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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시티: My Bloody Valentine에서 Mogwai로의 전환은 의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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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시티는 2015년 [Fuzzy Nation]이라는 타이틀의 EP를 공개한 포스트락/슈게이징 밴드이다. 본인들 스스로 Mogwai를 언급하는 것처럼, 묵직하고 헤비한 포스트락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그 정경이 제법 깊이가 있었다. 홍대 어느 커피샵에서 가진 1시간 가량의 기록이다. 현지운 필자가 질문지 작성과 인터뷰를 함께 했으며, 사진은 그가 찍은 것 중 일부이다. 라인업은 현진식(기타), 이봉규(기타), 조용우(베이스), 윤미라(드럼)이고, 이날 인터뷰에는 현진식, 조용우, 윤미라가 참여했다.

파울로시티는 무슨 의미인가?
현: 여러 가지 일을 해왔는데, 출판만화를 한 적이 있다. 파울로시티는 그 당시 내가 기획했던 만화 제목인데, 그 만화의 배경이 2020년경의 서울이다. 파울로시티란 미래 서울을 나타냈던 명칭이었던 거지. 새롭게 밴드를 결성하고 갑자기 이 이름이 떠올라 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개인적으론 안 내켰다. 밴드명에 ‘시티’가 들어가는 게 싫었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포스트락스럽고 잘 어울린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음반재킷은 뭘 포착한 건가?
현: 을지로의 어느 장면을 담았다. 원래 디자인에는 시선이 가는 순서가 있다. 그걸 무력화시키자는 게 이 재킷의 기획이다. 눈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 그런 의도로 밴드 로고도 없애버린 거고. 어떤 사람은 이걸 보고 금새 알아채더라고. “아, 이거 야근을 나타내는 거구나.”

UHF2012년 음반을 냈고, 멤버들은 다 바뀌었다. 그동안 영화작업한단 말은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것 같은데, 음악 작업은 어떻게 했나?
현: UHF때 공을 들인 작업을 했고, 그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음악방향에 있어 약간 멤버들과 시각 차이가 있었다. 나는 연주 위주의 포스트락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기존 멤버에게 계속 UHF를 계속 맡아서 꾸려 나가게 했고, 나는 팀을 나와 새로 연주 중심의 팀을 규합한 거다. 사실 UHF할 때부터 곡을 많이 써 두어서, 파울로시티로 발표한 곡은 그때 다 완성이 되어 있던 거라고 보면 된다. 한 20곡이 이상 만들어 두었으니까. 2013년쯤 해선, 이 음반이 금방 나올 분위기였다. 그랬는데, 공교롭게 내가 바빠졌다. 몇몇 감독님들 영화에 편집작업을 들어갔고, 내 작품도 준비하게 되었고. 데모는 완료가 되었음에도 본 음반작업을 못했다. 그 상태로 1년, 2년이 지나가니까, 더 이상 지연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올해 EP가 나오게 된 거다.

포스트락/슈게이징은 1990년대에 팬이 좀 있었다가 거짓말처럼 팬들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씬이 작아졌다고 해야겠지. 이런 환경에서 이런 음반을 내는 게 어떤 면에선 용감한 결정 아닌가?
현: 그건 용기도 아니고, 무모함도 아니었다. 레이블 대표님은 썩 반기지 않겠지만, 우리는 상업적 지향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각자 직업이 있어서 그런지, 우린 밥은 먹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음반이 안 팔린다고 해도 내일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고 해야겠지. 그와는 별개로 멤버 모두가 포스트락을 좋아하기도 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어야 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 온다면 우리 팀은 그에 맞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우린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니까. 그런 감각을 가진 팀은 따로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음악이 시대나 트렌드에 맞는지도 잘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에서는 무지하고, 무식한 음악일 수도 있긴 한데, 그 나름대로 메리트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본 거지.

[Fuzzy Nation]은 디지털로만 푼 것으로 알고 있다.
현: 피지컬 음반으로 내고 싶었다. 타이밍을 놓친 거지. EP를 내자고 하고도 일정이 또 한 번 연기되었었다. 북극곰 사운드 대표님에겐 미안하다. CD를 내기 위해서 몇 가지 미리 준비할 게 있었는데, 스케줄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면 앨범발매를 다시 연기해야 하는데, 그럼 일단 디지털로만 내자.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아쉬움 때문에라도 내부적으로는 정규를 빨리 내보자고 말을 맞추고 있다.

