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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스: 펑크는 정치고,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왜 펑크를 하는 건가?”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정치성이 없어요”라는 말이 거북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말만큼 쉬운 도피처는 없으며, 그 말을 발화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말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그 점에서 우정호의 지적은 통렬했다고 할 수 있다. 에센스는 펑크와 포스트펑크를 기반으로 노이즈락, 락큰롤을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는 3인조 팀이다. 이제야 밴드의 기틀을 갖춘 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사랑받기를 바란다. 우정호(보컬과 베이스), 한승찬(드럼), 김대연(기타)이 함께 했다.

 

20103인조로 결성되었다. 정호 씨는 여러 밴드를 거친 것으로 안다. 이 자리에서 한번 다시 소개해 달라.

우: 밴드를 한 게 아주 오래전 일은 아니다. 22살에 했으니, 시작이 늦었다. 펑크 밴드를 2개 정도 거친 후 에센스를 결성했는데 그게 2010년이다. 밴드를 시작했던 게 2007년이니 생각보다 커리어가 긴 건 아닌 듯하다. 스윈들러스라는 펑크 밴드를 친구랑 둘이 만든 적이 있었고, 스파이키 브랫츠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잠깐 쳤다.

 

다른 분들도 이야기를.

한: 난 에센스가 첫 밴드다. 지금은 팀을 나간 기타리스트(안병훈)가 나랑 아는 형동생 사이여서 형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밴드를 해보자”고 연락을 줬다. 그러다가 병훈형이 사정상 팀을 그만두었고, 대연이가 그 자리에 들어온 지 이제 1년 남짓 되었다.

김: 울산 태생이고 20살에 서울에 처음 올라와 팀을 했다. 그게 테디보이즈라는 팀이다. 그 팀을 하면서 다른 형들이랑 공연을 많이 하곤 했는데, 마침 밴드 에센스에 공석이 나서 들어오게 된 거다. 처음엔 테디보이즈와 병행하다가 그 팀이 끝나서 지금은 에센스(한 팀을 더 준비중이긴 한데)에만 전념하고 있다.

 

팀 이름은 정수, 본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계기로 에센스라는 팀명을 정하게 되었나?

우: 밴드를 만든 시점에선 누가 봐도 “대놓고 펑크 밴드”이고 싶었다. 애초 내가 락을 입문하게 된 음악이 1970년대 펑크라, 다른 길은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펑크도 좋지만 뭔가 새로운 음악을 펑크랑 결합시키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리고 “그 뭔가가 있다면, 그 뭔가의 본질은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게 내가 팀명을 그렇게 정한 이유다.

하나 더 있다. 당시 씬에 디스코 음악이나 댄서블한 락 음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고 있었을 때다. 그런 음악들을 보면서 “아, 락의 본질이란 게 뭘까?”라는 나름 거창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부터 그런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두 번째 이유다.

 

유수한 포스트펑크 밴드들, 이를테면 Magazine이나 Talking Heads, The Jam 생각이 많이 났다. 실제로도 이런 밴드들을 좋아했는가?

우: 초창기엔 The Jam 사운드를 표방하고 다녔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말이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 골조는 유사하다. 늘 “펑크 이후에 어떤 표현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를 모토로 갖고 있으니. 요샌 The Jam보다는 좀 더 노이지한 음악, The Jesus and Mary Chain, Sonic Youth 같은 밴드들로부터 많은 걸 차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포스트펑크 스타일에 흥겨운 락큰롤을 추가한 게 현재의 음악방향이라고 본다.

우: 그렇다.

한: 멤버마다 좋아하는 밴드에 대한 교집합은 있는 것 같다. 정호형이 말한 The Jesus and Mary Chain도 그렇고, The Raveonettes도 그렇다. 허나 밴드를 콕콕 정해서 음악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팀의 음악방향대로 간다고 말하긴 어렵다.

김: 난 우리 밴드의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그런 느낌이 좋다. 공연할 때도 과한 스테이지 액션을 동원하면서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 팀들이 있다. 그런데 우린 그러지 않는다. 살짝살짝 움직이기만 하는데 그게 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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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EP는 리버스 앤 리버스의 백준명이 프로듀스했다. 그에게 조율을 맡기면 어떤 장점이 있나?

