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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지: Zissou

자아, 세상에의 조망

그야말로 환상과 이상이 집약된 듯한 웨스 앤더슨(Wesley Wales Anderson) 감독의 2004년 작품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은, 한 마디로 한순간에 벗과 명성을 잃은 영화 감독(스티브 지소)과 생전에 알 턱이 없었으나 다짜고짜 그에게 다가와 아들이라고 말하는 ‘네드’를 비롯한 이른바 ‘스티브 지소 특공대’가 펼쳐나가는 하나의 해양 서사(?)라고 드높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감상적인 접근을 조금만 더 심화시키자면 그것은 언급한 바와 같이 누구나가 꿈꾸는 이상과는 조금은 다른 ‘환상’을 토대로 바다를 헤집는 괴짜 감독의 초자유(!)적인 면모인 것이다. 어찌 됐건 이것은 영화 비평이 아니기에 필자는 바로 이 영화에서 ‘자유’, ‘이상’ 등의 키워드를 영감으로 따온 대한민국 신(Scene)의 MC 화지(Hwaji)의 정규 2집 음반 [Zissou]에 초점을 돌려 본다.

처녀작에 해당하는 화지의 믹스테잎 [뷔페[Buffet]는 말 그대로 운율과 가락에 굶주린 화난 돼지(화지의 본뜻)의 식욕이 여과없이 반영된 참신한 출세작이었다. 이 작품에서 화지는 한영을 혼용한 플로우, 속도감을 배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운율 등을 비트 위에서 마음껏 뽐내며 설익지 않은 존재감을 단숨에 드러냈다. 믹스테잎 발표 후 여러 상황과 존재론, 가치관에 대한 상당한 깊이를 담은 정규 1집 [EAT]은 (본작과 함께 합본 CD의 포맷으로 발매되기 이전) 무료 공개되어 작품에 다가가고자 했던 청자들을 놀라게 했음은 물론, 안정된 랩 운용으로 호평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반 3년이 다 되어..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발매되었으나 꽤 비범한 담론과 의견, 평가들을 공통분모로 끌어낸 듯한 본작, 화지의 정규 2집 [Zissou]가 귀에 걸렸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참혹한 현대 사회(정확히 말하면 현실의 한국 사회)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을 겨누는 것은 아니나, 본작은 결론부터 말해 자유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회에 ‘자유’라는 관념을 바나나 껍질 삼아, ‘이상’이 현실이 되지 못 하는 현대의 여러 생각들을 미끄러뜨리는데 성공했다.

흔히 기성 담론에서 벗어나 ‘무엇에 의해 좌우되는 삶’을 거절하고, 그 대신 어떻게 산다는 스스로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분방한 마음을 한껏 크게 끌어안는 사람들을 ‘히피(Hippie)’라고 말한다. 지극히 감상적인, 필자만의 표현이 주는 모호한 정의라고 느꼈을지 모르겠으나, 거꾸로 말해 ‘시대를 거스르는 엇박자 인생‘(본작 중 10번째 트랙 ’나르시시스트‘의 표현 인용)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이들의 포박되지 않은 모호하고, 흐릿한 무의식에서 꿈틀댄다는 것이다. 그것은 화지가 본작에서 전반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와 동선을 그린다. 소수점으로 흐릿해진 환상과 이상의 물체를 찍는 현실 속의 화소(Hwassou)(이것은 화지와 스티브 지소를 합성시킨 이름으로도 표현한 필자의 의중을 담은 것임과 동시에 카메라의 화소를 빗대고자 하였다.)는 비로소 본작으로 인해 그 모습이 외려 뚜렷해진다.

화지의 음악적.인간적 벗으로, 화지의 작품에 흔들리지 않는 뼈대를 제공한 프로듀서(이자 랩퍼) 영 소울(Young Soul)이 역시 설계도를 쥔 본작은 조급하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사운드 프로덕션에까지 이식시켰는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급하지 않은, 그러나 비교적 산뜻한 비트들과 어느 순간 들려오다가 갑자기 잘리고 다시 들려오는 샘플이 적재적소에 혼재되어 있다. 더군다나 불교적 풍광을 그리는 듯한 ‘상아탑’의 미니멀한 드럼에서, 끝내 호흡을 깊이 들이마신 후 내뱉듯 착착 감기는 비트의 감각적 표현이 드문드문 들리는 베이스와 신스가 맞물려 곡의 제목대로 ‘열반’에 이르는(‘이르바나’) 시작과 끝의 구성이 매우 명료하다. 시공을 막론한 관념과 의식의 표출이 본작이 갖는 미학적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흡사 의식의 흐름으로 서술되는 문학의 내재적 효과가 의식의 흐름으로 자유로이 발화되는 본작의 ‘현대 담론 서사’로 전이된 것과 같다.

