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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펑션에러: 우리도 가끔은 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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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잔다리 무대에 선 그들은 2집 데모 앨범 소식을 전했다. 일단 신보 소식이 반가워 공연이 끝나자마자 덥썩 집어들긴 했는데, 그러고보니 그날 봤던 그들 공연 레파토리 가운데 1집의 수록곡이 없었다. 불과 올 초에 나온 앨범이다. 그래서 묻고 싶어졌다. 신곡 작업을 이토록 빨리 마친 이유를, 그리고 전과 달리 데모를 먼저 공개한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졌다.

 

한편 그들의 공연을 볼 때마다 좀 뻘쭘해진다. 에고펑션에러는 몸을 사리지 않고 공연하는 밴드다. 뛰고 눕고 춤추고 던지고 구르며 무대를 누비는 데도 보컬과 연주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만큼 미쳐 있는 열혈 관객을 보기 어렵다. 애초에 관객의 수가 많지 않다. 현재 에고펑션에러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고작) 600여 명이다. 그들은 공연장에 고정으로 찾아오는 핵심 관객을 20-30명 가량으로 파악하고 있다. 질문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긴 했지만, 실은 진작 만나 지지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제야 명분이 생겼다. 최근 두 번째 앨범의 초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제작해 공연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데모에는 여덟 곡의 수록곡이 실려 있다.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내가 산 데모는 일곱 곡만 있었다고 설명하니 현재 파본을 접수하는 대로 교환 중이라며 즉석에서 새 앨범을 포장해준다. 이럴 필요 없다고 말렸으나 햄버거도 교환할 때면 새 포장지에 싸서 주는데, 하물며 앨범은 더 성의가 따라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데모가 나왔고, 변함 없이 그들은 무대에서 구르고 뛰면서 활동 중이다. 공연에서 터뜨리는 에너지는 변하지 않았지만 한때 같이 활동하던 핵심 멤버가 나갔다. 그리고 팀워크와 작업의 내용도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다. 아직 정교한 후반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조금 더 거칠어졌고 소란스러워졌다. 그렇게 현장과 좀 더 밀착한 앨범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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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이 올 초 나왔는데 벌써 2집 데모가 완성됐다. 작업이 빨리 진행됐나 보다.

영광 10월 초 잔다리 페스타를 앞두고 급하게 데모를 찍었다. 믹싱 이틀 전 민정이가 여섯 곡을 하루 만에 녹음했다. 나의 영웅 츠시마미레가 잔다리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일본의 3인조 여성 밴드다. 이미 신곡은 어느 정도 쌓여 있었고, 영웅을 만나 싸인만 받고 끝내고 싶지 않아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 부리나케 찍은 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직접 전달했다. 일주일 동안 잠을 거의 못 잤는데 힘들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하지만 츠시마미레 공연이 끝난 뒤 그 자리에서 잠들었던 걸 보면 꽤 지쳐 있었나 보다. 다음팀 공연하는데 선 채로 잤다. 다음날 츠시마미레가 우리의 공연을 보러 와줬다. 꿈결 같았다.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있었나. 이미 올초에 1집이 나왔으니 그걸 영웅에게 건넬 수도 있었을 텐데.

영광 말 꺼내기 조심스러운데, 1집을 못 쓰게 됐다. 키보드를 연주하던 김도나가 나갔다. 1집 당시 같이 곡 작업을 했고 멜로디와 가사를 그녀가 썼다. 코드와 편곡은 법적으로 작곡의 개념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겐 1집에 대한 법적 권리가 없다. 그리고 작사 작곡 편곡 김도나, 그리고 편곡 나로 합의를 봤다.

 

그러면 앞으로 1집으로 활동할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2집 데모는 어떻게 만들었나.

