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Articles

제리 케이(Jerry.K) – 감정노동

문화의 머리말, 사회의 맺음말

한 마디로, 필자의 귀에 소박한 파동을 일으킨다. 꼭 대단히 거시적으로만 시사적이어야 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 감정은 정신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인데, 그런 감정이 노동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경우에 따라 훼손되어야 한다는 건 큰 치욕이다. 자기 신념에 따라서 소신 있는 가사로 사회, 사람, 자아, 일상 등을 만만치 않게 표현해 온 래퍼 제리 케이(Jerry.K)의 정규 네 번째 앨범 [감정노동]은 이채로운 시도와 변주(#Mictwitter, 축지법), 그리고 한 명의 프로듀서(험버트(Humbert)가 이끈 일관성 있고 유연한 흐름으로 하여금 ‘타자와 일상’을 탐색하고 있는 출중한 작품이다. 이성에 기름을 붓는다기 보다는, 차라리 감성의 파고를 가늠하는 듯 전반적인 멜로디 라인은 전개가 매우 유연하다. 그럼에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변박과 변주를 통해 앨범의 전반부에서 (날카로운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일 지는 몰라도) 일면 긴장감을 조성함과 동시에, 타이틀곡 ‘콜센터’에 이르기까지의 구간을 매우 유연하게 꾸림으로써(그런 맥락에서 둔탁하게 몰아치는 드럼 구간과 제리 케이의 격앙된 듯한, 상당히 호전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Louder’는 중,후반부의 곡들 중 상당히 눈에 띄는 변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신념이 서려 있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미 곡에서 대놓고 드러나는 경우도 왕왕 보이듯, 제리 케이가 포착하고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깊이도, 범위도 넓다. 문화적으로 왜곡된 이면에 ‘성공’이란 미명을 내세워 힙합의 대중화(?)를 제대로 선동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뼈 있는 비판의식(축지법, 모두의 마이크 Skit, Studio Gangstas)을 위시하여,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로 표상되는 사유와 소통체계에 대한, 흥미로운 표현과 접근성이 돋보이는 시사적 감각(#MicTwitter), 성(젠더)과 사회에 얽혀 있는 (어찌 보면 논쟁적이라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모종의 불온한 이해관계에 대한 제리 케이 개인의 사유(You’re Not A Man, 콜센터)에 이르기까지, 문제적인 사회가 드러내고 있는 무언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제리 케이는, 비록 상투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힙합 신에서 개인의 양심을 허울 없이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MC라고 할 수 있다.

 

앨범의 외연적인 구성도 사뭇 남다르다. ‘No’라는 불온 명사로 시작해 ‘No’라는 불균형의 사태로 끝을 맺는(‘No Role Models’와 ‘No More Heroes’) 대목은 동경했던 존재의 소멸과 함께, 주체성이 상실된 채 본작이 상정하고 있는 상징 그대로 ‘감정노동’의 고리에 얽매여 있고, 왕년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허울뿐인 역할 모델들의 껍질을 까발리는 ‘껍질의 파괴’에 해당한다. 부정적 논조가 가득한 랩을 통한 논증은, 아무도 아니라고 말 못 하는 머뭇거림에 분명한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어두운 느낌의 긴급한 멜로디 루프와 붐뱁의 조합으로 시작부터 작정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No Role Models’는 직설과 은유의 혼종이다. 신에서 젊은 피이자, 뜨거운 호흡기로 떠오르고 있는 나플라(Nafla)와 루피(Loopy)의 재치 넘치는 박자 운용이 주는 중독성은,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의 실력자들인 던 말릭(Don Malik)과 슬릭(Sleeq)의 깊은 가사에서 전해지는 촌철살인에서 이윽고 단번에 청각적 파열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의 역할 모델도, ‘영웅’으로 여겨졌던 이들의 존재가치도 없는 이 신을 계속해서 꼬집는 제리 케이는 졸지에 몇몇 직언(?)으로 말미암은 일련의 논쟁과 사건을 통해 신의 ‘모난 돌’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No More Heroes’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들 다 버린 그건 절대 안 버린’다고 했던 ‘그것’이란 MC로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본인의 신념을 의미할 것이다.(이것은 아티스트 본인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매한 속칭 2.5집 앨범 [Dope Dyed]의 ‘Fire’라는 곡에서 ‘정치적인 얘길 할 뿐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던 대목과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 신념을 앨범의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에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본작이 표방하는 가치가, 위에서 언급했듯 꼭 거시적 담론(사회적 쟁점과 예민한 논쟁거리 등과 같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장 육성을 스킷(Skit)으로 담은 부분 역시 그러하다. 힙합이라는 문화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명확히 비판적인 스탠스(Stance)를 취하는 제리 케이의 태도가 이른바 ‘소신’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역시, 너무나 기형적으로 탈바꿈된 문화적 토양(?)의 암울한 단면을 비추는 부분이다. 두 트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줄이겠으나, 결론적으로 본작의 시작과 끝의 트랙 배치는 마치 정치적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현명한 탁견에서 비롯된 의제 설정(Agenda-Setting)을 통해 문제점을 도출시키는 정황을 빼닮아 있다.

