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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키네코: 흐르는 정서와 그 배열에 주목해주면 좋겠다

 

트리키네코는 일렉트로니카/앰비언트/드림팝을 하는 최인정의 1인 프로젝트 이름이다. 4년 전 ‘다음뮤직’이 아직 콘텐츠를 제공하던 때 나는 그녀의 EP [꿈의 통로]에 대한 리뷰를 썼다. 아래 나오겠지만 아주 호의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계속 관심이 갔고, 웹서핑을 통해 그녀가 얼마 전 정규 1집 [모든 계절의 밤]을 내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음반이 쏟아지는 계절의 어느 한 구석에, 이런 괜찮은 음반이 하나 더 있다는 정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인터뷰는 합정역 모처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분당에서 멀리 이동해 피곤한 와중에 성실한 인터뷰를 해준 트리키네코에게 감사를 표한다.

 

4년 전 EP [꿈의 통로]에 대한 리뷰를 썼었다. 그때는 그렇게 좋은 평을 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이렇게 인터뷰까지 할 생각을 했으니, 내 생각이 바뀌긴 했나보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준비하던 팀들이 다 깨졌다. “나는 혼자 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솔로로 나왔는데, 우선 공연을 해야겠더라. 하지만 또 공연을 하려고 했더니 설 곳도 마땅치 않고 의외로 할 만한 데가 많이 없었다. 신청을 해도 바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공연을 조금씩 하면서 이번엔 EP보다는 좀 더 확장된 느낌의 음반을 정규로 내고 싶었다. EP 때는 보컬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그걸 해결하려면 프로듀서가 꼭 있어야겠다 싶었다. 작업을 같이하는 재미도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거다. 속옷밴드의 니나이안(박현민)을 프로듀서로 선택한 이유다. 오랜 지인이기도 하고, 음악으로 뭘 같이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끈이 있는 친구라 같이 하기로 하고, 일단 기타 편곡을 부탁하려고 했다. 곡을 죽 들려주고, “이중에서 네가 편곡하고 싶은 곡을 골라봐라” 했더니 니나이안이 “그냥 믹싱까지 내가 다 해야 될 것 같다”고 하더라.

 

당초 계획보다 판이 더 커진 거네?

그렇다. 점점 스케일이 커져서 나도 마지막에는 “정식으로 네가 프로듀서를 맡아라”라고 의뢰했다.

 

그럼 본인이 보기에 [꿈의 통로]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뭔가?

사운드적인 부분. [꿈의 통로] 때는 조바심에 서둘렀던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 보니 빨리 음반을 내고 활동하고 싶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하던 팀들이 하다가 멈추고 하다가 멈추고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음악한지도 나름 오래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준비하던 친구들은 다들 음반 잘 내고 열심히 하는데 나는 계속 불운이 겹치니까 초조함 비슷한 게 생겼다. 더 늦기 전에 내겠다는 마음이 강했던 거다. 그런 강박 때문에 뭔가 과욕이 앞섰던 음반이다.

 

프로듀서 말이 나온 김에 그 이야기를 앞으로 당겨 하자. 이번 음반이 확실히 좋아진 이유 중엔 프로듀서 니나이안의 공이 상당수 있다고 본다. 그가 사운드 통제를 잘 했기 때문에 더 매끈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특별히 주문했던 바가 있었나?

현민이가 했던 작업 중, 니나이안으로 냈던 [For a Little Cruise]를 잘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현민이에게 “나는 그 앨범이 마음에 들고, 네 음악과 내 음악 사이의 장점이 담긴 결과물을 하고자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큰 방향성을 설정해 두고 작업했다기보다, 곡 하나하나마다 이건 이런 식으면 한다는 식으로 스케치하며 구상해 나간 작품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의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지 않았나 한다.

 

보컬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락밴드 보컬을 했다. 바이브레이션 넣고 지르는 노래를 많이 했는데, 이게 어떤 때는 술술 나오다가도 몸이 좀 안 좋고 하면 삑사리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내 목소리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보컬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꿈의 통로]다. 그 작품은 누구와도 비슷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의욕이 과했다. 과도기적 음반이었다.