그것은 시사성을 띤 곡의 제목들을 우선적으로 주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에 타는 문명(으로 비유된 도시) 위를 활보하는 비행기가 인상적인 미감을 자아내는 본작의 커버 디자인과 같이 본작은 자유롭되 매우 화끈하다. 결과론에 찌든 가식과 철학을 논한답시고 위선적인 허영을 늘어놓는 현대인의 숨겨진 감각을 파고드는 ‘상아탑’, 쾌락이 곧 종교라는 문명 사회에서 불편함을 읊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개인’의 단상을 담은 듯한 ‘꺼져’, 혹은 딥플로우(Deepflow)와 보컬 더 스윗(The Suite) 이 참여한 타이틀 ‘서울을 떠야 돼’에서 극대화된, 물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반감과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 등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문명이 낳은 작금의 현상과 결과물들이 어느 순간 화자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나있는 ‘이상’을 진술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심증이 된다.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서 특정한 변화와 대안을 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작이 가사적으로 뛰어난 근거는 단 하나다. 그것은 비록 염세적이지만 진실하게 ‘물질주의’, ‘탈조선’과 같은 관념과 신조어에 접근하는 화지의 능글맞은(동시에 날카로운) 플로우 때문이다. 비정상의 상태에 적응만이 답임을 주입하는 현실을 관람, 제작하는 관조자로서의 화지가 그려낸 ‘자유 조감도’가 본작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겠다. 화지는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는 공학, 사회학적 용어를 빌려 본작이 전반적으로 지닌 의중을 대신한 바 있다. 그것은 즉 먼 곳에서 하나의 테두리를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달리 말해 21세기 히피의 본능이라고도 표현한다)이 가감없이 담겨져 있는 본작이 실로 지대한 시야를 바탕으로 나온 작품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본작은 위에서 언급한 초반부의 곡들을 제외하고도 깊이 주목할 만한 요소를 담은 곡을 갖고 있다. ‘서울을 떠야돼’가 타이틀이 된 것은 자유에 갈급한 히피의 메타포로서 다가오지만, 실은 13트랙이 띠고 있는 저마다의 음악적 정체성(가령 베이스 리프가 시종일관 사운드를 지배하며 고르게 퍼진 스네어 드럼이 인상적인 ‘Ill’, 어쿠스틱한 기타 멜로디의 반복적인 운용으로 이상 세계를 표현한 전작의 ‘바하마에서 봐’와는 약간 상반된 무드로 변형된 듯한 ‘바하마에서 봐 2’ 등)은 촘촘히 얽힌 마인드 맵과도 같아서, 그 안에서 형용하는 표현들이 때때로 사유할 만한 구절을 생성하는, 이른바 ‘역학 작용’을 한다.(‘잘 하면 너는 나의 주마등의 여우조연’(‘Gypsy Girl’ 중 2절),(‘저기 사촌이 땅 사면 복통 오는 대한민국 꼴통들도 나를 따라와’)(‘나르시시스트’ 중 1절)) 그러나 본작을 돌이켜 들어볼 때 유난히 ‘반작용’을 하는 트랙 ‘UGK’에서 나타나는 세속적 쾌락의 표출은, 전형적인 재야의 대장(Underground King)의 모습을 빗댄 듯한 팔로알토(Paloalto)와 화지의 표현력이 1% 채우지 못 한 본작의 깨알같은 옥의 티로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 모로 보아도 화지의 MC로서의 매력은 위트 있는 문장 속에 진지함이 안배되어 있는 가사가 우선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탱하는 음악적 지렛대가 없었더라면 화지가 전하는 그 많은 표현들은 청자의 귀에까지 날아들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냉소적이라고, 또 누군가는 날카로운 플로우가 지닌 깊이의 극대화라고 그에 대해 평한다. 부연하자면 의도치 않은 필연이 빚어낸 [Zissou]의 주인 화지는 본작을 통해 영원히 순응적이지 않을 자유를 통해 씁쓸한 시대적 바이브를 저격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그것은 동시에 청년 세대가 골몰하고 있는 극심한 담론으로부터의 고통을 겨냥한 것과 같다. 물신주의의 사회상 속에 존재하는 현대판 히피의 분방한 세계관은 직립보행하는 자유의 견제 대상이라고 하였다. 대신 그것은 가식을 가식으로 덮는 분위기를 깨는 이지러진 자유의 성정이 된다. 화지의 본작이 전하는 바에 있어 이견은 없다.

(4 / 5)

 

 

About 허희필 (6 Articles)
이명의 풋내기 필자 허희필(본명 : 허승엽)이라고 합니다. 거르지 않는 문장을 고수하는 편이나, 실은 가장 따뜻한 문장이야말로 좀 더 비판적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글쓰기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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