 

본인의 생각을 토대로 계속해서 달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기립박수’는 상승한 제리 케이의 랩 톤 만큼이나 진취적이며 경쾌한 신스 사운드가 정점 이전의 절제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우렁찬 목소리를 통해 사회 전반에 깔린 문제 의식을 전복하자는 시사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Louder’는 주지했듯, 멜로디보다 험버트의 빈틈 없는 강력한 드럼 라인이 강조되어 요동치고 있다. 구조가 뚜렷치 않은 불온성은 응당 찌그러진 체제의 이미지를 분쇄시켜야 마땅하다.

 

선공개된, 2집 [True Self]의 수록곡 ‘You’re Not A Lady’의 스핀 오프(Spin-Off)격인 ‘You’re Not A Man’과 더불어, 본작의 타이틀인 ‘콜센터’야말로 본작에서 어떤 트랙들보다도 (음악 외적으로) 더욱 조명되는 곡들이 아닌가 싶다. ‘남자’라는 성적 정체성을 은근하게, 혹은 지나치게 과도한 방식으로 긍정하며 그 성적 굴레 안에서 생활하도록 강요받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제리 케이가 건네는 조언이란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얽매이지 말라’는 한 마디이다. 그러나 그 불특정 다수의 성향이 어떻게 판단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좀 더 심화된다. ‘넌 기집애 같다’는 말을 듣고 발끈하는 1절의 주인공 남자는 소위 가부장의 전형인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남자다워야 한다’는 마초적인 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성과의 성관계 횟수를 둘러싼 친구와의 논쟁 섞인 대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멀끔한 청년의 이미지에 해당하는 2절의 주인공 남자에게는 첫 번째 남자와는 사뭇 다른 맥락에서 비춰지는 ‘마초’로서의 정체성이 일방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두 존재의 공통분모는 성에 대한 인식을 분리함으로써 스스로 남자‘다워’야 한다는, 자/타성에 찌들은 강박증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젠더 흑백 논리를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허물려는 제리 케이와 보컬 리코(Rico)의 시도를 높이 살 수 있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어쩌면 순차적일 수 있을) 개인에서 사회로의 전환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인디 보컬 중 유난히 호흡이 긴 덤덤함에서 비롯되는 소녀 감성이 짙은 여성 보컬 우효의 참여가 곡에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는 ‘콜센터’ 역시 여성 문제와 함께 얽혀 있는 사회학적 개념인 ‘감정 노동’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냄으로써, 의도적인 ‘친절함’과 ‘웃음’이 감정을 판 노동의 대가(?)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웃음’으로 이어지는 일상이 습관화되어 있는 감정 노동자의 허무하고 처절한 현실을 짚고 있다. 제리 케이는 이 곡에서 이전 세대가 변두리 ‘공단’에서 겪어야 했던 육체 노동의 역사적 맥락에서의 고통이 현 세대에 이르러서는 변두리와 중심부를 아우르는 어느 지역에든 꼭 존재하기 마련인 고객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철저히 영업적인 목적을 띤 웃음이 낳는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2절에서 지적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지점이 본작의 사회적 맥락에서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상처도 솔직한 눈물로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웃음으로 메말라 가는 감정 노동자의 초상을 청각적으로 보여주듯, 감성적인 곡선을 타고 흐르는 신스 멜로디조차 어쩐지 씁쓸함이 가득하다.

 

각자가 점하는 위치와 맥락에서 감정이란 것은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불가피한 정신적 작용이다. 그 와중에 삶이 변하듯, 감정 역시 가변성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한 인생의 테마를 지탱하고 있는 지렛대같은 트랙이 ‘Life Changes’라고 생각한다. 딥플로우(Deepflow)와 제리 케이는 각자의 인생이란 늘 어제를 둔 채 감정의 나침반과 함께 가는, 인생 자체가 목적인 하나의 도정일 수도 있다는 주제의식을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본작의 전 수록곡을 통해 살펴본 본작의 음악적 완성도는 제리 케이의 소신 있는 태도에 분명 버금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작을 말함에 있어, 또 떠올림에 있어 선행되어야 할 생각은, 본작은 감정의 밀도와 척도를 완고하게 속단했다기 보다는, 여러 주제에 걸친 세분화된 시선을 통해 아티스트 본인이 꾸준히 표방해 왔던 시사적인 감각을 또 한 번 담백하게 청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4 Stars (4 / 5)

 

About 허희필 (6 Articles)
이명의 풋내기 필자 허희필(본명 : 허승엽)이라고 합니다. 거르지 않는 문장을 고수하는 편이나, 실은 가장 따뜻한 문장이야말로 좀 더 비판적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글쓰기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