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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부스: 쾌락에서 성찰로, 자아로부터 세상으로

3.5집을 발매한 남성 5인조 락밴드 폰부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낸 최고의 음반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저없이 인터뷰를 주선했고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은, 연남동의 한 카페 야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진행한 리포트다. 인터뷰는 다들 말을 잘하는 관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베이시스트 박한의 달변은 근래 만나 본 뮤지션 중 단연 1위로 놓을 만했다. 아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면 되겠다. 인터뷰엔 홍광선(보컬), 김태우(기타), 이상민(기타), 박한(베이스), 최민석(드럼)이 참여했다.

가벼운 걸로 들어가 보자. 얼마 전 끝난 ‘그린플러그드’는 어땠나?
홍: 이렇게 다섯 명이 하는 락페는 처음이었고, ‘그린플러그드’에 저렇게나 많은 분들이 오실 줄도 몰랐다. 또 낮 시간이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

이: 지하실에만 박혀 있다가 햇빛을 받게 되어 좋았다.

김: 사인회가 있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누가 올까 싶었다. 그런데 번호표가 다 나갔다지 뭔가. 깜짝 놀랐다.

박: 공연 때 영상을 만들어서 연출했는데, 첫 곡 때는 별로였다. 그런데 두 번째 ‘파도의 꽃’을 하는데, 앞에 계신 분들이 다 따라 불러 주더라. 감동이었다.

최: 어떤 분은 우리 프로필 사진을 깃발로 제작해서 흔들어 주시더라. 내년엔 한 20개 정도 보면 좋겠다(웃음).

Oasis에 대한 동경으로 커리어를 열었다. 1집과 2집을 공개한 후 군대를 갔다. 그리고 2014년 세 번째 음반 [Wonder]가 나왔는데, 음악성 문제가 아니라 좀 놀랐다. 이건 폰부스 역사에 기록될 터닝 포인트 아닐까?

박: 빙고. 확 바뀐 음반이다.

홍: 나는 전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좀 덜 달리는 거지 우리만의 흥은 그대로였다고 보는데. 연출하는 방식이나 포인트가 약간씩 변화한 것뿐이다. 우리 딴엔 그걸 ‘발전’이라고 봤다.

김: 1~2집 때는 “이러이러한 걸 해야 한다. 락밴드는 달려야 한다. 빡센 소음을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3집 때는 그런 걸 다 배제하고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목소리가 더 강했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보면 가장 폰부스다운 음반이 나온 게 아닐까 한다.

그래도 하던 음악을 두고 그런 음악으로 선회한다는 건 쉬운 일 같아 보이진 않는다.
홍: 낭만의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해야 하나. 싱어롱이 되는 발라드나 너무 빠르지 않은 곡을 쓰고 싶었다.

더 블루지해졌다. 탱고도 있고. 그런 것들도 좋아서 싣게 된 건지?
박: 해보니까 나쁘지 않더라고. 우리도 예전과 다르게 유연해진 걸 느낀다. 타 장르를 받아들이는 품이 넓어진 건 틀림없다. 좋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우리 음악’으로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가짐이 생긴 거지.

그럼 그땐 편협했다는 건가?
홍: 그렇다. 곡에도 분노가 가득했고(웃음).

전에는 향락적/쾌락적인 가사가 많았다면 [Wonder]부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사회비판까지는 아니어도, 존재에 대한 성찰이 생겼다. “바람이 분다 작은 꽃잎들이 흔들린다/긴 가로등 하나가 아직도 꺼지지 않는다/잠들지 못하는 거리 위에/작은 내 꿈은 왜 사이에서만 피는지” 라는 가사를 담은 ‘바람이 분다’가 대표적이라고 본다. 어떤 심경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홍: 작사비중 자체가 한이에게로 이동한 게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전에는 “왜 집에만 있어. 나와. 즐겨!” 그런 식으로 가사를 썼지.

