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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 우리는 성장했고, 고민도 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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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블로프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다”라고 거창하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만큼 팬 베이스도 탄탄해졌고, 공연장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싱글 ‘이럴 때가 아냐’를 매개로 멤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았다. 20에 밴드를 시작해 이제 30을 앞둔 멤버들. 예전보다 생각도 많아지고, 풀 숙제는 늘어났지만 그게 더 자신들을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그 긴 이야기는 인터뷰 본문으로 대신하겠다. 인터뷰는 홍대 모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오도함(보컬)과 박준철(베이스)이 답변해주었다.

 

잔다리때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공연 보고 온 사람이 “초만원”이었다고 하더. 그날 어땠나?

오: ‘와우북페스티벌’과 같이 했다.  ‘와우북페’ 때는 불특정 다수가 있는 관계로 약간 행사톤으로 했고, ‘잔다리’엔 우리 팬들이 올 가능성이 높아서 EP부터 1집에 있는 수록곡을 최대한 다양하게 연주하는 걸 목표로 했다. 그랬는데, 불행히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박: 오랜만에 공중캠프에서 했는데, 최근에 크기가 작은 클럽에서 공연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작은 곳에서 하면 열기가 확 전달되는데, 간만에 땀을 흠뻑 쏟을 정도로 열띤 공연을 했다. 좋았다. 관계자들은 안 온 것 같지만(웃음).

 

이럴 때가 아냐7월 단독공연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싱글을 겨냥하고 붙인 제목이었나?

박: 맞다. 그 공연은 우리가 작년  ‘상상마당 밴드 디스커버리’에 뽑혀서 할 수 있게 된 거다. 부상이 상상마당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와 라이브홀 대관권, 무료로 녹음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런데 그게 쓸 수 있는 기간이 7월 까지로 정해져 있더라. 그걸 확인한 순간, 급하게 준비를 해서 공연을 하게 된 거다. 녹음할 수 있는 권리란 상상마당 라이브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건데, 그곳 시설이 상당히 좋아서 뮤지션들은 그곳에서 정규음반을 녹음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곡이 그만큼 되어 있지 않아서 원래 있던 곡을 하나 편곡하고, 싱글 3곡을 녹음하고 왔다. 그 중 가장 완성도가 좋았던 디지털 싱글이 ‘이럴 때가 아냐’였던 거다.

오: 조속히 내놓고 싶었는데, 포스트-프로덕션 과정이 길어졌다.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프로필 사진도 찍고, 그 작업이 죽 이어지다 보니 10월 16일에나 발표할 수 있게 된 거다.

박: 친구들 중에는 이미 나온 줄 아는 녀석들도 있다(웃음).

오: 공연장에서 두어 번 불러 봤는데,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 “어, 다 알고 있네? 그렇구나. 잘 됐다”.

 

그럼 녹음이 완료된 건 정확히 언젠가?

박: 지난달(9월) 이다. 상상마당에서는 악기 파트만 녹음했는데, 그곳에서 다 하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함이 보컬을 뺀 다른 악기들만 레코딩했고, 그걸 봉천동에 있는 머쉬룸레코드에 들고 가서 보컬/ 코러스 부분을 녹음하고 믹싱/마스터링 작업을 한 거다. 파블로프에서 주로 사운드를 담당하는 친구가 기타리스트 류준인데, 그 친구가 굉장히 까다롭다. 보컬 녹음 2~3회, 믹싱 4~5회, 마스터링 2~3회 정도 다시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많이 늦어졌다.

 

그러고 보니, [26]에서는 장비도 스스로 제작하는 등 사운드에 유독 공을 들였다. 사운드에 대한 갈증이 어떤 밴드보다도 심한 것 같다. 작업이 길어진 건 계속 목이 말랐기 때문인가?

오: 그런 것도 없지 않다. 그렇기도 하고, 게으른 것도 있고.

박: 게으름 때문도 있는데, 사운드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1집 [26] 인터뷰에서 밝혔는지 모르겠지만, 곡에 들어간 기타 트랙도 한번에 딱 나온 게 아니라 수차례 녹음했다 지우고 그러기를 반복해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다음에 나올 작품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

 

특유의 댄스가 살아난 곡이다. 정규작 [26]과는 또 달라진 사운드다. 다시 여성들을 춤추게 하고 싶었나?

