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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 누가 먼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겨우 석 장의 싱글이 나온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대중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이 걸어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전달되니까. 소속사 없이 이렇게 기획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여성 뮤지션이 지금 몇이나 있을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굉장히 잘 전달됐다. 시퀀서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을 시작한 지 2년 된 뮤지션이지만, 그녀는 향후 5년의 계획을 말하고 있었다. 더불어 현재 예서의 활동은 ‘혼자’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더 다듬어졌을 때, 분명 그녀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yeseo1‘BUD’(2016) 이후 ‘No Love For City'(2017)를 냈는데, 스타일의 간격이 크다.
시퀀서 프로그램을 사서 곡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2015년 10월이에요. ‘No Love For City’는 그때 두세 번째로 만든 곡이었죠. 오히려 ‘Bud’는 6개월 지난 후에 만들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No Love For City’에 대한 주변 사람들 반응이 좋았어요. ‘아꼈다 나중에 내야지’ 생각했는데, ‘Let It All Go’(2016) 이후 작은 공연을 많이 하면서 라이브 하기 좋은 음원을 내야 관객들 입장에서 좋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Bud’를 먼저 내게 됐고, ‘No Love For City’도 초기에 같이 쓴 곡이라 느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이후 내게 됐어요.

이번 작품은 R&B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이다.
처음 예고를 갔을 땐 아이돌 가수를 동경했는데, 학교에 있으면서 달라졌어요. 악기 연주하는 친구들이 많아 작품성 있는 음악을 많이 듣는 분위기에요. 국내 대중음악 듣는다고 하면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이돌 음악을 피하고 R&B 음악을 들으면서 학교생활을 쭉 했고, 보컬 전공이라 자주 불러온 게 그 장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현재까지 나온 가사는 모두 영어다.
초기에 쓴 가사들은 한글이 많았어요. 2016년부터 일렉트로닉카에 접근했는데, 미디를 접하니 더 다양한 사운드 구현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현재 작업 방식에서 멜로디를 빠르게 스케치하고, 사운드에 집중하려면 영어 가사를 쓸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하다 보니 나오게 됐어요. 4월에 나올 EP에는 한글 가사가 많을 예정이에요.

멜로디에 집중을 많이 하는 느낌이 든다. 작업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곡마다 달라요. 그러나 제가 카페 작업을 좋아하다 보니 최근에는 건반을 들고 다니면서 만드는데, 이곳에서는 주변이 시끄러우니 멜로디부터 쓰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트랙부터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던 초창기 곡들은 ‘개러지 밴드’(애플사의 음악 제작 프로그램)로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우울한 시기가 와서 집에서 1년간 칩거를 했어요. 동네 카페나 기웃거리고, 친구들도 6개월 넘게 안 만난 것 같고요. 그렇게 하다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Ásgeir의 ‘King And Cross’를 듣고 ‘어? 나도 기타도 있고 개러지 밴드도 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거죠. 현재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그때의 곡들은 모두 Private 상태에요. 그 곡들은 뭔가 더 애착이 있어서요. 몇 곡은 올해 말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서 낼 생각이에요.

개러지 밴드에서 시퀀서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개러지 밴드가 8트랙밖에 만들 수 없어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유일하게 미디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추천으로 로직에 입문하게 됐죠.

