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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오수경: 내 안의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비껴가며 만난다

 

큰 상을 받은 다음, 리더 오수경은 불쑥 프랑스로 날아가 버렸다. 남은 멤버들은 솔로 음반을 내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제 나올지 기약은 없었지만, 1집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기다림이 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그들의 2집이 빨리 발매되었다. 들어보면 느끼겠지만, 1집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고, 보다 더 내밀해진 작품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 덕택에 더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음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홍대의 조용한 모 공간에서 오수경을 만나 살롱 드 오수경의 두 번째 음반에 대한 후일담을 들어보았다.

 

얼마 전 진행했던 야누스에서의 라이브는 평일임에도 관객이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

평일인데도, 자리가 꽉 찼다. 즐거웠고 집중도도 좋았다. 공연에 푹 빠져서 연주할 수 있었고, 그걸 보고 듣는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던 걸로 믿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고, 모두가 행보를 주시할 때 돌연 파리로 떠났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음악인생을 통틀어 살롱 드 오수경의 1집은 내 역량을 다 쏟아 부어 만든 음반이다. 그렇게 작품을 내고 나니까 소스고 뭐고 남아 있는 게 없더라. 그 상태에서 다시 채워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여기 있다가는 도태될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정확히 한국을 떠난 날짜가 언제인가?

2014년 3월 24일이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처음에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갔는데,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고생을 무진장 했다. 당장 슈퍼마켓에 가서 뭘 사려고 해도 그게 힘들었으니까. 외국어라는 게 앉아서 하루 종일 한다고 느는 것도 아니다. 특히 불어는 더 그렇다. 음악은커녕 어학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기초가 잡혀 있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학원 3개월 정도 다니고 나서 시험을 봤는데, 어떻게 어드미션이 나와서 학교를 들어가게 된 거다. 그렇게 입학은 했는데, 수업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학교를 가면 말 때문에 눌리고. 아, 말 때문에 눌렸지만 한편으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교수님이나 친구들 모두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주고 이해시켜 주고 그랬다. 그렇게 음악이라는 도구가 말이 달라도 서로 통하게 하는 힘이 있다. 되짚어보면, 낯선 땅에 적응하느라고 바삐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미려한 곡을 많이 쓰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은 행복하기만 했고, 서울에 있을 때랑은 다른 에너지로 살았던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 그림은 어떤가?

[파리의 숨결] 표지에 나온 이 건물이 내 아파트에서 바라본 경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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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오래된 건물처럼 보인다.

파리에 있는 건물은 다 오래됐다. 세탁기도 없고, 물도 잘 안 나온다. 그런데 그걸 그냥 내버려두는 그 나라의 멘탈이 좋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파리하면 어설픈 낭만을 떠올릴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겠군?

서울의 깨끗함에 익숙해진 분들은 파리 더럽다고 싫어한다. 그런데 나처럼 서울이 ‘비인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파리가 좋을 수도 있다. 늙어가는 거리를 늙어가게끔 두는 그 도시가 좋다. 파리는 또 인간적이다. 한국은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손님 ‘갑’의 횡포가 심하지 않나? 거기는 대통령이 앉아서 식사를 하더라도, 대통령/직원 모두 사람이다. 그 누구라도 “빨리 달라”고 진상짓 못 한다.

 

멤버들이 떨어져 있는데, 음반작업은 어떤 식으로 했나?

이메일로 소통했다. 내가 곡을 쓰고 편곡을 해서 악보와 음원, MR을 다 만들어서 보내면, 멤버들이 그 연습용 MR에 녹음을 해서 자기 파트를 돌려주는 식이었다. 그걸 내가 확인한 다음 멤버들과 상의를 거치고 보완해 최종 완성했다.

 

믹싱과 마스터링은 얼마나 걸렸나?

3주 걸렸다. 말도 안 되는 단기간에 끝냈다. 늘 아쉬움이 있지만 퀄리티 따지고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못 낸다(웃음). 뮤지션들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음반, 1집보다 훨씬 잘 나온 것 같다. 그럼 된 거다. 다들 연주 실력이 늘지 않았을까. 그 동안 모두들 엄청 연주했을 테니까.

 

살롱 드 오수경은 밴드 아닌가? 파일 오고 가는 것이야 이메일이 해주겠지만, 밴드사운드의 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다.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허나 구성원 서로에게 갖는 믿음이 있다. 나는 ‘당연히’ 그 합이 맞을 것이라 예상했다.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게 있고, 그렇기 때문에 팀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 믿음으로 팀을 하겠지.

