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Articles

신설희: 그냥 ‘뮤지션’이라는 말로 불리고 싶다

 

생각보다 신설희는 훨씬 유쾌하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좋은 의미로). 덕분에 즐겁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여러 말 하지 않겠다. 아직 하비누아주의 [청춘]과 신설희의 [일상의 잔상]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어서 가까운 음반가게로 달려가길 바란다. 올해의 음악 이야깃거리가 훨씬 더 풍성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미심쩍다면, 여기 링크를 건 MV를 클릭해보라.

 

2013년 정규 1[힐스 오브 더 타임(Hills of the Time)]은 평단에서도 처절하게 묻힌 저주받은 수작이었다고 본다. 나 역시 일찍 알아보지 못한 책임감을 느낀다. 심정이 어땠나?

그 음반은 알려질 기회도 많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한번 들어서 ‘꽂히는 음악’은 아니라고 본다. 충분히 흘려버렸을 수 있다. 만약 그때 그 음반이 잘 되었다면 거만해졌을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된 게 잘 된 거다. 지금 보면 부족한 구석도 많은 음반이니까.

 

소속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 혼자 홍보하고 활동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

누가 해주면 좋긴 한다. 그런데 회사가 있어도 디자인이나 뮤직비디오 등 비주얼적인 부분은 내가 관여했을 것 같다. 힘든 게 있다면 행정적인 일이다. 심의 받으러 다니고, 유통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그것도 하다 보니 할만하다. 뮤지션이 음악에만 전념하면 좋겠지만 그런 것들도 이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혹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겠지. 어디 괜찮은 레이블이 있다면 소개 좀 시켜 달라(웃음).

 

1990년생, 26살이다. 어떻게 이렇게 원숙하고 노련한 음악을 할 수 있나?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슬프다는 말을 들었다. 신나는 노래를 불러도 내가 부르면 구슬퍼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동물원/김광석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것도 나름의 영향이 있을 것이고. 그분들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 당시 함께 무대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 시대를 동경했던 거지. 김광석 선생님과 팀을 하셨던 박기영 선생님이 대학교 교수님인데, “그땐 어땠어요?”라고 수업 시간마다 물어보고 귀찮게 해드리고 그랬다.

 

동물원과 김광석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목소리로부터 Carpenters, Joni Mitchell 등등이 떠오른다. 어떤 음악, 어떤 아티스트로부터 영향 받았나?

Joni Mitchell은 잘 모르지만 Carpenters는 우리 어머니가 매일 틀어놓아서 옛날부터 들으며 자랐다. Karen Carpenter는 정말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다. 최근엔 Rumer의 목소리에도 끌린다. 작년에 나왔던 음반 [Into Colour] 죽이지 않나?

 

ssh4

 

부모님이 음악팬이셨군.

맞다. 하지만 듣는 것만 좋아하셨지, 음악을 연주하신 분들은 아니다. Carpenters와 ABBA, The Beatles 같은 팝 음악의 팬이셨다.

 

EP를 네다섯 번 들어봤는데, 올드 팝 뮤직을 즐겨 들을 것만 같았다. 이유는 모른다 하하.

하하하하.

 

솔로 음반 내기 전에는 어떻게 활동했나?

OST 음반에서 노래하기도 했고, 이런 저런 일을 했다. 대표적으론 케이티 김의 ‘니가 있어야 할 곳’의 건반과 코러스 세션을 한 게 있겠다.

 

이번 음반은 확실히 1집보다 더 사유하고, 더 냉철해지고, 더 조밀해진음반이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지만, 내 색깔을 강하게 담고자 했다. 1집에선 ‘왼쪽 오른쪽’이 타이틀이었는데, 그 노래는 실은 마지막에 끼워 넣었던 곡이었다. 그걸 타이틀로 한 건 회사에서 대중적인 곡을 대문에 걸라고 해서 그렇게 했던 거다. 나도 그 노래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땐 ‘Fairytale’을 더 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 대중들은 ‘왼쪽 오른쪽’을 더 좋아하더라?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고 다음에 음반을 낸다면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보보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게 이런 거였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추가하고 싶었던 거다. 슬프게 가지는 않지만 진지하게 말하고, 실험적인 게 느껴지는 그런 음악, 익숙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하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 말이다. 그런 걸 해 보고 싶었다.

 

포크/발라드//클래식/일렉트로니카 등등을 다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장르에 감금되는 것을 싫어할 것 같다.

장르 없는 음악, 그게 내 색깔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그걸 다 넣어보려고 했는데, 이번 EP에는 그걸 다 녹여내지는 못한 것 같다. 이후 나올 정규 음반에는 더 풍성한 음악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남들이 자신의 음악을 뭐라고 칭해주면 좋을 것 같나. 아무래도 수식어가 되겠지.