2012년 경 UHF 인터뷰를 보니, 그때는 정규를 고집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현: 쉽지 않았다. 곡도 다 있었고. 당연히 풀렝스로 가고 싶었는데, 그거 고집하다가 음반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EP로 발매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인 거지.

멤버들은 어떤 경로로 규합하게 된 건지.
조: 트위터를 통해 만났다. 커피 마시러 왔다가 말을 섞어봤고, 다음 날 멤버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 트위터를 뒤지며 베이시스트를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트위터 이미지에 베이스기타를 올렸더라고. 아, 이거다. 슬쩍 미끼를 던져봤지(웃음).

보통 멤버구인은 에 올리지 않나?
현: 몇 번 멤버교체를 겪고 나니까, 우리하고 나이가 비슷한 멤버를 구하고 싶었다. 노땅 취급을 받더라도 말이지. 그래서 현 라인업에 대해 흡족하다.

미라 씨는?
윤: 어느 날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조: 미라 씨는 제 친구들과 2011년 쯤 합주를 몇 번 했던 사이다. 멤버 중 어린 분이 급작스레 공익을 가게 되어서, 미라 씨한테 “우리 밴드에 와서 드럼 칠 수 있겠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지. 그렇게 연이 닿게 된 거다.

UHF의 음악 스타일과는 많이 달라졌다. 같은 포스트락/슈게이징이라고 해도 그 외연은 광활하지 않나? 이를테면 UHF의 음반은 My Bloody Valentine의 자장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Fuzzy Nation]은 묵직하고 헤비하다. 그런 거.
현: 내가 UHF 음반을 만들어놓고도 몰랐던 게 있다. 이 음반에 대한 평을 보고, 이 음악의 베이스가 1990년대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다. 나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전성기를 살았다. Nirvana 듣고, Kurt Cobain 죽었을 때 엉엉 울었던 세대였지. 나중에 내 음악을 들어보니 정말 그 시점에 들었던 음악이 고스란히 깔려있더라. 일례로, 기타도 지금은 사운드스케이프적인 측면이 강화된 기타인데, 그 시기엔 리프를 중심으로 했었지. 어떻게 보면 파울로시티의 [Fuzzy Nation]은 그때 그런 점을 인지하고 나서는, “1990년대의 사람들이 2010년대에 음악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구상하면서 만든 음반이다. 그러니까 UHF때 나왔던 1990년대 감성이 어느 면에서 우연이었다면, [Fuzzy Nation]은 계획된 것이지.

그것 말고, 음반을 작업하면서 따로 염두에 둔 것은 없나?
현: 믹싱을 할 때 늘 약점이 뭐였냐면, 저음역대가 부실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내 고질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듬 파트는 이분들에게 위임하고 난 뒤로 빠져봤다. 나의 전 작업들과 비교해본다면, 리듬파트의 소위 댐핑감을 비롯한 지점들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용우 씨와 미라 씨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곡은 진식 씨가 다 쓰지 않나. 그렇게 위임하면, 충돌이 있진 않나.
조: 그런 건 없다. 그것보다도 우리도 마음에 드는 곡들이었기에 참여한 거지. 이런 사운드를 처음 시도하다 보니 내 자신도 공부하게 되는 게 많다. 나 역시 체계적인 사운드 지식을 갖춘 사람은 아니다 보니까.