이번엔 발성을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소리 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소리, 편하게 낼 수 있는 소리 등을 계속 시도해 봤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 거다. 반응은 여러 가지다. 진가성 같은 소리도 나오고 하니까 그런 목소리가 그저 그런 분들은 “별로”라고 했고, “좋다”는 분도 있다. 평은 제각각인 것 같지만 확실한 건 이번에는 보컬 표현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앰비언트도 좋아하고 연주음악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음악을 들을 때도 나는 “보컬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왔다. 그걸 내가 불렀을 때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멋지게 들렸으면 하고 바란다. 목소리가 멋지게 들린다는 건 기교가 훌륭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건 톤이다. 허나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내가 낼 수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좋게 나올 수 있는 톤이 뭘까 숙고해 보고 그랬다. 느낌이 바뀌었다면 아마 그런 것 때문일 것이다.

 

전부터 죽 트리키네코 음악에서 보컬을 빼버리면 드림팝이나 앰비언트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크게 두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프로듀싱. 두 번째, 보컬과 음의 조화. 그게 잘 살아난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맞다. 그런 지점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주제는 “내가 하는 음악에 대해 보컬이 어울릴 건가?” 다시 EP로 돌아가보면, 내 기준에서는 괜찮게 나온 곡도 있지만 상당수의 곡들은 그렇지 못했다. ‘얼음공기’ 같은 곡은 공을 들이고 애착을 가졌던 곡인데, 보컬 처리나 그런 것들은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았던 곡이다.

이번 음엔 보컬 이펙트를 많이 넣었다. 노래를 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이펙팅이 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더 잘 묻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4년이라는 기간이 좀 긴 시간인 것 같다고 보지는 않았나?

2013년에 음반을 내고 싶어서, 레이블 5~6 곳에 데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연락 온 데가 딱 하나였다. 그것도 “음반을 내자”가 아니라 “우리가 OST 작업하고 있는데 한 곡 참여하지 않겠나. 드라마 OST인데 인디밴드 곡을 넣어보고 싶다”는 거였다. 하, 그런데 그것도 흐지부지되었고, 음반을 따로 하자는 말이 없어서 “그냥 내가 돈을 모아서 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다. 밴드 포맷도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잘 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밴드라는 게 공연을 할수록 고민이 더 많아지는 포맷이더라. 사운드는 뻔한데, 그게 과연 나에게 맞는 건가 싶었다. 내 보컬은 리얼 드럼이 있는 밴드 편성에서는 돌출되는 보컬이 아니었으니까.

악기를 하나씩 줄여보다가 결국 솔로로 회귀했다. 니나이안에게 연락했을 때가 그 즈음이었다. 이 친구가 대상을 좀 오래 들여다보는 스타일이다. 한 곡에 대해 깊이 골몰하고, 좋은 게 나올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멜로디라인만 남기고 다 해체했다가, 원래 버전이 나으면 다시 복구를 하거나 편곡을 추가하는 식이다. 그래서 시간이 꽤 걸렸다.

 

이번에는 조바심이 없었나?

그게 참 웃긴 게 처음에는 조바심이 있었는데, 한번 그래 보니까 이번엔 ‘잘’ 내야할 것 같더라.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계속 늦어져서 “올해를 넘겨야 하나?”는 말이 있었다. 이게 계획대로라면 올해 봄에 발매되었어야 하는 거였다. 그게 하염없이 미뤄진 거다. 봄이 여름이 되었고, 여름이 가을이 되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내년 초에 낼까?”싶을 만큼 갈 때까지 간 거다. “아,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고민해봤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보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앨범을 낸 이 상황에서도 아쉬운 게 없지는 않다. 보컬 녹음할 때 컨디션이 왔다갔다 한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내 자신이 허용 못할 수위는 아니어서 결심을 하게 된 거다.

 

[모든 계절의 밤]시간이 콘셉트다.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EP 내고 나서, 그 다음에 처음 만든 곡이 ‘모든 계절의 밤’이었다. 계절은 시간을 의미하고, 밤은 시간 중 가장 늦은 때를 말한다. 그 노래를 내고 나니까, ‘시간과 밤’을 테마로 잡아서 음반을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미 그런 테마로 써 둔 곡들도 몇 곡 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쓸쓸하고 우울한 음반이 나오게 된 거다. 2곡이 더 있었는데, 콘셉트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뺐다. 나는 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주의를 갖고 있는데, 넣지 말자는 결정은 현민이가 했고 지금은 그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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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가 이끄는 음반이지만, 예상 밖으로 건조한 음반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사막’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기도 했다. 감정선의 표출과 절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음악이란 생각이 드는데,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음악을 만들고 배치했는지.