글쎄? 음.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웃음) 뭐든 어떻게든 불러 준다면 감사한 거다. “독보적인?”(웃음) 아, 말해 놓고도 민망하네.

 

메마르고 건조하게, 그리고 힘을 뺀 듯 부르는데 기묘하게 감성이 자극받는 독특한 음반이다.

나는 노래를 감정이입해서 부르는 편이다. 감정과잉이 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선 그런 걸 좀 빼보려고 한 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건 조금씩 줄여보려고 하고 있다.

 

20대 때는 기교나 그런 거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할 때 아닌가?

그런가? 이번 음반은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다(웃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내가 듣기에 좋거든.

 

ssh3

 

다 출중한 곡들이지만 나는 (Circle)’에 끌린다. 특히 가사가 찌른다. “눈을 감으면/그제서야 보이는 것들/끝을 알 수 없는/사막을 걷는 사람들/우린 이렇게/큰 원을 그리며”. 이렇게 멋진 노랫말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이거 힘들었던 시기에 쓴 곡이다. ‘저주받은 수작’을 낼 시기 말이다. 나이를 들으며 성장통을 겪었던 것 같다. 앨범 잘 안 된 것도 착잡했고, 주변인들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뭔가 약간씩 틀어지는 느낌 있지 않나? 그 때 내가 느꼈던 게 다 반영이 되어 있다. 그일을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는데, 패배감도 맛보고 금전적으로 힘들기도 해 보니까 그런 게 가사에 중첩되어 나타나게 된 거다. 나를 위로하는 의미도 있고, 그걸 들으시는 분들도 내 감정을 일정 부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작곡한 노래다.

 

은 뭘 상징하는 비유인건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새이기도 하고 개개인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그게 ‘원’처럼 느껴져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나는 가사를 쓰고 나중에 제목을 힘들게 붙이는 스타일인데, 이 곡은 ‘원’이 먼저 떠올라서 그걸 제목으로 빼 두고 후에 노랫말을 입혔다.

 

‘Flora’는 드림팝/포스트락에서나 나올 법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려낸다. 이국적인 향기도 있고 말이지.

그런 사운드스케이프를 가진 음악이 좋다. Sigur Rós가 만들어내는 그런 것. 그걸 구현해보고 싶어서 편곡도 더 거창하게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최대한 열심히 작업한 노래다. 평소 앰비언트를 잘 듣는데, 그런 취향이 개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북유럽풍의 감수성이 좋다. 가본적도 없는데 말이지(웃음). 어릴 때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자주 나오는 색다른 풍경에 끌리곤 했다. ‘구글어스’로 북유럽 종종 검색해보고 그런다(웃음). 가고 싶은데 가지는 못하니까.

 

집에 콕 박혀 작업했다기엔 여행의 정서도 담겨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방에 틀어박혀서 작업한 곡이다. 여행 다니면서 작업을 하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나는 그렇게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타입은 아니다. 작업실에 박혀서 혼자 조용히 작업해야 잘 되는 유형이다.

 

‘Last Song’음의 공간화에도 신경 쓴 것처럼 느껴진다. 엔딩 곡으로도 어울리고, 어떤 그림이 눈앞에 지나가는 것 같다. 음반 타이틀처럼 잔상도 오래 남고.

아무도 언급 안하던데, 이 곡을 거론해줘서 고맙다. 가사 내용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부르는 마지막 노래에 대한 것이다. 제목을 짓다가 마땅한 꺼리가 없어서 이렇게 단순하게 가본 건데, 트랙 순서를 짜던 중 이 곡은 어쩐지 끝자락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맨 뒤로 넣었다. 음반 잘 들어보면 ‘어떤 흐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심각하게 가다가 위트한번 넣어주고, 살짝 외연을 펼친 뒤, 이 곡으로 마무리하는 거다.

 

제목이 일상의 잔상이다. 트랙, 그리고 재킷과 잘 매치되는 제목이다.

‘네이버 뮤직’에 올라온 글 중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앨범 제목”이라는 표현이 있더라(웃음). 그럴 수 있다. 버스타고 지나가면서 고민하다가 순간 팍 떠오른 제목이거든. 그런데 그게 운율감도 괜찮고 해서 살리게 된 거다. 그리고 음반 재킷은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온 지인분이 해주신 거다. 원래 나는 내 얼굴 나오는 걸 좋아하지는 아니다. 그런데 명색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인데 얼굴이 나와야 하지 않느냐고 주변에서 하도 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넣었다. 그나마 얼굴 좀 가린 느낌으로, 신비롭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이렇게 작업된 거다.

