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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우리는 2인조 밴드, 57이다!

 

‘헬로루키’ 심사를 하다가 우연히 레인보우 스테이지라는 밴드를 알게 된 이후로, 레이더망을 가동한 채 이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다가 팀이 분열해 57이 되었고, 둘이 된 밴드는 전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당신이 매주 홍대 클럽을 순시한다면, 이들의 공연을 어디선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하다고? 그렇다. 생소할 뿐만 아니라 솔직히 이들이 보완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 대는 것으론 부족하다. 그러나 누군가 “이 팀의 미래가 보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변할 것이다. 마침 이 인터뷰가 끝난 직후, 57이 ‘라이브클럽데이 오픈쇼케이스’를 통과해 8월의 큰 무대를 장식할 수 있게 되는 경사가 생겼다. 축하해주기 바란다. 참고로 이들의 EP는 57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uo57?fref=ts)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인터뷰엔 윤준홍(보컬/기타)과 김설(드럼)이 참여했다.

 

전주 출신의 밴드다. 클리셰적이긴 하지만 밴드가 낯설 분들을 위해 이 질문을 넣어봤다. 둘은 어떤 계기를 통해 합치게 되었는가?

윤: 군대 가기 전 스쿨밴드 활동을 1년 정도 했었고, 전역 이후론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사는 게 지루해져서 적금을 깼고 그 돈으로 2008년 ‘섬머소닉’을 보러 갔는데, 그게 어떤 모멘트가 된 것 같다. 이후로 일도 잡히지 않았고, 열정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기타를 잡았고 레슨까지 받았다. 그러다가 “내가 밴드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스쿨밴드 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밴드를 꾸렸다. 포맷은 4인조 펑크 밴드였는데, 그땐 설이가 없었다. 그러다 친구들이 직장 문제 등등으로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집중도도 떨어져서 고민하던 찰나에 자주 들르던 펍의 직원이었던 설이에게 같이 하겠냐고 언질을 준 거지.

김: 첫 요청은 거절했다. 고등학교 때 드럼 치긴 했지만 당시엔 음악 하는 걸 고려해보지 않아서. 드럼도 어렸을 때 재미삼아 잠깐 친 거였지 프로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고. 물론 오빠들이 하는 펑크 밴드는 가게에서 공연도 하고 해서, 잘 알고 있던 상태였다. 기쁜 제의였지만,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졸업하고 시험도 봐야 했기 때문에 선뜻 승낙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달 후에 다시 이야기해보죠”라는 중재안이 나왔고, 1달 후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그게 3인조 밴드 레인보우 스테이지의 시작이다. 현 57의 전신이지. 그렇게 2년 정도 셋이서 연주를 같이 하다가, 같이 하던 오빠가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면서 밴드를 그만두게 되어서 2인조 밴드 57이 되게 된 거다.

 

늦깎이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남들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이상 밴드를 늦게 출범한 데서 오는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윤: 전주에 있을 때는 내가 막내 또래여서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서울 오니까 훨씬 어린 분들이 연주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는 거다. 그때,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밴드들과 더 친해지기가 쉽더라. 허물없이 지내게 된 친구들도 생겼고. 지금은 그게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만약 나이가 더 어렸다면, 부모님께 철없이 기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자립해서 생활하다 보니 연습을 두 배로 더 하게 된다. 잘하고 싶어서.

김: 나도 늦게 한 게 아쉽거나 하진 않다. 순리대로 길을 걸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5년, 10년 일찍 출발해서 평탄하게 왔다면, 이렇게 부지런히 연습하고 곡 만드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거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시작했다고 본다.

 

말했다시피 ‘레인보우 스테이지’라는 밴드 이름을 버리고, ‘57’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에 거주한다. 홍대로 넘어온 이후 밴드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윤: 매주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 그게 베스트다.

윤: 맞다. 지칠 겨를도 없다. 항상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까. 지역에 있었을 때는, 공연에 목이 잔뜩 말라 있었다. 이래저래 공연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한옥마을 뒤쪽에 위치한 스테이지를 찾아내곤, 그쪽에서 매주 연주를 했다. 사정이 서울보단 좋지 않다. 서울은 항상 ‘다음’이 있는데, 지방은 그게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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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있을 때는 그럼 몇 개 클럽에서 연주했나? 그리고 몇 팀 정도가 활동했었나.