녹음 과정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해 준다면?
현: 적은 예산으로 했다. 음악 뿐 아니라 여태껏 했던 이들이 다 저예산 작업이어서 그런지 그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내가 음반의 여러 영역을 커버했다. 그렇게 한 건 첫째, 자금이 부족해서였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대자면 음반작업을 우리들이 손수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디자인도 우리가 했고, 피처링 보컬 녹음과 마스터링을 제외한 모든 일이 우리 손에서 다 끝났다. 녹음도 홈레코딩으로 했고. 아, 고민이 하나 있었지… 드럼을 미디로 작업하면서 이 사운드를 어떻게 손드럼 비슷하게 뽑아내느냐는 게 문제였다. 우리 음악 같은 경우 디지털 질감이 요구되는 음악이 아니다. 정작 우리가 필요한 건 상당히 아날로그한 질감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갭’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이었다. 기타 녹음 방식이라던가, 리듬 파트나, 마스터링이나 그런 것들. 그에 대해 [Fuzzy Nation]이 해답을 내놓았다고는 못할 것 같다. 그냥 이 선에서는 그만하자 정도인거지… 음반 작업해본 분들은 알지만 “OK” 사인은 항상 나올 수가 없는 거다. 더 하면 나아지겠지만, 그러다가 한해 미뤄지고 앨범 연기되고 그렇게 된다. 레이블과 이야기가 진행된 시점에서 무려 2년이 흐른 뒤였으니까 우리도 물러날 수 없었던 거지. 우리를 내쫓으면 갈 곳이 없기도 했고(웃음). 그래도 서두른 편에 비해서는 잘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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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을 뽑을 때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이었나.
현: 용우 씨나 미라 씨가 훌륭한 베이시스트나 드러머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하고는 잘 맞는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용우씨 봤을 때 베이스 얼마나 잘 치나 보지도 않았다. 물론 “베이직은 해 주겠지”라는 전제를 깔고서 말이다. 어차피 나도 기타 잘 못 치거든. 같이 성장해 나가자. 우리는 서두르지 않을 거다. 길게 가자. 불안감이 있더라도 오래 가고 싶었다. U2가 스쿨밴드 때부터 잘 했을까? 난 그렇게는 보지 않는다. 긴 시간 합을 맞춰오다 보니까 실력이 향상되게 된 것이지.

용우 씨는 어떤 음악을 했나.
조: 거의 못했다. 직장생활만 오래했지.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회사만 다녔다. 직장생활이 자유로워 진 후에야 밴드를 해 보겠다고 한 거지. 더 이상 놓치면 안 되겠다고. 이젠 해야겠다고. 그 다음에 준비를 했다. 실제로 이 판에 오래 있던 사람은 아니다.

파울로시티에 가입하게 된 모멘트가 있다면?
조: 나도 그 시기(현진식이 멤버구인을 하던 시기) 뮬을 보면서 밴드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령제한에서 걸렸지(웃음). 군필은 되는데 연령은 안 되고. 그런 문제를 겪은 후, 어떻게 진식 씨 만났을 때 언급된 밴드하고 음악을 하는 태도에 대해 코드가 잘 맞았다. 예를 들면 우리 둘 다 해외축구보는 걸 좋아하는데, EPL 끝난 다음에 BGM으로 나오는 음악을 연주해보면 참 좋겠다고 동의했던 것부터가 그렇다. Mogwai 같이 보컬을 사용하지 않는 밴드에 대한 공감대도 그랬고. 이래저래 잘 맞았다.

윤: 난 완전 초짜였다. 혼자만 음악 듣고 있었다. 이런 음악 듣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드럼도 취미삼아 연주하다가, 어떻게 이 밴드를 만나게 됐다. 들어오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이 거절했던 것도 겁이 나서였다. 난 밴드 생활을 해 본적도 없었고, 실력 탓에 팀에게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들었다. 멤버들이 많이 봐 준거지. 지금은 드럼은 이렇게 치는 거고 밴드에서의 내 역할은 이런 거구나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현: 미라 씨가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 미라 씨의 장점은 흥분하지 않은 채로 연주하는 거다. 연주를 녹음한 걸 들어봤는데, 나는 “기본패턴을 얼마나 잘 하냐”만 봤다. 그런데 확답은 안 주고 계속 고민을 하길래 단도직입으로 물어봤지. “할 거냐 말 거냐?” 그때 “하고 싶은데, 자기 스케줄도 있고 그것 때문에 팀에 누가 될까봐 확답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미라 씨가 할 수 있는 밴드는 지구상에 파울로시티밖에 없다(웃음). 우리 다 바쁜 사람끼리 쪼개서 하고 있고, 그에 대해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가입시켰는데, 현재 시간이 가장 많은 것 같다(웃음).

