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Articles

실리카겔: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KakaoTalk_20151109_193235778

 

그들의 연주는 때때로 흐느적거린다. 공연장 구석구석 퍼지는 영상 덕분에 더 출렁거리는 인상이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금방 힘이 붙어 뜨거운 연주를 쏟아낸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 같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싸우는 느낌이다. 공연장 객석에 서면 그 싸움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들의 곡은 전반적으로 좀 길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 순간이 절정 같다. 하이라이트가 남발되면 충격에 무뎌지기 마련인데, 그런데 적당한 반복이 이어지지만 구성이 촘촘하다. 그래서 빠져든다.

 

그들에게 빠져든 또 다른 친구를 하나 만났다. 인터뷰 당일 저녁 실리카겔의 공연이 있었고, 조금 일찍 도착해 공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그들의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 ‘싸움구경꾼’ 한 명과 잠깐 말을 섞게 됐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밴드 나이스 레그스(Nice Legs)의 멤버 마크(Mark Lentz)였고, 그는 내게 실리카겔(그는 그들을 ‘실리카젤’이라 발음했다)의 공연을 몇 번 봤는지를 물었다. 그는 f로 시작하는 수사를 연달아 쏟아낸 뒤 앞으로 일곱 번을 더 보라고 권했다.

 

2013년 여름 밴드를 결성했고, 올 여름 EP가 나왔다. 실리지 못한 채 공연에서만 소개하는 노래도 많고, 정규 앨범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고 있는 상태다. 그들은 주어진 기회와 열린 가능성을 피부로 실감하며 즐거운 고민을 나누고 있는 한편 반대로 입대 문제를 걱정할 만큼 젊다(멤버 가운데 군필은 한 명뿐이다). 연주도 젊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들은 숙련된 청춘이다. 멤버의 대다수가 서울예대 실용음악학과 출신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얻은 것보다 학교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던 십대 시절의 시간들을 논할 때 더 큰 공감대가 형성되는 밴드다.

 

멤버 김민수(기타)는 실리카겔 이전에 프로젝트 활동을 했는데, 일반적인 클럽 공연에서 벗어나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의 실험은 곧 현실이 됐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자 공연과 영상을 결합해봤던 교내의 작은 프로젝트가 오늘날의 8인조 밴드 실리카겔로 발전했고, 연주 중심의 강렬한 음악과 감각적인 영상이 그들의 확고한 기둥이 됐다. 포스트록 같은 개념들이 살짝 스쳐가지만 그런 용어의 나열을 그리 달가워할 것 같진 않다. 그들은 더 많이 비워두고 싶어하고, 그리고 더 채우고 싶어한다.

 

KakaoTalk_20151109_193235934

 

올 여름 발표한 EP를 살펴보면, 일단 작품의 제목이 길다. 노래의 제목은 아리송하다. 나아가 그간 진행했던 인터뷰를 통해 느낀 바, 어떤 밴드이고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경모 확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당장 확정하기엔 아쉬운 구석이 많다. 앞으로도 뭘 어떻게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비워놓고 있다. 그래서 차가운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한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당장 말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곡 작업을 같이 할 때는 멤버들 사이의 구체적인 대화가 필요할 텐데.

구경모 원래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지 않는다. 멤버 각각이 준비한 작품을 나눌 경우 일단 피지컬로 어필한다. 작곡으로, 그리고 연주로 설득하는 것이다. 설득에 성공해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될 경우 합주도 치열해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모두가 확신할 만한 노래가 완성된다. EP에 실린 ‘Sister’나 공연에서 주로 선보이는 ‘모두 그래’가 그렇게 나왔다. 물론 명확하게 설계된 스토리에서 출발할 때도 있다. 그래도 결국은 달라진다. 초안이 확실하다 해도 멤버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연주를 가미하다보면 점점 새로운 등장인물이 생긴다.

 

인정한 바와 같이 연주도 공연도 강렬한 편이다. 그래서 ‘HRM’의 엔딩이 좀 의외라고 느꼈다. 단순한 페이드 아웃이다. 이유가 있었나.

