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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널리스트 후기

굳이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꽤 괜찮은 음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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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클래식 콩쿠르 중 하나라고 불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유구한 전통답게 특이한 룰이 있다. 경연은 지정곡과 자유곡을 하나씩 연주하게 되며 결승 진출자들은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 기기를 반납한 채 외부와 차단된 채플에서 8일 동안 경연을 준비해야 한다. 2015년도에는 한국인 연주자 이지윤, 임지영, 김봄소리가 출전해서 국내서도 화제였고, 시상식 때 콩쿠르 역사상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파이널리스트] (원제: Imposed piece)는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다. 한국판 제목만 보면 수많은 경쟁을 이겨내고 실력에서 이미 정점에 오른 결승 후보 12인의 불꽃 튀는 경연을 보여줄 것 같지만 막상 영화는 그보다 어둡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영화는 12명 중에서도 유독 한국인 이지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의 비중이다. 대체 어떤 점이 감독 브레히트 반후니커의 호기심을 자극했을까? 이 글은 그 점을 곱씹어 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여기서부터 영화 내용이 많이 나오니 원치 않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누르기 바랍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재미있다. 권위 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탑 12인 중 절반이 동양인이다(개최국 벨기에의 파이널리스트는 없었다). 파이널 공연 룰에 대한 소개가 빠르게 지나간 후 출전자들이 하나둘 합숙 장소인 채플에 모인다. 영화는 있는 그대로 12인의 연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아무런 과장 없는 날 것의 소리들과 연습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눈길을 끈다. 출전자들의 속내를 담은 인터뷰와 휴식 시간 때 대화만으로 그들의 상황과 심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친절한 방식은 아니다.

영화는 출전자 몇몇에게만 포커스를 잡는다. 이중에 부각을 나타내는 것은 이지윤이다. 인터뷰 때부터 인터뷰어는 이지윤의 이름을 어려워한다. 한국 특유의 이름은 서양인들에게 익숙치 않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후에도 이지윤은 다른 상황,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이와 대조되는 장면은 참가자 중 한 남자 연주자의 인터뷰 장면이다. 이지윤 때와는 다르게 옆에 통역사를 따로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연주자가 프랑스어를 좀 할 줄 안다니까 몹시 반가워 했다. 나중에는 너가 인터뷰 힘들어 하는 거 안다 고생 많았다고까지 한다. 이 적은 장면들만 봐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존재하며, 한국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 파이널리스트가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는가?’ 이지윤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로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했다. 왜 하필 바이올린이었는가. 바로 어머니 당신께서 바이올린을 못배운 게 평생의 한이었다고 한다. 자기 자식은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하길 원했었다면서. 어머니의 숙원을 풀기 위해 이지윤은 오빠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모든 면에서 오빠들보다 뛰어났다. 원래 하던 피아노도 접고 바이올린의 길을 걸었고 끝내 여기까지 왔다고. 인터뷰 때 12인 전부에게 한 질문이겠지만 그 답을 채운 것은 이지윤이었다. 문득 드라마 [SKY캐슬]에서 ‘내 자식이 나만큼 누릴려면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랐다. 정말 그정도는 해야지만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건가? 감독은 이지윤의 답에서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이지윤은 자신 보다 어린 임지영과의 대화에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이라고 했다. 너무 많은 콩쿠르와 수상자가 있다보니 명성을 쌓은 아티스트도 고정적인 일자리와 수입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는 덧붙여 예전에 어떤 무대에서 엄청 화려해 보이던 솔로이스트가 바에서 혼자 외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런 삶을 살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점점 현실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음악가 보다는 우리가 아는 직장인들의 대화 장면 같았다.

결승에서 연주할 지정곡(Imposed piece)은 합숙 당일 최초로 전달 받게 된다. ‘…구름만큼 가벼운…’이란 곡으로 주최 측이 스위스 작곡가 미하엘 야렐에게 청탁한 작품이다. 연주자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고난이도의 곡으로 의뢰했다고 한다. 12인은 듣도 보도 못한 이 곡에 대해서 매우 곤혹스러워 한다. 이지윤은 연습하면서 ‘체력적으로 남자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버겁다’ 고 한다. 다른 남자 출전자들도 며칠이 걸려서야 겨우 ‘익숙해졌다’고 할 정도다.

결승전으로 가는 12인은 저마다의 다짐을 하며 무대에 오른다. 한 중국 남자 연주자는 마지막 무대로 가기 전에 ‘이미 최상위 12인에 속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이정도도 괜찮다. 어차피 무대에서 죽는 것도 아니고’ 라고 말한다. 앞의 이지윤하고 비교해보면 이렇게나 입장이 다르구나 싶었다. 영화 뉘앙스적으로 같은 동양인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처한 입장이라든가 짐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영화 원제가 지정곡(Imposed piece)이라는 점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지정된 길’로 가기 위해 전세계에서 온 젊은 연주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하는지, 또한 동양인들이 서양 음악세계에 들어와 어떻게 싸워 가는지를, 한편 음악가가 예전처럼 음악만 해가지고는 살기가 힘들어진 시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지윤을 열심히 따라다닌 임지영이 우승을 하게 되고 이지윤은 3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이지윤에게는 흑역사일 시상식 해프닝에서 감독은 계속해서 이지윤을 담는다. 그때의 카메라 시선처리가 참 좋았다. 정말 그 인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담을 수 없는 화면이라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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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이지윤과 임지영 각자가 혼자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보면서 둘의 모습을 잠시 햇갈린 적이 있었다. 특히 옆으로 서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초반의 임지영과 후반부의 이지윤의 모습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영화는 이런 가혹한 토너먼트에서 승자와 패자의 길이 완벽히 나뉜다는 것은 넌센스일 뿐, 결국 정해진 길을 벗어나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이 사건 이후 이지윤은 독일의 명문 악단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최연소 악장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된 셈이다).

국내에서는 이때 우승자인 임지영이 워낙 화제였었다. 클래식 쪽에서 얼마나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지를 잘 알 수 있었던게…. 내용 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임지영이 굳이 국내판 영화 포스터 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다(구글에서 찾은 위 포스터 이미지가 아마 본래의 것이겠지). 영화 [위플래시]가 연상되는 다른 홍보물도 그렇고, 영화 예고편만 보면 슈퍼스타K 뺨치는 컴피티션이 나오는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같이 영화본 지인은 그 예고편을 보니 영화가 정말 별로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파이널리스트]의 후기를 찾아 보니까 임지영이 안 나와서 아쉽다, 영화 핵노잼이라는 글이 많이 보였다… 부탁인데 영화를 좀 더 음악적으로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파이널리스트]는 최근에 봤던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 과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결이 다르다. 후자는 수많은 전장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한 대가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회고담, 혹은 위인전이다. 분명 좋은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덜 와닿았던 것 같았다.

[파이널리스트]의 감독은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지는 뻔한 스타 탄생 신화 대신, 복잡한 상황에 놓인 젊은 음악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묵묵하게 담아냈다. 음악에 대한 비중이나 말하고 싶은 메시지도 좋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도 크다고 본다. 이런 것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들기 때문에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파이널리스트]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결론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봐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About 김종규 (15 Articles)
이명과 여기저기에서 글을 씁니다. 앨범리뷰와 인터뷰 등을 씁니다. radio7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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