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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프 엑스 포프: The Divinity and the Flames of Furious Desires

1964년 공개된 키보이스와 애드훠의 음반을 한국 락의 기원으로 본다면, 2015년 한국의 락 역사는 어언 50년에 이르렀고, 1990년대 중반 발원한 인디 음악 씬도 20년이라는 마일스톤을 맞이했다. 이렇게 세월의 켜가 어느 정도 누적되고, 뮤지션들이 발 빠르게 서양의 음악과 교배하고, 소스들을 체화하고, 부지런히 트렌드를 창조해내게 된 이후, 우리 앞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음악”은 나올 수 없다는 게 평단과 팬들의 중론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밴드 포프 엑스 포프(Pope X Pope)를 제외한다면. 밴드의 이름이 심히 낯설지 않나. 혹시 기괴하기 그지없는 음악을 발표하며 2011년 약간의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라는 밴드가 기억날지 모르겠다. 포프 엑스 포프는 히치하이커의 새로운 명칭이다. 무려 4년 동안 준비된 이 음반이 몇 번의 산통을 겪은 후 이제야 그 자태를 드러낸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국내에 등장한 음악적 범주로 포프 엑스 포프를 엮을 수 있는 끈은 없다는 점이다. 노이즈락, 노웨이브(no wave), 다크웨이브(dark wave), 네오포크(neofolk), 앰비언트, 프로그레시브 등 이들의 음악은 광활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으면서도 특정한 장소에 거처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리더 김환욱(보컬과 건반 담당)의 음악적 시원이 현대 클래식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클래식의 거장인 György Ligeti 와 Krzysztof Penderecki 로부터 깊게 영향 받은 그의 음악세계는 미학적으로 ‘낭만주의’에 더 맞닿아 있다. 그가 평소 자주 영감의 원천지로 거론했던 것도 있지만, 음반에 사용된 낭만주의적 모티프들을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신의 징벌, 윌리엄 블레이크, 숭고함, 종교적 성사 등등). 하지만 그 총체를 ‘대중음악’과 분리되는 ‘고전음악’이나 ‘클래식’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난감함을 뒤로 한 채, 편의상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음악을 정의한다면 ‘현대 클래식에 뿌리를 둔 노이즈락’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해외음악 씬의 추세상 광의적으로는 ‘헤비니스’에 넣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음, 김환욱은 이 모두를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잠깐 언급했다시피 이 음반은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게 되었다. 밴드는 애초 이 음반을 3CD(이런 발상을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로 구상했었다. 그랬다가 분량이 줄었고(그나마 그래서 두 장이다), 레코딩과 마스터링까지 마친 상태에서 삭제된 곡도 있다. 김환욱과 이상우(베이스와 여러 장비 담당)의 완벽주의자 캐릭터를 고려한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었겠지만, 음악은 완만한 경사를 타고 느릿하게 완성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조차도 “저 음반이 과연 완결될 수는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품어봤으니.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밴드의 해체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밴드는 오대리와의 콜라보레이션 음반 [Study After Bacon’s Triptych Of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을 릴리즈하며 의혹을 불식시켰다. 그러므로 포프 엑스 포프의 1집 [The Divinity And The Flames Of Furious Desires]는 밴드의 2기가 개막되었음을 선포하는 모종의 기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음반이 몹시 지루하고 따분하다(혹은 무섭다. 귀신 나올 것 같다).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반응이다. 심지어 ‘난해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올 수 있다. 둘 다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곡 중 상당수가 ‘우연’과 ‘직관’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점을 안다면, 듣는 사람도 본인의 ‘찰나적 직관’을 믿고 감상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괜히 끈기를 오기로 승화시키기보다는 상상력을 키우고, 개별 트랙보다는 앨범 전체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 중요하다(몇 가지 참고사항이 있다. 이건 리뷰 하단의 곡 분석을 통해 대신하겠다). 그리고 나면, 정말 경관이 바뀐다. ‘음과 이미지’, ‘음과 영상(실제로 이들의 공연에선 영상 역시 하나의 악기로 전면에 나선다)’이 배치되는 두 가지 영역이 아니라 ‘하나로 연동되어 움직이는 그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물론 무엇을 그 안에서 관찰하든 그것은 리스너 자신만의 것이다.