김민수 밴드가 결성된 시점이 2013년 여름이다. ‘HRM’은 그 무렵에 나왔다. 의욕만 넘치던 어린 시절에 만든 곡이라 좀 더 세련되게 바꿔봐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풋풋했던 시절에 남겼던 기록이 그리 싫지 않았고, EP에 싣기 전에 논의해보니 이런 무난한 엔딩이 전후의 곡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큰 무리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인 ‘두 개의 달’도 마찬가지로 색다른 결정이라 느꼈다. 뜨겁게 연주에 집중하는 실리카겔의 전반적인 지향과 달리 내레이션 일색이다.

구경모 나는 먼저 이야기를 구상한 다음에 곡 작업을 한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가 다 우울하게 끝나버린다. 거기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그냥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손을 놔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비트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랩 배틀을 하는 것 같은 노래가 만들어졌다.

 

공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다들 정신을 놓고 연주에 몰입한다. 언제부터 그런 에너지를 인지했나.

김한주 아주 어릴 적부터 클래식을 했다. 분야는 현대음악 작곡이었는데,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연주하는 친구한테 이상한 악보를 그려줬다. 여기서 피아노를 멈추고 중지손가락을 꺼내라, 이런 식으로 악보를 썼다. 그게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인데 이미 배움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상한 짓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김민수 원래 버드나무처럼 공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실리카겔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달라졌다. 우리는 공연할 때 조명을 쓰지 않는다. 대신 영상을 쏜다. 그래서 다양한 색상의 빛이 여기저기 흩뿌려진 어지러운 무대에 선다. 빛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해서 페달도 못 누를 때가 많다. 그런 조건에 놓여 있으니 나는 이 무대 위에 올라 기타를 연주하는 것으로 오늘의 공연을 실수 없이 마무리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매 순간 달라지는 공간에서 전과 다른 새로운, 뭔가 영적인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싸우듯이 연주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몰랐던 몰입을 체험한다고 해야 할까.

 

말 나온 김에 영상 이야기를 해보자. 영상과 공연은 잘 만나면 훌륭한 그림이 나오지만 분야가 다른 영역이니 밴드팀과 영상팀 간의 소통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김민수 어떻게든 하고는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VJ팀과 밴드가 논의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김민영 일반적인 밴드라면 조명만 있으면 되는데, 실리카겔의 공연은 조명 없는 상황에서 영상을 통해 투사된다. 그래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일단 곡을 충분히 듣고 난 다음에 영상을 구상하는 편인데, 아무리 들어도 감이 안 잡힐 때는 무엇을 의미하고 작업한 곡인지, 영상에 담겼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공연이 시작되면 행여나 실수해서 다른 영상이 나갈까봐 늘 긴장한다. 특히나 붉은 벽을 만나면 영상이 다 묻혀버린다. 프로젝터를 애매한 곳에 설치한 공연장도 있다. 그럴 때가 가장 힘들지만 다 감안하고 일하는 것에 숙련이 되어 있다. 그건 매번 다른 공간에서 다른 엔지니어를 만나 공연하는 밴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VJ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다. 규모의 공연 아닌 이상에야 홍대의 작은 클럽 안에서는 영상을 결합해 공연을 세팅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데, 보통 어떤 경로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민영 생긴지도 오래됐고 필요한 분야도 많으며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다들 배경이 다양하다. 영상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많지만 음악을 좋아해서 뒤늦게 파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같이 활동하는 이대희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고, 지금도 방송국에서 세트디자인을 하면서 VJ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강동화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나는 시각디자인을 했고, 미래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중에 3학년 때 영상 수업을 듣다가 생각을 굳혔다. 올해 데이브레이크와 김창완 콘서트, 그리고 UMF에서 영상 작업을 했다. 지금은 일이 좀 끊겨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북유럽 밴드들, 혹은 북미유럽의 각종 일렉트로니카 및 슈게이징 밴드들이 영상과 공연을 많이 결합하는데, 그걸 참고하는 편인가.

