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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비: 뭔가가 편해진 상태. 그게 지금인 것 같아요.

좋은 앨범을 규정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 충족되는 기준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듣고 싶고, 잊힐 때쯤 손이 가는 음반이며, 대중음악사에서 작은 역할을 했다면, 분명 기억돼야 할 앨범일 것이다.

여성 듀오 허쉬(Hush)의 멤버이자 2002년 솔로로 활동한 쥬비의 첫 앨범 [The Phase Vol. 1]은 이 요건을 충족시킨다. 2002년 당시 시도 자체가 대단했던 ‘일렉트로닉 팝’에서 앨범의 사운드는 가장 앞서 있었고, 지금 들어도 최신 음악들과 비교해 부끄럽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니까.

그러나 이 작품을 만든 후 쥬비는 몇몇 드라마 O.S.T 참여 외에는 신곡을 내지 않았다. 무려 16년 동안이나. 그랬던 그가 한 달 만에 두 장의 싱글을 내며 공식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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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이다.
너무 하고 싶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사실 (Shine on me의)가사를 꼭 그렇게 쓰려던 건 아닌데, 어떻게 제 마음이 그랬나 봐요. 음악이 저한테는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손을 놓고, 클럽을 운영하면서 라이브 연주를 했지만 뭔가가 완벽하지 않다는 느낌?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뭐 잘 되는, 그런 욕심은 없어요. 음악을 음원 사이트에 올려서 사람들이 듣게 하는 게 관권인데 그냥 어떤 사람이 들어서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그걸 들으면서 행복해 줬으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에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 키우는 데 집중하고. 또 그것도 다른 행복이었어요. 그런데 이거는 어떻게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음악 하는 것과 아이 키우는 것은. 정말 비교가 안 되고, 음악은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간을 못 잡은 거죠. 지금에 와서 제가 좀 더 나이 들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이라도 시작해서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까.
네, 뭔가가 저에게는 편해진 상태. 그게 지금인 것 같고, 3~4달에 한 번씩 계속 싱글을 낼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공개한 두 장의 싱글에서 아직 목소리를 들려주진 않았다.
‘Shine On Me’는 저희가 클럽을 관둘 때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요. 그때 담당 PD가 곡을 하나 써서 영상에 넣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후배들이 나눠서 노래에 다 참여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던 곡이에요. 연주곡 ‘Our Hopes’는 2009년도에 작업실에서 했던 것을 이번에 다시 녹음했어요. 선택의 기준은, 시간이 지나도 그다지 촌스럽게 들리지 않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서요. 다음에 공개될 싱글은 제 목소리가 들어갈 예정이에요. 지금 생각하고 써 놓은 곡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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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싱글들의 커버는 일상의 모습을 담았다.
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그냥 평소에 찍어 놓은 사진 중에 골랐어요. 아직 커버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음반에 대해서 욕심이 없거나 제 음악에 대해 가치를 안 두거나 하는 건 아닌데, 앨범 표지에 대해 ‘멋있게 찍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어요. 실용성, 약간 자연스러운 것. 그런 게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그런 작업을 하진 말자. 그렇게 안 해도 음악이 좋으면 되는 거지. 약간 그런 마음이 있어요.

허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멤버 일진이와 저는 예전부터 ‘빛과 소금’의 박성식 형님을 알고 있었던 사이였어요. 그러다 빛과 소금, 일진이, 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었죠. 이후 소속사에서 처음에는 코러스를 하시던 다른 분과 듀엣을 권했는데, 워낙 섹시 콘셉트를 원하다 보니 이렇게 가더라도 좀 음악적인 거 담아서 가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음악 하는 친구랑 같이하면 나을 것 같아서 일진이를 회사에 소개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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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ase Vol. 1]은 어떻게 만들어진 앨범인가.
‘사랑과 평화’와 ‘김종서’의 앨범을 제작했던 이선주 대표님이 데모를 달라고 하셨어요. 사랑과 평화의 [Love & Peace : The Endless Legend](2003)에 제 곡이 먼저 들어갔고, 이후 제 앨범도 해주시겠다고 해서 그렇게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이 대표님께 정말 감사하죠.

지금 들어도 세련된 일렉트로닉 팝이다.
일렉트로닉이라는 음악은 미국에서 살다 보니 그전에도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못 했어요. 그러다가 ‘W(Where the story ends)’팀과 작업을 같이하다 보니, 그분들은 그쪽으로 굉장히 심취하신 분들이잖아요. 잘하시고. 그래서 굉장히 흥미로웠죠. 어떻게 보면 저는 클래식 음악 전공하고 어쿠스틱한 사람인데 그거랑 이거랑 섞이니까 뭔가 매력적이니까요. 그래서 ‘같이 잘 해보자’ 하게 됐죠.

W는 어떻게 알게 됐나?
허쉬 활동 당시 동아 기획에 코나(Kona)가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 지나가면서 대기실에서 봤죠. 너무 좋은 사람들이에요. 심성이 정말 좋으시고요. 이번 싱글 마스터링도 녹음실을 새로 낸 W 멤버 김상훈 씨가 해줬어요.

지금 [The Phase Vol. 1]을 들으면 어떤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눈물이 좀 나요. 그게 뭐 음악이 아주 훌륭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에게는 그 값어치가 있으니까요.