곡을 쓰고 부르면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다. 감정선 처리가 힘들었다. 난 노래를 할 때 약간의 ‘감정과잉’이 있다.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이 없었다. “왜 이렇게 감정 없이 부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20대 때 그걸 고쳐보려고 하다 보니 또 너무 감정이 넘치게 가더라. 바이브레이션도 그렇고 많이 빼보려고 했는데, 이번에 그걸 다 빼지는 못했다. 좀 덤덤하게 불러보고 싶었거든. 가사도 그렇고 음도 그렇고 다 내면적이라 노래까지 흐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디렉팅봐주는 친구들도 “이거 감정이 너무 갔다”는 조언을 해주고 그래서 어느 정도 선을 지켜서 냈다.

 

쓸쓸함과 고독함이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다. 곡을 쓸 때 그런 정서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타고나길 안으로 파고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곡들을 쓸 때 보고 들었던 영화나 책이 다 어둡고 쓸쓸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더 로드’ 같은 영화. 세상의 종말과 절망에 대한 영화 아닌가. EP 낼 때는 ‘렛 미 인’을 봤었는데, 그 영화 또한 상처입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그런 것들이 무의식중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도 내면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 음악을 하면서 위안을 받았던 것도 있다.

예전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멀리까지 갔으니 그곳에서 곡을 좀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니까 “너무 덥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그런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정서의 나라였고, 결국 그곳에선 내 스타일의 곡을 단 하나도 쓰지 못했다. 그때 내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날씨든, 분위기든, 사건이든, 책과 영화든. 그런 게 다 복합적으로 내게 힘을 행사하는 것 같다.

 

몇 번을 되풀이해 들어봐도 [모든 계절의 밤]은 음반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그걸 전체적으로 감상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이 곡은 더 신경 써서 쓴 곡이니, 더 집중해서 들어주면 좋겠다 싶은 곡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흐름을 생각하고 만든 음반이다. 곡 배열 순서도 머리를 싸매고 고심했다. 바꾸고 바꾸다가 마지막에 정했다. 곡 순서가 나온 다음에는 현민이가 인트로나 끝나는 부분의 편곡을 만졌다. 더 섬세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음… 내가 좋아하는 곡은 두 번째 트랙 ‘One-way Trip to Mars’다. 모든 걸 버리고 지구를 떠나가고 싶은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을 가정하고 쓴 곡이다. 이걸 타이틀로 가려고 했는데, 마스터링이 끝나고 나니까 주변에서 ‘너의 음파’와 ‘모든 계절의 밤’ 믹싱이 잘 나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깝게 타이틀곡은 되지 못했는데, ‘너의 음파’도 참 괜찮은 곡이다. ‘삐뚤어진 마음’도 좋아한다(웃음). 공연할 때는 잘 되었는데, 음반을 내니 정작 이 곡을 언급하는 분은 많이 없더라. 심지어 “이런 가사의 곡을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 곡은 기존의 나를 좀 깨뜨려 주는 곡이라 마음에 든다. 다른 곡과 정서는 비슷하지만 트리키네코가 얌전하고 조곤조곤하기만 한 게 아니라, 생각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Maiko Dake에게 맡긴 재킷 역시 음반의 어조를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고딕메탈 CD보는 것 같기도 하고 멋지다. Dake 씨에겐 어떻게 요청하게 되었나?

음반 재킷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주변인들이 “네 사진으로 가라”고 하더라. 아… 내가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찍으면 몸이 굳는다. 그럴 바에는 일러스트를 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엔 Dake 씨에게 맡기려던 게 아니었고, 내가 평소 좋아하던 다른 작가분에게 부탁드렸는데 그분이 Dake 씨 전시회 소식을 리트윗해주었다. 그분의 그림 이미지과 함께 말이다. 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내가 평소 구상했던 것과 너무 비슷한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분의 이메일 주소로 곡을 보내드렸다. “저는 이러이러한 콘셉트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떠신지요?”라는 내용을 덧붙여서 말이다. 연락이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봤는데, 흔쾌히 “그렇게 하라”며 좋아하시더라. 그림 3점에 대한 허가를 받았고, 이번 음반에 넣을 수 있었다. 그분이 하던 전시회 제목이 ‘Silent House’였는데, 그 전시회 콘셉트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속 집에 언뜻언뜻 보이는  형체’에 대한 거다. 오일-파스텔로 작업한 다음, 일일이 지우개로 지우면서 완성한 그림이라고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Dake 님이 “한국의 트리키네코라는 음악과와 함께 이런 공동작업을 했다”고 글도 올려주셨더라. 기쁘고 감사했다.