김: 클럽은 2개 있었는데, 매주 공연하는 곳이 하나 있었고 다른 클럽에선 간헐적으로 연주했다. 아무래도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고, 그 바운더리도 협소했지. 짐 싸들고 야외에서 연주하기도 했으니. 서울로 오니까 매주 연주하는 것 말고도, 다른 밴드랑 소통하고 말 트고 그런 상황이 되니까 좋다. 그 과정에서 얻어가는 것도 많고.

윤: 팀은 우리를 포함해 3팀 남짓 있었다. 음반 발매도 하고, 전주를 포함해 지방도 다니면서 공연도 하고 그랬다. 팀은 많지 않았지만, 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했던 걸 보면 흥미로운 게 있었다.

 

여러 장르를 섞어서 연주하기에 파악이 쉽진 않지만 외양적으로는 ‘개러지+펑크+얼터너티브 락’의 혼합물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인들이 파악하고 있는 57의 장르는 뭔가?

김: 나는 장르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다. 사람들은 개러지나 펑크, 포스트펑크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윤: 장르라는 건 듣는 사람이 규정하는 대로 정해진다고 본다. 딱히 “우리는 이런 음악을 하고 있다”라고 규정할 수가 없는 게, 요즘도 곡을 쓰면서 팀 색깔이 변하고 있다. 2인조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피부로 와 닿는다. 저 친구가 바뀌었구나. 혹은 내가 바뀌고 있구나. 그런 것들. 밴드의 기저엔 개러지와 펑크가 깔려 있겠지만, 계속 변이하고 있기 때문에 확답할 수는 없다.

김: 조금 더 지나면, 정체성이 명징해질 것이다.

 

알겠다. 그럼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타오르는 절규로 시작하는 ‘U&I’는 밴드의 대표곡이자, 사람들이 좋아하는 57의 곡이다. 적당히 드라이브감도 있고 춤추기 좋다.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윤: 57의 작업방식은 잼 연주를 통해 즉흥적으로 뭔가를 만들기보단, 내가 스케치를 가져온 뒤 설이랑 리듬적인 부분을 회의하고 그걸 통해서 곡을 확장해 나가는 쪽에 더 가깝다. 이 곡 역시 그런 경로를 통해 쓰였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걸 좀 쏟아내 보고 싶었다. 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옛날의 나는 멋진 걸 보면 흉내를 내거나 따라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문턱에서 그게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나에 대한 분노인 거지. 그걸 곡에 담았다. 어떻게 보면 팬 분들에게 57이라는 밴드가 있다는 걸 알린 시발점이 된 곡이다. 맨 먼저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고.

 

‘Stray Dog’, ‘Then’ 같은 발라드는 57의 곡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일관되게 본인들의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편이 더 나았는지, 이 곡이 들어가서 다양성을 더해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 최근에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오빠랑 한 적이 있는데, 오빠가 ‘Bonfire’랑 ‘Stray Dog’은 뺐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U&I’유의 곡들로 꽉꽉 채웠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서 살짝 동감해봤다. 이런 슬로우 템포의 곡들은 우리가 소스가 많아졌을 때 추가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지.

윤: 녹음할 당시에도 넣을까 말까 했지만, 이것도 우리의 기록이라면 기록인데 삭제하는 건 맘에 걸려서 다 수록하게 된 거다. 뭐, 그 곡들 때문에 현재 57의 색채가 일정 부분 희석되었다는 데는 동의한다.

 

준홍의 보컬은 잘 부른다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2-piece 밴드의 사운드에 최적화된 어떤 맛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보컬 트레이닝을 따로 받은 적이 있나?

윤: 아니다. 원래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서 기타만 배웠다. 그런데 보컬이 구해지지를 않아서, 기타를 치며 보컬을 했지. 주로 커버곡을 했는데, Fall Out Boy/Ellegarden 같은 팝펑크 밴드들의 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기타/보컬을 병행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더라고. 그래서 영상도 찾아보고, 책도 보면서 공부를 했다. 너무 빡세게 한 탓에 목이 쉬어서 한 달 동안 고생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완성된 보컬리스트라고 보긴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

 

김설의 드럼은 와일드하면서 정제되지 않았다. 제도권 드럼 교육을 받지 않은 게 당신의 드럼 사운드를 더 유니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보나.

