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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Fay: Who Is the Sender?

보존되어야 할 아련함

모든 나뭇잎이 떨어지고
고슴도치가 숨어들어가
벌이 윙윙거리며 날면
울고 싶은 심정이 되지

Bill Fay – ‘War Machine’

죽음과도 같은 40년. 이 말만큼 Bill Fay의 인생역정을 설명하기 좋은 어구는 없다. Bill Fay는 1967년 [Bill Fay], 1971년 [Time of the Last Persecution]이라는 2장의 음반을 발표했던 포크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레이블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고, 그는 한 가수의 커리어에 맞먹는 기간인 장장 40년 동안 철저히 지워진 채 살았다. 그것은 철저하게 아티스트 홀로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고뇌의 시간이었다. 훗날 Wilco를 비롯한 여러 인디 뮤지션들이 조명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 생애 다시는 볼 수 없을 ‘그 어느 누군가’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들의 힘을 빌려 41년간의 공백을 깨고(Mark Fry와 더불어 이 분야 최고 기록이지 않을까? 아, Vashti Bunyan도 있네) 공개된 Bill Fay 3집 [Life Is People]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2012년이 배출한 ‘수작 음반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극적으로 복권되었으므로.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된 Bill Fay가 통산 네 번째 풀렝스 [Who Is the Sender?]를 내놓았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타이틀이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은 쉽게 확인되는데, 저 ‘Sender’(神)라는 단어만으로도 음반의 성격을 예견해 볼 수 있게 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Bill Fay의 음악은 CCM의 한 갈래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Who Is the Sender?]엔 그 색채가 더 짙게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반전(反戰)이나, 일상의 기쁨으로 나아갈 때는 상관이 없지만, 너무 간다 싶을 때도 있다. 더구나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나이 지긋한 노인네라면 경계심이 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Bring it on Lord’(‘신께 드리리’)와 같은 노골적인 제목을 본다면 말이다.

부정적으로 운을 뗐다. 그러나 내게 [Who Is the Sender?]는 [Life Is People] 이상이다. 이게 핵심이다. 다른 언사 길게 늘어놓을 것 없이, 프로그레시브포크의 정수를 들려주는 트랙들을 듣고 있으면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리뷰 위편에 감상용으로 올려놓은 ‘War Machine’ 하나만으로도 음반의 존재가치는 만들어지지 않나. 잔잔한 피아노와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Bill의 보컬, 그리고 숭엄한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곡의 분위기. Nick Cave를 위시한 쟁쟁한 뮤지션들이 왜 그를 존경하는지 알게끔 한다.

성스러움이라는 것이 비단 종교에 한정될 이유가 없음을 전달하는 듯한 ‘Something Else Ahead’와 ‘Order of the Day’를 거쳐 음반의 하이라이트인 ‘Who Is the Sender?’에 다다르면 말로는 표현 못할 보편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종교도 없고, 세상도 신뢰하지 않지만, 이런 노래에 조용히 고개 숙인다. Jeff Buckley의 [Grace]를 처음 들었을 때, 이장호 감독의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보았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유 없이 뭔가에 압도당하는 듯한, 왈칵 몰려오는 파도에 잠기는 듯한 그런 느낌.

이 무슨 시대착오적 음악이냐며 냉혹하게 보는 시선도 있을 법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게다가 과도하게 진지하고, 종교적으로도 중립이 아닌 이 음악이 큰 반응을 얻어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저 감수성 예민한 작가는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악행을 멈추자고 권유할 뿐이다. 전술했듯, 노랫말을 잘 모르더라도 리스너를 휘감아 버리는 음악들이 있다. 이 음반이 그런 것 같지 않나. 코끝이 저릴 정도로 아름답다. 그건 아마 보호받아야 할, 어쩌면 이제는 보존되어야 할 아련함일지도 모른다.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1 Comment on Bill Fay: Who Is the Sender?

  1. 말이 40년이지.. 한평생이네요.ㅠ
    이렇게라도 알려지니 참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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