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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솔루션스: 한국 헤비니스 시장에 ‘답’을 제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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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신드롬의 보컬리스트 박영철이 프로젝트 밴드 위키드 솔루션스를 시작했다. 간만에 나오는 창작물이기도 하지만, 이 음반은 어떻게 봐도 괜찮은 음반이어서 인터뷰를 잡았다. 올해 헤비니스는 말 그대로 풍년이다. 뭘 집어 들어도 풍성한 가운데, 이 음반 역시 리스너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리라 생각한다. 인터뷰는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리더 박영철과 함께 진행했다. 질문은 이경준과 박근홍이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영철 씨의 새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멤버들은 어떻게 규합하게 되었는가?

프로젝트를 준비한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전에도 솔로 음반을 내자는 제의를 받은 적은 많다. 물론 지금보단 어릴 때였지. 김종서 씨나 임재범 씨가 솔로 음반을 내고 잘 풀린 대표적 케이스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경로를 밟는 게 싫었다. 솔로보다는 여럿이 뭉쳐 밴드로 가는 게 좋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밴드를 계속해 온 거다. 1999년 블랙신드롬 8집을 내고 2004년도에 베스트를 공개했는데 그 음반은 사실 새로운 작업이라 보기는 힘든 앨범이니 2004년 이후 밴드로서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한 건 아니다. 2010년이 오기 전까진 한 장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상황이 그리 좋게만 돌아가진 않아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나라도 한 장 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팀이 오래되게 되면, 각자의 견해들을 공평하게 수렴하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음악가의 욕심으로 나라도 하나 뭘 해야겠다 싶었던 거다. 일본에 갔더니, 그쪽은 좀 한다 싶은 친구들은 팀을 3~4개씩 하더라. 그렇게 판을 벌릴 깜냥은 안 되었고, 하나라도 잘 해보자는 마음에 팀원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게 수월하게 되지는 않았다. 멤버 모은다는 게 그런 거다. 음악이든 성향이든 하나는 맞아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 무슨 음악을 해야겠다고 정해놓은 건 아니어서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는 나도 몰랐지만 전에 하던 음악보다는 센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Testament나 Metallica 같은 음악 말이다. 그렇게 설계를 해 둔 상태에서 가장 먼저 컨택된 친구가 (김)수한이다. 내가 디아블로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오래 봐 왔으니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지. 드러머 (추)명교는 팀을 이끌어야 하니 시간이 없을 것 같았고. 제안을 했는데, 수한이가 주저주저하더라. 달팽이 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다. 껍질 안으로 쏙 들어가서 느릿느릿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디아블로도 한 20년 된 팀인데 정규가 2장 밖에 없지 않나. 이렇게 과작인 게 이 친구들이 작업하는 타입이 굉장히 신중하고 오래 만지는 스타일이라 그렇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일을 빨리빨리 진행하다가 잔실수를 하곤 하는데, 그런 성격들이 나 같은 사람을 보완하기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명교는 두고 다른 팀 구경을 다녔다. 어떤 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야 뽑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둘러보던 어느 날, 수한이가 “형, 제가 그냥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너 웬일이야?”, 그랬더니 “이제 해도 될 것 같기도 해요”라고 답하더라고. “참, 오래도 걸렸다” 그랬지. 일단 그렇게 기타를 구해 놓았고, 나머지 멤버를 보던 중 크라티아 1집을 녹음했던 친구들이 기억났다. 내가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한 음반이다. 이래저래 연주하는 것도 보고 하니까 합도 잘 맞고 제대로 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 마침 그때 팀이 깨져 이 친구들이 탈퇴를 했다. 오히려 편하게 제안을 할 수 있었지. 베이스 치는 (김)인철 씨는 본인이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재주가 많은 친구다. 나도 맥가이버 병이 있어서 뭔가를 고치고 만들고 정비하는 걸 즐겨 하는 편인데, 그런 성격도 맞는 것 같고 해서 더 부담 없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속으로 한 가지 걸리던 건 말랑말랑한 LA 메탈을 하던 친구들이라 내 구상과 맞을까 하는 거였는데. 아, 이 친구 비주얼상으로는 그라인드코어다(웃음). 살짝 운을 띄웠더니 “상관없다. 우리가 그 음악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해볼 만하다”는 답변이 와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진도를 빼기 시작한 거지. 첫 작업을 하면서, 원래는 미국에 있는 내 사업가 친구(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가 시간을 내서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일이 잘 안 되었고 그 친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만지다 만 작업물만 남았다. 그러면 이참에 “어레인지를 다시 해서 뜯어 고쳐보자”고 해서 첫 곡을 녹음하게 된 거다. 꼭 1년 2개월 전 일이다.

