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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실버세대의 자기 선언





당연한 얘기지만 가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시대의 상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전혀 시사성이 없어보이는 섹스코드와 자기자랑(스웩)과 같은 아주 흔한 주제조차도 시대가 주는 수용범위와 기호를 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동시대적인 가사들이 이 시대만이 가진 고민을 가지는 건 아니다. 특히 우리사회가 가진 특유의 편가르기는 특정한 주장을 하게 힘들게 한다. 즉 그런 고민이 적은 이유는 의도적인 노이즈 마켓팅이 아니라면 자칫 진영논리로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유석의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는 상당히 도발적으로 들린다. 얼핏 보면 과감하게 “젊음”과 “늙음”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세대 간의 진영에 충돌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젊은 것들이 뭘 알아?”와 같이 들릴 수도 있고 “젊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늙은 거랑 별 차이 없더라”는 말을 통해 경험의 우위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화자가 그런 의도를 내세우는 건 아니다. 이 곡은 그저 “늙었지만 나도 젊다. 새 출발을 할 거다”라는 주장을 하고 싶을 뿐 젊은 세대를 비하하거나 늙은 세대를 전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두 세대의 전면적인 대결구도를 노리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건 “세상나이 구십 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와 같이 나이듦의 장점보다는 젊음의 장점이 여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알리고 싶어 하는 대목에서 그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젊은이들처럼 몸이 튼튼하니 특별히 늙었다고 호들갑떨며 차별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사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 년간 나를 속였다”에서 그렇게 만든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늙은 세대 자신들 혹은 가사에 나오는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으로 대변되는 윗세대들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정년퇴직이 되도록 해놓은 것도, 소위 나잇값이라는 것도 모두가 다 기성세대가 제조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편견과 선입견을 전수받은 젊은 세대들에게 “늙었다고 차별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은 자기 반성 없는 메아리와 같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젊어봤단다”에 나오는 젊음을 대변하는 나이는 20-30대가 아니라 노인들을 퇴물 취급하며 “백수”라 부르는 바로 아랫세대, 즉 지금 한창 회사에서 중역을 맡아 활약하는 세대들, 그들이 바로 나이 90인 화자의 “놀려대는 자식들”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쩌면 이 곡의 진정한 주제가 될 수 있는 젊음과 늙음의 상대적인 면을 읽는다.

이 곡은 그렇기 때문에 최백호의 ‘길 위에서’가 보여주는 회고적인 시선이나 조용필의 ‘Bounce’에서 느껴지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종횡 무진하는 정신 못지않게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와 더불어 실버 세대의 자기주장을 담은 상징적인 목소리로 들린다. 지금 그들은 퇴물로써 죽어가지 않고 고령화 사회를 이끌어갈 한 축으로, 70년대 청년 세대, 80년대 대학가, 90년대 신세대가 냈던 목소리에 비견될 만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곡만 놓고보면 공허한 정치적 주장만큼 선언만 가득해 보인다. 그래서 이 한 곡은 강남갔다 돌아오는 첫 번째 제비가 아닐지도, 서유석 혼자만의 게릴라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은 항상 선언을 동반한다. 이 선언은 개인적인 고민과 삶, 무엇보다도 욕망의 목소리를 현실적으로 녹여낼 바탕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게 만든 세대들의 뼈아픈 반성을,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결국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 외치게 될 펑크 정신과도 맞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직은 젊은이들이 가진 고민이나 사회적 의식과는 한참 멀어 보이는 이 세대의 현재적 경험은 후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 뮤지션들은 젊었을 때 만든 음악으로만 살지말고 계속 음악을 만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발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사 외적인 것을 언급하자면, 구성이나 편곡이 좀 아쉽다. 백보컬이 ‘Lions Sleeps Tonight’을 연상시킬만큼 재밌는데 그걸 활용해 타악기를 좀 더 두드러지게 하고 “늙어 봤냐” 부분에서는 아프리카 리듬을 강하게 사용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후반에 반복되는 후렴구에서는 아프리카식의 떼창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른 뮤지션의 리메이크로 조금 더 세련된 편곡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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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카프카, 하루키 등의 말을 섞어서 표현하자면 어떤 한 길을 미련 없이 쭉 가지 못하고 항상 뒤돌아보고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며 힘껏 앞으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달려 나가다가도 마치 새총처럼 다시 한계점을 이기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시간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무려 철학도이니 재밌는 걸, 행복한 걸 참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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