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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vs 필자: 그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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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오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필자는 괴롭다. 마감이 지났기 때문이다. 독촉 카톡이 온다. 1을 지우지 않는다. 음악웹진 10년 경력으로 다져진 노하우다. 난, 지금 아픈 거다. 아프고 싶다. 아플 거다.

편집장은 괴롭다. 노련한 필자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는 씹혔다. 카톡의 1이 지워지지 않는 건 상대의 깊은 내공을 보여주는 징표다. 아프다. 아프고 싶다. 아플 거다.

필자는 더 괴롭다. 황급히 방어기제를 만들어본다. 이것이 돈이 되는 원고인가? 아니다. 그럼 이걸 쓴다고 내 명성이 높아지는가? 아니다. 그럼 내가 시간 내에 써야 했을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편집장은 더 괴롭다. 황급히 대안을 모색해본다. 내일 자 기사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빨을 채워야 한다. 밤을 새워야 한다. 피곤하다. 내 마음을 읽은 그가 지금쯤 부지런히 기사를 쓰고 있을 것이라 자위해본다. 그를 믿는다.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필자는 몸부림친다. 방금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언제까지 줄 수 있냐는 편집장의 전언이다. 최후통첩이다.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음원도 다운받지 못했다. 가장 편리한 방법은 ‘올뮤직’이나 ‘위키피디아’의 우라까이다. 약간은 미안해진다. 그러나 매를 이기는 장사 없다. 잠을 이기는 사람도 없다. 졸리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원고는 쓰여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러했듯.

편집장은 몸부림친다. 최대한 정중하게 보낸 메시지다. 언제까지 보내주실 거예요. 정말 큰일나요. 사실 큰일은 이미 벌어졌다. 속이 탄다. 실물사이즈 부두인형을 만들어 한 땀 한 땀 찌르고 싶다. 분노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의 양심과 인성을 믿는다. 이 황망한 세상에도 신은 존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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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담배를 피운다. 연사다. 불똥이 분노와 함께 튄다. 야수의 단말마 같은 고함을 지른다. 방금 또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럼 필자님 빼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제발 그렇게 해줘.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편집장은 담배를 피운다.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냈다. 계속 묵묵부답이라면 이젠 싸우자는 얘기다. 새벽 3시의 공기가 차갑다. 마음도 차갑다.

필자는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마감 때 가장 재미있다. 3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커서가 속절없이 깜박거린다. 자고 싶다. 죽고 싶다. 컨트롤 비트 다운받고 싶다.

편집장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젠 솔직히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은 새벽으로 흘러간다. 이제 펑크에 대비해 예비 원고를 써놓아야 한다. 황망한 세상엔 신이 없었다. Deicide 듣고 싶다. Cannibal Corpse 듣고 싶다. 풀 한포기 없어진 내 마음엔 휴머니즘이 없다. 결투다. 전쟁이다. 살육이다.

필자는 밤을 새웠다. 누가 신성한 잠을 방해하는가. 누가 생리현상을 막아서는가. 누가 쾌락의 주말밤을 새워 원고를 쓰는가. 자, 받아라. 먹고 떨어져라. 원고 받으니 좋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아.

편집장은 원고를 확인한다. 본능적으로 맞춤법과 표기법을 살핀다. 자신에게 놀라는 중이다. 이렇게 독촉을 잘하는 줄 알았다면 추심회사에 갈 걸 그랬다. 이깟 음악이 뭐라고 우리는 왜 새벽까지 이 미친 굿판을 벌였는가.

필자는 다짐한다. 술 마시고 새벽에 전화할거야. 피의 꼬장을 들려주마. 내가 아팠던 만큼 너도 아파라. 다음 세상엔 편집장으로 태어나야지. 너만 괴롭혀야지.

편집장은 다짐한다. 다음 특집 땐 다른 필자를 섭외해야겠어. 그런데 누구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그는 오해했다. 다른 필자들은 아무 말 없는데 왜 저 필자만 저럴까. 정말 그랬을까?

이것은 모든 웹진에서 매달 벌어지고 있는 혈투의 현장이다. 필자와 편집장 사이의 심리전은 웹진이 유령처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며 글을 쓰게 되리라.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1 Comment on 편집장 vs 필자: 그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고리

  1. 재미있고도 슬프고도 유쾌하고도 감사한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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