박: 그 영향도 있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멜로디가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노 가득한 멜로디에 가사를 얹으면 자연스레 분노가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 정서와 맞는 어휘가 선택되기 때문이었겠지. 이후엔 멜로디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가사가 품는 단어도 다양해지게 된 거고. 언급한 곡 같은 경우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막막함을 다루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것들을 견뎌내면서 살아가는 사람 외 존재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랬을 때 대중에게 생경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성찰로부터 발걸음을 뗀 곡이다.

이: 반항도 무작정 반항하는 게 아니라, 예술성이 깃든 반항을 하고 싶었다.

성숙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박: 좌절하다 보니까, 이제 그 좌절도 능숙하게 넘어갈 수 있게 된 거지.

그런데 그 정성만큼 반응은 따르지 못한 것 같다. 아쉬움은 없었나?
박: 아쉬웠다. 그런데 매 앨범이 늘 그런 식으로 아쉬웠다. “이것보다는 좋겠지?” 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했을 때 특히 그랬다.

김: 그러다 보니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졌다. 1~2집 때는 “아, 이게 왜 안 되지” 그랬는데, 3집 때는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가 된 거다.

박: 그렇게라도 자기위안을 안하면 화병 때문에 못 산다(웃음).

본 게임인 EP로 들어가자. 팬들이 직접 CD 재킷을 제작하게 했다고 하던데, 그럼 홍보용 음반과는 별개의 형태라는 건가?
이: CD를 구입하지 않는 시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D를 사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음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채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수집 차원일 수도 있고, 뮤지션에 대한 예의 차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분들을 위해 모종의 의미를 담아 본 거지. 플라스틱 케이스로 된 물체를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프린트를 해서 접으면 액자 모양이 되는 거다. 그렇게 기념할 수 있게 한 거지.

홍: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을 해보기엔 정규 앨범보다는 아무래도 EP가 어울리지 않느냐고 의견이 모아졌다. 도전하기가 조금 수월하다는 거였지.

박: 몇 마디 보충하고 싶다. 과거엔 CD는 포장일 뿐이고, 안에 든 상품, 즉, 음원이 코어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CD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다.

이: 스스로 만드니까 애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한 것도 있다.

표지 이미지는 여러 가지 것들을 소환한다. 설명을 들어보자.
박: 3집까지 ‘우리’의 말을 했다면, 3.5집은 ‘시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우리 바깥’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게 콘셉트였다. 여러 소재를 가지고 가사를 작성했고, 그걸 바탕으로 앨범 이미지를 완성했다. 한 소녀가 있고, 그 소녀가 우리가 구상한 소재들을 손에 들고 있다는 것으로 얼개를 짰다. 그녀의 유약한 이미지가 세월호 희생자와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의 무력감을 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표지에는 뒷모습이 있지만, 앞을 보면 그녀는 웃고 있다. 여러 포즈를 짜 보고, 시안도 받아 보고 하다가, 디자이너 친구가 보내준 여러 안 중에서 고른 것이다. 여기 보면 소녀는 그걸 뒤로 살포시 숨기고 있는데, 왜 그렇게 했냐 궁금할 것이다. 이걸 보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뭔가를 속이고 있고,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나더라. 사람들이 “너, 그거 뒤에 뭐야 보여줘?” 묻는데, 당사자인 아이는 보여주기 싫은 이야기들. 우리가 대면해야 하지만 자꾸만 뒤로 숨는 것들. 그런 감정을 가시화하고 싶었다.

장난, 지을 작(作)자에 어지러울 란(亂)의 조합이다. 상세히 풀어준다면.
박: ‘평범한 시절’을 보면 “나도 그냥 심술궂은 장난일 뿐”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거 군 가혹행위에 대해 쓴 곡인데, 그 소절 자체가 이 음반의 모든 걸 내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저런 형용사를 붙여 보면서 ‘~~한 장난’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수식어를 붙이면 붙일수록 그 수식어가 내용을 가둬 버리더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의중이 축소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난’ 두 글자로 가자고 합의를 하게 되었다.

이: 나중에 찾아보니 ‘장난’이라는 말 자체가 실제로 ‘작+란’에서 온 게 맞다고 하더라.

