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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돌아가기엔 늦었다.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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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는지, 달렸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이만큼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은 길은 험하기만 하다. 남들은 스타가 되었다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완전한 수익구조를 만들지는 못했으며, 지인들은 전화로 “해외냐?”고 묻지만 본인들은 그것이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이긴 해도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고 있다. 몇 발자국만 잘 옮긴다면,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해외 웹진/잡지들이 레귤러하게 리뷰와 인터뷰를 해 주는 월드와이드 밴드’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하며, 항상 그랬듯, 뒤에서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참고로 잠비나이는 8월 7일 ‘펜타포트’에, 8월 9일 ‘부산락페’에 서게 된다. 이후 해외 투어를 돌 예정이니, 이들의 무대를 고대하는 팬들이라면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인터뷰는 종로의 모 찻집에서 진행되었고, 이일우(기타/피리/태평소/생황), 김보미(해금/트라이앵글), 심은용(거문고), 그리고 김형군(잠비나이 디렉터)이 참여했다.

 

우리의 세 번째 인터뷰다. 첫 인터뷰는 신림동 연습실에서 했으며, 두 번째 인터뷰는 홍대에서 했다. 당시 멤버들은 조금 더 국내에서 실력을 쌓고 싶다고 했다.” ,  그 사이 놀라운 일이 생긴 것 같다. 이 변화를 믿을 수 있는가?

이: 확 달라진 건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인터넷에 ‘잠비~~’를 치면 ‘잠비디스(격투기 선수)’나 ‘모잠비크’가 떴는데, 이제는 우리 밴드가 먼저 뜨게 되었다는 정도? 또 어디가면 알아보는 팬 분들이 생겼다는 것 정도? 얼마 전 한의원에 다녀왔는데, 어떻게 알고 사인을 부탁하시더라.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김: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먼저 “한국이야?”라고 물어본다. 위치를 먼저 확인한다. 아니 얘야, 한국이니까 전화를 받지.

심: 나도 마찬가지다. 불과 어제 저녁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김: 나는 지금도 국악계 사람들하고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데, 항상 국악 공연을 가면 나를 소개할 때 “월드스타 ~~~”라고 인트로를 깐다. 그런데 그게 일면 불편하다. 엄밀히 말해 스타도 아니고, 내가 그걸 인정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런 말씀이 진심인지, 농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거창한 수식어들이 아직 달갑지는 않다.

이: 그런 건 있다. 나도 얼마 전 알게 된 건데, 우리를 나름 ‘롤 모델’로 여기는 후배들이 있다. 물론 우리는 해외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지도 못했고 고생하고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열심히 해외에서 연주하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편으론 보람 있는 일이다.

심: 5월에 투어를 마감했는데, 우리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게 외부인들에게는 굉장히 화려하게 비치나 보다. 심지어 친인척들도 나 돈 많이 버는 줄 안다. 그럼 어머니가 “걔, 쥐뿔도 없다!”며 일갈하신다(웃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렇게 내가 말이라도 던져 놓아야. 그 비슷하게라도 벌겠지. 덧붙여, 일우 말처럼 후배 분들이 우리를 그렇게 봐 주신다는 건 그저 감사한 일이다. 더 치열하게 해서, 그분들의 자리까지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도 있다. 이제 과거처럼 지켜보는 눈이 적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런 게 동기부여가 된다. 책임감도 갖게 되고.

 

20135월 핀란드 헬싱키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이 시발점이었다. 첫 해외 투어의 느낌은 어땠나?

이: 우려했는데, 첫 투어 때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CD가 품절되기도 했고, 피드백도 뜨거웠다. 그런 걸 목격하니까 두려움이 서서히 걷히고 “한번 해 볼만 하겠다”고 자신감을 갖게 된 거지. 시작 단계에선 “이 음악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 것도 있었는데, 그날 미약하게나마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는 것 같아서 희망을 봤다. 그때부터 해외투어를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나 싶다.

심: 일우나 보미도 그랬겠지만, 내 음악을 가지고 해외에 나간 게 처음이었다. 대부분 반주하러 가거나 세션으로 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이 새롭기도 하고 들뜨기도 하고 그랬다. 또 해외 팬 분들이 잘 봐 주시니 그런 것도 신기하고 그랬지.

김: 이게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이기도 하기 때문에, 1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어스비트’의 제롬과 손을 잡게 된 거다. 그분도 공연을 보고 계약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지 않았나, 우리는 그렇게 본다. 서로에게 기분 좋았던 출발이 된 거지.

 

‘SXSW’/‘프리마베라’/‘리버풀 사운드 시티등 유수한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못 가본 페스티벌도 있겠지만, 어지간한 페스티벌은 다 방문한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뭔가?

