드를 부각시키고, 다른 멤버들이 서포트를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려면 기다림이 중요하다. 사비나도 우리를 기다려 줘야 되고, 거꾸로 우리도 사비나를 기다려 줘야 한다. 다른 측면으로는 팬 분들도 우리를 기다려 주면 좋겠다. 천천히 바뀌는 게 더 진정성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유승혜: 1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더 발전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조용민: 솔직하게 말하면 음악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언젠가 사비나가 그러더라. “이거 너무 많이 바뀐 거 아닌가요?” 이를테면 ‘So When It goes’ 같은 곡 말이다. “너무 전형적인 가요 같지 않나요?” 묻더라. 그런데 그게 좋았라. 멜로디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비나가 불렀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녀가 부르면 뭔가 달라지니까.

한번 성공했다고 똑같은 걸 계속 만드는 것 보다는 새로운 걸 써낸 뒤 팬들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과도기’라 이름붙인 거다. 정리하자면, 지금 들고 있는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가 현재로서는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음반이 된 거다. 15곡 정도가 있었는데, 너무 밝은 곡들은 뺐다. 누락된 곡들은 현재의 밴드 셋이 더 완성되었을 때 해보고 싶었다. 아껴 둔 거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분위기만 보면 여행 다니고, 연애 하는 예민한 타입처럼 보였다. 그런데 의외로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 그 직업이 또 상당히 위계질서 강한 직업 아니었나. , 저렇게 힘든 곳에서 일하는 분이 어떻게 예술을 할까.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예술혼이 나온 걸까.

사비나: 실제로 괴리감이 컸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아픈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거다. 밝아도 밝지 않은 음악. 어딘가 아픈 마음이 들어간 음악. 종교가 가톨릭인데, 그땐 “왜 나한테 이런 삶이 주어졌을까” 자문해 보기도 했었다.

어릴 때부터 규율에 갇히는 걸 싫어했고, 다른 사람과 얽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때문에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오는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사는 게 의미가 없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어느 날 요절한다고 해도, 그게 ‘이 지옥에서 풀려나는 방법’이라고 상상하기도 했고. 하지만 책임감도 강한 성격이라 일은 철두철미하게 했다. 그러니 더 힘들었겠지.

 

그래서 탄생한 [Gayo]는 전술했던 바대로 남에게 들려주려고 만든 음반은 아니었다. 그런데 또 그걸 누군가 듣고 이야기해야 된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도 있었을 것 같다.

사비나: 결과적으론 안 좋은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다행으로 생각한다. 확실히 그땐 어렸다. 통속적으로 하는 “슬퍼요. 헤어지지 말아요.” 그런 말을 담긴 싫었다. 거기에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나름대로는 나만의 언어, 고민의 언어, 슬픔의 언어를 실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데모 음반이었는데, 다행히 그 음반을 듣고 “뭐가 이 따위야?”라고 반응한 분들은 전체의 1%도 안 되더라. 그분들의 덕으로 버틸 수 있었다. 따뜻하게 교감해주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고, 그런 반응 때문에 지금까지 음악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반응은 없고 아류 취급만 받다 끝났다면 이 음반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음악들이 기저에 깔려 있었나.

사비나: 잡식이다. 고등학교 때는 한국 인디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많이 실망했다. 노래와 연주를 못한다는 게 아니라, 레코딩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녹음이 정말 안 좋더라. 한편으론 춤을 좋아해서 댄서를 꿈꾸기도 했었다.

조용민: 어이없게 춤을 잘 춘다(웃음).

사비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중엔 마음속에 공허함만 가득 차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그 꿈과는 작별을 했다. 아니다. 좀 다르게 취급받더라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같이 섞이고 원하지 않는 학과지만 가서 공부를 하자. 그렇게 결심했던 거다. 다행스럽게 그런 삶의 흔적들이 다 밑거름이 되더라. 음악이 음악적 토양이 된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음악적 토양이 된 거다. 2집이 늦게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간이 쌓여야 뭐든 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 내게 쌓인 뭔가도 없이 주제넘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직접 뛰어들어 부딪쳐야 하는 게 삶이고 음악이라면, 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면, 1집 때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 미국 차트 음악을 많이 돌려 들었다. 지금은 일렉트로닉 기반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다.

 

최신 트렌드도 다 챙기고 있나?

유승혜: 나는 챙기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의 그루브감 넘치는 음악들을 좋아하는데, 사비나도 그때 음반을 좋아하더라. 힙합도 좋아하고, 힙한 음악도 좋아한다.

사비나: 예전 브릿팝 이런 음악엔 공감을 잘 못했는데, 요즘 EDM이나 그런 음악은 즐겨 듣는다. James Blake 이후로 그런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음악이 내 취향이다. 요즘엔 이런 음악에 꽂혀 있다. 영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조용민: 나는 이분들만큼 많이 챙기진 않고, 대신 예전에 좋아했던 음반들을 자주 듣는다. 물론, 요즘 음악을 싫어하지는 않고 “이 사람들이 이걸 왜 좋아하는지” 정도까진 관심을 갖는다.

 

처음 들었을 대 목소리 자체가 섹시하다고 느꼈다. 열망과 욕망이 담긴 목소리 같다.

사비나: 그렇다. 나는 모든 욕망 추구가 목소리로 나온다. 식욕이든, 수면욕이든, 그 모든 감각들이 노래로 드러난다. 그러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목소리에 담겨 있다. 꾸며낸 목소리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니까.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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