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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을 들으며 이 밤의 비를 생각하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정태춘 – ‘아, 대한민국’

속세의 미련과 작별하듯 덤덤하고 소탈하게 노래하는 가수 정태춘. 그는 문학적인 울림과 내밀한 음유시인의 마음을 노래하는 곡들을 써내려간 포크 가수였다. 하지만 국가장치는 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지 않았다. 몇 곡의 노랫말을 바꿔야만 했으며, 공개할 수 없게 된 곡들도 있었다. 이에 분노를 느끼던 정태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제도에 대해 반기를 들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투쟁대상이었던 사전심의제도, 즉 검열제도란 1930년대 초반 일본 제국주의가 예술에 표현된 조선인들의 정서를 통제하고자 만들어진 ‘레코드 단속 규칙’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일제통치가 끝난 뒤에도 무려 60년 동안이나 이어지며 예술가들의 표현을 제약하고 속박해온 오랜 악습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수많은 영화와 음악, 문학에 ‘불건전, 퇴폐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으며 부분 삭제되거나, 수정되고, 혹은 판매와 대여, 유통이 전면금지되는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그의 작품 [아, 대한민국…] 역시 철퇴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 그는 음악인이 할 일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청자에게 털어놓거나 시대에 순순하게 순응하여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에게 예술의 목표는 표현되기 전에 먼저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예술가들의 긴 숙원이기도 했다. 그는 심의를 거부하고 테이프에 녹음된 자신의 새 음반을 합법적이지 않은 루트를 통해 유통시킨다.

정수라가 불러서 ‘국민가요’로 포장되었던 동명이곡 ‘아! 대한민국’의 가사와 대조해보면 정태춘이 이 곡에서 드러낸 저항성이 어느 정도로 날이 바짝 선 것이었는지가 명백해진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었던 어느 나라의 1980년대 버블경제를 잘 대변하는 노랫말. 유람선으로 상징되는 풍요와 평온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기실 비리와 유착, 수탈이라는 모래성 위에 건설된 누각의 다른 이름이었다. 권력이 자신의 음험함을 은폐하고 위장하는 가장 쉽고도 효율적인 방법은 주지하다시피 국민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를 살았던 모든 이들은 기억하겠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자의든 타의든 불러야만 했다.

정태춘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사람들도 존재했다.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큼은 작지 않았다. 정곡을 찌르는 가사와 냉철한 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비록 조금씩이었지만 그 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포크의 전통인 시대성을 정확히 잡아내 1970년대 이른바 생맥주와 통기타로 대변돼왔던 ‘희석된 포크 음악’의 기질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아, 대한민국…’은 ‘이제 모두가 정신을 차릴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노래가 발표된 지 어언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위대한 혁명가의 자세란 필경 자신의 몸체 안에 쓰였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미래에 요청하는 것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불렸던 ‘인터내셔널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노래가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본과 그것의 범역적 유동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현재에도 계속 유의미한 것처럼. ‘아, 대한민국…’이 남긴 꼬리는 마침내 1996년 11월 14일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전심의제 수정안’을 가결시키게 했고 며칠 후 폐지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자유’가 생성된 지금에 있어서도 이 노래는 죽 유효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하나의 답변을 구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제 정말 모두가 자유롭게,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는가? 감히 “그렇지 않다”고 노래는 우리에게 일갈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이 노래는 화석으로 남을 것을 아주 정중히, 하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거절하고 있다.

어떤 예술가의 눈은 자신을 돌아보고 그 시선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하며 궁극적으로 그 내부에 있는 균열과 부조리를 향해 나아간다. 예술가가 사회에서 배태되었다면 결국 그의 시선은 자신을 포함한 정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태춘은 ‘우산을 접고 시인의 마을에서 밤이 오는 소리를 들을테요’라고 말하는 소극적 사냥터지기가 아니었다. 그에게 현실은 여전히 ‘장마’이자 ‘비 오는 밤’이었고, 비가 그칠 때까지는 우산을 접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3년 후, 그와 아내가 함께 완성한 [92년 장마, 종로에서]로 직결되었으며, 몇 년 후, 예술인들과 그 작품의 향유자들이 얻어내게 된 커다란 성과는 바로 이 작품들로부터 기인했음을 세월은 똑똑히 증언한다.

그렇다면 ‘아, 대한민국…’의 행간으로부터 아직 읽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류’의 후끈한 무드에 잠식되어 버린 이 축제 열기의 이면에 은닉중인, 어쩌면 모두가 알면서도 기꺼이 보지 않으려고 하는 진실들이 아닐까. 그 진실과 대면하는 것은 두렵고 서늘하기까지 한 작업이지만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문화산업의 주체들이 깨달을 시기다. 아직 비는 멈추지 않는다.

* 비 퍼붓는 월요일. 이 노래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고대대학원신문’에 연재했던 한 칼럼을 수정하고 보완해 실었습니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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