우: 인간적으로도 공유하고 있는 게 많다보니 작업하기 편하고, 펑크 중에서도 The Clash를 가장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내 감성을 전달하기에 굉장히 편했다. 내가 “이거 이렇게 하는 거죠?”라고 말하면, “아, 이렇게?”라고 곧바로 사운드를 잡아줄 정도니까.

 

랑데뷰등의 가사를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이 주를 이룬다. 

우: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고, 밴드를 떠나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를 해보고 싶다. 그런 게 노랫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펑크 밴드니 “굉장히 공격적인 가사만 써야지”라는 결심해본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런 게 다 뭔 소용인가. 내가 지금 하는 게 펑크인데”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모멘텀이 있었을 것 같다.

우: 이런저런 인생의 아픔 탓이다. 구질구질하게 다 밝히긴 그렇지만, 그런 일들 때문에 밴드를 해체하려고도 해봤다. 그런데 바닥에 내려가 보니, 그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감정들을 가지고 밴드를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잔인한 4은 응당 세월호를 다룬 곡처럼 들리고, 이 곡의 메시지나 평소 페북에 포스팅되는 글들을 볼 때, 사회 이슈나 정치 사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 그렇다. 학교 다닐 때도 전공 중에서 정치사를 중점적으로 공부했을 정도다. 또, 펑크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펑크원론주의자’다. 요새 씬을 보면 막 이상한 이야기하고 다니는 팀들도 있는데 ‘원론주의’ 시각에서 봤을 때 그런 건 다 거짓말 같다. 아예 정치를 무시하는 밴드들을 보면 “그럼 도대체 밴드를 왜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잔인한 4월’은 EP [Don’t Believe What You See]에 들어있는 곡인데, 딱 세월호 사건 시점에 쓴 곡이다. 이 EP가 2015년 1월에 나왔는데, 원래는 남들이 다 추모곡 발표하는 시기에 맞춰 내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재밌더라. 평소에 그런 거 생각도 안하는 밴드들조차 시류에 편승하려고 하고, 어떻게 엮여서 공연이나 한 번 해보려고 발버둥치더라. 그런 모습들이 우스웠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달라요. 이 곡은 달라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이 곡이 그 곡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곡을 발표할 테니 그걸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만 알아들어라”, 그랬던 거다.

 

몽상가들은 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건가?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 영화에서 따 온 거 맞다. 일단 그 곡은 우리 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들 자신의 작품이 엄청난 반향을 몰고오길 바라며 뭔가를 하고 있지만, 운이 없어서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고, 운 좋게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관계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영화를 하는 사람이든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어떤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그게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 아니겠나. 우리는 그 뭔가를 가지고 밀고 나가야 된다.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런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직접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는 걸 안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우: 그렇다기보다는 여백을 조금 남겨 두는 거다.

 

음악이 격하게 감정을 요동치게 하지 않는다. 상당히 냉정한 음악이다. 그 때문에 일반 리스너들은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을 법하다.

우: 나 자체가 떠먹여주는 것보다는 여지를 두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그런 음악이 탄생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떠먹여주는 건 폭력적이지 않나.

한: 뭔가를 정해두고 곡을 쓰면 약간은 위험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란 게 다 다른 법이니까. 정작 그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는데, 내가 노래를 쓴다고 그렇게 다 재단해버리면 리스너 입장에서는 의아해할 거다.

 

기획공연 ‘THE ESSENTIAL LIVE’13탄까지 실행했다. 어떻게 이런 장기 레이스를 하게 되었나?

우: 예전 기획사의 방침으로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나오게 되었을 때는, 밴드를 다시 추스려야 할 지경이었다. 공연도 다 끊기고 팬들도 다 떨어져 나갔다. 멤버 사기도 엉망진창이 되었고, 어떻게든 뭔가를 해야 했다. 그때 평소 우리를 좋아해주시던 스트레인지 프룻 사장님이 “그래? 그러면 너희가 여기서 쇼를 만들어서 공연을 해보라”고 제안을 주셨다. 그게 너무 감사해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봤다. 그게 그 공연이 시작되게 된 배경이다.

