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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게 아닌 차별화된, 남다른, 개성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회 은상 수상자.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했을 당대 최고의 개성을 뽐내던 목소리의 주인공. 당시에 여성으로서 흔치 않았던 전곡을 작사, 작곡했던 싱어 송 라이터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뮤지션. 그녀가 돌아왔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암암리에 기다리고 있는 팬 분들을 위해, 음악계에 새로운 길을 펼쳐나갈 그 뮤지션의 프리퀄을 공개한다.

정혜선 인터뷰
장소 : 갤러리아 백화점 테이스팅룸
시간 : 20170606
정리 : 현지운

 

음악이 꿈 이였는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레드 제플린(Led Zepplin)부터 시작해 아주 다양한 음악들을 들었다. 당시는 아주 보수적인 집안이 아니더라도 여자애가 가수의 꿈을 갖는다는 건 흔치 않은 상황 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엔 ‘영국 같은데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록커가 되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음악만 듣다가 대학엘 갔다. 그런데 원하는 과가 아니 여서 “계속 다녀야 하나?”란 회의를 품고 다녔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학교를 걸어가는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작사, 작곡, 연주를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뭔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주 맘에 들었다. 참가하기로 맘 먹은 후에 부랴부랴 기타를 사고 한 달 만에 코드를 외우고 곡을 만들었다. 출전곡인 ‘나의 하늘’은 3번째로 만든 곡인 것 같다. 창작곡이 든 카세트테이프를 내는 예선 과정을 통과하고 본선에 나갔다.

1집 발매에 관해

상을 받고 대회와는 거기서 끝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심사위원으로 있던 조동진 선배가 앨범 한 번 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곡이 없으니 한 달 정도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한 달 만에 1집의 곡을 다 만들었다. 완성된 곡을 들고 갈 때는 다시 만들라는 주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 했는데 막상 다 좋다고,  내가 만든 대로 하라고 해서 일사천리로 녹음이 진행됐다. 제작은 유재하 음반을 제작했던 조원익. 디렉팅은 조동진, 모든 곡의 편곡은 조동익이 했다. 그 외에도 장필순, 손진태, 함춘호, 김영석 등이 참여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앨범을 만들 때 워낙 쟁쟁한 분들이 붙으셔서 그쪽에서는 굉장한 이슈였던 것 같다. “어떤 분은 조동진이 널 발탁했다는 건 굉장한 거다. 인생에 온다는 3번의 기회 중 한 번을 쓴 거다”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암튼 녹음할 때 난다 긴다 하는 선배님들이 많이 구경하러 오셨다. 녹음실도 20프로(60시간) 밖에 쓰지도 않아서 제작비가 많이 절감 돼 회식도 많이 하고 아주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녹음은 아주 신나서 즐겁게 했는데 음반이 나오고 나서 조원익씨가 “네 음악은 아주 맘에 드는데 한 15년은 앞선 음악이라서 대중적으로는 망할 것 같다”고 하셨다. 당시 기자, 프로듀서 등은 모두들 음반이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했는데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당시 여자가수의 이미지는 강수지류나 포크 가수들이 대세여서 록 적인 성향이 있는 음악을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컬 때문에 이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기대를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다. 부모님에게 알린 것도 1집을 계약하면서였으니…

1집을 아직도 음원시장에서는 들을 수가 없는데?

1집의 판권을 그 동안 다른 분이 가지고 계셨다. 당시 나는 계약만 한 상황 이였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지인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되었다. 결국 누가 가지고 있는지 수소문해서 다시 되사왔다. 조만간 들을 수 있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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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에 관해…

1집이 잘 안 돼서 그냥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진작가인 김중만씨에게 전화가 왔다. 저는 모델이 아니라고 했더니 하나기획에서 하던 콘서트를 보고는 연락하는 거라며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만나고 보니 제 음반을 제작해주겠다는 얘기였다. 공연에서 나를 보고 아주 특별한 가수로 여겼던 것 같다. 1장을 계약하고 계약금을 받았고 부인인 이인혜씨가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도와주셨다. 2집도 1집처럼 제안을 받은 후에 바로 곡들을 만들었다. 낯선사람들의 고찬용이 편곡을 다 했고 정말 신나게 녹음했다. 그런데 앨범을 다 녹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분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생기고 말았다. 또 외국으로 가셔야 해서 앨범 홍보를 할 수도 없었다. 방송국에 돌린 홍보용 앨범 빼고는 발매조차 되지 않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완전히 다운 되고 말았다. “난 음악 할 팔자가 아닌가보다”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에만 신경 쓰게 되었다.

1집과 2집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

2집에선 1집의 ‘오, 왠지’나 ‘나의 하루’같은 샤우트보다는 ‘꿈속의 꿈’의 후렴구 같이 플라잉 창법같은 걸 사용했다. 모든 록커들이 다 지르는 쪽으로 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도 이전과 좀 달라서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발매가 안 되었어도 ‘꿈속의 꿈’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는데?