 

오래 떨어져 있으면, 느슨해질 소지도 있지 않나? 더구나 리더가 떠난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그걸 걱정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느슨해져버리자”라고 결심했다. “느슨해져서, 애초의 방향을 틀고, 다른 방향으로 가자”, 이게 목표가 된 거다. “너, 참신한 음악 쓰려고 파리 간 거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는데, 아주 원론적인 자문을 하게 된 거다. 전에 나는 팍팍하게 음악만 하던 사람이었다. 한번 그렇게 하고 나니, “또 그렇게 해야 되나?”라는 회의가 들더라. 정말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가는 거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왜 사람 사귀는 것도 나쁜 여자 한번 만나고 나면, 다음엔 착한 여자 만나고 싶지 않나(웃음).

 

1집에서는 탱고+재즈라는 신선한 조합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또 그렇게 꽉 짜인 콘셉트 같지는 않다. “풀어지겠다. 느슨해지겠다는 말뜻을 약간이나마 알겠다.

파리에 가서 쓴 4곡과 유학 떠나기 전에 팀원들끼리 레코딩했던 4곡을 모아 낸 음반이니, 수록곡들 다 신곡은 아니다. 파리에 가서 쓴 곡은 1~4번 트랙이다. 고로 음반엔 내 ‘과거’와 ‘현재’가 집적되어 있는 셈인데, 이걸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곰곰이 고민을 하다, 내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어렸을 때 나는 특정한 풍경에 잘 매료되는 아이였는데, 나중에 어떤 장면을 보면 그로부터 전에 봤던 것들을 떠올리곤 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그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했던 거다. 학창 시절 우연히 산 책받침의 배경이 파리였는데, 무심코 보게 된 영화의 배경도 파리였다. 그럴 때가 많았다. 공통점이 ‘파리’였던 거다.

그 어린 시절들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작곡한 곡들이 5~8번 트랙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른이 되어 ‘파리’에 살고 있지 않나. 이제 성인이 된 입장에서 쓴 곡들이 전반부 네 곡이다. 이 두 파트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본 거다. 어렸을 때 봤던 시공간에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것. 과거가 현재가 된 상황. 현재의 이 시간 역시 나중에는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 그런 느낌을 담아보고 싶었다. 아, 그리고 지금 사는 이 아파트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 이사를 가야 해서. 그 집도 말 그대로 추억이 되는 거다.

 

1집보다 에너지는 좀 줄었지만, 더 감성을 자극한다. 멀리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든 건가?

쓸쓸한 감정, 애잔한 감정들이 일상에서 불쑥 솟구치곤 했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 풍경을 보다보면, 극도로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시점이 있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보면 뭉클해지는 때가 있지 않나.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1년 365일이 매일 그랬다. 도시의 공기가 다르고, 냄새가 달랐다.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고 봐야지.

 

장난감 병정의 비행’/‘놀이동산’/‘원더랜드’/‘뮤직박스’/‘회전목마’. 다 아까 말한 유년의 데자뷰를 상기시키는 단어들이다. 그게 이번 음반의 주제다. 제목들의 나열만 봐도,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퍼즐이 짜 맞춰지듯 그렇게 되었다. 앨범 트랙을 정하고, 순서를 체크하는 과정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배열되었다.

 

스캣으로 문을 여는 오라투와부터 전작과는 다를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사색적이고 고독한 무드에 빠지게 하는 곡이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일요일 오후, 한 번에 죽 작곡한 곡이다. 그러고 나서 들어봤는데 좋더라. 옛날 같으면, 이걸 5분짜리 트랙으로 늘이려고 별 수를 다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짧은 상태, 아쉬운 상태로 두고 싶더라. 목소리 좀 나오고, 현악기 좀 나오다가 마무리되는 건 그 때문이다.

 

오라투와의 뜻은?

기도실이라는 뜻이다. 나는 크리스천이고, 파리 유학을 하면서도 기도를 하면서 지냈다. 기도를 한참 하고 있던 일요일이었다. 아까 말한 어느 일요일 오후다.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라고 고심할 찰나도 없이 입에서 허밍으로 “오라투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던 거다.

 

교회가 예뻤나 보다.

내가 다니던 교회가 센 강-오르세 박물관-루브르 박물관 사이에 있다. 교회로 걸어가는 길목에 접어들면 ‘파리의 숨결’이 만져진다. 그 길을 걷다보면 어떤 악상이라도 떠오르게 될 것이다.

