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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했지만 피타입은 피타입

피타입이 ‘쇼 미 더 머니’에서 단 2회 만에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지난 3일 방송된 ‘쇼 미 더 머니’의 네 번째 시즌 2차 오디션에서 그는 네 팀의 프로듀서들에게 모두 ‘페일(Fail)’을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가사 실수를 두 번이나 한 탓이다.

2004년 [Heavy Bass]를 발표하며 데뷔한 그는 치밀한 라임 설계로 한국말로도 충분히 래핑의 멋과 맛을 살릴 수 있음을 증명해 온 한국 힙합의 거장 중 하나다. 그런 그가 대회 초반에 탈락했으니 시청자뿐만 아니라 경연 참가자, 프로듀서들에게도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 ‘파이널 디시전’에서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죽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피타입은 사전 인터뷰에서 프로그램 제작진의 힙합에 대한 무지함을 언급했다. 이어 ‘기왕 침 뱉을 거 나와서 뱉자’고 생각했다면서 집에 갈 땐 가더라도 할 얘기 독하게 하고 와야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독기를 품었다는 언질만 표했을 뿐, 두 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결심했던 독한 얘기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쇼 미 더 머니’는 매 시즌을 열 때마다 힙합 애호가나 뮤지션, 비평가들로부터 이런저런 지탄을 받아 왔다. 피타입은 여느 참가자들처럼 방송을 구름판 삼아 유명해지려고 나선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그 환경을 비판하기 위해 게임에 몸소 참가한 것이었다. 때문에 ‘쇼 미 더 머니’를 직접 경험하는 그가 무슨 말을 랩으로 전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경기에 뛰는 선수가 밝히는 비판을 보고 듣는 것이 물 건너가서 아쉽다.

라임 기술자로서의 위엄을 보여 주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피타입은 일반적으로 힙합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각운뿐만 아니라 요운으로도 압운의 범위를 확장했다. 무성음, 유성음을 감안한 체계적인 대응과 연결, 강세의 슬기로운 변주를 통해 한국어 래핑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라임을 맞추기 위해 뜬금없이 영어를 쑤셔 넣는 행위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숭고하다. 그의 래핑, 가사를 들으면 고민과 노력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다수의 힙합 마니아가 그의 래핑을 두고 구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자음악과 결합한 힙합이나 트랩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재빠르고 날카롭게 치는 듯한 래핑이 트렌드가 된지라 어린 음악팬들은 그렇게 여길 만하다. 때문에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섬세한 언어 구상, 이를 이용한 리듬감 강한 그만의 래핑으로 감동의 무대를 선사하지 못한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독자적인 어법이 경향과 보편적 기호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도 그가 풀어야 할 비가시적 숙제였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일찍 떨어진 것이 조금은 속 편한 일이기도 하다. 관객의 적선이 시작되는 본선 공연부터는 피타입 같은 인물이 호응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지금까지의 관례상 본선은 퍼포먼스가 튀는 사람, 젊고 비주얼이 좋은 사람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음악이 아닌 인기 투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타입이 본선 무대에 올라갔다면 이 이상한 쇼에서 굴욕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을 것이 뻔하다. 이제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탈락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경력 10년이 훌쩍 넘는 프로페셔널, 대선배이기에 본인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깊은 좌절에 빠지지는 않았다.

피타입은 6일 ‘쇼 미 더 머니’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싱글 ‘버드맨’을 발표했다. 도입부에서부터 자조 섞인 욕을 하며 쪽 팔리다고 말한다. 곡의 반주도, 래핑도 평소에 비해 톤이 내려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나인 건 안 변하잖아”라는 가사처럼 특유의 탄탄한 라임이 살아 있으며, 묵직하면서도 탄력적인 플로도 그대로다.

본인의 개인적 목표를 완수하지 못하고 트렌드보다 세공된 개성이 중요함을 시원하게 검증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쉽다. 그러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쓰라린 학습의 기억을 작품으로 승화하면서 장기를 유감없이 펼치는 모습에서 예술가가 지녀야 할 건강한 자세를 읽는다. 탈락했어도 피타입은 피타입이다.

About 한동윤 (27 Articles)
음악 듣고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툴툴거리지만 하루 대부분을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로또를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꾼다. 라면을 먹을 때 무척 행복하다.

1 Comment on 탈락했지만 피타입은 피타입

  1. 피타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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