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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아들들: 모든 것은 호랑이굴에서 탄생했다

 

공연장을 다니고 밴드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호랑이아들들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올해 여름에 EP를 낼 예정이에요. 반드시 꼭! 체크해보세요”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겼고, 조성현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상수동 카페에 갈 때마다 언제 EP가 나오는지를 슬쩍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드디어 밴드의 EP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열심히 모니터했다. 결국 CD까지 구입하고 말았다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인터뷰는 이들의 아지트인 롸일락에서 진행되었으며 조성민(보컬과 기타), 임학영(베이스), 조성현(드럼)이 참여했다. 이들의 데뷔 EP 음원은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들어볼 수 있으며, 피지컬 CD는 롸일락에서 오후 8시 이후 구입이 가능하다. 홍대, 상수, 망원, 연남 거주자라면 자전거배달 서비스를 이용(페이스북 참조)할 수 있다.

 

호랑이아들들(Sons Of Tiger)이라는 밴드명의 기원이 궁금하다.

조성민: 드러머 성현이가 동생이다. 부모님이 호랑이 띠셔서, 그 이름을 짓게 된 거다. 엄밀히 말하면 사연이 있는데, 예전에 술집에서 통기타치고 팁 받으면서 아르바이트 할 때 술집 사장님이 “이름이라도 대충 만들어 와야 되지 않냐”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그땐 호랑이아들들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길게 갈 줄 몰랐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밴드명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순 한글이름이고 요새 이런 이름 많이 없지 않나. 그대로 가기로 했다.

 

이름을 확정한 건 언제인가?

조성현: 2013년 8월~9월 쯤이다.

조성민: 그 즈음이다. 통기타에 젬베 치면서 용돈벌이하던 시절이다.

 

성민 씨와 성현 씨는 영광 출신이다. 모 클럽 엔지니어님에게 듣기로 엄청난 각오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던데?

조성민: 그게 좀 과장된 건데. 그냥 공부는 하기 싫고 음악이 좋아서 올라왔다. 다들 거창하게 봐 주시는데, “락스타가 되자!” 뭐 이런 대단한 결심을 하고 떠난 건 아니고, 음악하면서 근근이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왔다. 부모님에겐 학교 근처에 얻을 방 얻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두 달만 놀다 오겠다”고 거짓말을 한 채, 덜컥 2년짜리 방 계약을 해버린 거다. 두 달이 지났으니 당연히 부모님께 전화가 오지 않겠나? 그제서야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실은 동생이랑 밴드를 할 거야!” 어머니에겐 차마 이야기를 못했다. 쓰러지실까봐.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아머지가 한숨을 푹 쉬면서 “너희 알아서 해라!”라는 식으로 허락하셨다.

 

아버지가 쿨하신 거 아닌가?

조성민: 포기하신 거다.

 

형에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어땠나?

조성현: 나도 음악을 하고 있었고 서울에 올 생각이 있었는데, 형이 밴드 하자고 제안해 줘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리더가 형이면 더 좋으니까.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셨나?

조성민: 보통 어른들처럼 청소할 때 음악 들으며 하시는 정도다. 국카스텐과 장기하도 좋아하신다.

 

아니 그러면 일반적인 부모님이 아닌데?

조성민: 장기하 CD도 사셨다. 우리 때문에 거꾸로 어머니가 영향 받은 거다(웃음). 역영향인가? ‘나는 가수다’에 국카스텐 나왔을 때, 하도 TV보라고 말하다 보니 어머니가 밴드에 빠지셨다.

 

학영 씨는 나중에 가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언제 팀의 일원이 되었나?

임: 2014년 12월 24일이 첫 공연이었다.

 

그럼 채 1년이 안 된 셈인데, 그 전에는 어디에서 활동했나?

임: 인디 쪽에서는 활동하지 않았고, 대학교 동아리에서만 연주했었다.

조성민: 야인이었다.

임: 혼자 악기 연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베이스는 혼자 치기엔 좀 애매한 악기 아닌가?

임: 밴드를 죽 하면서 중고등학교 때는 시간이 없으니 1년에 1~2번, 대학교 때는 1학기 때 2~3번 공연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감질났다. 적어도 1주일에 1번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 인디 쪽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럼 가입 제의는 누가 한 건가?