민정 1집은 녹음부터 디자인까지, 그리고 뮤직 비디오까지 외부의 힘을 많이 빌렸다.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해 기금을 모았다. 지금은 우리 범위 내에서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공백기간 동안 영광오빠 집중력이 갑자기 폭발해 노래가 스무 곡이 넘게 나왔고, 이제는 그걸 추릴 정도가 됐다. 주로 그가 코드를 가져오면 알아서 멜로디를 붙이고 연주를 입힌다. 디자인은 드럼 치는 노자가 한다. 그리고 이제는 신곡으로만 활동한다.

 

어쨌든 데모가 나왔다. 아직 데모 상태이기 때문일까. 볼륨이 고르지 않다.

영광 처음 마스터링을 해봤고 장비도 좋지 않아 소리가 깨지는 건지 제대로 나오는 건지 감이 안 왔다. 결국 돈의 문제일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돈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다만 지금 다시 작업을 하면 이거보다 소리를 깨끗이 잡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트랙리스트도 정규가 나올 땐 바뀔 거고 빠지는 곡도 있을 것이고, 찍어놓은 데모가 다 팔리면 다시 찍을 때 좀 다듬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반대로 촉박한 일정 안에서 나온 지금의 결과도 의미가 있으니 일단 지금 만들어 놓은 걸 크게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규를 낼 때 조금만 다듬자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어쨌든 나를 제외한 멤버 세 명이 만족하는 것이 목표였다.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심각한 갈등 요소가 지금까지는 없다. 사실 늘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뭔가를 만들어왔던 것 같다. 1차는 멤버의 만족이고 2차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3차가 판매다.

 

이렇게 급하게 진행되면 멤버들끼리 조율이 좀 어렵지 않나.

미희 다들 싫다 소리를 안 한다. 하지만 어쩌다 방향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나오면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긴 대화 끝에 이루어진 변화를 본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기 전까지 각각 할 일을 알아서 찾고 있다. 민정이는 기획부터 시작해 SNS에 이르기까지 실무를 전담하고, 나는 예술인 복지와 지원에 관한 다양한 제도들을 살핀다. 동문 가운데 행사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거나 행사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 있어 행정적인 이슈들을 다양하게 접하고 있다. 노자는 디자이너고, 그래서 디자인과 인쇄 같은 작업에 익숙하다. 이게 다 자신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 잘 되면 좋겠지만 망해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수록곡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데모 가운데 ‘아야’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다. 유쾌하게 시작해 폭넓은 편곡으로 이어지는데, 에고펑션에러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노래라 생각했다.

미희 초안을 내가 잡았는데 정말 개 같이 만들어왔다. 사실 그런 생각이 좀 있었다. 멜로디부터 전반적인 구성에 이르기까지 전형에서 벗어나 파괴적인 형태로 시작한다 해도 영광선배를 만나면 얼마나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됐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 영광선배가 중간중간 재미있는 요소를 넣고, 민정이는 가사 붙이고 노자는 분위기에 맞춰 연주하면서 각각 무언가를 찾아냈다.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멤버들이 편곡에 동참해 개성이 담긴 노래가 완성됐다. 그러다보니 멜로디 이전에 함께 만드는 편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된 것 같다.

 

시작부터 빵 터뜨리는 ‘난 모른다오’도 좋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영광 가사의 시작이 ‘난 모른다오/꺄르르’다. 꿈에서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듣고 부리나케 일어나 완성했으니 작사는 내가 아니라 꿈에서 만난 그 사람이 한 것이다. 나는 꿈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래서 자는 걸 좋아한다. 처음에 살짝 들려줬더니 멤버들이 뭐야, 하지마, 하길래 좀 더 살을 입혀 편곡했더니 반응이 달라졌다.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친구들을 설득할 수 없다. 매번 느끼지만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희 영광선배는 모든 상황과 감정을 다 기술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넘어졌어, 아파, 이런 걸 연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우니 제발 하지 말라고 말리다가도 결국 인정한다. 제대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영광 예전에 연극 세션을 했다. 추상적인 상황이 주어지고, 나는 그걸 계속해서 음악으로 만들어야 했다. 악보를 안 준다. 그래서 화를 내는 연주자도 더러는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오래는 안 했다. 한 달 동안 나오라 했는데 나는 발이 묶이는 상황이 싫다.