홍: 그게 이번 타이틀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곡을 하나씩 점검해보자. 첫 곡 ‘파도에 꽃들’들은 단연코 2014년 4월의 저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충격 그 이상의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폰부스가 곡을 쓰게 한 기점이 있었을 것만 같다.
박: 굉장히 아픈 사건이라 노래로 만든다거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말해 버리는 순간 울먹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여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여전히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이제는 말을 할 때가 아닌가. 우리라도 말을 해 보자. ‘시대’를 그리는 음반이니 이걸 첫 곡으로 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스타트를 했다. 그 다음 머리를 아프게 했던 것은 메타포의 대상을 뭘로 잡냐는 거였다. 노랫말을 붙이기 전에는 “머리에 꽃을”이라고 가사를 붙여 불러보기도 했는데, 알다시피 그건 전인권 & 허성욱 선생님의 곡이다. 애정하는 곡이어서 그 가사를 그대로 쓸까 하다가, 그렇게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꽃’만한 메타포를 구하긴 힘들더라. 활짝 핀 꽃은 ‘최고로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게 이 이야기를 포괄할 수 있겠다 싶어서 모티프로 삼았다. 식상하고 뻔한 은유이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는데, 일단은 자신감을 가지고 써 내려갔다.

원래 이 가사는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다. 시점이 팽목항 부둣가에서 바다를 보는 거지. “몇 번의 파도를 접어야 너희의 입술에 닿을 수 있을까”. 그건 철저하게 기다리는 입장이다. 그러다 새벽에 술을 마시고 다시 그 가사를 보니 내가 물 아래의 입장이 되더라.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줄, 한줄이 나오게 되었고 그게 이 가사가 된 거지. 상처받은 사람들은 이 친구들이고, 잘못한 사람들은 물 밖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상처받은 친구들이 바깥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역설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아, ‘어머니’라는 말은 가사에 안 넣으려고 했다. 위로받아야 되는 대상들을 제한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또 때가 되니 막상 그 이름을 지우진 못하겠더라. 그래서 “어머니, 울지 말아요”라는 가사는 유지하게 되었다. 더구나 멜로디에서 그 지점이 격정적으로 비등하는 포인트이기도 해서 결과론적이지만 잘한 선택이 되지 않았나 본다.

관찰자의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에서 써나간 게 신선하긴 했다.
홍: 가사랑 멜로디를 같이 쓴 것도 아니고, 멜로디가 먼저 나온 상태에서 어떻게 또 그런 가사랑 만나게 되었다.

박: 귀를 기울이면 바다에서 나오는 듯한 기포소리도 들린다.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김: 편곡을 내가 했는데, 유난히 더 신경을 썼던 게 1차 편곡이 끝나고 보니 어떤 곡보다 한이가 쓴 가사가 주는 강렬함이 컸다. 그래서 그걸 살릴 수 있도록 편곡을 한 번 더 했다. 악기가 들어가는 부분이라든지, 합창단 느낌의 코러스 부분을 살렸는데 그게 한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제대로 맞물리게 나온 것 같다.

이: 드럼이 “쿵쿵” 하는 것도 의미심장한 거다. 아이들이 배 벽을 두드리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고.

김: 그런데 작업하면서 참고했던 레퍼런스는 또 슬픈 게 아니었다. ‘라이언킹’ OST 였으니까.

슬픈 상황을 슬프지 않게 잡아보려고 한 거군. 그래서 더 슬픈 곡이 된 것이고.
박: 잘 봤다. 그래서 보컬 녹음할 때도 광선이한테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부르라”고 주문을 했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전달력도 생기고 소름끼치는 곡이 될 것 같았으니까. 다음 날 평범하게 교실에서 만난 친구처럼, 그저 일상의 하루가 지나간 것처럼 부르라고 했지.

이: 곡이 초장부터 메이저 코드로 진행되고, 분위기도 늘어지지 않고 하니까 사람들도 의아해 하긴 했다.

김: 그런데 나는 마이너 키로 가면 이상할 것 같았어. 이게 더 슬프지 않나?