조성민: 유명한 커뮤니티 ‘뮬’을 통해서 구인했다(음악). 알다시피 국내 최고의 밴드 커뮤니티다. ‘아는 사람과 하자’는 주의가 있어서 친구나 지인 위주로 멤버를 물색하던 중이었는데, 이미 주변엔 “2주 만에 멤버를 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딱 2주 되는날, ‘뮬’에서 이 친구를 뽑게 된 거다.

조성현: 이 친구가 유튜브에 올려둔 연주영상을 보고 옳거니 했다.

조성민: 그걸 먼저 성현이와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반응을 본 게 아니라, “나는 이 친구랑 할 거다”라고 확정지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웃음). 통보를 한 거다.

임: ‘이런 아이다. 내가 뽑았으니 감상이나 해라’는 거였겠지. 이 형이 재미있는게 실제로 내 연주는 본 적도 없던 상태에서, 내가 바로 팀원이 된 것처럼 행동을 하더라.

조성현: 동교동에서 김치찜을 먹으면서 작업을 걸었다.

 

학영 씨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 출신이라고 들었다. 내가 연천 출장을 자주 가서 더 친숙하다. 그곳에서 어떻게 음악인의 꿈을 키워나갔나?

임: 처음 베이스를 잡은 건 중학교 때다. 밴드라는 개념보다는 동아리에 더 가까웠다. ‘방과후수업’의 연장선 같은 거여서, 따로 만나 합주를 하거나 스테이지에 서거나 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여건이 열악해 주로 교회에서 실력을 다졌는데, 나를 베이스의 길로 인도한 스승님을 만나 2달 정도 기초를 배웠다. 이후 실전 쪽으로 돌아서 코드 하나 받고 그것만 연주하는 식으로 한 3~4년 정도 쳤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기타랑 베이스 소리도 구분하지 못했는데, 직접 연주를 하다 보니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잘하는 연주자와 밴드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실력을 더 연마해서 밴드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혀지게 된 거다.

 

이래저래 인터뷰를 다니다 보니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가장 데뷔작을 듣고 싶은 아티스트로 뽑더라.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임: 그건 술을 같이 먹어서 그렇다.

조성민: 내 생각에 웨이스티드 쟈니스랑 다이얼라잇이 그랬을 거다. 친한 팀들이 많을 텐데 왜 굳이 우리였을까? 음,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돼서 짠~했나(웃음). 이래저래 도와주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 도와주나?

조성민: 공연도 같이 하자고 하고, 음악적으로도 “이거 들어봐”라며 던져 주는 것들이 있다.

임: 우리가 동정심을 잘 유발한다.

 

Eddie Cochran, Steppenwolf, The Kinks, Led Zeppelin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였나?

조성민: The Beatles가 최고다. 그 다음이 Led Zeppelin과 Buddy Guy. 의외로 Jimi Hendrix는 잘 받질 않았다.

조성현: 나도 The Beatles랑 Led Zeppelin 우선 깔고 간다. 그리고 The Doors랑 The Kinks.

임: 나는 이 형제와는 성향이 정말 다르다. 내가 우리 팀이라 1인분을 할 수 있지, 만일 우리를 언급해준 웨이스티드 쟈니스나 다이얼라잇에 간다면 내 실력으론 택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베이스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특색은 없다. 코드에 얹어서 치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연주에 영향을 준 베이시스트도 많지 않다. 그냥 어떤 팀을 가도 바닥은 할 수 있는 베이시스트다.

 

그러면 학영 씨가 들어왔을 때, 합을 맞추기 좀 어렵지 않았나?

임: 블루스를 처음 쳤는데, 평소에 하던 것과는 달리 자유도도 높고 쓸 수 있는 음도 달라서 3달 정도는 힘들었다. 적응하는 기간이라 보면 된다. 그 후 곧바로 라이브에 투입되었다. 형이 일부러 그때 라이브를 많이 잡아놓지 않았나 싶다.

조성민: 맞다. 그 기간 동안 학영이를 트레이닝시킨 거다. 1~2월에 라이브만 24번 했으니까.

임: 그 사이 기타솔로가 이렇게 나가니까 내가 베이스를 요렇게 얹으면 되겠다는 식으로 감을 잡았다.

 

그럼 그 기간 공연할 때 실수도 많이 했을 법한데.

임: 그렇다. 지금과 다른 연주를 하고 있던 곡도 많았다.

조성민: 술 먹고 했잖아?

임: 음… 첫 공연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잘 기억도 안 난다. 공연 전에 맥주를 마시던 기억 다음이 바로 끝나고 사람들과 인사하던 장면이다.