미희 영광선배는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늘 무르고 여린데, 저런 신념에 대해서는 진짜로 확고하다. 선배랑 나는 10년 전 같은 대학 실용음악학과에 다녔다. 그때 재즈가 아니면 눈길도 안 주고 음악의 진정성을 논하던 동기들이 많이들 주류 음악으로 빠졌는데, 그는 10년 전부터 사이키델릭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결국 지금 그걸 하고 있다. 천상 뮤지션이다. 다른 일을 못 한다. 멤버들은 무직션이라고 부른다.

 

그럼 에고펑션에러가 10년짜리 프로젝트였다는 뜻인가.

미희 맞다. 선배는 10년 전부터 자취방에 친구들을 불러다가 나중에 사이키델릭 밴드를 결성할 거라고 늘 말했고, 나더러 베이스를 연주하라 했다. 듣다가 졸려서 눈이 감길 때까지도 혼자 진지하게 했던 말 또 하고 그랬다. 이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결국은 성취하는 사람이다.

영광 처음 기타를 잡을 때부터 사이키델릭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걸펑크를 좋아했는데 그건 숨기고 다녔다. 원래 덕질은 비밀리에 해야 하는 거니까. 실은 그때 그런 성향을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일본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오타쿠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니까. 어쨌든 미희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냈다. 당시의 베이시스트들은 대부분 재즈 색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희는 그러지 않았다. 전형적인 게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홍대 놀이터에서 민정이를 만났고, 구인을 통해 노자가 합류했다. 민정이의 쨍하는 보컬에 걸펑크를 좋아하는 걸 오래 숨기고 살아왔던 내가 사로잡힌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고, 리듬에 있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칼 같이 정밀하게 연주하는 건데 노자는 해적 같은 드럼을 친다. 덕분에 내가 원했던 밴드를 지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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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에고펑션에러의 공연을 봤을 때 입이 쩍 벌어졌다. 노래부터 연주까지 모든 것이 유쾌하고 대담하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할 때도 있나. 늘 뜨겁게 공연하니까 그런 걸 모르는 사람들 같다.

민정 그런 날이 없을 리가. 그런 날에는 우리 공연에 앞서서 무대에 오르는 밴드의 공연을 보면서 엄청 신나게 논다. 그렇게 하면서 걱정을 잊는다. 나는 여전히 공연장에 있는 게 너무 좋고, 공연을 보는 게 행복하다. 한편 영광오빠는 택시를 안 탄다. 공연을 앞두고 가는 길에 택시 기사님이 말 시키는 걸 잘 못 견딘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 그래서 날씨가 춥든 덥든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혼자 공연장에 간다. 그게 걱정스러워서 멤버들이 주요 장비만 택시로 옮겨주고 있다.

노자 난 아직도 무대 공포증이 있다. 아주 많이 긴장한 날은 술을 마신다. 원래 술을 못한다. 두 모금만 마시면 충분하다. 세 모금 마시면 무대 위에서 주사가 나온다. 노래와 노래 사이 공연 막간에 혼잣말을 한다.

미희 긴장 안한다. 피곤하다. 긴장해도 망하고 안 해도 망한다는 생각으로 늘 무대에 오른다. 사실 우리 공연은 한 명이라도 무너지면 힘들다. 모든 구성을 정해놓고 가는 게 아니라 하면서 즉흥적으로 확확 변하는 게 많아서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들 순발력이 엄청 좋아서 너무 산으로 갈 때는 잘 받쳐준다. 연주의 일부가 틀렸는데도 흥청망청 잘 놀다가 무사히 마쳤다는 기분으로 내려온다.

민정 모니커 스피커가 잘 들릴 때는 진짜 신난다. 진짜 제대로 놀다가 오고 싶은데, 사운드가 잘 안 잡혀서 그걸 포기하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리허설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사운드의 디테일을 A4에 적어 미리 엔지니어에 전달은 하지만 늘 만족할 만한 피드백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전범선과 양반들이나 제8극장 같은 동료 밴드들이 귀감이 된다. 여건이 좋지 못한 현장에서 어떻게든 에너지를 터뜨리는 잡초 같은 뮤지션을 진짜로 좋아한다. 저렇게 해야 우리도 안 꿀린다는 생각에 나까지 쫄깃해진다. 건강한 자극을 받는 것이다.

