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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는 곳

CD 매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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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4년간 늘 머리를 맡겼던 합정역 근처 미용실을 방문했는데, 차를 몰고 가서 머리를 한 다음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일이다. 현재 거주지가 강남 쪽이라 토요일 낮에 홍대를 가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끝나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 다시 교통 체증을 겪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공연 티켓을 후배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일요일 낮에 그 녀석이 우리 집으로 올지, 아니면 밤에 내가 녀석이 거주하는 합정으로 갈지 얘기를 하다가, 낮에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 내가 합정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을 한 다음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다. ‘합정역에 가서 티켓을 전달해 준 다음엔 뭐하지?’

어릴 적부터 등촌동에서 살던 나는 고등학교 때가 되어서야 신촌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친구가 중학교 때부터 기웃거리던 것에 비하면 조금 늦은 편이었는데, 버스 타고 20분 만에 가던 곳이라는 걸 계산해본다면 지금 생각해도 유독 늦게 찾아갔던 것 같다.

돈 없는 고등학생이 신촌을 들려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그래도 늘 하는 일은 있었으니, 신나라 레코드와 향뮤직을 들려 음반 구경을 하는 것이다. 매번 음반을 사진 않았으나, 매대에서 어떤 음반을 추천하는지, 어떤 앨범이 대세인지 확인하는 것에서는 매장 방문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렇게 혼자 시디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30분은 금방 지나갔고, 이게 내가 신촌을 자주 갔던 이유였다.

대학생이 돼서는 고등학생 때보다는 삶이 나아졌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러 장의 시디를 사게 됐는데, 그만큼 미리 인터넷에서 알아온 시디를 직원에게 달라고 하여 확보한 뒤, 그날 매장에서 직접 고른 시디도 같이 계산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배송이 가능 해진 시기였으나, 굳이 나는 시간을 더 투자해서라도 매장을 갔다. 물론 찾는 매장 장소의 비중은 신촌보다 홍대로 쏠리게 됐고, 어느 순간에는 아르바이트 장소가 시디 매장이기도 했다.

대학의 문을 닫은 이후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늘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며 음반 매장 몇 군데를 기웃거리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느 순간 갈 수 있는 곳이 정말 1~2군데였다. 그래도 갔다. 최근에는 유일하게 방문할 곳이 김밥 레코즈인데, 여기도 LP 위주이고 영업시간도 너무 한정적이라 갈 때마다 고생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늘 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

맞다. 내가 홍대를 그토록 자주 가던 이유, 신촌을 사랑했던 이유는 다 음악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반을 만지고 싶어서였다. 그 사랑과 열정은 택배라는 편리한 시스템이 생겨나도, 인터넷 최저가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신촌과 홍대에 퍼진 음반 매장들은 내가 혼자 놀 수 있던 놀이터였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어, 이제 그 놀이터에서 제대로 놀 수 있는 형편이 되니 장소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합정역에 가서 무엇을 하지?’라는 고민을 한 뒤, ‘어떻게 내가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됐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슬프다’라는 표현으로는 위로가 될 수 없다. 오프라인 음반 매장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마음의 다짐을 했지만, 아예 없어지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조금 호들갑 떨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이제는 만나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오버 아니냐고? 아니,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놀던 나의 쉼터가 없어져 어디를 가야 할지 방황하는 상황, 그 자체에서 나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제 나는 어디서 놀아야 할까. LP 매장이 몇 군데 생겼으니, 턴테이블도 없지만 그곳을 기웃거려야 할까,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주문하여 오는 아마존 시디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까. 오늘에서야 알았다. 프랜차이즈 점에 매몰당한 홍대를 내가 자주 가지 않는 이유는 프랜차이점이 많아서가 아니었다는걸. 그냥 음반 매장이 없어서였다.

*사진: 네이버 포토스트리트

About 이종민 (55 Articles)
음악 글쓰는 건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배우며 쓰고 있다. 50년 배우면 50년 써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강레오 쉐프가 한 말 인용했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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