 

격정적인 슬픈 로라가 그나마 전작과 가장 유사한 곡으로 보인다.

아, 이 곡은 파리로 가기 ‘직전’에 쓴 곡이다. 2014년 2월에 나온 곡이니까. 이 곡이 이번 음반 색깔과는 완연히 다름에도 굳이 넣은 이유는 ‘슬픈 로라’(나)가 파리로 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나’라는 객체가 파리로 떠나버렸다는 것. 그래서 이 곡은 격정적이다. 그리고 ‘파리의 숨결’이 나오는 순간, 그 로라가 파리에 닿은 거다. 그 다음부터 앨범의 분위기가 바뀐다. ‘비포’, 그리고 ‘애프터’인 거다.

 

타이틀곡 파리의 숨결은 기타아코디언바이올린의 균등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더 터질 법도 한데 억제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펑펑 울 것 같은데 그 직전까지만 딱 데려다놓는 느낌이다.

바람도 폭풍우가 되면 안 된다. 바람은 한번 불고 또 쫙 빠져 줘야 한다(웃음). 그 누구도 오버하지 말자고 의견을 교환했고, ‘파리의 숨결’이나 ‘바람’의 흔적 살짝 나타내주면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야 리스너들도 오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난감 병정은 오르골 사운드를 듣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이 4분 내에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짧은데도 영화 한편 본 듯 하고, 그래서 제일 좋아한다.

몽마르트르에 여러 차례 올랐다. 그 근처에 예쁜 장난감 가게들이 많은데, 한 가게의 유리벽장에 장난감 병정이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데 순간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무표정의 그 얼굴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저 친구가 밖으로 나와서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가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을 곡으로 옮겨본 거다.

 

멜로디언 사운드가 나오는 놀이동산을 듣고 있으면, 어린 시절에 엄마 손 잡고 갔던 어린이공원의 풍경이 스친다. 왠지 서울랜드일 것 같다.

장소는 서울랜드다. 1992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손을 놓쳐서 엄마를 잃어버렸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눈앞엔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있었고,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너무 무섭긴 한데 그 행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상반된 정서가 교차하면서 펼쳐지는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풍경. 그걸 곡으로 표현해보았다. 내 가슴 한 구석에 엽서처럼 간직된 씬(scene)이다.

 

회전목마는 제목처럼 순환한다. ‘놀이동산과 같은 장소에서의 기억인가?

그건 아니고, 이 곡은 회전목마가 주는 ‘그로테스크함’과 ‘그에 대한 동경’을 담은 트랙이다. 신비스럽고 괴기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미지. 회전목마를 볼 때마다 그런 이미지들이 콕 박혔다. 또 정작 그 위에 타면 슬픈 노래만 나오지 않나. 영화 ‘베티블루’ 보면 회전목마 씬이 있는데, 그 때 흐르던 음악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살롱 드 오수경이 다시 편곡해서 연주한 적도 있었다. 이번 음반 작업하면서 그 커버곡의 인트로를 ‘회전목마’의 인트로로 쓰면 딱이겠다 싶어서 이어 보았다. 아! 너무 잘 어울리는 거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그 원곡 제목이 ‘저주받은 회전목마’였다. 아무 것도 모르고 커버했던 곡인데, 경악할 만한 일치였던 거지.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과거라는 건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음악가 본인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완성으로 끝나게 될 복원작업이 의미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했나?

난 그 과거를 어떻게든 끄집어내서 재현해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이상한 습성을 가진 거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 왔던 것 같다. 가령, 1997년 7월 며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가정하자. 그럼 나는 그때 입었던 옷부터 모든 걸 다 기억한다. 그러면 나는 1년 후 같은 날, 그때 입었던 똑같은 옷을 입고 그 장소에 가서 앉아 있곤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 행복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그런 거였지. 결과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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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죽 뺐다. 1집으로 주목받으면 원래 소포모어 음반에서는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게 마련인데,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1집도 좋았지만, 이번 음반을 더 자주 듣고 있다. 지인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작품을 써야겠다는 욕심이 발견되지 않아서 더 멋진 작품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맞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했다. 그런데 ‘욕심’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는 예증이 있다. 오늘 이 인터뷰하기 전 프랑스어로 하는 인터뷰가 하나 있어서, 오늘 12시간 동안 프랑스어만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토록 피나게 했는데 긴장한 탓에 한 문장도 부드럽지 않게 나오더라. 열심히 한다고 그게 고스란히 아웃풋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건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강박을 갖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암암리에 1년 반 프랑스어 꾸준히 했으니 “뭔가를 보여줘야지”라는 의식이 있었나보다. 그게 ‘착한 마음’은 아니지 않나. 의도가 불순하니 말이 제대로 안 나왔던 거다(웃음). 이번 음반도 그런 마음으로 했으면 망했을 거다. 시쳇말로 “깔 테면 까라”는 심리도 있었다. 알 분들이야 알지만, 살롱 드 오수경이 얼마나 인기가 많다고. 그런 거엔 신경을 안 쓰고 만들었다.