 

녹음, 앨범디자인, 유통, 뮤직비디오 등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냈다. 소감이 어떤가?

조성민: 녹음이 제일 쉬웠다. 새벽에 가게(롸일락) 마감하고, 인천에 사는 엔지니어 친구에게 부탁해 장비 들고 이리로 오게 해서 세팅 쫙 하고 녹음한 거다. 하루 만에 다섯 곡 다 나왔다. 5곡이라 빠른 건 2번에 끝냈고, 타이틀곡만 7~8번 갔던 것 같다. 정말 빨리 끝냈다. 그렇게 하루 쓰고, 기타 더블링 하루(그래봐야 2~3시) 쓰고, 보컬에 한 2시간 정도 썼다. 보컬은 심지어 원테이크도 있다. 엔지니어가 “라이브하듯이 불러보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그 친구가 “이걸로 그냥 가자”고 답했다. “이래도 되는 거냐”라고 물어봤는데, “이래도 될 것 같다”고 하더라(웃음). 미심쩍어서 한 번 더 불렀더니, “그게 더 별로”라고 해서(웃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스튜디오 라이브 같은 느낌도 나더라.

조성민: 맞다. 그런 맛을 살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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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도 그렇고, 재킷 작업도 다 롸일락에서 한 거 아닌가?

조성민: 그렇다. CD 뒷면의 스티커도 여기서 복합기로 출력해서 잘라 붙인 거다.

 

CD는 총 몇 장 찍은 건가?

조성민: 400장 찍었다. 그런데 현재 200장만 포장된 상태다. 너무 힘들어서 나머지는 이거 다 소진될 쯤 다시 작업하려고 한다.

 

여기저기 음원은 등록이 되어 있는데, 피지컬 CD는 롸일락에서만 파는 이유가 있나?

조성민: 유통처에 맡겨도 잘 안 팔릴 것 같아서(웃음). 지금 지방배송도 연구하고 있다. 저녁 8시 이후 롸일락에 들러 주시거나, 따로 연락을 주시면 바로 자전거로 배송한다.

조성현: 내일도 동교동 쪽 배달이 밀려 있다.

임: 이렇게 하니까 진짜 인디 같은 맛이 있다.

 

치기어린 욕망의 눈을 가장 좋아한다. 이런 B급 영화 분위기 좋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는 누군가? 초보라면 연기가 괜찮은 편이다.

조성민: 지인이다.

조성현: 친한 친구다. 연기는 처음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잘 하더라.

조성민: 보면 알겠지만 롸일락에서 찍었다. 맥주 마시면서, 편하게 놀면서 했다.

 

뮤직비디오 찍어 보니 어땠나?

조성현: 머리털 나고 최초로 화장이란 걸 해 보게 되었다.

조성민: 셋 다 우리이기를 포기하고, 하루만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웃음). 엄청 부끄러웠는데, 체념하고 찍게 되더라.

 

촬영감독님은 누군가?

조성민: 이지안 감독님이라고, 웨이시티드 쟈니스 ‘뜨거운 것이 좋아’랑 스트릿건즈 ‘꽃이 져서야 봄인 줄 알았네’ 작업한 분이다.

 

‘I’m Sitting on top of the World’은 유명한 외국곡 제목이다. 본인들의 노래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곡이지만. 이런 곡이 원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조성민: 이 곡은 가사를 먼저 썼는데, 가사 내용은 “떠나간 여자가 내가 잘 되었을 때 다시 돌아온다”는 건데, “나 지금 짱이니까 너 같은 여자 필요 없어”라고 답하는 거다. 그런데 적절한 제목이 생각이 안 나더라. 그때 Cream의 ‘Siting on top of the World’를 떠올렸고, 그 앞에 ‘I’m’만 붙여서 제목을 정했다. 외국 친구들은 커버곡인줄 알더라. 이런 오해를 이용하는 것도 유쾌한 것 같아서 이렇게 가기로 한 거다(웃음).

 

외국 관객의 비율이 꽤 높은 편 아닌가?

조성민: FF에서 공연하면 10명중 3명 정도가 외국 형들이다.

조성현: 예전 이태원에서 할 때도 아저씨들이 좋다고 박수치고, “Beer? Beer?”이러면서 술도 사 주셨다.

임: 자기 마시던 거 주고 그러던데?

