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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hema: The Optimist

Anathema는 구릴 수가 없어요


사실 Anathema에게 낙관주의자라는 제목이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밴드의 이름에 겹쳐지는 음울함의 큰 원인 중 하나는 [The Silent Enigma]나 [Eternity] 같은 앨범들이겠지만, 이제는 둠-데스 밴드의 커리어보다는 Steven Wilson이나 Opeth와 Progfest에서 무대를 나눈 시간이 더 길어져버린 밴드에게 20년 전 음악으로 이미지를 운운하는 건 그리 적절하진 않다. 그렇지만 디스토션 짙은 리프를 연주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Anathema의 정서는 취업 자기소개서에 적어내기 좋을 만한 희망찬 모습과는 거리가 (매우)멀었다. 밴드가 그려내는 주인공은 그보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토로하는 유약한 멘탈의 소유자에 가까워 보였고, 흡사 자살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던 [A Fine Day to Exit]의 화자는 덧붙일 필요도 없겠거니 싶다. 그런 만큼 [A Fine Day to Exit]의 시퀄 격이라는 이번 앨범의 제목이 [The Optimist]라는 건 어찌 생각하면 희망에의 강요에 가까워 보인다. 문득 [We’re Here Because We’re Here]도 생각난다. Anathema는 [Alternative 4]부터는 비교적 일관된 궤적으로 디스코그래피를 짜 왔지만, 우울한 가운데 그래도 나름의 희망가를 찾아볼 수 있었던 앨범들은 [We’re Here Because We’re Here]부터 등장했다.

[A Fine Day to Exit]의 시퀄이니만큼 이번 앨범도 콘셉트 앨범이 되었다. 처음부터 주어진 텍스트가 있었던 [Alternative 4]를 제외하면 Anathema는 콘셉트 앨범을 직관적인 멜로디나 리프를 설정하고 이를 계속 변주, 발전시켜 가면서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왔고, 이번 앨범도 그런 범주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밴드의 가사는 명확한 서사를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가기보다는 서사 속에서 움직이는 화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이니만큼, 복잡한 연주나 다각적인 구성은 처음부터 그리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겠거니 싶고, 밴드가 프로그레시브 딱지를 달면서도 Opeth보다는 Porcupine Tree나 Radiohead에 더 가까워 보였던 것은 아마도 그에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A Fine Day to Exit]의 주제를 반영하고 변주하고 있는 앨범이다. 당장 앨범을 시작하는 ‘32.63N 117.14W'(샌디에고의 Silver Strand Beach의 좌표라고 한다. [A Fine Day to Exit]의 커버를 참고할 것)부터 [A Fine Day to Exit]의 피날레였던 ‘Temporary Peace’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The Optimist]는 [A Fine Day to Exit]와는 분명 다른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앨범이다. 바꿔 말하면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주인공이 너른 해변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고, 여행의 끝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영화가 있다면 [The Optimist]는 그 너른 해변의 모래톱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Distant Satellites] 풍의 일렉트로니카를 [A Fine Day to Exit]의 테마와 함께 풀어내면서 밴드는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곧 업비트의 ‘Leaving it Behind’가 로드무비마냥 모래톱에 이어진 도롯가를 표현한다(물론 밴드가 재미없게시리 직접 가사에다 고속도로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니, 저런 로드무비가 너무 식상한 내용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Endless Ways’부터는 Lee Douglas가 Vincent Cavanagh와 함께 마이크를 잡으면서 앨범에 새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조금은 자욱한 분위기에 휩싸인 Kate Bush의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지라 Vincent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는데, 물론 Anathema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목소리이지만 그녀는 [A Fine Day to Exit]에서는 게스트 보컬일 뿐이었던지라 이 시퀄 앨범에서 분명 새롭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 앨범은 [A Fine Day to Exit]의 모티브를 사운드적으로는 비슷할지언정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만큼 결국 청자들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밴드가 모티브를 새롭게 풀어가는 모습을 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Anathema는 둠-데스 시절부터 명확한 서사 없이도 정서의 재현에는 늘 성공적인 편이었고, [The Optimist] 또한 그러한 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뭐, 그러니 결국은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철저히 인상비평에 가까울 것이고, 아마도 Vincent와 Lee의 보컬이 어울린 후 연주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는 ‘San Francisco’와, 앨범의 색채를 대변하는 ‘Springfield'(앨범에서 유일하게 싱글 커트되었다)에 대한 인상이 그 중심에 있겠거니 싶다. 내 경우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좀 더 낙관적으로 각색한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즐거웠다.

4.0 Stars (4.0 / 5)
 

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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