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Articles

줄리아드림: 연민과 외면, 불안이라는 키워드

juliadream4

 

누군가의 지적처럼, 불안, 공포, 위험. 이런 것들은 현재 사회를 규정짓는 키워드다. 그 불안과 공포가 특정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실체와 형상을 파악하기 힘든 대상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더 큰 파국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것들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던 밴드가 있다. 장르는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하지만, 그건 다 줄리아드림의 음악을 수식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준형(기타와 보컬), 염상훈(드럼), 손병규(베이스)가 답변해주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하는 것을 안 한 뮤지션이 줄리아드림이라는 밴드가 있으니 한번 보라고. 심지어 그땐 아직 싱글도 내기 전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

박준형: 2012년이었다. (염)상훈이랑은 2010년부터 밴드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쯤 모든 게 정리되고, 그 이후부터 이런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구상에 들어갔다. 베이시스트가 필요해서 베이시스트가 필요해서 2012년 초부터 계속 오디션을 봤는데(그때 우리가 추구하던 음악은 지금보다 좀 더 블루스 락 트리오의 형태에 가까웠다)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수소문만 한 채 연말까지 정체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상훈이가 (손)병규에게 연락을 했고, 함께 연주해본 다음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2년 겨울이었다. 그러다 셋이 합주를 처음 시작한 건 다음해 1월부터다. 4월에 공연을 시작해선 5월에 잠시 활동을 접게 되었는데, 그때 키보디스트를 구하고 있었다. 키보디스트가 들어온 후, 9월부터 12월까지는 4인조 체제의 틀을 유지했다. 그랬다가 2014년부터 다시 3인조로 돌아오게 된 거다.

 

밴드의 이름은 Pink Floyd(심지어 히트곡도 아닌) ‘It Would Be So Nice’B면 곡 이름이다. 특별히 그 곡의 제목을 따온 이유가 있나?

박준형: 그냥 그 어감이 좋았다. 보통 ‘줄리아’는 여자 이름이지 않나. ‘줄리아드림’ 하면 사람들이 이 팀은 여성스러운 음악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 음악이 그렇진 않다. 그런 극적인 대비 같은 걸 노렸다.

 

2014년 첫 싱글 [Lay It Down On Me]를 내면서 살짝 주목받게 된다. 그 길이나 구성이나 이 곡은 Pink Floyd‘Echoes’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땐 어느 정도 그런 음악에 경도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박준형: 초반부에 만들어놓았던 노래는 다분히 그런 성향이 있다. 그땐 밴드의 방향성을 정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런 음악이 나온 게 불가피했다고 본다. ‘가위’는 그 막차를 탄 노래고, 그때 썼던 곡 중 발표된 유일한 곡이다. 난 Pink Floyd의 ‘Echoes’를 참 좋아했다. 그 일부를 장난 식으로 합주해보다가, 아예 ‘우리 이 곡 좋아한다!’고 대놓고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게 그 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염상훈: 일종의 오마주라고 보면 된다.

박준형: 그땐 Pink Floyd 엄청 좋아했다. 지금은 많이 안 듣긴 하지만 말이다.

염상훈: 당시엔 완전 빠져 있었다.

 

[불안의 세계]를 냈다. 하하하. 2016년에 CD2장 피지컬이라니. 제작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갈 생각이었나?

박준형: 여러 가지 구상이 있었다. 그러다 나온 아이디어가, 긴 5트랙만으로 음반을 내는 거였다. 하나의 콘셉트에 대해 파트 1~5로 곡을 붙이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풀다가, 이걸 더 길게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더블 CD가 된 거지. 써둔 곡은 더 많았다. 19곡 정도가 있었는데, 3곡을 덜어냈고 최종적으로는 16곡이 실렸다. ‘성인의 이야기’와 ‘아이의 이야기’를 분리하고 싶다보니 2장의 CD가 필요했다.

염상훈: ‘콘셉트 음반’을 내고 싶긴 했다. 문제는 길이였는데, 당초 예상보다 조금 더 길어진 것 같긴 하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음반에 담했다. 그날의 경험이 얼마나 큰 충격을 가했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언제 그 사건을 콘셉트로 해야겠다고 정했는가?