 

어떤 콘셉트로 음반을 작업하고 싶었는지?

“딱딱한 음악”을 해보자는 뿌연 콘셉트 하나 있었다. 하지만 녹음은 잘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국내 프로덕션에 대한 실망이 컸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끔 시장이 흘러가긴 하지만, 그런 걸 다 감안해도 국내에서 작업된 대부분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거지. 건성으로 녹음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음반도 상당수였으니까.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 후배들이 음반을 내면 “형, 들어보세요”하면서 주는 앨범이 많다. 어떨까 싶어 들어 보면 그 친구들 욕하는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활동한 친구들임에도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꽤 있더라. 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음악도 디스플레이라는 게 필수다. 막상 공을 들인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 때문에 놓친 것도 있다. 전에는 몰랐던 건데, 음반 릴리즈 시기라는 것도 유통사랑 정해 두고 하는 거더라. 마지막 1곡을 남겨둔 상태에서 원 예정은 6월 23일 발매였다. 20일 동안 한 곡 정도야 나올 수 있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끝나질 않았다. 곡이야 이미 다 나왔지만 믹싱이 시간을 잡아먹었다. 일단 7월 28일 발매하는 것으로 딜레이를 했다. 그렇게 녹음에 신경을 썼는데, 그리고 보니 음반 아트워크가 마음에 걸렸다. 요즘엔 회사에서 디자이너들이 그려주는 게 아니라, 다 가내수공업으로 재킷을 제작한다. 좋게 말하면 뮤지션 뜻대로 음반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 걸 다 혼자 하다 보니 시간이 촉박했다.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락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매번 똑같은 음악을 해왔고 그러다 보니 좀 질리게 되었다. 약간 만두 먹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거랑은 다른 걸 해보자는 거였지. 그런 의미다.

 

곡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미리 하고 싶은 걸 짜 와서 하는지?

그렇지 않다. 내가 기타리스트가 아니다 보니 곡 전체를 완벽하게 짜서 보여줄 수는 없다. 대충 박자는 이렇고 코드는 이런 거라고 보여줄 수는 있지. 그렇게 하면 다른 파트 멤버들이 감을 잡는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수정하면서 곡이 나오는 거지. 밴드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가사도 그런 식으로 작업되는데, 나중에 베이시스트 인철이가 1줄~2줄 고친 게 있다.

 

미지의 괴물을 그린 것 같은 아트워크가 인상적이다.

이미지만 뉴욕에 있는 Gezamo라는 친구의 작업물을 받았다. 그 친구가 바쁘다보니 내부까지 디자인할 시간은 없다고 해서, 속지 작업은 우리가 한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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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들의 공통적인 말이 음악이 귀에 잘 감긴다는 것이었다. ‘A Loser’에서 잘 드러나듯, 찰진 그루브/리프가 인상적인 음반이다. 재미있는 건 후렴구만 영어고, 다른 가사는 다 한글이라는 거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내내 “우리나라 헤비니스는 왜 안 될까?”라는 고민을 해왔다. 우리 팀 이름 ‘위키드 솔루션스’라는 말처럼, ‘뭔가 답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러면 어떤 게 ‘솔루션스’가 될 수 있을까. 작품을 쉬는 동안 이래저래 생각을 많이 했다. 책도 많이 읽었고, 시장 돌아가는 것도 나름대로는 파악을 해 두었다. 과거 나는 Scorpions를 보면서, 글로벌한 음악을 할 때는 글로벌한 전략을 취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Scorpions는 독일 밴드지만 영어로 노래하지 않나. 한국 밴드가 일본 밴드 보다 뛰어날 수 있다면, 연주의 정교함보다는 영어 발음이지 않을까 싶어서 영어 가사를 써 왔던 거다. 그렇게 10장 이상 앨범을 실험하다 보니 결론이 뭐였냐 하면,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렇게 하면 겉멋이 된다”는 거였다. 작가 본인도 모르는 말을 읽은 팬들도 심층적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때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 음반에는 코러스만 영어로 하고, 나머지는 다 한국어로 썼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알아듣기 쉽게 적을 것. 둘째, 가장 팝적인 코드진행을 따를 것. 이유가 있었다. 현재 메탈 음악은 너무 어렵다. 뭘 듣긴 들었는데 난해하기도 하거니와 엉터리 설정도 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들어보면 안다.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가장 스케일에 맞춘, 가장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는 음악을 하자. 이를테면 클래식의 방식을 따라가 보자. 그게 모토였다. 세 번째, 가장 심플하게 가자. 보컬-기타-베이스-드럼 4인조 밴드인데 클래식으로 치면 우린 실내악 4중주다. 이 포맷 안에서 다 해보자. 키보드 이런 것도 넣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간략하게 해 보자. 다만 보컬도 그간 싱글 라인만 녹음한 걸 탈피해 멀티 라인으로 가자. Ozzy Osbourne 음악을 들어보면, 분명히 혼자 부르는 건데 여러 명이 부르는 효과가 난다. Ozzy가 그렇게 한 건, 대단한 ‘보컬 능력’을 갖추지 못한 보컬이다 보니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아주 유려한 보컬을 구사한다. [Scream] 음반 들어보면, 굉장히 팝에 가까워진 음악을 들려준다. 훌륭하다. 그런 걸 나도 해보고 싶었다. 멀티 라인으로 녹음하되, 그걸 싱글처럼 들리게 만들어보자. 이렇게 하면 보컬이 고생스럽다. 동일한 노래를 실수하지 않고 5번 이상 불러야 된다. 그래야 멀티 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 그 중 3트랙 정도를 쓰고, 나머지 2트랙은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거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된다. 작업이 길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말을 들으니 일정 부분 리스너를 배려한 것 같다.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정밀하게 작업을 해 두어야 그게 고스란히 리스너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어떤 물체에 광을 내려고 해도, 힘든 세공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그래야 번쩍번쩍한 뭔가가 나오는 거다.

