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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를 보다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모 영화평론가 마냥 Buddy Rich와 Charlie ‘Bird’ Parker를 혼동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래서 고민을 좀 했다, [위플래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다행히 영화는 매우 친절했다. 내용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영화는 매우 자극적이었다. 어설픈 감상문이라도 남기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게 할 정도로.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선생과 제자

최고가 되고 싶은 드러머 앤드루는 교내 최고의 재즈 밴드를 지휘하는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되어 갖은 고난을 겪게 된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제자와 선생으로 보는 게 적확할 것이다. 그런데 플렛처는 드럼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내 템포에 맞춰’라고 주문할 뿐이다. 그에게 앤드루는 자신의 밴드를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앤드루는 플렛처에게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허나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히 큰 영향을 받았다. 팝콘에 자신이 싫어하는 초코볼이 섞여 있어도 ‘팝콘만 먹으면 된다’며 소극적 태도를 보이던 앤드루는 플렛처에게 발탁되고 나서는 망설였던 사랑 고백까지 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플렛처의 눈에 띄기 전까지 앤드루는 그다지 잘하는 드러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원래 소속된 밴드 멤버는 ‘네이먼(앤드루)가 버벅거려서 힘들었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첫 데이트에서 애인에게 했던 변명처럼 다른 지역 출신에 대한 비하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연주를 잘했다면 그런 잡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앤드루가 플렛처의 밴드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뀐 것이다. 이는 교내 최고의 밴드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 자부심은 곧 최고가 되려는 열망으로 승화된다. 이 열망을 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플렛처다. 그리고 그는 그 자부심을 짓밟는 방식으로 앤드루의 최고에 대한 열망을 부추긴다.

 

예술적 성취

물론 플렛처의 부추김은 앤드루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전술한 대로 앤드루는 그저 부품일 뿐이다. 앤드루의 열망은 결국 플렛처의 밴드가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게 예술적 성취를 위한 것인지 플렛처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인지는 영화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는 모호하다. 다만 개인의 영달을 이루는 수단이 예술적 성취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플렛처가 학생 밴드의 지휘자라는 점이다. 최고의 연주자, 혹은 지휘자는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다. 뮤지션이 교육에 종사하는 이유는 주로 경제적 필요 때문이다. 결국 플렛처 자신도 최고의 지휘자는 아니다. 그래서 더 예술적 성취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플렛처는 밴드, 그리고 앤드루가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를 바랐다. 비도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술적 성취를 위해 도덕적 규범을 무시한다. 왠지 익숙하지 않나? [달과 6펜스]를 떠올려보라. [위플래쉬]는 [달과 6펜스]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앤드루와 플렛처에게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술적 성취를 이뤄야 하는가?’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술적 성취이기 때문에.

 

해피엔딩

앤드루의 증언 때문에 학교에서 나오게 된 플렛처는 앤드루에게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말이 ‘Good Job’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최고가 되려면 Charlie Parker처럼 한계상황을 겪어봐야 한다고 믿는다. ‘Charlie Parker도 당신 같은 사람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앤드루의 말에 ‘진짜 Charlie Parker라면 견뎌낼 것이다’라고 답한다. ‘될 놈은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예술지상주의자로서 플렛처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그를 거친 수많은 연주자의 피와 눈물은 안중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플렛처만의 생각은 아니다. 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집착은 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최고의 경지에 함께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플렛처와 주먹다짐까지 한 앤드루가 다시 플렛처의 밴드에 들어간 이유이다.
이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앤드루가 자신의 퇴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증언을 했다는 사실을 플렛처가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플렛처는 앤드루가 연습하지 않은 노래를 준비함으로써 자신을 ‘핫바지’로 만든 것에 대해 복수한다. 이에 앤드루는 플렛처가 다음 노래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연주를 시작하는 것으로 맞받아친다.
여기서 둘의 갈등은 극적으로 해소된다. 앤드루가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연주를 한 것이다. 그 연주 앞에서 플렛처는 모든 것을 잊고 앤드루와 하나가 된다. 정말 ‘피 튀기는’ 드럼 솔로가 끝나는 동시에 플렛처가 앤드루에게 한마디 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입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보아 확신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말’임을.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다

결국 누가 뭐래도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다. 앤드루와 플렛처의 갈등은 음악을 통해 해소된다. 진짜 뮤지션이란 그런 존재다. 음악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다. 그들에게 도덕적·사회적 잣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밴드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음악 똑바로 해야지’라는 말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앤드루가 피를 철철 흘리며 스튜디오에 나타난 이유다.

굳이 비교하자면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아쉬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두 영화의 결말은 같다. 앤드루와 마찬가지로 번민하던 주인공 ‘성우’는 짝사랑하던 ‘인희’와의 공연을 통해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 그런데 정작 그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사랑밖에 난 몰라’이다. 영화 내내 예술과 현실 속에서 고민하던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 고작? 물론 그 노래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어떤 음악적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였다면 적어도 자작곡 정도는 연주했어야 한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연기자들의 조악한 연주 실력은 부차적인 문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서 느꼈던 모욕감이 [위플래쉬]에서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음악을 위해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역설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음악이 소중하다’는 격려였다. 저런 식으로 음악하는 건 사실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듣고 연주하는 것이 그토록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다.

About 박근홍 (5 Articles)
이명... 박... 같은 개드립을 언제나 치려고 노력 중인 팟캐스트 방송인. 부업으로 밴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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