다음 곡 ‘공중곡예사’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사건을 조명했다. ‘곡예사’라는 비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곡예사란 슬픔과 좌절, 희망과 절망을 태생부터 동시에 가진 존재 아닌가?
박: 역설을 한 번 더 보여주고 싶었다. 곡예사는 말했다시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에게 사람들은 박수친다. 하지만 그는 극도로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죽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저 굴뚝위에 올라가 계신 분들의 처지와 유사하게 대입이 될 것 같았다. 그 소식을 듣는 우리는 그분들의 입장을 모르는 채 뉴스를 소비할 뿐이구나.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홍: 이게 데모 나왔을 때 가제는 ‘슈퍼 댄스’였다. 신나게 춤추고 놀자는 그런 의미에서.

박: 이 친구들이 거기에다가 세련되고 매끈한 가사를 주문했는데, 이번 음반 테마가 테마이니만큼 그건 안될 것 같았다. 스토리에 집중한 가사를 쓰자. 그래서 이런 노랫말을 적게 되었고, 어떻게 보면 음반 수록곡 중 가장 메시지가 명확한 곡이 되기도 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왜 내가 여기 올라왔는지 설명해줄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저 위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걸 “부러진 부리로 추락한 가난한 저 새들”이라는 비유에 담아낸 것이고. 간주에 흐르는 연설은 이 친구들이 간주에 넣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줘서 삽입해 본 거다. 곡으로만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 연설을 통해 보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평범한 시절’이 군 가혹행위에 대한 곡일 듯하다.
박: 그렇다. 이 곡은 ‘파도에 꽃들’ 다음으로 작업한 곡이다. 상민이가 작곡했는데, 곡이 가진 비트 때문에도 이 소재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델로 삼은 건 윤일병과 임병장 사건이다. 1절은 윤일병, 2절은 임병장으로 나눠서 가보려고 하다가 둘 다 어차피 가해자이자 희생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특정 사례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y of Evil)’을 상기하면서 가사를 썼다. 일상화된 폭력. 합법화된 폭력. 우리가 너무 법과 규칙에만 의존해온 나머지 어느새 당연시하게 된 폭력. 합법적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만연하게 되었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바로 군대다. 규율대로 모든 게 처리되는 공간. 다른 건 다 무시되고 오직 ‘상명하복’이라는 규칙만 존재하는 공간. 그것만 지켜지면 다 무마되는 곳. 그렇기 때문에 언급한 두 건의 잔혹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주변을 보라. “군대라는 건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시절이지 않냐”, 사람들은 이렇게 군대를 쉽게 생각하고 쉽게 그에 대한 견해를 내뱉는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누구나 다 겪는 시절, ‘평범한 시절’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그렇게 간단히 치부할 수 없다는 걸 폭로하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남자들은 제대 후에도 군대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지 않나(웃음). 그 공포가 얼마나 컸으면 그렇게 내재화되었겠는가. 임병장의 캐릭터가 일반적이지 않은 건, 그가 시스템에 저항을 한 자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이 임병장이고, 윤일병은 그 말마저 못한 채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지.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 친구가 왜 그리 극단적으로 몰려 있었을까, 왜 총을 쏘게 되었을까. 연민이 드는 구석이 있다. 역시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이 곡을 듣고 너희도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줬으면 좋겠다. 이게 우리가 보여주고자 한 핵심이다. 그리고 ‘파도에 꽃들’ 다음으로 만족하는 가사다.

본인들도 커리어의 중요한 분기점에 군대를 다녀와 그런지, 그 일련의 사건들이 남의 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이 가사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한이가 현역이 아니기 때문이다(웃음). 그게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아, 웃자고 한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걸 겪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거다. 만약 한이가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다면 그런 건 잊고 넘겨 버리지 않았을지. 아니면 더욱 분노에 찬 가사가 나왔거나. 군대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제대를 하면 이제 그 내부의 일은 ‘남의 일’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모르오. 나는 이제 거기 갈 일이 없으니 뭐가 터지든 말든 내 소관이 아니야. 그런데 이런 시각도 100% 올바른 게 아닌 것이, 당장 자기 자식이 군대를 가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기에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본다.