다른 기획공연과 조금 차별화된 게 있었다면, 이 밴드 저 밴드 무더기로 안 하고 우리 팀을 포함해 딱 3팀으로만 갔던 거다. 그런데 그렇게 끌고 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공연기획자처럼 인지하고 있더라. “야, 정호야. 그 공연 좀 같이 하면 안 되냐?”  매번 그런 질문을 받았다. 몇몇 밴드는 그래서 같이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관성화되다보니 어느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기획과 공연을 같이 하다보니 라이브의 질도 문제가 되었고. 그게 13회로 접은 이유다.

 

서로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는 팀이 있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팀이 있던데. 본인들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한: 후자다.

우: 후자 맞다.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고 어울리는 거 소모적이다. 그런데 상대적이긴 하다. 어떨 때는 전자 같기도 하다.

김: 그것도 필요한 부분이니까.

우: 우리 멤버들은 술도 안 먹는다.

김: 뒤풀이 가면 술은 안 먹고 돈은 낸다. 이야기하고 노는 건 좋다. 그런데 대규모로 노는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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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규 음반이 하나 나올 타이밍이 되지 않았나?

우: 타이밍이 지났지.

한: 오히려 나는 이제야 정규를 공개할 때가 왔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내가 에센스 멤버가 된 그 4년 동안 장르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댄스 음악도 해 봤고 락큰롤도 해 봤고, 이런 음악 저런 음악 다 해 봤다. 그렇게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정규를 낸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신곡들은 어떤 일관성이 있다. 이질감도 없고. 그게 내가 지금 풀렝스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이유다.

우: 대연이가 들어온 게 작년 이맘때다. 그때 내 계획은 대연이랑 1년 정도는 라이브를 하고, 스타일을 확정해서 합을 맞추는 거였다. 다행히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내년 4월엔 정규가 낼 수 있을 것 같다.

 

헬로루키를 비롯한 여러 경연대회에 응모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본인들은 그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나?

우: 우리가 정리 안 된 상태에서 응모한 게 컸다. 대연이가 들어온 그 시점이 밴드를 새로 결성한 거나 진배없는 시점이었으니까. 그렇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응모를 했으니, 다른 팀들에 비해 정성이 없다고 보였을 거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곡들이 매력적이긴 한데 경연대회에 어울리는 한방이 없는 게 컸던 것 같다.

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매우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4월에 정규가 나온다면, 그 사이에 EP나 싱글이 공개될 수도 있는 거네?

우: 올 겨울에 1~2곡 정도 낼 수도 있을 거다.

 

신곡의 방향은 지금과는 달라지는가?

우: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몽상가들’풍의 노래도 있을 거고, 더 노이지한 곡들도 담기게 될 거다. 서프락 풍의 곡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대연 씨는 1년 정도 팀워크를 다진 셈인데 느낌이 어떠한지? 밖에서만 밴드를 보다가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 뭔가 달라진 게 있을 거다.

김: 트리오를 하게 된 게 처음이다. 진심으로 적응 안 됐다. 그런데 지금은 기타리스트가 할 일이 많아졌다고 느끼게 되었다(웃음). 그런데 그게 나쁜 게 아니다. 에센스를 들어오고 나서야 내 포지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게 된 거다. 늘 정호형이나 승찬형이 “우리가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을 테니, 네 스타일대로 연주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 있다. 공연 만족도도 올라갔고, 신곡 연주할 때도 슬슬 나만의 연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팀이 있나?

김: 리버스 앤 리버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이다.

한: 그 팀은 당연히 좋다. 음… 요새 음원사이트에서 최신 음악 듣는 취미가 생겼는데, 이스턴사이드킥 신보에 들어간 ‘88’이라는 곡이 괜찮더라. 세이수미의 1집도 훌륭했고.

우: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도 없다. 어느 팀의 곡이든 획기적이라든가 잘 썼다는 느낌이 안 온다. 누가 “전반적으로 씬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그 말에 정말 동의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꽂히는 뭔가가 없다. 다들 남을 따라하는 데만 급급하다. 그 레퍼런스들이 다 보인다. 리버스 앤 리버스와 더 모노톤즈는 멋지지만, 나랑 친한 팀들이어서 그런지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식상할 것만 같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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