 

공연에서 영상 활용을 하나?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음악이라 영상이 같이 들어가면 효과가 배가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한 적이 없는데, 이번 단독공연 때는 한 번 해봤다. 영화의 장면도 넣어보자고 해서, 내가 곡 쓸 때 봤던 ‘그래비티’, ‘멜랑콜리아’ 같은 영화들을 중간 중간 삽입 했다. 다행히 “음악과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더라. 기회가 되면 계속 그렇게 해보고 싶은데, 공간이 여의치 않다.

 

지금의 트리키네코 음악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밴드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팝음악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는 락/메탈 음악을 좋아했다. Bon Jovi나 Guns N’ Roses, Aerosmith 같은 음악 말이다. 그러다 Björk을 들으면서 취향이 많이 바뀌었다. 그녀의 초창기 음반들이 큰 충격을 줬고, “나도 저렇게 자유로운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장르가 무의미하지 않나. 여러 장르를 건드리는 뮤지션이고, 그런 점에서 나에게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그러다 Slowdive의 트리뷰트 음반 [Blue Skied an’ Clear]를 듣게 되었는데 굉장히 놀랐다. 오히려 Slowdive의 음반은 나중에 찾아 듣게 된 케이스니까. 그 음반을 보면 Lali Puna, Solvent, múm 등 전자음악하는 여러 뮤지션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내가 일렉트로니카에 빠지게 된 한 계기를 만들어준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인디락 그룹 Devics도 좋아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밴드가 Portishead다. 그들의 모든 음반을 사랑한다. 내가 트립합을 찾아 듣게 되고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팀이다. 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 나오는 가상의 가수 Lily Chou Chou의 음반 또한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다. [Blue Skied an’ Clear]는 사운드적 측면에서, Lily Chou Chou의 작품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여운이 오래 남았다.

 

피지컬 CD가 힘을 상실한 시대에, 여전히 공을 들이고 있다. 피지컬 음반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신경 쓴 곡 배열순서 이런 건 CD를 사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트랙과 트랙 사이의 간격과 흐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싱글도 한두 곡 내보긴 했는데, 그런 건 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더라. 그러면 굳이 CD를 플레이어에 걸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갖고 싶은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더라. 요새 Adele CD도 난리 아닌가. 누군가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피지컬을 얼마든지 팔 수 있다고 본다. 그게 LP든 CD든 그 형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말한 그 곡과 곡 사이 간격’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해 보자. 이거 트리키네코 음악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 아닌가?

그 문제 때문에 엔지니어 분과도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게 있다. 통상적으로는 적당히 2~3초 가량 간격을 두고 다음 트랙이 나오게 되는데, 프로듀서가 원한 건 간격 없이 노이즈가 서서히 사라졌다가 바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엔지니어 분이 “그건 좀 어렵다”고 하셔서, 그건 구현이 안 되었다. 하지만 최대한 그렇게 가보려고 했다. 이번 음반은 공간감이 중요한 부분이라 노이즈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노이즈들이 곡을 연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었다. 의도한 만큼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올해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 잘 들었던 신보는 뭔가?

최근 주변에 좋은 음반이 많이 나왔더라. 호와호도 좋았고. 아, 갑자기 머리가 하얗다. 이번 가을에 쏟아지듯 앨범이 발매되더라.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경쟁자가 늘어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나는 그걸 그런 구도로 보지 않는다. 도리어 이렇게 좋은 음반이 여럿 있으면 시너지가 생겨서 사람들이 음반을 한 번이라도 더 듣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수작들이 많이 나온 와중에도 내 음반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있다. 너무 고맙다. 아, FKA twigs의 EP [M3LL155X]를 잘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일렉트로니카, 넓게 보면 앰비언트 사운드라 볼 수 있다. 장르적으로는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그런 음악이 내게 “어울린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쪽으로 파보면 어떻겠냐”는 분도 계셨다. 워낙 관심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곡에 어울리는 것들을 더 찾아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런데 나는 장르와 관계없이 곡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누가 “장르가 뭐야?”고 물으면 막상 대답하기 힘들다. 모든 장르에 다 해당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모든 장르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드림팝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분류하는 드림팝에는 또 내 음악이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뮤지션을 좋아할 때도 특정 곡이나 음반을 좋아하지 그 사람의 음악 전체를 통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잘 마무리해서 보여드리고자 한다.

큰 범주에서 볼 때는 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만 “전 장르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지 않나. 듣는 청자 입장에서는 누군가 어느 정도의 구분을 해주는 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듣는 사람의 몫이겠지.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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