김: 맞다. 내 연주는 말 나온 바대로 ‘정제되지 않고’, 어떤 측면에선 ‘못 배운 티가 나는’ 드럼이다. 나는 날것의 질감을 주는 연주를 선호하는 편인데, 예를 들어 드러머가 해야 되는 정석적인 리듬이나 패턴은 잘 연습하지 않는다.

 

아무리 원초적인 텍스처를 중시하는 밴드라고는 하지만 녹음이 훌륭하진 않다. 다시 녹음해서 공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윤: 설이가 드럼 칠 때 내가 그걸 레코딩했고 내가 기타를 칠 때 설이가 그걸 녹음을 해서 음반을 갈무리했다. 그게 그게 불편한 작업이고 질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다. 당시엔 성실하게 연주와 녹음을 해서 결과물이 나온 게 그저 좋았지만, 아쉬운 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설이한테 다시 한 번 녹음해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는데, 이 친구는 그건 싫다고 하더라. 나도 궁금하다. 왜 그런 거니?

김: 그건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앞으로 나올 곡들을 신경 써서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윤: 나도 지금 있는 EP로 인해 더 나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음질 나쁜 CD와 라이브를 통해서 매번 배우고 느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김: 라이브 때 반응 좋고 하면 또 모르지(웃음).

 

공연장에서만 CD를 판다. 음반점이나 스트리밍을 통해서는 밴드의 음악을 구입하고 들을 수 없다. 왜 그런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런 행위들이 대중이 57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을 닫아버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김: 처음엔 음반을 회사를 통해 유통했었다. 그런데 회사랑 약간의 마찰이 있어서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유통사를 알아보던 중에, 오빠랑 밴드 페이스북과 공연장에서만 팔자고 합의가 된 거지. 대중이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몇 개 없어지더라도, 우린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다. 당분간 이렇게 하려고 한다.

윤: 공연장에서 CD를 사는 사람들을 보거나, 공연을 보고 CD를 구입하겠다는 메시지가 오면 흐뭇하다. 공연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유통사가 있다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이런 쾌감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고 그걸 더 오래 누리려면 우리가 더 치열하게 음악을 해야 할 테니까 난 지금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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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버튼즈를 비롯해 2인조 밴드가 하나씩 둘씩 늘고 있다. 3인조나 4인조 밴드에 비해 미니멀하고 직선적인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 본인들이 파악하는 2인조 팀의 강점은 뭔가?

윤: 멤버와 서로 대화하기 편하고, 싸우더라도 화해하기가 쉽다. 우리가 3인조로 죽 갔다면, 서울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3인조 때는 서로 눈치도 봤고 말도 많이 안 하고 그랬는데, 2인조가 되니까 이제 그런 건 없어졌다.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서로의 파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상대방 악기가 직접적으로 들리게 되니까 그럴 것이다. 설이도 단순히 드러머로 머물지 않게 되는 거지. 설이는 지금 연주하다가 “오빠, 나는 이 부분에서 공간계가 빠지면 좋겠어”라고 제안을 서슴없이 한다. 전엔 그런 게 없었거든. 확실히 그 점에선 2인조 밴드의 장점이 있다.

김: 사람이 많아지면, 언제나 사정/핑계가 많아진다. 그런데 2인조로 정비된 이후에는, 굳이 설명이나 변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커진다. 연주자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사운드를 관객에게 전달하기가 더 편하고. “우린 2인조 밴드야. 공연은 이렇게 할 거야”, 뭐,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클럽에서 뿜어내는 정열이 대단한 밴드다. 주말이면 공연장에 적힌 57의 이름을 종종 보곤 한 것 같다.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은 본인들에게 어떤 영양소를 주는가.

