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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 빙글빙글

연애로 바라본 성숙의 과정

재미있다. 9와 숫자들의 이번 미니앨범의 곡 제목은 똑같은 단어를 6번 반복하는 것으로 완결된다.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빙글’. 1집 [9와 숫자들]로 신스팝과 포크의 어느 경계를 탐색했고, 1.5집 [유예]로 1집에서 구현했던 복고를 더욱 심화시켰다면, 2집 [보물섬]에서는 싱글들의 매력을 극대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이들은 계속 “유년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면서 어떻게 이를 진부하지 않게 가공할 수 있을까? 또 회고주의로 흐르지 않고 어떻게 과거라는 시제를 현재라는 시제 곁에 이식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확실하다. 이들의 ‘코어’가 은닉된 가사까지 함께 관찰했다면 말이다. 코어는 이번에도 같은 곳에 위치하는데, 이번에 내가 눈여겨보는 포인트는 ‘연애로 바라본 성숙의 과정’이다.

먼저 ‘빙글’. 거의 처음으로 시도하는 어쿠스틱 팝이다. 이 곡은 순진무구의 시절에 대한 소박한 고백 정도로 해독된다. 화자는 ‘만남’과 ‘이별’의 차이를 모를 만큼 어리하고, 연인의 마음을 읽는 데 무지하여 ‘미움’과 ‘무감’의 차이조차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걸어가던 그는 사랑이 넘실거리던 그 마지막 장소에 ‘박제’되고 마는데, 언제나 그랬듯 9와 숫자들의 노래가 감동을 준다면 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깊은 울림은 결국 ‘1인칭’을 건드리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편곡이 약간 조밀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노랫말을 죽이면서까지 강하게 음을 조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키워드는 ‘순박’이다.

두 번째 ‘빙글 빙글’. 템포가 빨라지고 락 비트가 강해졌다. 한 번 더 ‘빙글’하는 동안 ‘순수의 시대’를 젊음의 훈장처럼 통과했던 화자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어 늦은 아침에 눈을 비비고 멍한 얼굴로 거리로 나서 낡은 자동차 시동을 켜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사는 고달파졌고, 그만큼 생존게임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익혀야 했던 화자는 연인에 대한 대처도 약아졌다. 핑계를 대며 약속을 미루고, 다시 그 약속을 연기할 구실을 궁리하던 그는 첫사랑의 페이스북을 검색하면서 내가 정말 그것을 찾아내면 어떡하나 마음 졸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남성의 판타지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키워드는 ‘순응’이다.

세 번째 ‘빙글 빙글 빙글’. 다시 차분해졌고 적절한 텐션이 들어가 중도적인 성격의 팝이 되었다. 이 곡에서 화자는 인생사의 셈법(특히 연애의 셈법)이 꼭 ‘1+1=2’가 아님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이론과 책으로는 누구나 빠삭하다시피 연애란 퍼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잇속만을 차려서 되는 것도 아니다. 화자가 인생의 여행 끝에 낚아 올린 솔루션은 ‘배려’다. “당신이 걱정되어 난 그 앞을 세 바퀴 돌았네 당신을 배려하여 난 세 바퀴나 마음을 돌렸네”라는 대목을 보면 명확하다.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체험. 이다지도 어려운 줄 왜 그때는 몰랐을까. 늘 우리의 반성은 ‘사후적’이다. 그렇게, 늦게, 우리는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를 품는 법을 익힌다. 자신의 앞만 보던 화자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상대를 보는 순간이다. 그래서 키워드는 ‘따로 또 같이’다. 이제 그리움조차 관절염처럼, 친구처럼 달고 다니게 되는. 무려 세 번을 ‘돌아야’ 조금 알게 되는 타인의 심정.

매번 유사하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정말?). 그러나 과연 9와 숫자들이 스타일의 변화에 포커스를 두어야 하는 밴드일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뭔가를 ‘읽는다는 행위’가 마치 ‘구석기 시대의 전유물’처럼 취급당하는 시제 ‘현재’에 이렇게 ‘듣고 읽는 재미’를 주는 밴드가 어디 흔했나. 노래를 들으면서 동시에 가사에 주목하게 되는,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그룹이 또 있을지. 그것만으로 이 ‘과거 탐사대’의 존재가치는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3.5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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