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Articles

탁: VOICE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방식을 쓸까.

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탁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결과물이 짜릿한 감각을 전달한 것은 물론이며, 한국에서도 이토록 런치패드와 매시업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비록 제대 후 도전한 DJ 서바이벌 [헤드라이너]에선 1회 만에 탈락을 맞이했지만, 그러한 상황이 탁의 입지에 영향을 끼치진 못 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리믹스를 잘하는 이가 작곡도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그의 음악 감각이 다른 부분에서도 뛰어난 성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란 추측은 해볼 만하지만, 그간 내놓았던 결과물은 모두 한 분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곡을 쓰고 프로듀싱하는 역량은 엄밀히 다른 영역이기에, 이 부분에서 탁은 아직 검증을 마치지 않은 상태다.

2년의 훈련 기간을 거치고, 소속사까지 얻으며 공개한 첫 EP [VOICE]는 이토록 제한된 현실을 돌파하려는 듯, 작, 편곡을 홀로 소화해냈다. 음악가로서 첫 단추를 낀 셈인데, 문제는 수록된 다섯 곡 모두 그간의 창의성이 의심될 만큼, 너무나 뻔히 보이는 레퍼런스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평소 전자음악을 챙겨 들었다면, 이 앨범을 아무 정보 없이 들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뮤지션이 있을 것이다. 맞다. 러시아의 영웅 Zedd다. ‘VOICE’와 ‘Hurry Up’은 [Clarity](2012)와 [True Colors](2015)란 옷의 선을 비슷하게 복사해놨다. Zedd가 치열한 EDM 경쟁 안에서 우뚝 솟을 수 있었던 전략이 같은 색깔을 가지며 살짝 다른 문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Sky City’는 어떤가. ‘Hourglass (feat. LIZ)’의 브레이크 다운 후 등장한 초침 소리가 ‘Sky City’에서도 들린다. 이 정도면 참조 수준이 아니라 ‘Zedd처럼 가자’라는 식이다.

물론 Zedd의 진행 방식이 따로 특허를 받은 것도 아니고, 이러한 전개의 음악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기왕 같은 판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그 안에서 본인만의 시선을 제공했어야 할 것이다. 최소 곡에 쓰인 시퀀서들만큼이라도 새로운 구성으로 써야 하지 않나. 베이스는 물론이고 작은 효과들까지 노선이 겹치니, 따라 하는 수준으로만 들린다.

이쯤 되면 딱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이러한 구식 전략은 누가 주도하게 된 걸까?’. 앨범 크레디트 명단과 탁이 처한 상황을 조립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소속사와 프로듀서들은 ‘팔리는 전자음악’을 위해 잘 나갔던 방식을 권유하게 됐고, 초보 작곡가는 그 방향으로 따라갔을 뿐이다. 1990년대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영미권 음악을 빠르게 캐치하여 비슷한 모습으로 음악을 냈던 몇몇 소속사들의 낡은 방법, 그 자체다.

가장 실망스러운 건, 이러한 음악을 탁이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리믹스, 매시업 같은 한정된 분야라도,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기발하고 청량감 넘치는 편곡 아니었나. 편곡도 예술이고, 창작 활동이다. 누구보다 이런 부분을 잘 증명했던 이가, 작곡에 나서면서는 따라쟁이가 됐으니 그야말로 참담한 상황을 맞이한 순간이다. 그렇게 자신이 없었을까. 아니면 그토록 성공을 원했던 걸까. [VOICE]는 작곡가의 결여된 자신감과 한국 소속사의 대표적 악습이 만나 탄생한 태작이다.

(2 / 5)

 

About 이종민 (62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