이: 올해 호주에서 열렸던 ‘워매들레이드’. 1일 2회 공연을 했는데, 두 번째 공연은 작은 무대에서 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공연 끝나고 보니까 그 스테이지의 관객 수용 인원을 초과해서 큰 스테이지로 가는 길까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더라. 그 길목에서도 우리를 보고 있었던 거지. 공연 끝나고 앙코르가 나왔는데, 주최측에서는 다음 진행을 위해 그걸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폭동이 일어날 것처럼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하더라.

김: 그날 음반만 200장 나갔다. ‘솔드아웃’된 거지.

이: ‘프리마베라’에서도 반응이 괜찮았다.

심: 아, 기억나는 공연 하나 더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 어떤 이탈리아 사람이 우리가 공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장시간 기차를 타고 여자 친구랑 같이 왔더라. 세상에, 그 30분을 보려고 말야! 그런데 그 한 명의 호응이 장난이 아니었다(웃음). 거의 일당백 수준으로 혼자 고함치고 난리난리였다. 그 모습에 솔직히 감동받았다.

김: 그것도 제일 앞에서.

김형군: 나는 영국 ‘워맥스’와 브라질 공연을 고르겠다. 규모 큰 스테이지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진짜 팀이구나” 싶었던 공연이었기에.

 

올해 프리마베라라인업을 봤다. Interpol/Sun Kil Moon/Sleater-Kinney/Electric Wizard/The Black Keys/Thurston Moore 등이 있더라. , 해외 웹진/잡지에서만 보던 밴드랑 같은 무대에 서서 공연한 거 아닌가. 내가 다 뿌듯했다.

이: 같이 한다고는 해도 그 팀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시간대임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 게 흐뭇할 뿐이다. 대 밴드들에게 안 가고 왜 우리에게 올까, 그런 거에 감사하고 그랬다.

김: 우리 바로 다음 순서가 Sean Lennon 팀이었다. 공연 마치고 내려오는데, 먼저 아는 척 해주고 인사해주는 게 아닌가. 와, 매너 좋더라.

심: 공교롭게 그 팀은 ‘SXSW’ 때도 우리 뒤에서 연주했었다. 그런 것도 인연인가보다.

이: 포스터에 우리 이름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영상을 보면 유럽 팬들은 오리엔탈한 맛이 느껴지는 ‘Connection’에 열화와 같은 환호를 보내는 것 같다. 그 엄청난 길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그게 마지막 곡이라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그렇다. 그런데 아무래도 ‘뜨거움의 정도’는 ‘소멸의 시간’할 때가 최고다. 뮤직비디오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Connection’도 얼마 전 뮤직비디오가 나오지 않았나?

이: 찍을 계획은 없었는데, 홍대 시각디자인과 학생이 졸업작품으로 우리 곡을 해보고 싶다고 제의해 줘서 촬영하게 되었다.

심: 살짝 우리도 출연한다. 그 아이디어도 좋았고, 나중에 보니까 결과물도 잘 빠졌더라.

김: 월드뮤직 소개하는 모 사이트에서 그 MV가 죽 1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영상뿐만 아니라 잠비나이가 관련된 모든 영상엔 대개 외국인들이 댓글을 달고 있다. 케이팝 듣다가 잠비나이로 넘어온 친구들도 있다고 하더라.

김:  그중엔 아랍어나 러시아어 댓글도 있다. 뭐라 리플을 달고 싶은데, 해독이 안 된다.

 

해외 웹진에서 리뷰도 나왔다. 일례로 스푸트닉뮤직에선 4.5(superb)을 받았다. 평을 요약하면 새롭고 흥미로운 뭔가를 갈망하는 포스트락 팬에게 완벽한 음반이라고 적혀 있다.

김: 어떻게 알고 들었을까. 해외에 유통도 안 되었는데.

 

그런 반응들을 보면 울컥할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김형군 대표는 소회가 남다를 것이고.

김형군: 1번 트랙부터 끝까지 음반이 하나인 것처럼 매끈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믹싱을 비롯한 사운드 작업이 잘 되었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오지 않았을지.

 

악기 편성도 유니크하지만, 철저하게 이건 음악의 승리라고 본다.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어느 ‘포인트’를 잘 찌른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단순히 국악기로만 승부수를 띄웠다면 이런 결과가 안 나왔을 것이다. 순전히 “음악이 좋아서이뤄낸 결과가 아닌가? 이를테면 세르비아 뮤지션이 민속악기를 들고 공연한다고 다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김: 그렇다. 곡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이: 국악기를 썼다고 “잠비나이, 진정한 한류”, 그렇게 억지 애국심을 자극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어느 나라의 민속악기 공연을 보고 그게 와닿았다는 이유로, “아, 저 나라를 사랑할 것 같아”, 이런 건 좀 아니지 않나. 맞다. 음악이 이뤄낸 전과다.