 

사실 상투적이고 전형적일 수 있는 노래일 수 있다. 레퍼런스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뻔함으로 뻔함을 이겨내는 뒷심이 놀라웠다.

어디서 들은 건데 인간의 뇌 중 30%가 의식이고 70%가 무의식이라고 한다. 그 관점으로 내 1집을 보면, 그 음반이 실패한 건 당시의 내 무의식이 음반에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때의 난 오만하기도 했고 절박한 것도 없었다. 더구나 “내가 내 실력을 증명하리라” 같은 치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큰 기대 안하고 “공연이 있으니 그에 맞춰 앨범 하나 내면 좋겠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겸손한 마음으로 공개한 거다. 절박했던 마음도 살포시 있었던 것 같고. 그런 무의식들이 리스너분들한테 잘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어떤가? 설득력 없지?

 

아니다. 설득되고 있다.

큭. 고맙다. 진짜 기대 안 했는데 이런 반응들이 신기하다.

 

보컬을 할 때는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는가?

감정전달. 그리고 가사전달. 내 발음이 좀 흐르는 발음이다. 그래서 일부러 가사를 더 뚜렷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가사를 잘 전달하는 보컬이야말로 뛰어난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지금 완벽하게 되는 것 같진 않다.

 

몇 곡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나?

20~30곡 있었다. 밝은 노래들도 있었는데, 정규를 위해서 빼둔 곡도 꽤 있다. 음… 공연 때 한두 번 씩 했던 곡들이 대다수인데, 다듬어 보고 괜찮으면 싣고 아니면 버릴 거다. 이번 EP에 들어간 곡은 확신이 있던 곡 중, 분위기에 맞는 트랙들을 모은 거다. 이렇게 가도 쪽팔리지 않겠다 싶은 것들.

 

그런 자기검증과정은 얼마나 걸리나?

한 곡을 2년가량 오래 보는 편이다.

 

본인이 보기에도 1집 때랑은 반응이 다르지 않나?

‘네이버 이주의 발견’에 떴던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제 방송을 노려야지(웃음). ‘스페이스 공감’이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 말이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나?

최근엔 Asgeir 엄청 들었다. 남들 잘 안 듣는 인디 찾아 듣는 걸 좋아한다. 이를테면 Grizzly Bear 같은 밴드. 편곡에 관심이 깊은데 들을 때마다 기가 막힌 밴드다. 천재집단 같다.

 

정규 2집은 내년에 나오는 걸 기대해도 되나?

디지털 싱글을 선호하진 않는데, 주위에선 자꾸 그걸 하라고 한다. 프로모션 상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아 10~11월 쯤 디지털로 1~2곡 발표할 계획이다. 그리고 정규라… 내년에 내도록 해 보겠다. 그게 좋겠지?

 

그렇겠지아마도아티스트 맘이지만.

내고 싶다 내년에. 장담이야 못하겠지만.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어떤 건가.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다. 메인으로 해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Jónsi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만든 것처럼. 그 즈음까지는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유학도 가고 싶고.

 

다큐멘터리 ‘Heima’를 좋아했을 것 같다.

어떻게 알았나. ‘시간의 언덕’이라는 곡이 그 영화를 보고 만든 곡이다. 아이슬란드가 배경인 다큐 아닌가. 그나저나 아이슬란드를 빨리 가야 하는데. 언제 가지?

 

왜 그렇게 아이슬란드에 집착하나.

모르겠다. 얼음나라가 연상되는데 그 이미지가 좋다. 내 이름의 ‘설’자가 雪(눈 설)자다. 게다가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날 태어났다. 이만하면 팔자에 ‘얼음과 추위’가 있는 셈 아닌가? 그 때문인지 계절 중에서도 겨울을 제일 최고로 친다. 8월은 너무 더워서 싫다.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어린 맘의 판타지지만 아직 깨지지 않은 환상이다. 언젠간 깨지겠지만.

 

일부에선 여성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나? 여리여리하고 샤방샤방한 음악할 것 같은 그런 것.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말이지.

오글거리고 그런 건 태생적으로 못한다. 그런 음악도 존재가치가 있겠지만, 내가 듣고 자란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나는 그냥 ‘뮤지션’이라는 단어가 좋다. 이정선 선생님이 학교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시는데, 수업 시간에 “왜 요즘 상당수의 싱어송라이터 친구들은 노래를 등한시하는지 모르겠다”고 일갈하시더라. ‘싱어’가 앞에 붙으니 무엇보다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굉장히 공감하며 들었다. 아, 그 점에서 선우정아 님은 너무 멋지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