오: 이 곡은 준철이가 작곡했는데, 가사까지 받은 다음 이걸 어떻게 노래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중점을 두었던 건, 예전 락음악에서 드러났던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에너지를 가져가되 대중성을 잃지 말자는 거였다. ‘이럴 때가 아냐’는 특정한 구호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게 ‘각자의 구호’가 되기를 바랐다.

박: 처음 이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 나는 ‘서양음악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던 게, 모차르트나 그 옛날 유명했던 음악가들도 다 그 당시 상업적인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천재’의 반열에 올라선 그런 사람조차도 말이다. 그 글귀를 읽고 나서 ‘대중성’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26]이 20대 서울 남자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싶긴 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 우리 말만 털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건 그걸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듣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이번엔 리스너들이 노래를 자신의 상황에 이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곡을 써보게 된 거다. 방법론적으로도 예전의 우리가 1960, 70년대를 겨냥했다면 이번엔 1980, 90년대 쪽으로 올라와보고 싶었다. 당연히 레퍼런스가 되었던 음악이나 그런 것들도 달라졌다. 사운드도 변하고, 연주도 변했다.

오: 지인들에게 들려주니, “어떤 게 바뀌든 파블로프적인 노래라 좋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론 그 말이 큰 칭찬이었다.

 

“이미 늦어버린 걸 나도 알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심플한 후렴구의 반복을 통해 결국 청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곡이다. 방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가사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박: 특정한 가사를 써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고, “이럴 때가 아냐”라는 사비부분을 먼저 써 두었다. 그렇게 출발했다. 그 상태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파생되어 살이 붙게 된 거다. 내부에 거대한 담론이 들어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만나는 조그만 이야기들이 들어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직관적이고, 부분으로 나눠진 세상 같지만 실은 그게 다 통합되어 있다는 거다. 파편들을 조각조각 붙이고 붙여서 결국 곡이 나왔다. 연주 부분도 그런 식으로 작업되었는데, 하나의 콘셉트를 정해 두고 그에 어울리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악기 파트를 완결하게 된 거다. 들을 때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 상당히 신경쓴 곡이다.

 

앞으로 나오게 될 2집에 대한 힌트를 준다고 봐도 되는 건지.

박: ‘2집에 대한 힌트’라기보다는 ‘1집의 끝’ 정도로 해 두자. 1집에 있던 신나고 복고적이고 댄서블한 모든 요소가 다 녹아들어간 완전체 정도?

오: 자신 있게 권해드리는 곡이다(웃음).

박: 우리도 2집은 아직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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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을 내고도 시간이 좀 흘렀고, 이제 20대의 막바지에 왔다. 그 사이 생각이 좀 달라진 게 있나?

오: 노래를 더 신경 써야겠구나. 1집 공개할 때 나는 약간 과도기에 있었다.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좀 애매했다고 해야 할 거다. 미술을 겸업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음악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이제는 음악을 좀 진지하게 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더라. 그때부터 노래를 더 잘하는 방법이 뭐고 내 캐릭터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올 싱글들을 통해 그런 고민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박: 내 경우에 확실히 변한 건 태도다. 그전에는 락밴드하면 땀흘리고 멋있게 보이는 게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한테 나를 소개할 때도 “베이스치는 박준철입니다”가 아니라 “음악가”라고 하고 싶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전에는 우리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만 골라서 기타는 류준이 치고 베이스는 내가 치고, 드럼은 동원이가 치고, 그 리얼악기 소리만 써야 하고, 그런 밴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곡 하면서는 컴퓨터로 녹음한 소리도 넣었고, 드럼 소리를 트릭으로 빼서 그걸 컴퓨터로 작업하기도 했다. 베이스를 준이가 치기도 했고, 건반이나 통기타도 집어넣어 봤다. “우리는 밴드니까 무조건 기타-베이스-드럼으로 가야지!”,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 더 유연해진 거다. 좋은 음악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를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공연 때 재미있게 놀아야지’가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로 바뀐 거다.