 

녹음만 1년을 잡고 있었다. 어지간한 밴드는 엄두를 못낼 기간이다. 그렇게 끌다 보면 내부의 균열이나 그런 게 생길만도 했을 텐데.

균열이 아예 없진 않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이다 보면 어디서나 균열은 생긴다. 그 1%라도 내 생각과 다를 때는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린 더구나 ‘프로젝트 밴드’이기 때문에 뭐가 안 맞으면 가볍게 팀을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만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2집, 3집도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환경적으로 지금보다는 좀 나아져야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과 똑같다면 힘들다. 1집을 내고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음반을 팔아서 갚아야 하는데”라는 말은 뻥이고, 제작비의 반이라도 회수된다면 좋겠다.

 

가사에 대해서도 물어보겠다. ‘Revelation’, ‘Suck Me Now’에선 뭔가를 비판하는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다.

1980년대 블랙신드롬 활동할 때는 어렸고, 여자 찾아다니고 놀기를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가사도 반은 향락적인 내용을 썼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음악 하지만 역경이 있어도 꺾이지 않겠다”라는 내용을 썼다. 이 역시 오랫동안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사회적인 문제들도 다뤄보고 싶었건 거다. 그러데 우리나라는 아직 흑백논리가 강해서 뮤지션이 뭐라고 떠들게 되면 사람들이 백이면 백 다 그걸 문자 그대로 믿는다. 내 생각이지만 그건 너무 직구를 던지기 때문이고, 그다지 멋진 예술적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최대한 메타포를 가지고, 에둘러서 말하는 게 더 고급스럽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사를 쓰니까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돌려서 표현하면서도 멋지게 나올 수 있는 게 뭔지 상상해 본 것이지. 먼저, ‘Revelation’은 IS에 대한 곡이다. 사람들을 별 이유 없이 죽이는 사람들이지. 누구에게나 폭력의 명분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명분은 그 명분 자체를 의심하게 할 만큼 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실체를 ‘사막’이라는 은유를 통해 적어본 것이다. 그리고 ‘Suck Me Now’. 나는 평생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그다지 많이 향유해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이어서, 시위가 일상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살면 환갑인데(웃음), 그분들의 투쟁이 무색하게도 아직 사회는 해피(happy)하고 페어(fair)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강자에게 아첨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인간들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비판한 곡이다. 그런 태도가 싫더라.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야 되는데, 그 반대인 사람들이 많다.

 

‘The Chaser’가 잘 증명하듯, 솔로 파트보다는 연주의 합에 더 주력한 작품처럼 들린다.

맞다. 솔로를 부각하기보다 사운드의 조화를 만드는 데 힘썼다. 음악을 좋아하고, 내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내 동생에게 이번 음반의 모니터를 부탁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형, Pantera처럼 차가 뭘 확 끌고 가는 느낌이 없어!”라는 거다. 그래서 “Dimebag Darrell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훌륭한 기타리스트야. 나한테 그런 걸 바라면 안 돼”라고 답해주었다(웃음). 하지만 자신 있는 건 “함께 하면서 우리만의 합을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거다.