앨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좀 아쉬웠다.
퍼포머로서 피아노 연주 무대는 어릴 적부터 했기에 너무 편한데요. 제가 노래를 부르면서 건반을 치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거든요. 그때 노래만 더 잘했더라도 사람들에게 반응이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계속했어요.

제작 과정이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전혀요. 이 대표님이 데드라인을 줬어요. 어느 기한까지 뽑아놔라. 그래서 [The Phase Vol. 1]은 이틀에 한 곡씩 썼어요. 오히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 소스 넣고 톤 바꾸고 하는 부분이 조금 느긋하게 걸렸죠. 마감이 빠듯했지만, 좋았어요. 루즈하지 않아서.

당시 일렉트로닉 편곡 작업은 어떻게 진행된 건가.
W 멤버 한재원 씨가 미디로 다 작업하셨어요. 엄청 빨랐어요. 톤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원하는 방향과 느낌을 말하면 그 톤으로 바로 몇 개 보여줘요. 그래서 선택하고 빼고 하는 방식이었죠. 지금만큼 미디 프로그램이 발전되지 않은 시절임에도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빨랐어요.

‘I love you song’은 앨범의 콘셉트와 가장 먼 노래였는데 타이틀곡이 됐다.
이 대표님의 결정으로요. 그리고 가사를 쓸 때 대표님이 배영준 씨께 대중들이 들었을 때 편안한 방향을 주문해주셨어요.

가사는 모두 배영준이 썼다.
그때는 저 자신이 가사 쓰는 것조차도 몰랐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대표님께 가사는 안 쓰는 거로 단호히 얘기했고, 배영준 씨가 저와 대화를 나누신 뒤 가사를 만드셔서 제가 부르는 방식이었어요.

이제 가사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
좋아하는 곡인데도 그 가사를 잘 안 들어요. 그 가사의 의미도 잘 모르고요. 그냥 주제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정도? 저는 들을 때 하모니나 코드 같은 것, 그런 것에 엄청나게 집중하기 때문에 항상 공연할 때나 방송할 때도 사람들은 악보를 놓지만 저는 가사를 놓았어요. 가사는 제 노래인데도 죽어도 못 외우겠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가사를 쓸 생각이에요. 제 마음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은 없다고 봐요. 그리고 후배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후배들에게 작사를 권유할 생각도 있어요.

[The Phase Vol. 1] 활동의 마지막 무대가 기억나는가.
앨범 낸 지 6개월 됐을 때, 서울대 강당에서 진행한 <수요예술무대>였어요. 신인들이 잘 안 나오는 무대라고 했는데 당시 PD님이 좋게 들어주셨는지 4번이나 나왔어요. 마지막 연주곡은 베이스. 드럼, 피아노 트리오로 나와서 했는데, 그 프로그램의 무대들은 모두 좋았어요.

활동 이후 홍대에서 운영한 JD Live Bar는 어떤 곳이었나.
그냥 음악 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노는 곳. 공연 좋았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음악 쪽 선배님들 많이 오셔서 좋아하시고. 팬분들이 지원도 많이 해주셨어요. 많이 힐링이 되셨나 봐요. 저는 공연장으로 생각했어요.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야 잘 됐는데. 그래서 버티고 버티고 하다가 잘 안됐어요.

최근 활약 중인 국내 뮤지션 중 가장 인상적인 후배는?
크러쉬(Crush)요. 마음에 열정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를 만나기 위해 버스킹 하는 모습과 상황을 보며, 그런 마음이 제 마음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의 음악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공백기 동안 축적한 곡이 많을 텐데, 당장 공개하기에 충분한 곡은 얼마나 모여 있나?
한 10곡은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 트랙 수라면 앨범에 대한 욕심은 없나?
그거까지는 조금.. 일단 싱글이라도 많이 내고. 아직은 딱 낸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낼 거예요.

무엇이 주저하게 만든 걸까. PR이 문제일까.
맞아요. 저도 후배가 가르쳐줘서 인스타그램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제가 지금 해봤자 사람들이 와서 보는 것 같지도 않고, 제가 오픈되거나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아는 후배들만 팔로잉하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어떻게 PR이 될까 하는 답답함도 좀 있어요. 그래서 유튜브에 라이브 영상을 찍어서 올려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안다. 후회는 없나?
제가 있을 당시만 해도 그렇게 한류라는 게 없었어요. 동양인이라 나서기 힘들었고요. 그리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갔기 때문에 애정도 있고요. 다시 돌아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단,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어서 떨어져 걱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저에게 용기를 주셨어요. ‘혼자 나가서도 너도 할 수 있어’. ‘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어떻게 보면 친구 같은 아버지셨죠. 그게 힘이 돼서 제가 나오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 음악을 만나게 된 계기는?
다섯 살 때 엄마가 피아노 치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치게 됐는데 음을 들으면 절대음감처럼 다 알아맞혔어요. 그래서 선생님과 어머님이 놀라셔서 계속 시켜주셨죠.

따로 작곡을 배울 계기가 있었나.
아뇨. 제가 비록 클래식 음악을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피아노를 치는, 그게 첫 작곡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작곡하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보통 음악 하는 분들이 카피라고 하죠. 뭘 들으면 똑같이 치는 것. 그런 걸 방송으로 들으면 그냥 악보 없이 쳤어요. 그러다 보니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느껴서 작업했던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궁금하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 Wind & Fire). 그분들의 앨범은 한 장의 앨범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아요. 그리고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오오하시 트리오(おおはしトリオ)두요.

 

About 이종민 (60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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