연주 면에서도 분석해보자. 어깨를 들썩이게 하지만 가사는 묵직하다. 드러머 민석 씨에게 묻고 싶다. 이 곡의 연주에서 염두에 둔 사항이 무엇인가?
최: 매번 앨범 낼 때마다 새 리듬을 만들려고 머리를 뜯긴 하는데, 내 취향대로 하기보다는 기타 치는 태우 형과 상의해서 결정하는 편이다. 이 곡의 가제가 ‘우후’였다. 그랬는데 음반 콘셉트에 따라 저렇게 바뀌었고, 무거운 감도 있으면서 댄서블한 느낌도 살리긴 해야 되니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잘 나왔던 것 같다.

이: 무거운 댄스곡을 만들고자 했다. 웅장한 맛도 있지만, 리듬은 춤추기 딱인 곡.

박: Pulp의 ‘I Spy’ 같기도 해.

홍: 황량하고 건조한 기운도 있다. 서부영화 보면 나오는 거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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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은 타이틀곡으로 어울릴 만한 곡이다. 창법도 다르게 한 것 같고. 그리고 다른 곡은 감이 잡히는데 이건 뭘 다룬 곡인가?
홍: 1-2-3-3.5까지, 디스코그래피가 누적될수록 점점 내 목소리로 가려고 의도한 건 있다. 그러니 특정한 곡을 말하는 것보다 흐름으로 파악하는 게 맞을 것이다. 3집을 하면서 곡이 내 목소리에 붙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번 EP를 하면서 좀 더 편하게, 억지스럽지 않게 부르려고 유독 노력했다. 우리가 락음악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는 1990년대 가요의 자장에 놓여있지 않나. 소위 ‘쿠세’(정서)라고 하는(웃음). 그런 걸 버리지 못한다. 아, 일본말 해서 미안하다. 보컬들이 이런 말 자주 쓴다. 뽕끼와 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본 셈이지.

박: 이건 고독사에 대한 곡이다. 자본화된 사회에서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죽음. 죽음의 잉여분 같은 것. 혼자서 외로이 쓸쓸히 죽어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

홍: 짚고 갈 게 있긴 하다. ‘고독사’에 대한 곡인데 노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그래서 메시지 전달이 훌륭히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래들이 다 ‘역설’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잘 나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박: 난 그래서 둘 다 선명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이야기도 이야기대로 노래도 노래대로.

김: 그것도 장난이자 난센스다. 곡의 분위기와 가사가 다 들어맞지는 않으니까.

박: 그래서 이 곡 후렴 가사를 쓸 때 무지 고생했다. 힘 있는 외침이 나오다보니까 캐릭터의 입장과 노랫말을 어떻게 맞출까 혼돈이 오더라고. 결국에는 자신의 죽음을 긍정하는 식으로 가사를 갈무리했다. “뜨거워진 너희가 그리워하는 그늘일 거야”라는 대목을 보자. 고독사하는 노인들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 밑에 깔린 채 살다 아무도 모르게 저곳으로 간다. 그들의 삶의 좌표가 정확히 ‘그늘’ 같아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다.

세월호나 여타 사안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이런 문제까지 건드리다니 의외긴 하다. 20대 락밴드가 관심을 갖기엔 말이다.
박: 예전부터 고독사 문제를 기사로 많이 보아 왔다. 이건 이 시대의 화두다. 이런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내가 기자라도 당혹스러울 것 같았다. 다른 사건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만, 이 사건은 정체가 모호하지 않나. 3주 뒤에 정체모를 시신이 드러나게 되는 이 맥락을 이해하려면 도저히 인과관계 따위로는 해석이 불가한 것이지. 고독사는 ‘누가 누구를 죽였다’로 독해되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대 개인의 문제다. 그래서 더 특별했고 와 닿았다.

