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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t Aus Nord: Memoria Vetusta Ⅲ: Saturnian Poetry

힙스터 블랙메탈과 앰비언트, 아트락, 그리고 집념이 만나면?

꽤 여러 곳에서 지적되었듯, Blut Aus Nord는 블랙메탈 씬에서도 가장 독특한, 그리고 비-관습적인 음반을 발표하기로 유명한 밴드일 것이다. 블랙메탈에 다크앰비언트, 프로그레시브, 아방가르드메탈까지 뻗어나간 장르적 지형도도 그렇지만, 동양철학과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광활한 이념적 스케일도 그렇고, 수학적으로 리프를 잘게 나눠가면서 그러나 그 분절된 점과 선으로 탐미적인 정경을 그려나가는 연주까지 모두 그러하다. 거기에 저 유명한 ‘777 trilogy’와 본 앨범으로 총 3장이 출시되게 된 ‘Memoria Vetusta 시리즈: 부제 – 집념의 일대기’도 간과할 수 없다. ‘777 3부작’은 그나마 2년으로 완결을 보았지만, 이 ‘Memoria Vetusta 시리즈’는 현재까지 오는 데만 무려 19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더욱이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 시리즈가 이어질지는 밴드 자신만이 알고 있다.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쓰다가 생을 마치겠다는 파스칼 키냐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혹은 ‘베르세르크’?) 바라지는 않지만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어마무시한 기획의 어이없음을 후회하고 냉큼 접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게 작가 혹은 아티스트의 숙명이다.

전통적으로 헤비니스에 대립되는 스탠스를 취한다고 알려진 웹진 ‘Pitchfork’가 사랑하는 블랙 메탈 밴드다(최근 ‘Pitchfork’가 전통적인 메탈 컨벤션의 대척점에 서 있는 헤비니스 밴드들에 대해 애정공세를 보낸다는 것은 사이트 이용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Pitchfork’가 좋아하는 헤비니스 성향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룰 예정이므로 이 자리에서는 패스하겠다). ‘Pitchfork’는 이번 음반에 8.2점을 선사했고, 헤비니스 전문 웹진들 사이에서도 이번 음반은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시리즈가 늘어지고 더구나 그것이 첫 발을 뗀지 20년 가까이 되면, 처음에 세워두었던 콘셉트에 이게 과연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첫 작품보다 나은 후속작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이 ‘Memoria Vetusta 시리즈’의 전작들보다 “직관적으로 팍 와 닿느냐?”고 묻는다면 답변하기 힘들다. 그렇다 해도 이 음반이 펼쳐 보이는 서정성과 오컬트함에 빠져들지 않기는 어렵다. 적어도 시리즈를 1편부터 정주행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블랙메탈의 유수한 정전들로부터 물려받은 예리한 리프와 다크함이 숨쉬지만 곡을 연주함에 있어 그리고 기타-베이스-드럼의 접점을 맞추는 데 있어서 이들은 유별나다. 특히 ‘Metaphor of the Moon’ 같은 곡이 그렇다. 이 곡은 거의 블랙이 가미된 아트락에 더 근접해 있다. ‘Forhist’는 또 어떠한가. 드럼 파트와 스크리밍 보컬만 뺀다면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락의 신동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Deafheaven에게 영광이 쏠린 것 같지만 사실 ‘힙스터 메탈’에 대한 찬사는 진작 이들에게 돌아갔어야 마땅했다. 이들은 이런 음악을 20년 전부터 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단지 스타일이 ‘힙해서’ 이 음반을 좋아한다면 나머지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이들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더 ‘힙한’ 음반도 많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우선 앨범의 커버아트부터 차근차근 뜯어봐야 한다. 이건 Blut의 팬이라면 필수옵션이다. 안심해도 된다. 피 흘리는 염소나 절단된 시체 따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블랙메탈이라고 다 그런 거 아니다(통념과 선입견은 예술을 감상할 때 얼마나 무시무시한 장벽으로 작동하는가). 저 앞에 계곡이 흐르는 산이 있다. 그곳엔 숲과 나무도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경관은 아니다. 그러고 나서 음반을 들으면, 그 이미지들이 눈앞에 연속해서 떠오른다. 그건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새긴다. “블랙메탈은 하나의 ‘느낌’이다.” 일전에 ‘Metal Hammer’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리더 Vindsval이 했던 말이다. 아티스트는 본인이 하고 싶은 멜로디와 리프를 제조하는 것이고, 그것은 특정한 용어를 통해 대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렇게 앨범은 웅장하면서도 숭고한 ‘Clarissima Mundi Lumina’로 저문다. 다른 어떤 수식어보다 이 말을 먼저 붙이고자 한다. 그저 아름답다.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4 Stars (4 / 5)

 

About 이경준 (145 Articles)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글을 썼고, 하나둘씩 망해가는 잡지(웹진)들을 볼 때마다 역시 '이런 건 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또 이렇게 판을 키웠다.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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