푸른곰팡이 조동희와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되었나.
현: 예전 영화음악 작업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때도 의견이 잘 맞았었다. 그 이후로 둘이서 작업할 수 있는 ‘건수’를 찾고 있었지. ‘안드로이드는 전기기타를 꿈꾸는가?’의 보컬 피처링을 고민하던 때, 젊은 보컬이 낫지 않겠냐는 견해가 있었는데 내가 ‘우리 나이 때의 보컬’이 좋다고 밀어붙였다. 우리 나이 때 감성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래서 부탁을 드렸지. 조동희 씨에게도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락음악에도 애정이 있다고는 하시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강한 사운드고, 보컬도 잘 안 들리는 음악이니까. 염려되긴 했는데,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그에 대한 주변인들 반응은 어떤가.
현: 반반이다. 분명한 건 현 국내음악 좁혀서 인디음악의 추세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결합은 아니다. 그래도 두세 번 들으면 적응은 되는 곡인 것 같다. 우리 음악을 논할 때 UHF때만 해도 My Bloody Valentine을 끌어왔는데, 파울로시티는 MBV와 1%의 접점도 없다. 오히려 지금 근접한 밴드는 Mogwai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MBV와의 연결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곡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기타를 꿈꾸는가?’의 피처링에선 Bilinda Butcher의 보컬 톤을 많이 참고했다. 그걸 뺀다면 음악이 헤비해졌다는 말은 맞다.

공연 때는 어떻게 할 건가? 조동희 씨가 매번 참여할 수 있지도 않을 텐데.
현: 대형 공연이라면 당연히 조동희 씨가 참여하시겠지만, 작은 공연 때는 다른 분이 하게 될 거다. 얼마 전 객원보컬을 한 분 섭외했다. 음총명 씨라고. 앞으로는 그 분과 공연을 다니게 된다. 연습할 때도 조동희 씨의 색채를 흉내내기보다 본인의 필을 살려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앨범 버전과는 달라진 곡이 될 거다.

안드로이드는 전기기타를 꿈꾸는가?’의 제목이 뜻하는 바는?
현: EP가 되는 바람에, 정규에서 기획하던 콘셉트가 희미해진 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에 대한 오마주를 넣었다. 음반에 실리지 못했지만 ‘풀 메탈 자켓’이라는 트랙도 있었고, 애니의 제목인 ‘파이어 시스터즈’라는 곡도 있었다. 이 곡은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 원작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패러디이다. 이 곡 자체를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오마주로 보면 되는 셈이지. 가사 내용으로 보면, 안드로이드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거다.

‘Ashtray’에선 U2 냄새가 나는데, The Edge의 딜레이를 모방한 것 같은 느낌도 있고.
현: 내가 하는 곡 전부엔 The Edge에 대한 사모와 동경이 들어있다(웃음). 제일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다. 지금 쓰는 딜레이도 The Edge의 딜레이다. 음악이 다르다 보니, 기타로 나오는 음색은 차이가 있을 수밖엔 없지만. “따라한 것 아니냐”는 말은 무척 기쁘게 들린다.

전형적인 슈게이징 구조를 가진 곡이라면 ‘Nest’를 뽑겠다. This Will Destroy You 냄새도 나고 말이지.
현: 리프 위주의 편곡을 많이 하다 보니까, 한두 곡은 슈게이징 스타일의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게 이 곡에서 딱 한번 스치고 지나간 거지. 재미있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게 양날의 칼인게, 공연 때 까다롭다. 사운드가 자칫하면 묻힐 수 있는 곡이라, 유독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포스트락이 슈게이징하고 형제이긴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지 않나. 파울로시티는 포스트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슈게이징 쪽에 다리를 놓은 곡이 이거라고 보면 되겠지.