김민영 다른 VJ들이 어떻게 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나의 경우는 일단 해외 사례를 참고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작업의 성격을 먼저 헤아리고 시작한다. 먼저 영상이 필요한 음악에 시간을 길게 두고 몰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듣고 상상하다 보면 처음에 받아들였던 곡의 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그와 동시에 표현의 범위도 늘어난다. 음악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구체적인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다가도 하다보면 추상적인 표현으로 결과가 많이 바뀐다.

 

어쨌든 VJ 세 명에 공연팀 다섯에 이르기까지 멤버가 많다. 때때로 불편한 이야기가 오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오는 고충이 있을 것 같다.

김민수 밴드 안에서 나쁜 새끼가 되는 입장은 나인 것 같다. 내가 주로 싫은 소리를 하는데, 다들 성격이 있다 보니까 내가 답답해서 뭐라뭐라 하기 시작하면 화기애애할 수가 없다.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일은 해야 하니까 또 그럭저럭 다들 받아들인다. 너무 화낼 일이 없는 밴드도 건강하진 않을 것 같다.

구경모 제일 많이 혼난 사람 입장에서 상황을 돌아보면, 실상 얘기 들어보면 틀린 말이 없다. 단순히 감정을 실어서 신경질을 내는 게 아니라 당장 이거 해야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이런 식으로 해야 할 일의 지침을 주니까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김한주 EP 에디팅할 때 특히 다들 좀 지쳐 있었던 것 같다. 한참 경모형이 대든 적도 있었다. 민수 형이 좀 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또 알아서 콘트롤하고 덜 갈군다. 그렇게 서로 윈윈하고 있는 것 같다.

김민수 그런데 요새는 화낼 일이 거의 없다. 나름대로 성숙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한주 사실 우리 모두 게으르다는 게 문제다. 기한을 정해놓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진다. 그래서 적절한 경고가 필요하다.

 

실리카겔 이전까진 다들 어떻게 활동해왔나.

김민수 한 학번 위 드럼치는 룸메이트 형과 둘이서 밴드를 했다. 3D 애니메이션 하는 동료를 섭외해서 공연을 한 번 했는데, 룸메이트 형이 군대를 가는 바람에 그만뒀다가 이후 영상수업을 듣던 건재(드러머)가 제안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의 작업을 돌아보면, 일반적인 클럽 공연의 형태를 버리고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보여주겠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모험이었는데, 그때 했던 작업들이 지금 실리카겔을 통해서 좀 더 폭넓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실리카겔의 전신이라 생각하고 있다.

구경모 비밀리에에서 활동하다가 2013년부터 쉬게 됐다. 그리고 애프니어라는 밴드로 <탑밴드3>에 나갔다. 한주는 3호선 버터플라이와 솔루션스에서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런 밴드들이 공연할 때 같이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한다. 나도 다른 밴드 생활을 하고 있고, 멤버가 많은 만큼 활동도 다양하고 접촉할 만한 길도 많아서 계속 새로운 일이 생긴다.

최웅희 나는 최근 실리카겔에 들어왔고, 이전까진 커리어가 없다. 여기저기 이 밴드 저 밴드 팬질만 하다가 이제는 이짓을 접고 제대로 밴드를 해야겠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고교 동창 한주가 실리카겔 공연에 불렀다. 맨 앞에서 봤다. 그날따라 피곤해서 좀 많이 졸았는데 공연 끝나고 나서는 개쩐다는 칭찬을 돌려줬다. 사실 실리카겔의 음악이 좋았다. 그래서 원정공연 같이 다니고 짐도 들어주고 하던 중에 멤버 충원이 필요하다며 멤버 제의가 와서 고민 없이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언제 짤릴지 모른다.

 

멤버 전원이 실용음악학과 출신이다. 거기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김한주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김민수 실용음악학과 내에 긍정적인 수업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거기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인맥이다.

최웅희 이론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오느라 엄청나게 연습했다. 그런 동기가 없었다면 지금만큼 기타를 못 쳤을 것이다.

About 이민희 (6 Articles)
음악을 들을 땐 언제나 고민이 없다. 음악을 쓸 땐 언제나 고민이 많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