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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turus: Arcturian

일단 앨범 한 장 사고 얘기합시다

앨범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앨범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것이었다. [Arcturian]이라니, 앨범 제목을 ‘Arcturus 5집’ 식으로 지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도 싶지만 이 이름만큼 이 앨범의 음악을 잘 설명하는 단어도 찾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Arcturus는 여태까지 앨범들을 발표해 오면서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데뷔는 심포닉 블랙메탈의 명작이었던 [Aspera Hiems Symfonia]이었지만, 이후의 [La Masquerade Infernale]은 당대의 어느 밴드와 비교해도 훨씬 복잡하고 뒤틀려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연극적인 앨범이었고, [The Sham Mirrors]는 덜 연극적이었지만 더 ‘스페이스’하면서도 메탈릭한 앨범이었고, [Sideshow Symphonies]는 더 이상 블랙메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으나 뛰어난 프로그레시브메탈 –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Dream Theater 스타일이란 말은 아니다 – 앨범이었다. [Arcturian]은 이 모든 스타일을 전부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다. 하긴 예상된 바이기는 하다. Knut Magne Valle는 새 앨범은 밴드가 여태까지 해 온 음악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발표된 이 앨범은 기본적으로는 [The Sham Mirrors]와 [Sideshow Symphonies]의 테마에 발을 딛고 있다고 해야겠다. 하긴 Arcturus가 본격적인 심포닉 블랙메탈을 한 지는 오래 되었고, [La Masquerade Infernale]은 밴드 스스로도 쉽게 재현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앨범을 시작하는 ‘The Arcturian Sign’이나 ‘Crashland’가 발을 담그고 있는 곳은 기본적으로 [Sideshow Symphonies]의 분위기이다. 물론 ‘The Arcturian Sign’에서 등장하는 ICS Vortex의 래스핑이나 앨범 전체적으로 신서사이저와 함께 사운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트링은 [Sideshow Symphonies]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Angst’ 같은 곡은 이 앨범이 어느 지점에서 [The Sham Mirrors]에 발을 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Sideshow Symphonies]에서는 들을 수 없었고, ‘Radical Cut’ 같은 곡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빠른 템포와 스페이스한 신서사이저, ICS Vortex의 스크리밍(‘Radical Cut’에서는 Ihsahn이 했었지만) 등이 앨범이 [Sideshow Symphonies]의 상대적으로 ‘공고했던’ 프로그레시브메탈 작풍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앞서 지적했듯이 신서사이저와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트링’의 등장은 이 앨범이 [La Masquerade Infernale]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분명히 연극적인 분위기를 의도했을 ‘Game Over’의 서두는 물론, ICS Vortex의 뒤에 물러선 ‘Ad Astra’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의 스트링, ‘Master of Disguise’ 같은 곡을 연상시키는 바 없지 않은 솔로잉의 등장, 그리고, 스트링을 이용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면서 계속해서 곡을 뒤틀어 가는 앨범의 모습은 [La Masquerade Infernale]의 그림자를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다. 덕분에 ICS Vortex의 보컬은 [The Sham Mirrors], [Sideshow Symphonies]보다 더 폭넓은 모습을 보여준다. 일견 Dimmu Borgir가 복잡해지고 Shagrath의 보컬을 빼버린 모습을 예상하게 하는 바 없지 않은 ‘Pale’은 이 앨범에서 Vortex가 얼마나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이 곡은 앨범에서 상대적으로 [Aspera Hiems Symfonia]를 기억하게 하는 곡이기도 하다. ‘Fall of Man’에 비견할 만한 투명한 멜로디 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노르웨이 심포닉 블랙메탈의 잔향이 두터운 사운드 속에 남아 있다. ‘Bane’ 같은 곡은 아예 블랙메탈 연주에서 ‘The Chaos Path’ 풍의 연극적인 사운드로 이어진다.

그런데 밴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Warp’에서 등장하는 일렉트로닉스는 물론 밴드가 이전에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For to End Yet Again’) ‘Demon’만큼이나 일렉트로닉스가 전면에 드러나는 곡을 만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La Masquerade Infernale’의 효과음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The Journey’의 초반에서는(앰비언트풍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예 일렉트로닉 비트와 신서사이저 루핑이 곡의 뼈대를 이룬다. 무려 Hellhammer의 드럼을 놀려 두면서 이런 시도를 하는 셈인데, 종전의 Arcturus라면 들을 수 없었을 사이키델리아까지 등장한다. 사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은 밴드가 [Aspera Hiems Symfonia]와 [La Masquerade Infernale]의 모습들을 앨범에 집어넣으면서도 [Sideshow Symphonies]스러운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시종일관 스페이스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새로운 시도들은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그 새로운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들이 등장하는 곡들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전혀 없다. 과장 좀 섞으면 오히려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데, 곡을 무지막지하게 뒤틀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마 Arcturus의 능력일 것이다.

사실 난 Arcturus를 ‘아방가르드메탈’이라고 부르는 게 그리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다른 어느 메탈 밴드와도 비교를 거부하던 [La Masquerade Infernale] 정도라면 모를까, 다른 앨범들은 복잡할지언정 어쨌든 이 밴드는 항상 훌륭한 멜로디와 테크닉, 분위기가 공존하는 메탈을 연주했고, 끊임없는 변화 덕에 항상 흥미진진했지만 실험이 중점이었던 밴드였던 적이 없었던 밴드였다. 기존의 모습들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약간은 또 다른 모습으로 풀어 나가는 이 앨범도 밴드의 그런 면모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덕분에, 분명 새로운 구석이 있는 앨범이지만 앨범의 사운드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연주의 날카로움을 한 꺼풀 걷어낸 듯한 음질(Arcturus 정도의 밴드라면, 이런 음질로 앨범을 녹음한 건 의도적인 거다)도 그런 취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Arcturus의 앨범이 한 장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이 앨범도 좋아할 것이다. 금년의 메탈 앨범이라 칭송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덧붙임:
한정 디지북 버전에는 [Rearcturianized]라는 보너스 CD가 포함되어 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의 리믹스 버전을 담은 CD인데, 일렉트로닉스에 거부감이 강하다면 굳이 들어볼 필요는 없겠지만, ‘Arcturian Psychedelic Sign’ 만큼은 한번쯤 들어보셔도 좋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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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빅쟈니확 (83 Articles)
워리어 알통 터져 죽었다는 기묘한 부고기사에 눈물지으며 메탈을 듣던 머리 큰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메탈을 끊질 못하다가 결국은 글까지 쓰고 있다. 뭔가 흐름이 괴상한 것도 같지만 인생이 뭐 그렇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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