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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리스너와의 거리두기 혹은 감정 표출을 자제하기

 

밴드의 설명처럼 포니의 새 음반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는 친절한 음반은 아니다. 살가운 음반도 아니고 예전처럼 혈기왕성하게 달리지도 않는다. 감정 표출은 최대한 억제되어 있으며, 보컬은 저 멀리 파고들어가 숨어 있다. 진보나 성숙이라기보단 단절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 용어가 뭐든 간에 ‘직접 들어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 같다. 인터뷰는 8월의 어느 날, 상수동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최상민(보컬)과 유승보(베이스)가 답변해주었다.

 

2012EP 이후, 3년 만에 내는 음반이다. 동시에 포니 2기 혹은 3를 선포하는 음반인 것 같기도 하다.

최: 밴드 이름을 바꿔서 낼까 고민도 했는데, 이 친구(유승보)가 ‘포니’로 내자고 하더라. 그러자고 했다. 나야 이름은 크게 상관없었으니까.

유: 이분이 바꾸자고 했던 이름이 뭐였는지 아나? 북러버스(Booklovers)였다. (주: 유승보는 상수 인근에서 서점 운영중)

최: 크하하. 그 이름엔 반대가 심해서 ‘포니’로 가자고 했다.

 

근황부터 물어보자. 그간 어떻게 지냈나.

최: 푹 쉬었다. 한 3년 정도. 마지막 공연이 2012년 지산락페였으니. 그 공연을 하고 나서 “잠깐 쉬자”고 했던 게 벌써 3년 전인 거다. 그 이후 왕래 없이 각자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유: 3년 동안 연락은 안 했지만, 각자 창작활동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 친구(최상민)은 쿠메오 프로젝트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고, 나 역시 다른 밴드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 리더 최상민이 이쪽으로 이사를 오고, 나도 내 서점 오픈식을 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 거다. 다른 친구들은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밴드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이 먼저였기에, 옛날 추억들도 끄집어내 볼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따뜻했다. 자연스럽게 “앨범을 만들자”는 말이 나왔고, 집과 내 서점에서 녹음을 했다. 그 과정은 일사천리로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필연적으로 나와야 할 음반은 아니었던 거네?

최: 이 곡들이 음반으로 나오게 된 까닭이 있다. 나랑 이 자리에 참석 못한 송광호(기타)랑 곡을 작업하던 중에, 그 친구가 ‘Pire’랑 ‘Waiting for the Day’를 들려줬는데 쿠메오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음악이었다. 오, “그럼 이런 스타일로 만들어 볼까” 하고 시작이 되었던 거다. 승보한테 연락을 했다. 아는 연주자라곤 승보밖에 없었으니까(웃음). 처음 그 곡은 글리치(Glitch) 리듬 좀 나오다가 그 위에 리얼 악기가 얹히는 그런 음악 스타일이었다. 녹음하면서 싹 달라지긴 했지만. 그 후에 여기 들어간 다른 곡들 ‘Days of Being Wild’나 ‘Seed Sizes’ 등등을 만들어 들려주면서 가속화되었던 것 같다. 구체적이고 거창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만나서 녹음하고, 결과물을 내자는 거였지.

유: 3년의 휴식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광호가 ‘Pire’라는 노래를 만들기 전까지는 멤버들도 이 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타이밍이 좋았다. 나도 마침 Tommy Guerrero 그런 류의 음악을 듣고 있던 차였기에, 광호가 그 곡을 들려줬을 때 우리도 이런 콘셉트로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프로그래밍은 둘(광호/상민)이 알아서 잘 하니까, 나로선 연주하기도 편하고 해서 수월하게 했다.

 

그런데 3년은 꽤 긴 시간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연락도 없다가 불쑥 만나게 되었는데 서먹하고 그러진 않았나?

최: 그럴 수가 없었다. 전에는 너무 자주 만났기 때문이지. 승보는 실망했을 수도 있다. 서운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니 그런 마음이 들진 않았다.

 

미국의 인디레이블 Tree Machine Records과 계약을 체결했다. 어떻게 연이 닿게 되었나?

최: 그 레이블에 WOOF라는 팀이 있는데, 내가 그 팀을 평소에 좋아해서 “잘 듣고 있다. 우리 음악도 한번 들어주면 고맙겠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는데 그 레이블에서 “너희 음악 괜찮은데 다른 데모 있으면 들려줄 수 있냐?”고 호의적으로 답장을 보낸 거다. 실은 그때 데모가 많이 있진 않았다. 한 5곡 있었나? 그때부터 부랴부랴 곡을 썼지(웃음). 그 때문에 앨범이 빨라진 것도 있다. 1주일에 1곡, 3일에 1곡 만들어서 보내고 그랬다.