 

나는 자꾸 한류로 엮으려는 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제대로 엮어준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 무임승차자도 많은 것 같고.

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엮어준다면 우리는 좋다.

김: 일우 말처럼 숟가락 얹어서 반찬이 많아진다면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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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락/포스트메탈/헤비니스/트레디셔널 메탈 등 분류하는 해외 팬들이 잠비나이를 분류하는 구획도 다양하다. 그렇게 다양하게 다뤄진다는 게 어떤가?

이: 오히려 한국에서 ‘퓨전국악’이라고 칭하는 것보단 마음에 든다. 어쨌든 전통악기를 쓰니 포크(folk)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고, 거기에 헤비한 사운드가 들어가니, “포크 메탈”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또 ‘포스트락’이라는 요소가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만약 우리가 다음에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품을 확장해간다면 더 많은 명칭이 따라 붙을 수 있겠지.

김형군: Sun O)))(미국의 드론메탈 밴드)처럼 그런 게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그런 장르구분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우리를 파악하는 것과 외국에서 우리를 파악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이 거론하는 밴드의 이름들도 다르고. 개인적으로는 해외에서 우리를 그렇게 분류해 주는 게  좋다. 내가 애착을 갖는 밴드들의 팬들에 어필을 잘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 그게 어떤 의미냐면, 내가 메인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장에 밴드가 잘 적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런 말도 나오는 거지. 예를 들어, 1차 투어 벨기에에서 공연 시작할 때 그 친구들이 제작한 광고문구엔  “Mono와 Melvins가 아이를 낳았다”고  적혀 있더라. 그런 거다. 그런 이미지가 필요하다.

 

어스비트의 제롬 윌리엄스와는 어떻게 계약하게 되었나?

김형군: 작년에 3년짜리 계약을 했다. 지금까지 트러블 한번 없었는데, 계약서 쓰기 1년 전부터 거의 ‘협업관계’로 있으면서 우리 일을 다 봐왔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서 계약서 없이 그 상태까지 왔다는 것에 둘 모두 신뢰를 가진 게 크다. 제작자 입장에서 볼 때 제롬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파트너다. 계약상에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언이나 서포트를 해주고 있는데, 이를테면, 나보다 더 빨리 접촉할 수 있는 레이블이 있다면 리퀘스트했을 때 선뜻 어레인지 해주고 하는 게 있다. 올해 가을투어에서 항공지원 문제가 터졌을 때도,  그 덕분에 Plan A를  빨리 포기하고 Plan B/Plan C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 자리가 특별한 자리는 아니겠지만, 김형군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건 누구라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우리 셋만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될 수 없었다. 공연자체를 못했을 것이다. 흔한 퓨전 밴드들처럼 1회성으로 끝나고 각자 개인의 삶을 살고 있었겠지. 형이 연주만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우리도 편안하게 무대에 설 수 있다. 형이 있어서 든든하기도 하고, 안도감도 들고 한다. 작년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주셨는데, 그게  ‘연주상’이라면 우리 공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형군 형을 위한 상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김: 해외 사람들과 굵직한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멤버들의 컨디션 같은 소소한 것들은 신경쓰기가 힘든 법이다. 그런데 오빠는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체크하고 배려한다. 심지어 작년 해외투어때는 여성 멤버들의 생리통 약까지 싸왔다. 깜짝 놀랐다. 건강 좀 잘 챙기셨으면.

심: 간추려서 말하자면, 우리가 인복이 많은 거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게 좋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처음부터 함께 성장했으니 끝까지 가족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문턱까지 왔다. 아무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이제, 두 단계만 더 올라가면, 월드와이드 레벨로 올라서게 된다. 이만큼 왔으니 당연히 욕심이 날 법하다.

김형군: 이제 돌아가기엔 늦었다. 앞으로 가야 한다. 뚫고 가든 넘어 가든. 그런데 탄탄하진 않다. 분명히 초청이 잘 들어오고 있고, 공연이 잘 잡히고 있고, 앨범에 대한 논의가 잘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수익구조가 되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국가기관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게 없어도 우리 혼자 생존이 가능한 단계까지 진입하기까지의 과정이 남아 있는 거다. 나는 무난히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여기까지 온 팀은 없다. 어떤 장르건 없다. 그 문을 여는 데 앞으로 한 3년에서 5년 걸릴 것 같다. 우린 시동도 걸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멈추면 더 힘들다. 그런데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국가기관이 한 아티스트에게 3~4년 올인해서 지원해 주는 게 좋게 보이진 않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뭐가 있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도 생기고. 하지만 이쯤 되면 우리는 열심히 했다고 자평할 만큼 해왔다고 생각한다. 계속 요청을 할 거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다음에 오는 분들의 행로와도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현될지는 모르겠으나, 민간자본도 일정 부분은 유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반기에는 어떤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는가? 살인적인 스케줄일 것으로 예측된다.