박준형: 세월호를 노골적으로 담아낸 곳도 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게 처음인데, 지금까지 한 인터뷰에서는 그냥 “들리는 대로 들어 달라”라고 말했다. 그걸 읽고, 어떤 분은 “좀 선동적이지 않느냐”는 말도 하더라. 또 어떤 분은 “너무 세월호 이야기 아니냐?” 그러더라. 하지만, 우리가 녹여내고 싶었던 건 비단 세월호 사건 만은 아니다. 핵심 소재 중 하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로 따지면 한 60%는 다른 이야기다. 그게 논의되지 않아 조금은 아쉽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세대와 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부모와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 남자가 어떤 시대에 태어나는 바람에, 시대와 역사에 무지하게 될 수 있음을 생각해봤다. 그 주체는 어머니일수도 있고 아버지일 수도 있다. 순간,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좀 더 유연해지지 않았을까? 기억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연민이 들더라. 그건 세대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적(敵)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원의 세대’는 나와 싸우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담은 곡이다. 시위를 보면 전경과 대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싸워야 될 사람은 전경이 아니다. 그런데 왜 저들과 싸워야 하나. 우리와 가까운 대상으로 분노가 향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 첫 번째 키워드는 그렇게 ‘연민’이다. 그리고 두 번째 키워드는 ‘외면’이다. 그걸 드러내기 위해 필요했던 소재가 세월호다. 그건 부모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 역시 붕괴를 겪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불안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도 부연 부탁한다.

박준형: [불안의 세계]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데도 사연이 있다. 원래 음반을 내려고 했던 시기는 작년 초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몸이 많이 아팠고, 원치 않게 두세 달 쉬었다. 그렇게 길게 쉰 게 처음일 정도였으니. 그때 XX치킨이 홍대에서 쫓겨 나가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병원을 다녀오는 중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용역이 집기를 부수고 집주인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경찰이 용역을 감싸주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그걸 보며, 당사자들에게 저게 얼마나 오랜 상처가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30대인 우리의 삶을 돌아봤다. 열심히 일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다 밀려 나가게 되는 운명. 그런 모습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 긍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깨닫게 된 거다. 결국 불안이다. 불안하니까 싸우게 되고, 불안하니까 갈등하게 된다. 부모의 세대도 불안했고, 우리의 세대도 불안하다. ‘불안의 세대’가 되는 거다.

 

1CD앞선 이의 붕괴’, 2CD뒷선 이의 붕괴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준형: ‘앞선 이의 붕괴’는 말 그대로 부모 세대의 붕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이다. ‘피어라’ 같은 곡은 미쳐버린 부모에 대한 이야기고, ‘My Queen’은 전체 스토리를 말해 주는 곡이다. 그걸 어떻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거다. “예전에 여왕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내 아비가 있었는데,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대.” 곡들은 다 그런 식으로 쓰였다. 그러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미친 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주인공은 “저건 내 일이 아냐”라며 외면한다. 그러다 어른이 된다. 그때부터 ‘뒷선 이의 세대’가 시작되는 거다. 그때까지 주인공은 앞선 이를 타박하는 정도밖엔 해본 게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어른이 되었는데, 나의 친구, 형제, 세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거다. 그야말로 시대로부터 휩쓸려 나가게 되는 거다. 영원한 트라우마다. 그게 ‘두 번째 붕괴’다.

 

juliadream1

 

Pink Floyd에서도 각 멤버들의 역할은 달랐다. 설계를 하는 사람과 그걸 능숙한 연주로 풀어내는 사람이 따로 존재했다. 줄리아드림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팀인가?

염상훈: 곡마다 편차는 존재한다. 합주할 때도 뭘 짜서 맞춰보기보단, 즉흥연주를 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굳이 말하자면, 준형이가 메인이 되는 뼈대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긴 하다. 이를테면 ‘My Queen’ 같은 곡이 준형이가 가져온 기본 리프에 살을 붙여 음악을 확장시켜 나간 경우다. 어떤 곡은 아예 그런 것도 없이 즉흥연주로부터 탄생하기도 있다.