 

정확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어(player)로서 자각이 좀 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

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밴드를 길게 하다 보니, “이걸 더 오래해도 좋을까?”라는 질문을 멤버 모두 자신에게 해보았던 거다. 만일 다른 멤버들이 “도함이를 데리고 우리 밴드 계속할 수 있을까?”, 자문했을 때 내가 노래가 부족하다고 여겼다면 그들은 기탄없이 그걸 내게 말해 왔다. 또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성장해왔던 거다. 만약 우리가 30에 시작해서 40이 되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10살 때 해서 20이 되었어도 달랐을 거고. 그런데 우리는 20에 발을 떼고 막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체력도 바뀌고 있고, 더 이상 EP에 수록된 곡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변화들을 서서히 수용하게 된 거다.

박: 오히려 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인드가 ‘플레이어’로서의 마인드에 가까웠다. 그저 “베이스를 잘 쳐야지”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으로부터는 좀 벗어나 있는 것 같다. 그땐 기타도 잘 못 치고 베이스만 칠 수 있었는데, 요샌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친다.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또 그렇게 넓히다 보니, 연주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다시 개인연습을 많이 한다. 파블로프엔 류준이라는 훌륭한 연주자가 있는데, 그 친구는 플레이어로서는 최고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했다면 지금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괜히 기타를 쳐가지고(웃음).

오: 맞다. 성격도 되게 예민하고 싸가지 없다(웃음).

박: 그 친구가 연주력으로 받쳐주는 게 있어서 더 곡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자각이 생긴 계기는 아까 언급한 음악이론공부였다. 서울대 음대에서 수업 3개를 한 번에 들었는데, 역사도 배우고 화성학도 배웠다.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전에 생각하던 음악관이 협소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오: 그 전까진 우리가 접했던 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거지. 이제는 더 넓게 볼 수 있는 거고.

 

그동안 거의 전업으로 음악을 해오지 않았나. 돌아보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어땠나.

오: 그게 우리가 음악을 오래해올 수 있었던 비기(祕技)였다. 이걸로 돈을 벌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길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만이 동력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원동력을 찾아야 할 시점이 왔다.

박: 돈이 중요한 동력이 될 수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야 우리도 좋고 회사도 좋을 거다. 그런데 씬 내부 밴드들이 예전보다 실력이 다 좋아졌다. 연주, 송라이팅, 콘셉트 모든 부분에서 다 그렇다. 그걸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각이 든다.

오: 주위 사람들이 다 잘하니까 열심히 안하면 안 놀아 주겠지.

 

그럼 그 괜찮은 밴드 중 , 이 친구는 특히 잘하네!” 싶던 아티스트가 있었나?

오: 라이프앤타임 1집 상당히 좋았다. DTSQ도 잘하는 것 같다.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하다. 동갑내기로서 뛰어나다 싶은 분은 하헌진 씨.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그리고 단편선과 선원들.

박: 단편선과 선원들은 점점 더 잘하는 것 같다. 보면 자극이 된다. 쟤도 잘하는데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웃음)?

오: 맞다. 진지하기만 한 바보가 아니라, 자기 에너지를 충분히 음악에 쏟으면서 잘하는 것 같다. 유머도 잃지 않고 있고. 그 친구가 인정해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잘하긴 잘한다(웃음). 역시 음악가는 음악을 잘 하고 볼 일이다.

 

이럴 때가 아냐1016일에 릴리즈된다. 17일에는 음원 발매 파티가 있는 것으로 안다. 게스트는 코가손인데, 본인들이 섭외한 건가?

박: 우리가 원해서 섭외했다. 친하지 않나. 알다시피 코가손의 멤버들이 얄개들, 서교그룹사운드, 포니의 멤버다. 2007년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라 친하기도 하고, 요새 주가가 확 오른 밴드이기도 하고… 그래서 요청을 했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오디션에는 다 떨어졌지만. 충격적인 건 ‘잔다리’에 신청했다가 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아,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챙겨야 되겠다” 싶었던 거다(웃음). 얼마전 ‘밴드 디스커버리’도 당연히 될 줄 알고 축하하러 갔는데 그 친구들 최종 명단에 없더라.

오: 평론가들이 코가손 안 좋아하는 거 아냐(웃음)?

박: 이제 공연을 막 몰아치면 안 되겠더라. 그럼 우리도 힘들고, 관객도 힘들어진다. 즐기려고 하는 건지 스포츠를 하는 건지 모호해지는 거지. 그런 편안한 분위기를 초반에 코가손이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장소는 오후 7시 스트레인지프룻이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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