유: 그 레이블과 계약하기 전, 흥미를 보였던 레이블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대표가 메시지도 보내고 피드백도 괜찮아서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었다.

최: 쿠메오 프로젝트가 미국에서 음반을 냈는데,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는 메일을 준 거다. 쿠메오 같은 경우는 여기저기서 계약에 대한 제의가 있었다. 뉴욕에 Cascine라는 큰 인디 레이블이 있는데, 그쪽에서도 말이 있었고 이래저래 할 거리들이 있었다. 그 중에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앨범 제작비를 대 주는 쪽으로 결정하게 된 거다. 국내 레이블들은 경험해 봤으니까 새롭게 한번 시작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레이블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Tree Machine Records 소개를 더 해 달라.

최: 미국 인디 레이블이고, Living Hour나 WOOF가 나름 알려진 아티스트다. 유럽 인디랑 미국 인디랑 좀 다르지 않나. 이곳엔 아예 대놓고 미국 인디 성향의 팀만 있다. 하지만 장르는 다양하게 있다. 로파이부터 인디 일렉트로닉(한국식의 개러지 일렉트로닉이 아닌)까지 스펙트럼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음악이 네오사이키델리아/아트락으로 바뀌었다. 달리던 포니 시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선회한 셈이다. 나는 Animal CollectiveMercury Rev가 생각난다. Arab Strap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고. 전환의 계기가 있었을 것만 같다.

최: 우리가 듣던 음악들이 원래 이런 과였다. 그런데 포니 1집을 달리는 스타일로 낸 거는 어떻게 보면 ‘콘셉트적’인 측면이 강했던 거다. 그때 연주를 잘 못했던 것도 있고(음악). 펑크락밖에 연주할 수 없는 밴드였으니까. 어렸을 때니까 그런 걸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음악이 우리랑은 맞질 않았다. 주말마다 공연장 가면 “오늘 놀아보자. 나 존나 멋있지”, 그런 제스처를 해야 하는 것도 웃겼고. 내가 그런 성격도 아니었던 탓에 그런 게 고역이었다. 매일 “이건 아닌 거 같다. 아니다”, 그런 게 누적이 되다가 뻥 터진 거다. 클럽에 오는 관객이라면 금/토 저녁마다 홍대 공연장에서 밴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자체를 우리가 충족시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말도 별로 없는 애들이 그렇게 놀고 있으니 우리도 싫고 관객들도 짜증이 났던 거다. 그 절정이 지산락페였다. 공연 끝내고 내려왔는데, 갑자기 밴드 하기가 싫더라. 그래서 잠깐 쉬자고 했던 게 이제까지 온 거다.

유: 멤버의 변화가 컸다. 김원준이 밴드를 나가고 광호가 들어오면서 더 다채로워진 음악이 될 수 있었다. 그 친구 하나 때문에 다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참 좋다. 언젠가 이 친구들과 같이 오케스트라를 할지도 모른다(웃음).

 

락스타라면 그런 자기기만 제스처같은 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하.

최: 락스타가 아니니까 이런 음반을 만든 거다(웃음).

 

쉬는 동안 홍대 상황도 바뀐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이런 음악을 내는 게 두렵거나 그러진 않았나?

최: 그렇다. 그런 건 없었다. 이거 만들 때는 누가 들을지, 관심을 가질지, 씬에서 좋아할지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개인적인 음반인 거다. 동시에, 파스텔에 적을 두긴 했지만 연락 안한지 2년이 된 상태여서 레이블이랑도 엮일 수가 없었던 앨범이기도 하다. 또 우리한테 뭘 바라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작업한 음반이다.

유: 그런 반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고. 멤버들은 180도 변한 사운드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그랬다.

최: 그건 앨범 낸 다음 이야기고, 곡 만들던 도중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알겠다. 녹음은 어떻게 했나?

최: 마구리였다.

유: 집에서 하기도 했고, 서점에서 새벽에 하기도 했다.

최: 대책 없이 시작한 거라, 정기적으로 죽 해내간 것도 아니다. 2곡 녹음하고 2달 동안 또 연락 안 하다가 승보가 “녹음 안하냐?” 그러면, 그때서야 다시 하고 그랬다. 조악한 녹음이었지만 일부러 로파이한 맛을 주려고 한 것도 있다. 기타도 원테이크로 갔고, 그 자리에서 듣고 잼으로 연주하다 녹음한 것도 많다. 재녹음하기 귀찮았던 것도 있고. “이거 수정할까”, 그러면 “괜찮아. 이대로 가” 그랬지(웃음). 수록곡 중에 ‘Ain’t Nobody’가 있는데, 이거 마이크고 뭐고 컴퓨터 앞에 대고 노래한 거다.

