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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션츠: 18

펑크에 키보드 사운드를 입히면?

‘락’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악기는 기타다. 역사가 증명해왔다. 초기 Keane이나 Ben Folds Five 정도만 대중에게 알려졌을 뿐, 기타리스트가 리드하지 않는 락그룹은 유명한 그룹도 많지 않고 실제로 그 편성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만일 강렬한 기타 배킹이 훈장처럼 남아있는 음악 ‘펑크’에서 기타를 제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망설임 없이 그걸 현실에 그려낸 팀이 페이션츠다. 기타를 맡았던 백준명이 개인사정으로 그룹을 나가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그의 자리를 다른 기타리스트로 대체하지 않았다. 팀의 빈 슬롯은 키보디스트 권혁장으로 채워졌고, 밴드는 ‘베이스-드럼-키보드’라는 기묘한 조합을 갖게 되었다.

그 ‘기묘한 조합’은 그러나 ‘뉴 페이션츠 사운드’의 배태로 이어졌다. 기타가 사라져 지글지글거리는 맛은 덜하게 되었지만, 추가된 키보드 소리는 밴드에 팝의 온기를 더했고 그 결과 탄생한 [18]은 전보다 한결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이 되었다. [18]에 몸담은 상당수의 곡들이 예전에 싱글로 발표되었거나, 심지어 1집의 수록곡이지만, 편곡과 배합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재탕’이나 ‘우려먹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 곡과 함께 두고 사운드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관찰해보는 재미 하나가 플러스된 셈이다. 예컨대, ‘재의 아이들(Children of the Ashes)’은 마치 1960~70년대 사이키델릭을 듣는 것처럼 외연이 확장되었고, ‘R.I.P.’는 훨씬 유연한 흐름을 타며 연주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우위를 가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리스너의 예상을 깨는 펑크락의 출현은 가능하게 되었다.

아마 그건 멤버들이 가진 세계관, 혹은 작게 잡아도 음악관에 기인했을 것이다. 1집 때부터 스스로를 ‘하이브리드 펑크’라고 불렀던 것처럼, 밴드는 하나의 틀, 하나의 장르, 하나의 범주에 묶이는 것을 혐오하고 증오했다. ‘펑크’에서 ‘포스트-펑크’로 지나온 일련의 ‘패러다임 변화’조차도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음악사조의 관점을 따라 이 과정을 하나가 하나를 축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거나, 또는 직선적인 진화로 이해했다면 현재 페이션츠가 투신하고 있는 음악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에게 둘은 무난히 ‘동시공재’할 수 있는 장르였고, 그 까닭에 The Cure와 Sex Pistols가 짝지어졌으며, 나아가 옛 신스팝 밴드인 Talk Talk, OMD(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까지 본인들의 필드 안으로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언급한대로, [18]은 펑크에 기반을 두거나 펑크로부터 갈라져 나온 모든 장르를 포괄하고 감싸는 형태로 완결을 맺었다.

이로부터 유추되듯, [18]이 품은 사운드는 굉장히 ‘종합적이면서 동시에 복고적인 외연’을 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타이머가 과거의 어느 시제에 멈춰버린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그렇게 되는 건 뮤지션에게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밴드는 선배들이 물려준 유산을 고이 간직하면서도 페이션츠만의 고유한 색채를 찾아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음악은 차별화된 ‘펑크 사운드’가 되었다. 키보드로도 얼마든지 질주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오프닝 트랙 ‘Let’s Drive, Let’s Go!’나 비틀린 펑크 프로그레시브(이 단어는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다. 키보디스트 권혁장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놀랍게도 펑크를 싫어한다고) ‘즐거운 생활(Bad Fingers)’, 발랄함 속에 칼날처럼 박힌 멜랑콜리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18세기(Sipalsegi)’, Happy Mondays 혹은 Inspiral Carpets의 곡을 분해한 후 마음가는대로 재조립한 듯한 ‘Spanking Jenny’ 등을 들어보면 된다. 나열한 곡들은 놀랍게도 한 음반에 기거하는 트랙들이다. 이 광활한 다양성의 바다라니.

메시지 측면에서도 밴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놀고 싶을 땐 대책 없는 쾌락의 향연을 벌이기(‘Let’s Drive, Let’s Go!’)도 하고, 어떨 땐 짓궂게 냉소하며 웃어넘기기(‘18세기’)도 하며, 또 어느 땐 은유를 통해 세대를 풍자하기(‘재의 아이들(Children of the Ashes)’)도 한다. 혹자들에 의해 이랬다가 저랬다 줏대 없다고 비판받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내재적 모순과 부조화마저도 밴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인이라는 점. 사실 그게 밴드의 진짜 모습이다. 쾌활한 파티를 꿈꾸지만, 어두운 세상을 보면 다시 울적해지고, 그렇지만 상대를 향해 1차원적으로 독설을 내뱉는 유치함을 보이기는 싫고, 어떻게 하면 이를 더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언어유희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딜레당트들. [18]은 그런 예술가들이 뚝딱, 하지만 꽤 땀 흘려 만들어낸 도깨비 같은 산물이다. 약간의 의문부호는 남아 있지만, 더 긴 이야기는 인터뷰를 통해 풀어놓도록 하자.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올해의 음반 제목’ 후보다.

(3.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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