김형군: 9월에 독일 갔다가 영국 들르고 스페인으로 향한다. 그게 9월 스케줄이고, 10월에 프랑스에서 10회 공연한다. 프랑스의 10개 도시를 돌게 된다. 11월~12월엔 해외로는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그리고 별 탈이 없다면 내년 초에 2집을 릴리즈하게 된다. 지금 생각으로는 미국을 가고 싶은데, 확답하지는 못하겠다. 그 기간 내에 들어온 다른 오퍼들도 있기 때문이다. 고심하고 있다.

 

체력관리를 잘 해야겠다.

김: 디스크가 생겨서 허리가 좋지 않다. 운동을 했더니 더 심해졌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심: 평소에 몸 관리를 꾸준히 하는 편이다. 간 관리만 잘 하면 된다(웃음).

 

내년 초에 나오는 음반 이야기 귀띔 부탁한다. 송 셀렉션은 다 끝난 거 아닌가? 정식 인터뷰야 그때 다시 제의하겠지만, 어떤 곡들이 실리는지에 대해서만 잠깐 힌트를 달라.

이: 1집 ‘소멸의 시간’과 EP ‘나부락’의 중간 정도 느낌. ‘소멸’처럼 짧고 강한 사운드를 갖지만 ‘나부락’처럼 실험적인 요소가 덧붙여진 ‘다크한 포스트락’ 사운드가 나올 것이다. 포스트락하면 통상적으로 ‘이모셔널’할 것이라 추측하는데, 이번 음반은 좀 다를 것이다. 지금은 그 어둡고 무거운 쪽에 꽂혀 있다.

 

나는 여전히 잠비나이에게 국내시장이 유의미한 곳이라 생각한다. 어떤가?

이: 이번에 ‘펜타포트’와 ‘부산락페’를 나가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국내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게 아닐까? 그전까지 잠비나이는 락페를 나가지 못하는 팀이었는데, 결성 5년 만에 이렇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제 국내에서 그런 기회도 조금씩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은 이 두 페스티벌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 나 역시 한국에서 공연하는 게 좋다. 해외시장은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평가를 받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저 친구, 국내에서 안 되니까 나간 거 아냐?”, 이런 말은 듣기 싫다. 일단, 우리 부모님부터 돌려놔야 한다. “아니, 그렇게 주야장천 나가는데 왜 아는 사람이 없어(웃음)?”.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2 Comments on 잠비나이: 돌아가기엔 늦었다. 앞으로 간다

  1.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 잠비나이가 국악방송 라디오에 나왔었어요
    말을 조곤조곤 어찌나 잘하던지 음악 잘하니까 말도 잘하는구나(?)하며 ㅋㅋ
    지면 인터뷰도 엄청 좋네요 (질문이 좋은 듯!)
    평소 이들을 퓨전국악으로 가두는 것에 다소 답답한 불만 같은 것이 있었는데 역시 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요.
    전통 악기를 같이 썼지만 잠비나이의 뿌리는 록 아니겠습니까? 전통 악기를 썼기 때문에 포크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것 역시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해외를 돌며 공연하고 외국인의 아주 특별한 환호를 받는 것에 대해 이제는 좀 받아들이고 편해졌으면 합니다.
    뭐랄까 느낌이.. ‘우릴 이렇게 좋아해?’ ‘어쩌다 나가게 된 건데 사람들이 우릴 너무 대단하게 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음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축복받은 일인데 인디밴드로 시작해서 큰 빛을 보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위에 인터뷰에서도 보면
    해외 웹진에서 리뷰도 나왔다. 일례로 ‘스푸트닉뮤직’에선 4.5점(superb)을 받았다. 평을 요약하면 “새롭고 흥미로운 뭔가를 갈망하는 포스트락 팬에게 완벽한 음반”이라고 적혀 있다.

    김: 어떻게 알고 들었을까. 해외에 유통도 안 되었는데.

    이럴 때는 그냥 ‘우리가 유통도 안했는데 들으셨다니 넘 신기하다,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마다 어떻게 알고 들으셨을지 궁금하고, 보이지 않는 리스너들이 이렇게 많구나 신기하기도 하며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도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를 어떻게 알지? 우리가 좋은가? 라는 생각이 굳게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듣는 사람 입장에선 좋아서 그런건데..
    (댓글 쓰다보니 길어졌네여 ㅋㅋ 혹시 담에 또 인터뷰 하시게 되면 전해주세여 ㅋㅋ)

    하여튼 잘 읽었습니다, 잠비나이 짱~!

  2. 펜타포트에서 관객과 밴드가 서로 감동과 감격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네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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