 

pony2ndalbum

 

3번 정도 들었는데, “2곡 하다 끊고 다시하기를 반복했다는 말을 듣고 곱씹어보니, 정말 음반이 파편들로 이뤄졌다는 느낌이다.

최: 맞다. 그런 게 있다. 노래도 듣다 보면 중간에 뚝 끊어지는 게 있다. 승보도 그 때문에 “더 만져야 하지 않냐”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상태가 더 좋다. 물론 편곡을 더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유: 집에서 준비를 해 가도, 그 자리에서 계획이 바뀌어서 잼 식으로 간 곡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곡 뭐지? ‘별빛이 내려’였던가?

최: 아, ‘When Your Love Comes To Grave’. 봐, 노래 제목도 모르잖아. 나만 알아(웃음).

유: 이 노래 원곡 내가 만든 건데, 이렇게 바뀐 거다. 그런 식으로 된 게 상당수다. 그것도 즉석에서.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멤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같은 것도 있었을 법 한데.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밴드인데 연주의 합 이런 것도 맞출 시간이 없고 그러지 않았나?

최: 테크닉보다는 철저하게 무드(mood)로 갔다. 그걸 더 중시했다. 곡 뿐 만 아니라, 곡을 녹음했을 때의 무드 말이다. 여러 장소를 옮기면서 녹음하면 그런 게 있다. 합주실에 몰래 들어가 녹음하기도 했고, 서점에서 녹음하기도 했고 그랬으니까. 나중에 레이블에서 푸쉬를 해서 1달 정도 작업한 곳이 있는데, 습기가 가득 차서 머리가 아픈 공간이었다. 그때마다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 무드. 이런 게 담긴 거다. 1집과 EP 발매했을 때는 레이블 스케줄대로 움직이면서 딱딱 정해놓고 했었는데, 그 때 장비나 그런 건 엄청 좋았다. 빵빵한 스피커도 있었고. 그런데 돌이켜보면, 성에 안차는 게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인위적이라는 느낌?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히 풀어서 해보려고 한 거다.

 

알겠다. 헌데 그 완전히 풀어서 해보겠다는 의지가 거꾸로 인위성을 높일 수도 있다고 보진 않았나?

최: 그럴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잘 나왔다. 막상 녹음해보면 다를 수도 있는데 잘 들어맞더라고.

유: 녹음할 때의 상황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버린 건 없다. 시간을 헛되게 쓴 건 아니었던 거지. 더 훌륭한 게 나왔을 수도 있었겠지만.

최: 갈 수 있는 길이 많았다. 이 음반은 그 중 특정한 방향으로 간 앨범이다. 다음 음반은 확 달라지겠지.

 

바깥세상을 향해 창문을 열고 싶지 않다(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는 제목에 시선이 간다. 어떤 폐쇄성을 표명하는 것 같긴 한데, 그런 것도 그런 개인적인 무드그런 것과 연관된 건가?

최: 그렇다. 마지막에 앨범 제목을 정해야 되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레이블에서 타이틀 어떻게 할 거냐고 연락이 올 때까지 말이지. 그래서 그간의 과정을 죽 복기해봤다. 전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열린 공간’에서 작업했다면 이번에는 집이나 그 비슷한 ‘사적인 공간’에서 했다는 게 포인트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 간 집에서 창문을 보고 있는데 이 문장이 떠올랐고, 그대로 갔다.

 

‘Days of Being Wild’ 같은 곡이 잘 보여주듯, 보컬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러면 보컬의 기능이 없는 음반 아닌가?

최: 맞다. Dirty Three 같은 스타일? 그런데 개인적으론 녹음하는 내내 힙합만 들었다. 음악 잘 들어보면 힙합 리듬 이런 것도 있다. 보컬이라. 사실 필요 없는 거였지. 그런데도 넣고 싶더라. 곡을 죽 듣는데 보컬이 없으니까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느낌이 있더라. 단조곡들이 많은데 보컬이 또 없는 것도 그런 것 같고. 어느 정도 맥은 있어야겠다고 판단하고 보컬을 넣었다. 일단 한글로 불러봤는데 지나치게 끈적하더라. 보컬까지 명확하게 들려버려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다 치우고 영어로 불렀다. 그리고 나서야 거리가 좀 생기더라.

 

나는 이 음반이 좋기는 한데, 몰입되지는 않는다. 본인의 무드정서로 채워져서 그런 걸까?