 

앨범 유일의 발라드 ‘Answer’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나이를 먹고 인생을 돌아보니 사람 인생이 많이 변한 것 같더라. 옛날 같은 순수함도 없고. 그런 걸 반추하면서 몇 자 적어 본 거다. 우리는 데뷔 때부터 메이저 회사에서 음반을 냈다. 지금은 다 엎어진 회사들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당시 그 회사의 A&R 직원들은 “홍보할 수 있는 곡 하나를 들고 오라. 라디오에 밀어야 한다. 메탈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나는 그런 음악을 하기 싫은데 강요당한 적이 많았다. 하기 싫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힘 죽 빼고 하는 음악이 단순한 게 아니다. 그 점에서 팝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예를 들어 Boyz II Men 음악, 듣기엔 편해도 그거 하는 건 장난이 아닌 거다. 자, 시간이 흘렀다. 이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스펠 풍의 발라드를 써보고 싶었다. 그게 이 곡이다. ‘Answer’하면 미국에선 “기도에 응답을 받다”는 뉘앙스로 주로 쓰이는데, 가스펠 보면 이 단어가 밥 먹듯 나온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 대상은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아니라 ‘메탈 갓’인데, 그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썼다. 후렴구에 “the letters on steel”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유럽 갔다 온 친구가 그걸 보더니 “이게 말이 돼?” 그러는 거다. “야, 내가 하는 음악이 steel이야. 그 위에 글씨가 써 있다니까?” 그랬지. 모세가 돌판(stone)에다가 응답을 받아가지고 왔다면(‘십계’), 내가 받은 응답은 ‘철판’에 있다. 그런 거지.

 

마지막 트랙 ‘El Vampiro’는 이질적으로 스토너/슬러지메탈을 구사한다. 애초에 이런 곡도 넣어보고자 했던 건가?

첫 번째 트랙이 맨 처음에 쓴 곡이고, 마지막 트랙이 최후에 작업한 곡이다. 처음과 마지막을 만들 때는 “이러이러한 곡을 이렇게 해야지”라는 명확한 선이 있다. 이번엔 Black Sabbath를 좀 참고해보고 싶었다. ‘뱀파이어’라는 뜻이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갔는데, 그때 가장 먼저 본 영화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다. 그 영화를 본 후, 언젠가 뱀파이어를 주제로 곡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땐 어렴풋한 생각뿐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꿈을 이루게 되었다. 원제는 부제로 적힌 ‘Devil Inside’였는데, 멤버들에게 내 의중을 전해줬더니 그 제목이 더 좋다고 해서 바꾼 것이다.

 

30년 째 이 필드를 지키고 있는 베테랑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음반은 그동안의 일대기를 중간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소회가 어떤가?

정신없이 달려왔고, 음악 하나만 보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후회스런 부분도 없지 않다. 내가 좋아서 했지만 솔로가수로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괜찮다고 하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섭외도 많지 않고, 간혹 방송을 나가도 누군지도 잘 모른다. 음악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말이다. 가장 슬플 때는 간만에 만난 옛 친구가 “너 아직도 음악 하냐? 아직도 그런 거 하냐?”고 물어볼 때다. 이런 게 다 미디어에 노출이 안 돼서 그런 거다. 옛날에는 지상파 나가기엔 좀 험하게 생겼다는 생각도 했는데, 요새 후배들 중에 지상파 나가서 인기 끄는 친구를 보면 더 험하게 생긴 친구가 있다(웃음).

 

본인의 과거사를 써 놓은 카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걸 취합해 책으로 출판하고 싶지는 않은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내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출판도 음반 쪽과 비슷하다. 쓱 보더니 대뜸 “돈이 될까요?”라고 나온다. 초판이나 다 나갈 수 있을지 걱정부터 하더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명예훼손으로 걸릴 만한 지점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출판은 무산됐다. 하지만 누군가 도와준다면 기꺼이 낼 생각이다.

 

소위 정통메탈, 파워메탈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최근 이 계열 뉴페이스들은 뉴스쿨 메탈코어나 익스트림 쪽이 많다. 그런 친구들 보면 어떤가?