박준형: 우리는 ‘사이키델릭’이나 ‘프로그레시브’로 규정되길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가 곡을 작업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방법론과는 다르다. 프로그레시브 밴드는 즉흥연주보다는 이미 다 짜인 직물 안에서 연주를 한다(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단순하고 간결한 음악을 좋아한다. 잼을 하다가 곡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리프를 연주하다가 원 의도와 벗어났는데 그걸 살려 곡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결성 초기에는 아무래도 내가 주도해서 곡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상훈이는 그때 조력하는 입장에서 조언해주는 입장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밸런스가 잘 맞고 있다. 아,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 따로 곡을 만드는 공정이 분리되어 있다기보다는 멤버들이 한 몸체처럼 움직이면서 곡을 만드는 거다. 곡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그게 다 빠졌고, 7~80%의 곡이 음반 나오기 3~4달 전에 한꺼번에 탄생했다. 만약 우리가 균형감이 맞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다.

손병규: 멤버들 모두 리더를 신뢰하고, 리더도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상태다. 리더가 참 영리하다. 베이스나 드럼이 뭘 연주하든 영민하게 캐치해낸다. 내가 쳐놓고도 놓치는 부분들을 “야, 그거 참 좋다”면서 상기시켜주는 경우도 있다. 리더가 그렇게 해 주니까 나도 기타랑 맞춰보거나 그걸 가공해서 더 발전된 음악을 써낼 수 있는 거다.

염상훈: 곡의 이미지는 준형이가 그려온다. 그런데 연주를 어떻게 하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 상황을 그려주는 걸로 그친다. 그럼 처음엔 뭔 소리인가 싶다가도, 합주를 하면서 그 오차를 줄여 나간다.

박준형: “이건 바다야!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거야! 뒤에서 파도가 휩쓸려 와서 내가 죽는 거야.” ‘잊혀진 바닷가’에 얽힌 이야기다. 초반부엔 ‘파도’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고, 상상하는 ‘해일의 크기’도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합주하다보면 그 갭이 줄어드는 게 보인다. 그게 멤버에 대한 신뢰다.

가끔 트러블도 있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서로 다른 것 같다고 느낀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음반 작업하게 되고 열심히 합주하게 되면서, 멤버들이 연주하는 게 좋아지더라. ‘꿈속에 있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반복적인 베이스라인이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게 될 줄 모르고 기타 라인만 무작정 만들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서너 번 합을 맞춰보니 뚝딱 곡이 나오더라. 이제 서로 바라는 게 비슷해진 거다.

 

스튜디오 라이브를 내도 멋질 것 같다.

박준형: 늘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정규에 있는 곡을 묶어서 발매해도 좋을 것 같지만, 그보다 더 해보고 싶은 건 스튜디오 라이브다. 즉흥 라이브. 한 이틀 잡아서 연주한 다음에 들어보고 좋은 것만 추려서 내는 거지. 잼 연주 할 때도 좋은 라인들이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놓치는 게 너무 아깝더라. 그렇다고 매 합주를 녹음할 수도 없으니. 만약 즉흥 라이브 음반을 내게 되면 그런 것들에 대한 보상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좋을 것 같다.

 

이 재킷 이미지는 어디서 따온 건가?

박준형: 1900년도 초반에 목화를 수확하는 멕시코 노동자의 사진이다. 음악을 다 만들고, 찾았던 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음반의 키워드가 ‘불안’ 아닌가. 뭔가 역설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엔 조선시대 사진을 구하려고 했다. 그땐 사진기가 낯선 물품이었으니, 사람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태도는 인상을 쓰거나 밑도 끝도 없이 웃는 거였다. 고된 일을 하던 사람이 그렇게 해맑게 웃는 건 어떤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이 포착된 사진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엘 파소 대학교가 만든 ‘노동자들의 이미지’만 모아 놓은 사이트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이 이미지를 구하게 되었다. 우리가 쓰게 된 사진을 보면, 현실은 지극히 불안한데, 사람들은 웃고 있다.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마천루를 건설할 때 사진을 들여다보면, 100층도 넘는 철골에 앉은 노동자들이 웃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 이미지가 그와 가장 유사했다.