최: 리스너와의 그 거리가 중요했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노출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영어로 부르니까 그제야 조금 거리가 생기더라. 포스트락이나 슈게이징이라는 음악이 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음악인데, 그렇게 몰입하게 만드는 게 씬의 트렌드인 것 같고 다들 그리로만 가는 것 같아서 우리는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기타 노이즈도 그래서 안 넣었다. 그런 것도 하나의 ‘스테레오타입’ 같아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게 좋지 않나? 연애도 그렇고(웃음).

유: 나도 공감했다. 휴지기를 갖기 전에 우리끼리 했던 말이 “과하고 센 폭력적인 감정들. 강한 연주, 강한 퍼포먼스를 좀 지양하고 싶다”는 거였다. 감정 과잉을 피해보자는 거였지. 이번 음반은 그런 생각이 모여 탄생한 거고.

 

이 씬과도 일정 거리를 두고 싶다는 것처럼 들린다.

최: 그렇다. 우리는 시작할 때부터 ‘외부자’였다. 의도적이진 않지만, 밴드를 하다 보면 ‘크루’들이 형성되지 않나. 그런 크루에 있게 되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그런 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한 밴드가 없다(웃음). 개인적으로 성격 좋아서 만나는 친구 빼고는 음악적으로 교류하는 친구는 전무하다.

유: 학창 시절로 비유하면 우리는 잘나가는 애도 아니고 웃기는 애도 아닌, 그냥 ‘저 새끼들’인 거다(웃음). 지네끼리 모여서 뭔가 하는 애들 말이다.

최: 내가 유일하게 연락하는 음악 하는 친구는 서교그룹사운드의 보컬 (김)세영이다. 쉬는 3년 동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준 친구다.

 

보너스 트랙 ‘Starfuckers’가 그나마 보컬이 잘 들리는 곡이다. 튄다.

최: 이유가 있다. [Little Apartment]랑 이번 음반 사이에 낀 과도기적인 노래라서 그런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활동을 쉬기 전쯤, 만들어진 곡인 거지. 죽 포니를 했다면 그런 곡 위주로 갔을 공산이 컸다. 그래서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갔다.

유: 돌발적 요소가 큰 음반이니만큼, 나는 이 곡이 가운데쯤 배치되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최: 그건 또 생뚱맞아서 보너스로 넣었다.

 

제목도 안 열겠다는 음반을, 리스너는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최: 하하, 이제 열어야지. 솔직히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진 않았다. 기존 우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신나는 리듬을 고대했다면 말이다. 아니면 이런 유의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에게는, 가령 아트 스쿨에 다니는 예쁜 여학생에겐(웃음), 좋은 음악일 수도 있고. 그런데 실망하게 하는 것도 살면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항상 만족만 시키며 살 수는 없으니. 그리고 우리가 팬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웃음). 원더걸스의 1만분의 1이나 되려나. 이번 음반, 친절한 음반은 아니다. 그러나 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 앨범 커버를 잘 보면 독수리가 시체를 파먹고 있다. 그런 기분으로 들어줬으면 한다.

 

기본 덕력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음반 같기도 하다.

유: 그럴 수 있다.

최: 이런 음악 들으려면 바탕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세상에 나오는 작품이 다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좋게 보고 있다.

최: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음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다. 1집 할 때는 “이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다 착각이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돈도 못 벌고(웃음). 이젠 욕심이 없어졌다. 다 버렸다. 그렇게 하니 음악하거나 듣는 데 있어 훨씬 편해졌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군.

최: 먹었지. 그리고 이제 락부심 같은 건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락음악 안 들었던 것도 있고, 힙합이나 제3세계 음악이 더 재미있는 것도 있다.

유: 지금 우리 음악이 엘레강스하다거나 하진 않지만 살짝 더 우아해지고 싶었다.

 

쿠메오랑 병행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회사까지 치면 3탕 뛰는 거 아닌가?

최: 힘들지는 않다. 기계처럼 음악을 찍어내는 밴드라서. 다음 달에 앨범 내라고 해도 만들 수 있다(웃음). 빨리 하는 편이다.

 

요즘 재밌게 들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그리고 마무리짓자.

최: Kendrick Lamar 열심히 들었다. 미국에서 공연도 봤고. 이센스 음반도 기다리고 있다. 전설이 될 것 같은 앨범이다.

유: 나는 드럼 사운드가 나오는 음악은 잘 못 듣는다. [Plantasia]라고 식물 키울 때 듣는 음악 그런 거 듣고 있다. 최근 들었던 음악 중엔 Thundercat이 제일 좋았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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