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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 내한공연

최고에게서 최악을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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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내용과 상관없이 진행만 따진다면 2018년 최악의 내한 공연일 것이다. 이 불행의 시작을 굳이 찾는다면 폭염부터 출발할 수 있다. ‘잠실 보조경기장’. 한여름 하늘이 뻥 뚫린 그곳에서 공연을 진행함에도 주최 측은 700mL 생수만 반입이 가능한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러다 행사 전날 부랴부랴 안내한 그늘막과 (병뚜껑 제거)생수 무제한 반입은 이 안타까운 상황을 예견하는 시발점이 됐으리라.

2018년 7월 30일 오후 8시 잠실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4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첫 내한공연은 입장부터 엉망이었다. 현재 공사 중인 주 경기장에서 스탠딩 구역과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선 뒤, 보조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은 ‘주 경기장’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활하지 못했다. 성인 인증을 받고 7시 45분쯤 주 경기장에 입장했음에도 2열로 맞춰 대기한 줄은 오프닝 영상을 놓치며 졸지에 지각자로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지연은 적지 않은 관객이 미리 줄을 섰음에도 첫 곡 ‘DNA’를 놓치게 했다. 8시 5분이 돼서도 주 경기장에선 입장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공연은 이와 상관없이 시작됐다. 이미 따로 러닝타임을 고지하지 않을 만큼 짧게 진행될 것이라 예상됐던 공연에서 소중한 오프닝을 날린 순간이다.

폭염을 대비한 주최 측의 생수도 기가 막혔다. 37도의 온도를 그대로 흡수한 생수는 받자마자 ‘온수’였다. 얼음 물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냉수를 기대한 이들에게 이번 생수는 그야말로 목이 타들어 가는 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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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만으로도 이미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에서 무대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음향 사고도 발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처음엔 무선 마이크가 연결이 안 되며 그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더니, 나중엔 목소리는 물론이고 밴드의 소리까지 모두 꺼지며 보조경기장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은 다급히 ‘켄드릭!’을 외치며 응원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1시간도 채우지 못한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마치 페스티벌의 한 무대를 보는 것처럼, 켄드릭은 쿨하게 떠났다. 서둘러 빠져나가는 관객들 사이에서 추가 ‘앙코르’의 외침을 들을 순 없었지만, 뮤지션이나 관객 모두 ‘앙코르’를 계속 외치기엔 서로가 너무나도 어색한 상황을 맞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순간이다.

스탠딩 S석 11만 원, R석 13만 원을 받은 이 공연은 2010년대 물가 기준으로 표를 팔았지만, 진행 수준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수많은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을 진행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그리고 하필 현재 퓰리처상까지 수상하며 뮤지션으로서 정상의 위치에 올라선 켄드릭 라마의 무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I will be back’을 외쳤지만 감히 다시 와 달라고 하기가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About 이종민 (60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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