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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저속함을 알린 자폭 르포

다큐멘터리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걸 그룹 나인뮤지스의 데뷔 준비 과정을 담고 있다. 이들의 가수 도전기를 통해 영화는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서술한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안무 연습, 노래 연습, 인터뷰 준비 등 일정이 빡빡하다. 한창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 나이에 숙소와 회사를 오가는 한정된 생활을 해야 하고 때로는 멤버들과 갈등을 빚는다. 생각과는 다른 고된 생활에 누구는 하차를 결심하기도 한다. 스타로 가는 길은 평평하지 않다.

영화는 그러나 기획 의도 이상을 전달한다. 기존에 준비하던 멤버가 낙오하자 매니저는 에이전시를 통해 간단하게 새 멤버를 충원한다. 멤버 간의 정보다는 이익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 스타를 꿈꾸는 젊은 아이들이 한국에 널리고 널렸다는 사실을 비추는 대목이다. 안무 연습을 참관하던 최고 매니저는 동작이 과감하지 못한 멤버를 향해 “카메라 들어오면 네 얼굴 나왔을 때 따먹어야 될 거 아냐”라고 이야기한다. 앵글에 잡혔을 때 어필하라는 말이다. 이 표현에서 이 업계의 고질적인 상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멤버 중 하나가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답답한 나머지 연습에서 이탈하자 매니저는 “또 시작이네 저거” 하며 비아냥거린다. 햇병아리 딱지도 달지 못한 데뷔 전의 가수 지망생이 규율을 깨고 단체 생활에 지장을 준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존중이 배제된 말투의 남발은 가수와 매니저, 이 둘이 과연 동고동락하는 동지 관계가 맞나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나인뮤지스의 첫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임원들은 좋지 않은 공연에 다들 못마땅스러워한다. 이때 매니저 중 하나가 나인뮤지스는 지금 편하게 연습하는 편이라며 “죽여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무대를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함을 의미한 것이지만 말이 너무나 저급하고 거칠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나인뮤지스를 프로듀스하는 스타제국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천박함을 보게 된다.

물론 화면으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직원들과 가수 지망생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정도 있을 수 있다. 비슷한 예가 연습에 차질이 생길 때 매니저들이 멤버들을 불러 놓고 지금은 자존심을 굽히고 체제에 맞추라고 청유하는 장면일 듯하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사실적으로 나타나는 강압하고 다그치는 육성 방식은 한국 연예 산업과 아이돌 제작의 좋지 않은 면을 선전해 줄 뿐이다. 영화 속 상황들은 건달 매니지먼트사가 난립하던 199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다를 바 없다.

영화 초반 스타제국의 신주학 대표는 나인뮤지스를 제작하는 데 10억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몇 달, 혹은 몇 년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들은 대부분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제작자가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잘되면 그 이상의 큰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2010년 데뷔해 몇 편의 미니 앨범과 한 장의 정규 앨범을 출품하면서 나인뮤지스가 얼마만큼 수익을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선보인 노래 중 국민 대다수가 아는 히트곡은 없다는 것이다. 10억이 아깝다. 굳이 찍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인뮤지스의 어설픈 실력과 관계자들의 저속함, 업계의 덧없음을 광고하고 있으니 웃음만 나온다. 이렇게 공들여 치부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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