조성민: 밴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태원 우드스탁에서 새벽 1시 마지막 순서였는데, 구석에서 당구 치시던 외국인 할아버지들이 오셔서 “너희 잘한다”고 하더라. 사운드가 더러운 게 마음에 드셨나?

조성현: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너희는 미국인들이 좋아할 사운드라고 귀띔해준 친구도 있다.

 

구름에 홀려서는 옛 가요에서 가끔 볼 수 있던 방랑의 낭만이 들어 있다. 이거 작사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조성민: 2012년 기타를 막 구입했을 때, 이태원에서 레스토랑 아르바이트하던 때 작사한 곡이다. 손님 없는 일요일, 할일이 없어서 멍때리고 있었는데 창문 사이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보였다. 그 순간 뭔가 오는 게 있어서 바쁘게 노랫말을 적었다. 막상 가사 보면 아무 내용이 없는데, 그 때 심경이 반영된 거다. ‘구름에 홀려서’라고 제목을 써 두고, 그 다음에 곡을 붙였다.

 

블루스락을 기반으로 락커빌리, 개러지락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놓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 쪽 음악을 할 생각인가?

조성현: 일단 우리가 현재 좋아하는 음악이 이런 과다.

조성민: 그런데 요즘 기타 치다 보면, 더 듣기 편한 스타일의 곡도 나온다. 지금이 쓰리 코드의 전형이라면, 앞으로 나올 곡들은 조금 더 많은 코드가 들어가는 곡이 될 것이다. 또 지금 파워 코드에 디스토션을 건 사운드를 추구하는데, 메이저 코드로 진행해 더 듣기 편한 곡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가사는 더 낭만적으로 쓸 것이고. 새벽에 곡을 써서 그런가?

 

새벽에 곡을 쓰면 아무래도 더 뭔가가 잘 떠오르나?

조성민: 성산동에 셋이 모여 살고 있는데, 아르바이트 마치고 걸어가면서 녹음기에 녹음하고 메모장에 메모할 거 메모하고 그렇게 한다.

 

서울 물가도 비싸고, 방값도 비싼데 직접 살아 보니까 어떤가?

조성현: 집값이 말도 안되게 비싸다.

조성민: 나는 밴드 시작할 때는 이렇게 근근이 살아가는 게 맞다고 본다. 빡세게 연주하고 공연하고 그래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정규 일을 하면서 이걸 병행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언제 어떤 스케줄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레이블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합주는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나?

임: 1주일에 2번 2시간 씩 한다.

조성현: 이 친구(임학영) 비는 시간과 우리 비는 시간을 딱 맞춰서 하고 있다.

 

스케줄이 타이트하겠는데?

조성민: 주말/평일 합쳐서 공연 3~4개씩 하고 그랬는데, 지친 것도 있고 가을부터는 공연을 조금 줄이려고 한다.

 

오늘 인터뷰도 롸일락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롸일락은 밴드의 터전이자 메인 기지인 느낌이다. 이곳은 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조성민: 호랑이굴. 집보다 더 오래 있는 공간. 집은 말 그대로 씻고 옷 갈아입고 누워있는 장소고, 오히려 이곳에 와서 누워있는 게 더 편하다.

조성현: 밥도 이곳에 도시락 싸와서 먹는다.

임: 집엔 거의 나 혼자 있는다.

 

자주 안 봐야 안 싸우는 거 아닌가?

임: 우리가 안 싸우는 게 그것 때문인 것 같다.

조성민: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강력한 통치 체제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기어오를 수가 없다(웃음).

조성현: 갑중 갑이다. 슈퍼갑.

조성민: 분란을 막기 위해서는 독재가 짱이다. 집에 방이 2개 있는데, 큰 방은 이 친구들 주고 작은 방은 내가 혼자 쓰고 있다. 미안하긴 하지만 보증금이 다 내 돈이라 어쩔 수 없다.

 

결성된 지 1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150회 이상의 라이브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무대에 오르면 설레나?

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재미있다.

조성민: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데 공연 시작 전만 되면 또 재미있다. 주말에는 “우와와!~~~ 다 죽었어” 그렇게 달리니까 우리가 주인공 된 것 같고 그런 게 있는데, 평일에는 상대적으로 늘어진다.

조성현: 진토닉 타고 서빙하는 거지.

조성민: 주변 형들에게 물어보면 그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고 그런다. 술에 손대면 큰일난다고.

임: 나는 이미 손댄 것 같은데.

