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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지: EAT

팽창하는 젊음에 대한 이완적 헌신(Emotion, Associate, Terrace)

현실에 걸친 답답함을 애써 탈의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그게 스스로가 느끼는 육체 그리고 정신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던 포만감을 하나하나 덜어내 가는 서사를 이야기할 뿐이다. 화(난돼)지의 1집 [EAT]의 프로덕션은 그래서 제목과는 역설적인 관계를 맺는다. 극단적 니힐리즘(허무주의)이 양극단을 오가는 힘겨운 사투는 보이지 않을지언정, 표지에 적힌 말처럼 ‘젊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선은 유독 기울어져 있다. 앨범의 화자인 화지가 보는 세상과 자아에 대한 풍경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락된 조소와 바람을 한꺼번에 표출하듯, 본작은 감정의 굴곡이 꽤 심하다. 제목에서도 주지하다시피. 감정(‘말어’, ‘젊은데’, ‘스물다섯’ ), 관계(‘못된 년’, ‘Fetish’, ‘똥차라도 괜찮아’), 테라스(‘바하마에서 봐’)라는 단어로 집약할 수 있는 화지의 1집 앨범이다. 프로덕션의 탄탄한 편성과 그 위에서 노래하는, 불씨같은 감정이 여과없이 전해지는 듯한 화지의 랩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일률적인 분노의 흐름보다는, ‘젊은 랩퍼의 초상’을 묵묵히 응시한 듯한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고사하더라도, 13트랙이 담고 있는 매우 뚜렷한 상징적 어법, 저녁 시간을 하나의 사운드스케이프로 삼는 듯한 악곡의 샘플 등은 분명 본작이 갖고 있는 프로덕션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귀 기울여야하는 건 역시 그의 예의 진중한 가사에 얽힌 복합적인 어투일 것이다. 초장부터 능청스럽게 비속어를 섞어가며 자신의 음악적 동기와 장차 동기부여의 대상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은근한 스웩을 품고 있는 ‘집에서 따라하지마’에서의 조소 어린 위트(정글에서의 울림을 연상시키는 듯 둔중하게 울리는 드럼 덕분이다.)는 물론, 백지를 하나의 감정으로 빗대며 그 안에 그려질 여러 색깔들을 관계, 자아의 총천연색으로 절묘하게 묘사하는게 대관절 울림을 주는 ‘테크니컬러’의 냉랭한 시선 등 본작에서 만끽할 수 있는 전반적인 흐름이란 대개 이렇듯 ‘은유를 품은 직설’로 가득하다. 풍부한 문장과 묘사를 바탕으로 한 화지의 가사는 다시 문단의 첫 문장으로 그 느낌을 대신할 수 있다. ‘특정한 감정에 구애받지 않는 복합적인 어투’.

특별히 따뜻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면 다수의 청자가 그렇게 느끼곤 했던 ‘바하마에서 봐’, ‘똥차라면 괜찮아’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어쿠스틱 리프에 나긋하게 얹어진 화지의 톤은 실낙원(잃어버린 낙원이 아니다. 실존하는 낙원이라는 의미이다.)을 그리는 자연인의 필체를 빌린 듯하다. 욕망과 미련 빼면 남는건 별로 없다는 염세주의자의 시선에서 포착한 ‘바하마에서 봐’는 그야말로 입바른 이상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자유주의적인 면모를 비튼 곡이다. 한편 본작 발매 후 화지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R&B 보컬 보니(Boni)의 첫 정규앨범 [Love]에도 실린 바 있는 ‘똥차라도 괜찮아’의 동명의 원곡은 시선이 여성의 것에서 남성의 그것으로 옮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옅은 가을바람에 화기애애한 캠퍼스 커플의 낭만이 함께 실려가는 이 곡에서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갈구하는 자의 어렴풋한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인의 정체성이 아니라 편한 이성 친구의 편한 미소만이 포근하게 곡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친구일 수 없다는 ‘어떤 신인류들의 잠언’은 한강철교를 지나는 지하철보다도 훨씬 길지만, 순간적으로 이 곡을 관통한다.

분열과 안도감, 이상 등이 한데 모여있는 본작은 ‘~주의’로 묘사하고픈 욕구가 필요 이상으로 넘칠 정도로 철학적인 면이 다분하다. 그러나 정작 본작 자체가 지나치게 철학적인 접근을 외면한다. 이를테면 성감대(페티쉬)의 접촉에서 느끼는 다각적인 묘사(‘Fetish’)는 일절 진지하고 건전한 성관계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암전시키고 있다. 잠은 죽음의 사촌이라는 MC 나스(Nas)의 격언을 삽입시킨 것, 쾌락을 갈구하는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 부지불식간에 장엄해지는 중반부의 사운드까지.. 꽤 뛰어난 어휘로써 쾌락으로 점철된 하룻밤의 꿈을 마음껏 조롱하는 화지의 성적 묘사는 덜렁거리는 피임 도구의 존재의미조차 망각시키는 본능의 경지에 오른다. 그리고 이성 간의 냄새나는 본능은 다음 트랙인 ‘스물 다섯’에 이르면 범위가 한층 넓어진다. 청춘의 자아가 케케묵은 도시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그러니까 마치 시사적인 소설의 한 대목에 있을 법한 내용을 품고 있는 ‘스물 다섯’ 역시 젊음에 대한 화지의 시각적인 본능이 요약되어 있는 곡이다. 샘플로 쓰인 충돌과 파열음이 상징하는 일부분 역시 바로 그런 청춘의 잡음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타이틀곡이 오케이션(Okasian)의 성적 묘사가 들어 있는 ‘말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이 내포하고 있는 복잡미묘한 동선을 가장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는 트랙은 정작 그 다음 트랙인 ‘잘 자 서울’이라고 느껴진다. 재즈 아티스트 콘라드 벤자민(Conrad Benjamin)의 앨범 [Saturn]에 수록된 ‘Will There Be Tomorrow’의 트럼펫 세션이 이끄는 무드를 샘플링한 이 곡은 도회적인 풍광을 곡 전반에 걸쳐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샘플 사운드의 자연스러운 루핑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게스트 기용도 한 몫을 한다. 비속어와 상징을 적재적소에 엮어내는 래퍼 차붐(Chaboom)의 참여가 바로 그것인데, 화지와 차붐은 공통적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을 여지없이 환락에 찬 몸들이 응접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쾌락과 기쁨이 극단을 달리는 단절된 행복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건 하릴없이 한숨만 들이내쉬는 쓸쓸한 청춘의 뒷모습 뿐이다.

본작은 결론적으로 청춘으로서의 화지의 자화상이다. 행복에 안주하는 가장 보통의 청춘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마주하는 시각도, 자아에 투영시키는 심리도 유달리 균형추가 맞지 않는 조금 특별한 청춘도 있다. 본작, 즉 청춘의 자화상이 그리고 있는 것은 후자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자족적인 정신승리조차 개입되지 않는 빽빽한 허무주의가 아닌, 문명이 사사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낭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본작이 점유하고 있는 위태로운 감수성은 되려 숭고하기까지 하다.

4 Stars (4 / 5)

 

About 허희필 (6 Articles)
이명의 풋내기 필자 허희필(본명 : 허승엽)이라고 합니다. 거르지 않는 문장을 고수하는 편이나, 실은 가장 따뜻한 문장이야말로 좀 더 비판적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글쓰기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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