‘피지 말아요’는 ‘파도의 꽃들’과 겹쳐 읽으니까 저릿한 게 있다. ‘파도의 꽃들’의 꽃잎들이 마지막 곡에 이르면 또 ‘피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대상이 된다. 이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뿐만 아니라, 공교롭게 ‘꽃’은 이번 음반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박: 어떻게 하다 보니까 희한하게 곡마다 꽃이 다 나오더라. 신기했다. 이건 설명할 수 없는 거지. 이성적으로 그걸 노리고 쓴 건 아니지만, 어떤 감성이 나를 ‘꽃’으로 끌고 간 것이겠지?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꽃’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말이지. 아, 이 곡은 ‘연애를 포기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돈도 없고, 연애로부터 거세당해야 하는 2015년의 젊음들. 원 버전의 가사는 “나는 네 손에 반지를 줄 순 없지만, 네 손을 잡아줄 순 있어”였다. 그런데 쓰고 나니 유치하더라고. 그래서 빼버렸고, “나의 들판에서 더 이상 피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대신 들어가게 된 거지.

홍: 락킹한 넘버로 쓰려고 하다가 안 살아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 보다가, 언제나 앨범에 하나씩 들어갔던 어쿠스틱 곡이 들어가면 어떠할까 싶었다. 그렇게 바꿔보니 서정성이 피어나게 되었다.

종합해보면, 사운드나 메시지 측면 다 ‘폰부스 제 2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양질의 음반이 나왔다. 편의상 도식화해보자면 쾌락에 빠져 있다가,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마지막엔 세상을 보듬는 밴드가 되었다. 본인도 스스로가 대견할 것 같다.
홍: 결성 당시부터 이런 밴드였다면 어땠을까(웃음)? 2006년 데뷔작을 이런 음반으로 냈으면 더 괜찮았을 텐데.

박: 그랬으면 우리 진짜 듣보잡 밴드로 저기 지하에 가 있을 걸?

김: 이 인터뷰도 없었을 테고.

박: 쾌락도 예전에는 우리의 개인적 쾌락만을 노래했다. 그런데 이제는 쾌락적 노래를 써도 공감이 가는 쾌락 노래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더 양질의 음반을 낼 수 있겠지. 아, 그렇다고 우리의 개인적 쾌락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웃음).

아버지 밴드 Oasis로부터 멀어지고 사회의식을 얻었다. 밴드로서 정체성이 확립되었다는 건 칭찬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묘할 것 같기도 하다. 어떤가?
홍: 나름대론 지금도 그들을 부여잡고 있긴 한데, 가사의 영향력이 커지고 디테일한 그림도 달라지다 보니 확실히 바뀐 건 있지. 그땐 Oasis곡을 그대로 가져왔으니까, 일부에 의하면 ‘Oasis를 복붙’했다고 하던데 정말 우린 그렇게 했다(웃음). 인정한다. 잘 봤다. 와, 빠들은 다 그게 보이는구나.

박: 그때는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했던 거고, 현재는 우리 옷을 입고 우리 음악을 하게 된 거지.

홍: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색깔이 뭘까 끊임없이 찾아봤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요즘 그 여정이 헛물켜는 여행만은 아닌 듯해서 한편으론 기쁘다.

김: 3집을 내고 “너무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게 우리 밴드의 메리트가 아닐지. 이탈리아 음식을 맛나게 하는 전문 레스토랑이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잘 하는 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여러 가지가 혼재해 있는 게 우리의 아이덴티티일 수도 있는 거지.

홍: 트랙마다 스타일이 갈릴 수는 있지만, 이제 가사가 하나로 모이니까 그게 중심을 잡아 준다. 팬들도 그걸 감안하고 잘 들어 주시는 것 같다. 감사하다.

다음 음반은 풀렝스일까, EP가 될까?
김: 글쎄, 3.75집이 될지, 4집이 될지 봐야지.

박: 싱글이 나올 수도 있고.

김: EP가 하나 나올 것 같긴 하다.

이: 우선 최대한 멋진 곡들을 착착착 모아두고 싶다. 그래서 그게 정규가 될 분량이 되면 정규가 나오는 거겠지.

홍: 항상 새로운 게 뭐가 있을지 탐색할 거다. 심각하게 가도 폰부스는 폰부스다. 앞으로 내내 이렇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 이 음반이 이런 색채를 가진 것은 순전히 2014년의 무드 덕택이다.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살맛나는 세상이 오면 사랑 노래를 쓸 수도 있지.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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