 

Pink Floyd는 당연할 것이고, 주로 어떤 밴드들을 들으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나?

박준형: 블루스락을 많이 들었다. Cream, Jimi Hendrix Experience 등등… 그래서 밴드 시작할 때는 하드한 3인조 트리오에 Pink Floyd가 가진 공간감을 담고 싶었다. 에너지에 공간감을 부가한 트리오 말이다. 그러다가 King Crimson도 카피해보고 연주해보고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거다.

손병규: 나는 Pink Floyd 음악을 줄리아드림에 들어오고 나서야 듣게 되었다. 그러다 같이 놀면서 합주하고, 음악 나눠 듣다가 그들의 음악이 좋아지게 된 케이스다. 예전 학교 다니던 때 선생님들이 “옛날 음악이 좋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무시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졸업하고 줄리아드림에 들어온 다음부터 그런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게 되었다.

염상훈: 지금은 제일 많이 듣는다.

손병규: 처음에는 Frank Zappa를 열심히 들었다. 그중에서도 [Hot Rats]를 너무 좋아한다. 예전 Zappa 음악 들어보면 ‘장난질’이 정말 많다. 일반적으로 베이시스트는 그런 걸 잘 안하는데, 줄리아드림 하고부터는 나도 그런 연주를 조금씩 하게 되었다. 음악이 아무래도 그런 걸 용인해주는 지점이 있다. 줄리아드림 가입하기 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박준형: 실은 Pink Floyd가 딜레마다. 가끔은 전혀 상관없이 만든 곡인데, 사람들이 Pink Floyd랑 닮았다고 말할 때도 있기 때문에… 너무 좋아하는 밴드지만, 처음에 접근할 때는 약간 장난도 있었다. 미발표 트랙엔 그런 장난들이 들어 있다. 그들의 소스를 한두 개 집어넣고, “이거, 알아차릴 수 있어?” 식으로 만들어본 곡들이다. ‘가위’도 그 일환이었지. 그런데 그 곡이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졸지에 우리 팬들도 거꾸로 Pink Floyd를 찾아 듣게 될 정도다. 아직 King Crimson까진 무리인 것 같지만 하하.

 

하다 보면 키보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나? (4인조인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박준형: 느낀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밸런스가 너무 좋기 때문에, 이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뮤지션이 많지는 않을 거 같다. 물론 끝내주는 연주자가 들어온다면 말이 달라지겠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한 것 같다. 아니면 다 다른 팀을 하고 있던가. 아, 또 하나. 키보디스트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게 꼭 득으로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다. 가령 ‘가위’는 키보드 연주자가 있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곡이었거든. 키보디스트 없이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을 준 계기이기도 했고. 아직은 우리 셋만 가지고도 좋다. 하지만 훌륭한 키보디스트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 달라(웃음).

 

자꾸 Pink Floyd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 박준형의 기타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David Gilmour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벤딩할 때 손버릇이나 연주의 질감 등에서 말이다.

박준형: 솔직히 말하면, David Glimour에선 영향을 별로 받은 바 없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받는 것도 이해는 간다. 기타 딜레이나 벤딩이나 그런 지점에서 교집합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보단 다른 기타리스트들로부터 물려받은 게 더 큰 것 같다. ‘피어라’ 뒷부분의 연주를 들으면 Gilmour 냄새가 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베스트 5를 뽑으면 그 안엔 Gilmour가 없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1 Comment on 줄리아드림: 연민과 외면, 불안이라는 키워드

  1. 읽으면서 네 분의 인터뷰 분위기가 그려졌어요 ^^ 프로들의 긴장…^^^
    중간에 사실 이런 이야기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하실 때 정말 마음이 동하셔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 것 같았어요 아마 인터뷰어에 대한 믿음 ^^ 예~~
    저는 박준형 님이 길모어 빠(ㅋㅋ)를 넘어 거의 길모어의 후예를 자청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마지막 말씀에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어요!
    아니면 너무나 너무나 좋아하셔서 완전히 완전히 내면화되어서 오히려 그 다음 기타리스트부터 영향을 받기 시작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조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는 것이 그의 정체성에 스크레치를 가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차피 우리는 각각 유일하니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