윤: 낯익은 얼굴이 공연장에 생긴 게 큰 힘이다. 이것도 서울 와서야 그렇게 된 거다. 공연을 하루에 2번 한 적 있는데, 그분이 그 2번을 다 보러 온 거다. 그런 분들을 보면, 우리 정말 죽어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사람이 많건 적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누구한테 57의 사운드가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초창기엔 사람이 없으면 압박이 심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그걸 다 내려놓고 연주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클럽에 가면 “저 사람을 우리한테 집중하게 만들어야지”가 최대의 목표다.

김: 어느 공연장이든 드럼 세트 위에서 사람이 몇 명이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몰래 본다. 그러면 별 관심 없는 분과 다른 데 주의를 두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은 “어디 한번 해 봐!”라는 얼굴로 쳐다보기도 하는데, 그것 때문에 주눅도 들고 그랬다. 그런 적이 있었다. 그 차가운 표정을 보면 어디 오디션 보는 데 끌려온 것 같고. 그런데 반복이란 게 참 좋은 수업인 게, 그것도 자꾸 하다 보니까 시선 의식 없이 더 흥겹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보단, 나 스스로가 즐겁게 연주하게 된 거지. 제일 큰 수확이다.

윤: 그게 억지로 나오는 게 아니고, 진정성 있는 즐거움이다. 아무런 사심이나 이해가 개입되지 않은 즐거움. 오히려 공연이 없는 주에 강박이 생긴다(웃음). 그렇게 짬이 날 땐 다른 밴드 공연을 보러 간다.

 

‘잔다리’에 섰다. 그 경험은 당신들이 차후 더 큰 밴드가 되기 위한 어떤 문턱이나 발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르긴 하지만 나중에 어떤 무대에 서고 싶나. 락 스타의 최종 목표 같은 것 말이다.

윤: ‘잔다리’ 무대 하면서 1시간 동안 무대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 체계도 없었고, 산만했다. 그런데 그게 생기다 보니, 그 준비가 재미있게 되더라. 1시간 공연을 위해 3시간 이상 합주하게 되면서, 부족한 점도 그때그때 체크해 보완할 수 있게 된 거다.

 

57을 음악으로 인도한 밴드가 있다면?

윤: 둘 다 공통적으로 Biffy Clyro인데, 이 팀은 57의 결성에 절대적 영향을 준 밴드다. Simon Neil의 기타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 폭발하는 에너지에 빠져버리게 된다. 전에는 그거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상상만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다”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모종의 롤 모델인 거지. 뭔가 비슷하게 스토리를 짜 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이 친구들도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우린 전주 출신이다. 둘 다 비주류 지역에서 컸다는 유대감. 그리고 그 친구들이 성공했으니 우리도 못할 것 없다는 자신감. 이거 모종의 평행이론(웃음)?

 

친한 밴드들을 몇 팀 안다. 혹 그 중에서 골라도 괜찮다. 같이 공연하는 친구들 중, 괜찮다 싶은 팀이 있다면 누구인가?

윤: 나는 빌리카터. 전주 공연 같이 갔다가 진가를 알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겁먹었을 텐데 특유의 그 자유분방함이 좋다.

김: 나는 데드 버튼즈. 영국 다녀온 후 첫 공연이 너무 궁금해서 당장 보러 갔는데, 세상에 너무 섹시해진 채로 돌아온 게 아닌가. 사운드의 합도 좋지만, 그 관능적인 섹시미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다음 EP의 발매 일정은 언제인지.

윤: 내년 1월이나 2월쯤이 될 것이다. 7월말까지 3곡의 신곡이 나올 것이고, 지금 계획은 8월까지 5곡을 작업하는 거다. 9월 이후부터는 1시간 셋으로 가을 내내 자작곡으로만 연주하면서, 들어가게 될 곡들을 추려볼 예정이다.

김: 이번에 쓰는 노래들은 의도하지 않게 Biffy Clyro가 떠오르는 곡들이 많다. 카피했다는 게 아니라, 원시적인 기운을 토해내지만 한편으론 따뜻한 사운드. 그 안에는 우리의 삶과 경험이 들어 있을 거다. 연주를 하면서도 울컥할 때가 있다.

윤: 사운드적으로 더 스트레이트한 음악. 그렇다고 액셀만 밟는 음악은 아니다. 전과는 다르게 설이가 가져온 멜로디도 있고.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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