 

평단에서 주목받는 밴드가 되었지만 아직 EP 한 장 낸 초짜 밴드이기도 하다. 어떤 음악인으로 남고 싶나?

조성민: 올해나 내년까지는 큰 구체적 욕심이 없다. 딱 하나. 우리 라이브를 안 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 본 사람은 없는 정도로는 팀워크를 다져두고 싶다. 앞 팀 공연할 때 전면에 있던 관객들이 우리가 나오자 다 뒤로 가는 그런 밴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조성현: 항상 연초에 계획을 두루뭉술하게 세워 두는 편이다. 올해는 그걸 다 한 것 같다. 2016년이 되어야 또 러프하게 계획이 나올 것이다.

조성민: 1년 밖에 안 된 팀인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CD에 사인할 때 꼭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를 적고 있다.

임: 올해처럼 꾸준히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숫자가 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국카스텐 형님들과 공연해 보고 싶다”는 것 하나.

 

레이블에서 관심을 가진 적은 없나? 그리고 여러 분들이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성현: 잠깐 있었던 것 같다.

조성민: 여러 분들이 도와주신다. 예상하지 못했던 분들도 손을 내밀어 주시곤 한다. 어릴 때부터 인복이 좋긴 좋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임: 그 도움도 뭔가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다. 보면 안다.

조성현: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레이블 들어가는 건 그렇다.

조성민: 우리 공연하고 놀기엔 지금 구조가 딱 좋다. 이번에 EP 준비하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힘든 일도 다 해봤고. 그래서 자신감도 생겼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녹음하고 CD 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심의도 받아야 하고 저작권도 등록해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이런 일 저런 일 한다고 막 뛰어다녔는데, 그걸 다 하고 나니까 다음부터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군문제는 다 해결된 건가?

임: 나는 가야 한다.

 

오호. 이건 크리티컬한 문제 아닌가?

임: 24살이라 곧 가야 한다. ‘뮬’에 글 올릴 때도 “1년 계약직으로 써줄 팀을 구한다”는 제목으로 띄운 거였다. 아마 올해까지만 같이 하게 될 것 같다.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그때 가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호랑이아들들에는 다른 베이시스트가 있을 것이고 그럼 나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하겠지. 만약 밴드에 빈자리가 있다면 다시 들어오고 싶다.

조성민: 학영이 팬 지분이 많아서(웃음). 이 친구 끼와 흥이 장난이 아니다. 연령대 좀 있는 언니들이 귀엽다고 할 정도니.

 

본인들이 보기에 괜찮은 국내 팀은 누군가?

조성민: 4인조 락밴드 클랩스(The Klaps)를 추천하고 싶다. 클럽 관계자나 레이블 관계자들이 물어볼 때마다 항상 이 팀의 이름을 말하고 다닌다. 아이들은 순박하고 거친데, 사운드는 또 블루스적이면서 감성적인게 있다.

조성현: 나는 호랑이아들들. EP도 냈고 활발한 활동이 예고되어 있다. EP 많이 사 달라.

임: 슬로우베이비다. 취향 저격을 당한 팀이다. 올해 스트리밍을 끊었다가, mp3로 처음 다운로드를 받은 팀이 이 팀이다. 기타 리프와 보컬의 음색이 엄청나다.

 

마지막 질문이다. EP를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마치자.

조성민: 우리 EP에는 호랑이아들들이라는 밴드가 무엇을 듣고 자랐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분신이라 생각하고 들으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조성현: DIY의 숨결이 느껴지는 음반입니다. 이렇게 하는 팀 많이 없지 않나요? 진정성이 있습니다(웃음). 음원 사이트 말고 CD로 즐겨 주십시오.

임: 음원을 들으면 라이브가 땡길 겁니다. “음원으로 듣기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공연장에 와서 호랑이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음반입니다. 만약 CD를 사지 않으셨다면 구입하셔서 들어 보시고, 이미 사셨다면 제가 다음에 공연장에서 아이컨택 한번 해 드리겠습니다.

조성현: 고놈 참 말 잘하네.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1 Comment on 호랑이아들들: 모든 것은 호랑이굴에서 탄생했다

  1. 그야말로 인디펜던트 ㅋㅋ 신개념 서비스 자체 자전거 배달 ㅋㅋ (개인적으로 레이블이 있는 팀은 인디도 아니라는 생각이 ㅋㅋ) 호랑이아들들 페이지 좋아요를 꾹 눌러주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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