이번 음반은 히치하이커 시절의 음반보다 본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음악에 더 진하게 녹여낸 것처럼 다가온다. [Insatiable Curiosity]의 몇몇 곡들이 앨범의 콘셉트와 동떨어져, 약간 붕 뜬 인상을 풍겼다고 한다면 [The Divinity And The Flames Of Furious Desires]의 트랙들은 ‘밴드의 합’이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결 나아진 녹음상태와 치밀해진 연주 또한 그것을 예증한다. 그럼 비판은 없나? 왜 없겠나. 비트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고, 라이브 무대 운용이 미숙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이들의 음악이 ‘헛짓’이나 ‘마스터베이션’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올해의 음반’으로 뽑힐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올해의 문제작’이나 ‘올해의 도발적 작품’으로 꼽히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Glorious
최종조율 중 몇 곡이 빠졌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트랙. 웅장하고 숙연한 무드가 앞으로 전개될 내러티브를 미리 말해주는 것 같다. 밴드에 의하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분위기를 캐치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The Eternal
김환욱이 음반작업 중 유독 위안을 얻었다는 트랙. 사후세계에 대한 탐미적 관심사를 피력했다. 음반에서 제일 친화적인 곡이다.

Funeral Oration, Entombment of Ancestors, Funeral Procession(Piano works)
말 그대로 ‘장례 3부작’이다. 죽음은 삶의 연장 또는 삶의 배면인데, 어느 순간부터 이에 대해 연주하는 팀들이 사라졌다. 고전적 테마에 대한 진지한 탐사가 마치 ‘반시대적 행위’처럼 되어버린 순간에, 오히려 ‘역행’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Celestial Pole, Black Tower
천상의 거대한 물체. 어쩌면 현실 내부에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탓에 현실의 눈으론 볼 수 없는 이미지. 누군가는 ‘실재(the Real)’라고 부르는 것. 밴드의 정체성이 왜 현대 클래식인지를 잘 알 수 있다.

The Second Coming(Truely revelation is at hand!), The Second Coming(Vast figure with lion body, head of a human)
예이츠의 묵시록적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힌트를 얻은 트랙. “가장 선한 자들도 믿음을 잃어버리고, 가장 악한 자는 육욕에 가득 차 있다. 어떤 ‘계시’가 가까이 왔다. 재림이 가까이 왔다”

Intermezzo(Organ works)
간주곡. 사이. 틈새. 분열. 혼돈. 휴식이자 틈.

The Eucharist
성찬(聖餐)을 다룬 곡. 보이스 변조를 통해 표현되는 긴장과 갈등의 상황.

Ugolino
포스트-인더스트리얼의 색채가 진하게 느껴지는 트랙.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악명 높은 일화를 빌렸다. 루지아니 대주교에게 배신당하고 못질된 방에서 자식들과 함께 죽어가는 우골리노 백작. 배고픔에 지쳐 자녀들의 사체를 뜯어먹으며,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지옥에서 마침내 조우한 배신자. 우골리노는 그의 대갈통을 이빨로 부수며, 피의 보복을 실행한다. 밴드는 활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 대비극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악으로 재현해냈다.

Oil & Blood
우울과 몽상. 예술가의 영원한 양식이다. 내가 떠오르는 것은 이 두 단어뿐이다.

Satan Smiting Jon with Sore Boils
성경 ‘욥기’의 유명한 대목. 욥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어 그의 신앙심을 시험하는 신. 지선(至善)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분열된 실체로서의 신의 모습.

The Metamorphosis
윤기남 감독의 2012년 단편영화 ‘변신’의 스코어로 쓰였던 곡. 영화 속 15분과 처음부터 한 몸인 듯 기이하게 합일을 이룬다. 필히 영화와 함께 보고 들어라.

* 음반 해설지를 약간 수정해 실었습니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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