아마 방송용 CD가 풀려서 그런 것 같다. 라디오에서도 간간히 나왔다고도 한다. 그 때문에 알려져서 천리안 선정 ‘우리가 죽기 전에 꼭 들어야할 가요 100곡’에도 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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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오래 쉰 이유와 다시 음악을 하게 된 이유에 관해

쉰 이유는… 결혼 후에 가정과 아이에 올인 해서 그렇다. 하지만 음악을 멀리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언젠간 해야지”하는 생각은 계속 있었다. 사실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의 80%는 팬들 때문이다. 소수지만 너무너무 감사하다. 끊임없이 왜 나오지 않느냐는 요청을 하고 찾아다니는 거 보면 더욱 그렇다. 성공한 가수도 아니고 20년이나 쉬었는데 이렇게 기다려주는 가수가 몇이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제 음악이 뭐라고 접하기 힘들게 만든 상황도 미안하다. 앞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게 보답하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20% 정도는 개인적인 것이다. 이제는 자아실현을 해야겠다는.

프로듀서들을 소개하면?

큐리어스란 친구는 어린 친군데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은 그 친구의 도움이 컸다. 앨범을 빨리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해주었다. 편곡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더니 잘 통해서 감각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부스터란 친구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고 편곡을 기대보다 훨씬 잘해와 깜짝 놀랐다.

새로 앨범을 녹음한 소감은

이전에 노래방을 다닌 것도 아니고 발성연습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녹음하기 전에는 여전히 내 목소리가 올라갈까 두려웠다. 그런데 4~5곡정도 부르고 나니까 다시 예전의 발성이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같은 2집이라도 예전과는 곡 해석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느낌이나 창법도 바뀌었고.

마스터링에 관해

손수 인터넷을 뒤져서 찾았다. 스털링사운드라고, 지금 빌보드를 장악하고 있는 뮤지션들과 작업한,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곳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여러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가령 숀 멘데스(Shawn Mendes)나 리한나(Rihanna) 등과 작업했던 크리스 게링어(Chris Gehringer) 라는 분을 골랐다. 소리가 잘 나와서 비쌀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비싸지 않다.

2집의 곡들 중 몇 곡만 추렸는데?

2집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1집은 발매라도 됐는데 2집은 완전히 묻혀버려서 그런 것 같다. ‘꿈속의 꿈’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 이 곡만큼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우리 땐 모두 정규 앨범으로만 제작했는데 요즘은 EP와 싱글이 대세여서 나름대로 절충을 한 거다. 요즘은 싱글 하나 올리고 반응이 없으면 바로 버리고 가는 것 같은데 나까지 꼭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곡 수는 적지만 퀄리티를 높였기에 한 번 반응이 없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꿈속의 꿈’의 대상에 관해

남녀의 사랑에 관한 노래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오, 왠지’도 그렇고 음악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음악계로 다시 돌아온 걸 보니) 그때도 뭔가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너를 버리고 떠나더라도 언젠간 네 곁으로 올 거라는 느낌. ‘나의 하늘’도 음악에 관한 곡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어려서부터 버티는 힘을 준 건 음악 이였다. 가수가 된다거나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사춘기 이후로 친구처럼 제일 의지하는 건 음악 이였고 그 중에서도 록 이였다. 음악은 나에게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꿈속의 꿈’ 뮤직비디오에 관해

지금은 SNS시대라 홍보를 위해선 뮤직비디오가  필수라고 느꼈다. 그래서 괜찮게 만들고 싶었고. 지인에게 감독님을 소개받았는데 너무 순수하시고 좋은 분이셨다. 그래서 곡을 들어보시고 솔직하게 맘에 들면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다행히 OK하셔서 맡기게 되었다. 함께 회의는 몇 번 했는데 전적으로 감독님의 주도하에 섭외와 촬영, 시나리오 등이 완성되었다. 내용은… 주인공의 꿈이 실현되는 그런 거다.

작업 전반을 푸른곰팡이와 함께한 건지?

그건 아니고 유통만 맡긴 거다. 제작은 내가 했다. 제작비는 물론이고 녹음 스케줄, 프로듀서와 세션 섭외 등을 모두 나 혼자 했다. 좀 힘들기도 했는데 우발적으로 갑자기 시작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다음 계획은?

일단 가을, 겨울에 싱글을 몇 곡 내고 그 것들을 묶어서 앨범을 낼까 생각중이다. 2주 전에 만든 곡이 있는데 만들고 보니 듀엣곡이여서 같이 작업할 상대를 물색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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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카프카, 하루키 등의 말을 섞어서 표현하자면 어떤 한 길을 미련 없이 쭉 가지 못하고 항상 뒤돌아보고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며 힘껏 앞으로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달려 나가다가도 마치 새총처럼 다시 한계점을 이기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시간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무려 철학도이니 재밌는 걸, 행복한 걸 참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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