 

오늘은 공연이 없는 날인데도 메이크업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 영광 씨만.

미희 잔다리 무대에 서던 날 영광 선배는 친구 이모한테 빌린 프릴 블라우스에 엄청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다. 그렇게 여성미를 발휘하더니 요새는 더 타올라서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신는다. 입는 걸 뭐라 하진 않는데 그거 입고 잔다고 인증샷을 종종 보내온다. 그것만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영광 원판이 구려서 화장한 모습이 예쁘질 않아 고민이 많다(웃음). 이것마저 안 하고 가면 요새 멤버들이 쌩얼이라고, 혹은 민낯이라고 놀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라인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요샌 속눈썹도 붙이고 섀도우도 한다. 반짝이 화장에 눈을 뜬 것이다. 요새는 추우니까 레깅스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게 엄청 따뜻한 데다 싸다. 몇 번 주문했더니 요새는 메일로 생리대 쿠폰이 날아온다. 요새야 느끼는 건데 나는 스트레이트 크로스 드레서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여성적인 걸 좋아했고 인형을 갖고 싶어했는데 이제야 마음놓고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실력에 비해 국내 반응이 좀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에고펑션에러의 이런 비주얼과 이런 음악은 해외에서 더 잘 통할 것 같은데, 실현할 방법도 생각해 봤을 것이고 그 어려움에 대해서도 실감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민정 가끔 듣는 얘긴데, 그래서 오사카나 도쿄에서 한 달짜리 일정을 잡아 일본을 경험한 뒤 반응을 기다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무작정 덤비기엔 언어부터 비용까지 걸리는 게 너무 많다. 여기서 잠깐 내 얘기를 하자면 멤버들 가운데 나는 한국록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편이다. 1970년대 그룹 사운드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고 아름답다. 같이 활동하는 밴드들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동시대 활동하는 동료 밴드들에 대한 무한 존경이 있다. 그런 나는 전업 뮤지션으로 살 수 있는 길을 계속 고민하고 있고, 나이 좀 더 먹으면 트로트 혹은 성인가요 앨범 한 장 낼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거야 내 생각일 뿐이고, 이런 자부심과 기대를 바탕으로 당장 큰 시장으로 뛰어든다고 해서 유의미한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도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능력 바깥의 일이고, 다만 다들 밴드를 업으로 삼는 게 어렵다고들 하지만 차근차근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에고펑션에러도 이미 영광오빠가 10년 전에 구상했다가 10년 만에 결성된 밴드다. 장기적인 목표들이 몇 가지 있지만 지금 당장 이룰 수는 없으니 일단 하던 걸 제대로 하면서 운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미희 그래서 연말에 민정이가 공연을 하나 기획한다. 무대에 같이 서는 밴드들한테 로또를 돌릴 예정이다.

 

에고펑션에러는 앨범 이전에 공연에서 이미 멤버 각각의 기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밴드다. 하지만 그렇게 공연 한 번 치르고 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게 좀 걱정스럽다.

민정 늘 뛰고 구르면서 공연하니 근육통에 시달린다. 공연이 계속 이어질 때는 진짜 앓아 눕기도 했다. 체력 소모도 엄청나고 집중력도 많이 요구된다. 그래서 공연 전에 풍선껌을 씹는다. 당도 채우고 풍선 불고 터뜨리면서 긴장도 풀고 한다. 어쨌든 몸을 사리지 않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우리의 공연이 보컬로만 시선이 집중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멤버들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소리를 좀 더 용기 있게 치고 나갔으면 좋겠다.

 

About 이민희 (6 Articles)
음악을 들을 땐 언제나 고민이 없다. 음악을 쓸 땐 언제나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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