 

수경 씨 30대 초반 아닌가?

32세다.

 

버리고 싶다기 보다는 갖고 싶다의 기운이 셀 나이 아닌가?

성격상 100이 있으면, 0이 될 때까지 갔다가, 다시 1-2-3-4… 이렇게 올라오는 걸 좋아한다.

 

프랑스에 있을 때 다른 연주자들과 협연해 본 적은 없나?

해봤다. 학교가 재즈학과라 재즈야 매일 연주하는 거였고, 그중엔 귀신처럼 연주하는 아이들도 상당수인데 내가 듣기엔 한국 특유의 ‘한’은 잘 느껴지지 않더라. 그래서 그런지 밀도 있게 뭘 같이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친구들 자유분방하고 그런 건 좋은데, 좀 더 살아봐야 콜라보를 해보기 싶을지 말지 틀이 나올 것 같다.

 

그쪽 음악, 본인이 듣기엔 어땠나?

오히려 한국의 인디 씬이나 재즈 씬의 음악이 더 다채롭다. 이것저것 뭐가 많기는 한데, 또 확 끄는 음악은 많지 않다. 허나 그런 음악들도 사람들이 다 티켓 끊어서 공연 보고 그런 문화는 있다. 그걸 보고 “아, 살롱 드 오수경이 여기서 연주하면 대박 칠텐데!”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진심으로 살려고 옮긴 건가?

확답은 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가 녹아들어 3집이 나올 거다(웃음).

 

만약 또 노미네이트가 돼서 상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할 건가? 하하.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은 대답을 못하겠다.

 

1집은 열정, 2집은 유년이 키워드였다. 3집은 어떤 콘셉트가 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우리 1집이 다 탱고도 아니었고, 이번 2집은 더 장르 경계가 애매하다. 그럼 3집은 더한 모양새로 나오지 않을까(웃음). 그렇다고 난해한 음악은 아닐 거다. 애초부터 난해한 음악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두고 보자.

 

오수경의 개인 스토리로 메워진 음반이다. 그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접근하면 좋겠는가?

요즘 같은 날씨에 드라이브하면서 들으면 딱이다. 가을이잖나. 첫째, 계절감. 다음으로는 이 빡빡한 일상 속에서 유럽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음반을 듣게 되면 잠시라도 파리에 와 있는 착각이 들지 않을까? 그러니 둘째, 힐링. 셋째, 기억 저편으로 가는 체험. 학창시절의 좋은 기억이든 여행에서의 잊히지 않는 기억이든 뭐든. 이 음반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지박(첼로) 씨도 솔로음반을 냈고, 장수현(바이올린) 씨도 정규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수경 씨는 멤버들의 이런 밴드 외 활동을 좋게 보는 편인가?

궁극적으로는 개개인이 발전해야 밴드의 음악도 향상된다고 보는 쪽이다. 그래서 ‘자기음악’이 있는 음악이 좋다. ‘자기 것’이 확실할수록 밴드의 곡 해석도 탁월하게 할 수 있고, 자기음악을 해본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솔로를 권장하는 사람이다.

 

오수경의 다른 프로젝트 또한 기대해도 되겠군?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왜 없겠나. 나도 솔로 프로젝트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실천을 못 해서 그렇지. 더 많은 인구와 함께 하는 모종의 ‘레종 드 오수경’ 같은 콘셉트가 나올지도 모른다(웃음).

 

요새 플레이리스트엔 뭐가 있나?

Tuxedo 즐겨 듣고 있다. 중독성이 강해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것만 플레이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항상 이걸 듣고 있었는데, 가을이 오니 가을에 맞는 트랙리스트들이 나와야겠지. 이를테면 Barry Manilow 같은 음악 말이다. 솔직히 우리 음악 작업하면서는 살롱 드 오수경을 제일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믹싱이니 뭐니 하면서 주야장천 듣게 되니까. 다른 뮤지션 음악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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