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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22

치밀, 영리, 노련의 3박자

부분이 가끔 전체를 보여주거나 능가한다. 요즘 가장 핫한 밴드 중 하나인 혁오의 음악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존경하는 모 평론가가 늘 주장하는 것처럼 “음악은 귀로 듣고 즐거워야 한다”는 대전제를 믿고 또 간직하고 있지만, [22]를 듣는 이 순간만큼은 그 명제를 살짝 뒤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귀로도 즐거울 수 있다”고 끝부분을 바꾸면 어떨까? 아마, 선배의 성격상 “저열한 타협이야”라고 쏘아붙일 법하다. 하지만 아티스트 혁오를 거론할 때, 패션/디자인/영상/곡 중 어느 것이 핵심인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누구의 말마따나 애초부터 핵심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그 중 뭘 보거나 듣더라도 이 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언급한 항목 중 ‘뮤직비디오(영상)’만 끌고 와도, 혁오의 행보는 다른 밴드와는 걷는 길 자체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미니음반 [22]는 지금까지 무려 3곡(‘와리가리’, ‘Hooka’,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를 쏟아냈다. 게다가 그 퀄리티는 단편영화에 못지않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감각적인 영상미를 품고 있다. 멍하니 응시하고만 있어도 빨려들 만하다. 프랑스의 유명 영화 감독 미셸 공드리에게 헌정하는 트랙 ‘공드리’를 따라가보자. 영상과 곡의 접합은 물론, 자막의 색채와 위치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 배열된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보통 영리한 게 아니다. 음악이 현재 어떻게 소비되고 또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몰랐다면, 이런 음악은 설계 자체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리뷰에서 그것이 올바르다/그르다의 이분법적 논의를 펼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이 시대 음악팬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현상’이니, 우리는 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혁오의 마케팅 전략은 마땅히 기존의 구획이나 경계를 넘어서고 해체하려는 것이다. 음악은 이제 엄숙한 감상의 ‘제의(ritual)’ 행위(이를테면 흰장갑을 끼고 LP를 꺼내 공손히 바늘 위에 음반을 얹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를 벗어나 일상의 BGM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운동의 파트너가 되기도 하며, 치료실의 보조장치로 작동하기도 하고, 심지어 청각을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그것을 분석하고 공부하기라도 한 것처럼 혁오의 음악은 그 ‘틈’을 기묘하게 파고들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음악적으로 봐도 [22]는 울타리에 갇히기를 싫어하는 음반이다. 소울과 락 사이. 그 이름 모를 접경지에서 진동하는 리더 오혁의 보컬은 편견 없이 봐도 놀라운 재능인데, 의도적으로 분절된 음을 거부한 채 약간씩 음을 흘리거나 밀어내며 부르는 보컬은 필드 내부의 유사한 보컬리스트를 찾기 어려울 만큼 유니크하다. ‘와리가리’의 페이소스는 그 농도가 진하고, ‘큰새’가 주는 울림은 절제의 틈바구니를 찢고 나와 화사한 향기를 맡게 한다. 그 나이를 의심케 할 만하다.

그럼 베이스-기타-드럼의 합은? 헤비니스부터 재즈, 모던락 등 다양한 음악을 섭취한 멤버들이 모인만큼 역시 하나의 단어로 끌어 모으기 난감한 연주를 들려준다. 처음엔 알앤비로 향하는 것 같았던 목적지가 창에서 눈을 뗀 찰나 바뀌어 있기도 하고,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다 어느덧 브릿팝 특유의 감성을 불어넣기도 한다. 기분 좋게 어지럽다. 그러나 당연히 그 연결고리가 모두 만족스럽다는 말은 아니며, 특정 파트에서는 조금 난삽하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렇지만, 데뷔 1년도 안된 밴드의 솜씨가 이 정도라면? 필요불가결하게 해야 할 연습과 자연스럽게 누적될 사색, 경험이 그 위로 쌓인다면 어떤 커리어가 완성될지 기대해 보는 게 무리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벌써부터 올해 말 공개된다고 하는 정규작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3.5 Stars (3.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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