동료 평론가는 ‘Big Crunch’를 최고의 곡으로 평했다. 내겐 [Fuzzy Nation] 내에서 돌출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이키델릭, 브릿팝, 댄서블락 등등이 다 섞인 곡인데, 이건 본인의 청취인생을 집대성한 건가.
현: 반대다. 이 곡은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거든. ‘Nest’가 이런 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작업했다면… 아, ‘Nest’는 정치인 김근태에 헌정하는 곡이고, 어떤 압박감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곡은 기타를 잡고 둥둥 치다가 그걸 그대로 이어간 곡이다. 애초엔 서프락(surf rock)을 해보려고 했지. 그러다가 이런 거 저런 거 다 들어갔고 이런 짬뽕이 나오게 된 거다.

풀렝스는 언제쯤 예정하고 있나?
현: 우리들끼리만 논의하고 있는 건데, 빠르면 올해 연말이나 늦으면 내년 봄쯤으로 보고 있다.

어떤 형태로 제작할 생각인가?
현: 실리지 못한 곡들을 살리고, 새 곡을 몇 개 작업해 넣을 것이다.

작곡을 멤버들과 나눠서 해보고 싶진 않나?
현: 연주곡이라는게 ‘작곡’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 작곡의 비중이 1이면, 편곡은 9라고 보면 된다. 작곡이야 내가 하겠지만, 편곡은 멤버들과 하게 될 것이다. 스케치를 따는 것은 내 소관일 것이고, 드럼과 베이스를 만들고, 믹싱의 디렉션을 정하고 그런 것들은 공동작업이 되겠지. 내가 무슨 음악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으로 작업해야 뽑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건 음악성향이 맞고, 사운드성향이 맞는 파트너라는 거다. 나는 멤버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들 직장을 병행하고 있다. 어떤가.
조: 힘들다. 체력적으로(웃음). 그래도 우리 밴드가 팀워크가 탄탄한 게 역으로 말하면, 너무 치열하지 않게 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치열하게 하다보면 각자 강박관념이 강해지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스쿨밴드 때 많이 경험한 것들 아닌가.

직장생활하기 전에는 어떤 음악을 했나.
조: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했고, 선배들과 힙합도 해보고. 여러 가지 해 봤다.

연배로 봐서는 헤비메탈 밴드를 했을 것 같은데. 스쿨 밴드 전부 헤비메탈 하던 때 아니었나.
조: 꼭 메탈이 아니어도 그런지에서 재즈까지 다 챙겨는 왔다. 차트도 계속 봐 왔고. 락페에도 가서 요새 나오는 음악도 확인해보고. 그렇게 이것저것 많이는 들어왔던 것 같다.

진식 씨는 음악과 직장을 병행하는 게 어떤가.
현: 우리 같은 팀이 늘어나면 안 된다. 이 얘기인즉, 일반적인 밴드들에게 “왜 직장생활을 안하니?”라고 묻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보는 것이지. 우리나라가 음악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지 않나. 파울로시티가 교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우리는 특수한 케이스라는 거지. 떼돈은 못 벌더라도 음악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되는 건데. 무대나 음악을 소재로 대화할 때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뮤지션들이 어디 가서 속된말로 폼 안 나는 아르바이트 하는 걸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예술가들만큼은 어느 순간에서라도 자존심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는데, 이런 걸 보면 슬플 때가 있지.

조: 그래도 판매는 좀 되어야 할 텐데(웃음).

이 멤버들과 어떤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싶나.
현: 하는 일이 다큐멘터리/영화 쪽이다 보니, 음악을 들었을 때 영상이 떠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Sigur Rós겠지만, 그와는 차별화되는 풍경을 그리고 싶은 거지. 그쪽으로 욕심을 내고 있고, 계속할 것이고, 그 점에서만큼은 겸손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포스트락’이라는 장르에 묶이길 원하진 않다. 여기 실린 5곡도 장르가 오락가락한다. 굳이 장르를 하나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편의상 ‘포스트락’이라 한 것이지. 우리도 모른다. 팝적인 곡이 나올 수도 있고, 헤비메탈적인 곡이 나올 수도 있다. 멤버들끼리 협의가 된다면, 진짜 엉뚱한 음악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지.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2 Comments on 파울로시티: My Bloody Valentine에서 Mogwai로의 전환은 의도된 것

  1. 현진식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름 오타가 하나 있어서.
    객원보컬로 같이 연습중인 뮤지션의 이름은 ‘음총명’ 입니다.
    감사하고요, 조만간 기회될 때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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