좋다. 보면 좋다. 그런데 그 중엔 겉멋에만 치중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다. 겉멋은 카피할 수 있다. 얼추 해외 밴드의 퀄리티와 비슷하다. 그런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함량이 부족하다. 그런 것들을 연주해 나가면서 채워 나가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한국 밴드들 중엔 미디안을 비롯해 좋은 팀이 꽤 있다. 이런 팀들 해외 나가면 반응도 나쁘지 않고, 세계적인 레벨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알려졌을 때, 그 다음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뒤처지게 된다. 그 정도 잘하는 팀은 많다. 장담하건대 아르헨티나나 뉴욕에 가면 그런 팀 100팀 이상 있다. 걸그룹처럼 많기 때문에 그 이름을 다 외울 수도 없다.

 

2015년은 한국 헤비니스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해다. 씬의 선배로서 후배들의 활동을 보면 느낌이 어떤가?

이렇게 되기까지 10년 걸렸다. 그 친구들이 라이브하고 녹음하면서 암중모색하던 시간이 끝난 거지. 그 10년 동안 완전히 다 죽어 있었다. 블랙신드롬도 앨범을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런 분위기를 타고 뭔가 흐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난 평생을 그 흐름 만드는 데 썼다. 파워투게더만 해도 그렇다. D.O.A.도 ‘메탈하니’도 다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늘 3팀, 4팀 모아서 옴니버스 음반 내고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그랬다. 프라이데이 애프터눈 때를 회상해보자. 그 기획과 아이디어 제공을 내가 했다. 그렇게 열심히 라인업 꾸리고 했는데 거기 참여한 친구들로부터 평생 “영철아, 고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음반에 실린 사진 잘 보면 나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이유가 뭘 거 같은가? 그날 사진 찍는 날인데,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안 찍고 싶은데, 약속한 것이니 그럴 수는 없었고. 왜 기분이 나빴느냐. 그 안에서 잘된 팀들이 다 자기가 잘 해서 잘 나간 건줄 알더라고. 언제나 나만 혼자 판을 벌이고, 고맙다는 사람은 없고. 이젠 누가 뭘 하자고 하면 하지만, 내가 주도해서 뭘 만들 계획은 없다. 그런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박근홍)는 첫 트랙을 듣고 이게 한국 음반이란 말이야?”라고 외쳤다. Van Halen[Balance]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 내용물도 어설픈 게 아니고 굉장히 그럴듯한 사운드다.

근홍 씨처럼 음악 하는 동료들이 이렇게 말해줄 때 굉장히 큰 보람을 느낀다. 직접 연주하고 곡을 쓰는 작가가 해 주는 말이니까 더 그렇다. 이 친구들이 “이게 뭐야?” 그러면, 이건 망한 거다. 알겠지만, 그 중에 히트하는 음반도 있다. 그건 대놓고 대중적인 음악이 그런 거고, 우리 같은 마니아 성향의 음악들은 그들이 듣고 내리는 평이 가장 정확한 평가다.

 

예전 선배들은 두세 팀 뛰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안 좋아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바뀐 건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2~3팀씩 하고 있다. 그걸 보는 친구들도 “저게 뭐야”가 아니라 “그럼 나도 한번?” 그런 태도로 전환했다. 과거의 사람들도 스펙트럼을 좀 넓힐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본인들에게도 이익이다. 다른 팀을 해보는 건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오는 것과 똑같다. 그게 본 밴드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리워드’가 생기는 거다.

 

혹시 최근에 들었던 친구들 중 마음에 확 드는 팀이 있는지.

올해 나온 음반은 다 일정 수준 이상이다. 한 가지 바라는 건, 이 친구들 CD가 국내에서 100장~200장 팔린다면, 이게 체코든 일본이든 그만큼 팔리면 좋겠다는 거다. 그럼 한 5,000장 세일즈하는 밴드가 될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 돈 받아서 집사고 차 사겠나? 그거 다시 자기 음악에 투자할 거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러운 뮤지션이 서태지다. 공연을 지켜봤지만, 그 친구는 프로덕션에 무지막지한 돈을 들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력이 있다. 총알을 쏴야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서태지가 아닌 이 친구들이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무대 위에서 “기타 소리 잘 나오나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변 곁눈질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노력하는 팀이 많다. 단적인 예로 이승환 밴드. 이 분들 언제나 더 나은 사운드 찾으려고 피나게 노력한다. 이 친구들이 얼마나 사운드에 대해 파고드느냐면 세션 하는 멤버를 월급을 주고 10년 이상 데리고 있을 정도였다. 사람을 10년간 쓴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체제를 유지해야 일정한 사운드가 담보된다는 걸 아는 거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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