곡을 써보니 어떤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작곡하는 친구들을 보며 절대 ‘나는 곡을 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거든요. 뭔가를 창조한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고, 저는 항상 카피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근데 의외로 보컬보다 더 재밌는 상황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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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노래에 피처링 했으면 하는 가수가 있는가?
아니요, 아직 못 찾았어요. 오히려 프로듀서 분들과 협업하고 싶어요. 제 사운드에 모자란 게 많아서. 그래서 아직 누구라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남성 보컬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기획사가 없음에도, 본인의 작품을 상당히 조직적으로 만들려는 목표가 있는 것 같다.
‘Let It All Go’라는 싱글은 급하게 내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부모님께 뭔가를 보여드려야 내가 음악 하고 있다는 걸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5월 말에 쓴 트랙이 7월에 나오게 된 거거든요. ‘Bud’는 뭔가 곡과 연계성이 있는 아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제가 잘 보여서요. 그래서 아트를 체계적으로 준비했고, 좋은 사진들이 많이 나왔어요. 사진 찍는 날 영상도 찍어달라고 해서 아이폰으로 찍기도 했고요. 가능한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놓고, 있는 만큼 쓰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트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가?
제 음악 자체가 보컬이 세서 기승전결이 있는 타입이 아니잖아요. ‘Bud’는 더더욱 그랬고요. 그래서 무조건 아트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음악 자체가 듣는 것도 좋지만, 보는 것과 같이 봤을 때 또 다르잖아요. 제 음악이 좋은 비주얼, 아트와 함께 했을 때 시너지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에서 소속사에 대한 바람이 명확할 것 같다
그렇죠. 아무래도 제가 이러한 것들을 준비해서 먼저 제시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중 처 낼 건 처 내고 다른 것도 제시해주시는 방향으로 같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Let It All Go’ 이후 ‘No City For Love’에서 다시 같은 커버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그 작가분의 아트를 좋아해요. 더불어 제 이름을 쳐서 디스코그래피를 봤을 때, 연관성 있는 커버가 존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운드 클라우드 시절의 커버들도 기획력이 돋보인다.
일러스트들은 작가님들께 페이스북으로 연락드려서 사용을 요청했어요. 음악을 들려드리고 용도와 출처 표기에 대해 명확히 얘기하면 대체적으로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고요.

뮤지션리그의 활동은 어떤가?
지금 저의 상황에서는 좋은 점만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원래 사운드 클라우드 기반으로 음악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곳은 ‘음악 하는 사람들’,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잖아요. 반면 뮤지션리그는 대중들과 조금 더 가까운 곳이고요. 그래서 평소 ‘내 음악을 어떻게 해야 메인스트림에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뮤지션리그가 종점은 아니지만, 통로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규 앨범에 대한 계획은?
굉장히 있어요. 이번 4월에 발매하는 EP 곡 정리를 하는데, 열 트랙이 넘더라고요. 그래서 여덟 트랙으로 줄였지만, 곡과 아트, 사진, 글, 뮤비 등이 모두 하나의 콘텐츠, 하나의 컬렉션이 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이번 EP도 솔직히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준비를 하겠지만, 정규는 아무래도 회사와 준비를 같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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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일렉트로닉 신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입장이 궁금하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닐 수 있어요. 저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곡을 등록한 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쓰신 곡이세요?’라는 걸 항상 물어봐요. 편곡까지요. 처음에는 내가 쓴 곡이 좋아서 물어보나 싶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왜 자꾸 물어볼까?’, ‘내가 남자였어도 물어봤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함께 곡을 쓰는 걸 피하고 있어요. 왜냐면 일단 내가 내 곡을 쓸 줄 아는 사람이고, 그렇게 보이고 나서 같이 만들어야 ‘아 저 사람이 프로듀서구나’ 라고 인식할 것 같아서요. 싱어송라이터로 가는 건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해요. 편곡까지 전부 다 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많지 않다고 봐서요.

일렉트로닉 신에 대해 안 지는 일 년 좀 넘었더라고요. 꼭 여성 뮤지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뭉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렉 신을 메인스트림으로 가져가고 싶어서요. 굳이 저의 곡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올라가야 듣는 층이 넓혀지고, 그래야 다 같이 살 수 있다고 봐요.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나.
기한 없이 가져가고 싶은 건, 계속 신선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 자신을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남들이 들었을 때도 뻔하지 않은 음악이요. 가사도 없는 얘기를 쓰고 싶지 않고요. 더불어 국내 일렉 신을 보면 대체로 프로듀서와 DJ 중심이어서, 아무래도 비트 위주의 음악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멜로딕한 음악을 하는 이유도 거기 있거든요. 듣기 편하니까. 그래서 누가 먼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글 가사를 쓰고 싶은 것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도 있고요.

 

About 이종민 (55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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